대전정림초등학교
대둔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장태산 안평산을 거쳐 쟁기봉에 이르러 조그마한 숲을 이룹니다. 숲이 어찌나 고요하고 조용한지 고요할 정(靜)에 수풀 림(林), 고요한 숲이란 뜻이죠. 여기엔 정림사라는 절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행정구역상으로는 正林洞 이렇게 써요.
그 정림동에 있는 학교니 정림초등학교
대전수미초등학교
수미초등학교는 정림 숲 바로 아래에 있는 학교예요. 2003년에 개교했어요.
이곳은 정림 숲과 갑천 사이 좁고 긴 들판위에 학교를 지었어요. 이들(뜰) 이름이 수미들이예요. 그래서 수미들에 있는 학교라해서 수미초등학교인데요.
수미들이란, 숲 밑들이예요, 이것이 숨밋들이 되고 다시 수밋들 > 수미뜰이 된거지요. 즉 숲 밑에 있는 들이라는 거지요. 그딱 넓지는 않지만, 그나마 지금은 모두 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그 옛날엔 그래도 웬만한 농사 채는 꾸릴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해요.
대전복수초등학교
원래 이곳은 고려시대 복수소가 있던 곳이었답니다.‘소’란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물품을 생산하여 공급하는 곳으로 다른 행정구역 보다 천하게 여겨졌고 세금 부담도 훨씬 큰 곳이었지요. 앞서 명학소 얘기를 했잖아요. 명학소, 복수소 모두 같은 하층민의 거주지를 말하는 것이예요.
그런 복수소가 있던 마을이라해서 복수라고 했어요, 복수하면 참 섬뜩한 말이지만 한자로 하면 참 복스러운 이름이예요. 福守 복을 지킨다는 거잖아요.
이 복수동에는 오량 지하차도가 있고, 오량체육관이 있어요. 앞에는 오량마루미 아파트도 있고요. 오량이 뭘까요?
그 옛날 고려시대에 이곳 복수동에 지방호족이 살았답니다. 그 호족이 사는 집이 보통집이 아니라 대들보가 다섯 개나 올라간 큰집이었답니다. 보통의 집은 대들보가 세 개인 삼량집인데 이집은 대들보가 다섯, 그래서 그 집을 오량택(五梁宅)이라 불렀고 그 오량집이 있는 동네라해서 오량동 또는 오량마을이라고 했답니다.
가수원초등학교
佳水院, 물가에 있는 아름다운 원,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원이란 조선시대 공무를 집행하기 위해 지방에 내려가는 관리들에게 말과 숙소를 제공하는 제도로 약 30리마다 역을 설치하여 마패를 소지한 관리에게 마패에 그려진 말의 수 만큼 말을 빌려주고, 또 원에서는 숙식을 제공했죠. 조치원 장호원등이 가수원과 같은 역원제의 흔적이라 할 수 있죠. 그 중 가수원은 물가에 있는 아름다운 원이란 뜻이죠.
그런데 역과 원은 공무를 수행하는 관리들에게만 숙식을 제공했어요. 그럼 민간인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사극에 보면 많이 나오잖아요. 문 밖에서 ‘이리오너라’ 부르고는 ‘지나가는 과객이온데 하룻밤만 유하기를 ....’하는 말 아시잖아요. 그래요 민간인들은 이렇게 길가에 있는 집에 유숙하기를 청해서 민가에서 잤어요.
임진, 병자 이후에는 민간에서여각과 주막이 보편화 되면서 점점 원은 쇠퇴하게 되고 대신 민간에서 운영하는 주막이 보편화 되었지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주막에서 잠자는 값은 공짜예요. 주막에서 술이나 음식을 사먹으면 잠을 공짜로 잘수 있었어요. 또한 주막 방안에서는 양반 상놈 구분이 없었대요. 무조건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아랫목을 차지하고 아무리 양반이라도 늦게 온 사람은 윗목 에서 잤다네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돈 많고 지체 높은 사람은 일반 서민과 같이 주막에서 묵을 일이 없었겠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