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12-23
미가야의 거짓말과 가룟 유다의 참말 / 은혜목회정보
오늘은 주님의 참 제자는 주를 위하여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하고, 이전에는 나의 의와 성공을 위해서 주님이 희생을 당해 주기만을 원했으나 주님을 진정으로 위하여, 주를 위하여 살고자하는 참 제자는 오히려 주를 위하여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수 있어야 될 것이라고 한 말씀, 그리고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믿는 것, 섬기는 것. 그것이 곧 영생이라" 가르쳐 주신 말씀을 받들어서 오늘 미가야와 그리고 그 왕 간(間)이에 있었던 일로서 우리의 위치를 발견하고, 진정한 삶을 얻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본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22장이 있기 조금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계속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간섭 없이 세워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왕이 된 아합을 지켜보는데, 왕위를 얻고 난 다음에 이 아합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방 신을 섬기고 있는 이방나라 여인 이세벨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이방 신과 함께 이세벨을 받아들이는 큰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이 몸으로만 온 것이 아니라 이방 신을 갖고 들어와서 그 선지자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도 이방 신을 섬기는, 바알 신, 아세라 신을 섬기는 그런 백성으로 전락시켜 가는 이런 일을 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나라백성의 왕처럼 아합이 그 일을 막아야 했었는데, 그것을 막지 아니하고 여인에게 빠져서 오히려 이방 신을 섬기는데 동참하게까지 되는 것을 하나님은 보고 계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계속 두면 그 백성이 다 망할 것으로 알고서 엘리야를 통해서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는 재앙을 내려보았으되 3년 6개월이나 비 내리지 않았는데도 그는 회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더 악해졌습니다. 그것으로 될 것 같지 않아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아로 갈멜산에서 바알 아세라 선지 450인과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와 대결하는 장면을 지켜보시고 엘리야와 함께 하시므로 갈멜산에 불을 내려서 결국은 이세벨이 갖고 들어온 아세라 바알 선지자들 450명이 다 칼로 쳐죽임을 당하는 그런 역사를 하나님께서 베푸셨습니다. 이처럼 큰 재앙을 내리시면 돌아서야 할텐데, 돌아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나라를 어쩌면 건져볼까' 해서 이제는 채찍대신에 당근을 주어보았습니다.
비 내리지 않던 나라에 엘리야로 기도하게 해서 비 내리게 해 주었습니다. 복을 내려주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를 기다리던 백성들에게 비가 내리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서 응답해서 비를 내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채찍을 맞을 때에도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리고 축복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던 중에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한 사건이 아합에게 또 있었습니다. 바로 그 아합왕이 살고있는 왕궁 근처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는데, 이 포도원이 자기 마음에 들어서 자기 소유로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나봇에게 찾아가서 "그 포도원을 내게 달라." 나봇은 말합니다. "이것은 내 개인의 것이면 당신에게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조상 대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지켜오는 것인데 이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의 줄을 놓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이것만은 드릴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이 왕이 사람을 보내서 무참히 그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강취 했습니다.
이 사건까지 보신 하나님께서 '이자는 더 이상 두고 기다릴 수 없구나. 이자가 이 백성의 왕으로 계속 있게 된다면 이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 없이 죽게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버릴 수도 있게 될 것이라. 나는 이 아합을 이제는 더 이상 둘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서 이번에는 아합을 처리할 결심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바로 이때쯤 되었을 때 오늘 본문 열왕기상 22장의 사건이 발생됩니다. 원래는 한 나라였으나 갈라져서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하여 있을 때 저희 왕들끼리 관계가 좋아서 여호사밧 왕과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연합군을 만들어서 전에 자기들이 살고있던 길르앗 라못을 아람으로부터 빼앗자고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왕은 쉽게 연합하게 되었고, 합력해서 전에 잃어버렸던 그 실지(失地) 길르앗 라못을 찾아서 자기들이 누려보려고 이제 계획을 세우고, 이제 연합하기로 결정을 하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합을 "이때에 처리하는 것이 좋겠구나." 이 아합이 얼마나 영리하고 영특한지 '요모 조모 빠져나가기를 그동안 몇 년 동안 했던고, 이번에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는 살아남지 못하게 해야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하나님께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많은 영들 그리고 천사들을 불러모으고서 말씀하십니다.
"아합을 누가 꾀울꼬? 아합을 누가 꾀워서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게 할꼬, 그놈이 하도 영리해서 길르앗 라못을 쟁취하기 위해서 전쟁은 걸어놓고도 이놈이 안갈것 같은데, 누가 아합을 꾀워서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게 할꼬? 그리고 거기가서 이놈이 죽어야 되겠는데 누가 길르앗 라못으로 이 아합을 올라가게해서 그를 죽게 할꼬…." 이 고민을 하나님께서는 천사들 앞에서 털어놓습니다.
그동안 벼루고 벼루다가 이제는 끝을 볼 그런 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 한 천사가 나와서 "여호와여.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대답지 않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나와서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허락지 않습니다. 그때 한 영이 나와서 말합니다. "여호와여. 저의 제안을 한번 들어 보시옵소서. 제가 지금부터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가지고서 아합왕 앞에 빌붙어 살고있는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아합을 늘 지지해주고 아합 앞에서 아첨하고 있는 선지자들이 400여명이나 있는데, 그 400인의 선지자 입에 내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서 거짓말을 시키겠습니다. 어찌든지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면 이기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그 성을 아합의 손에 붙이셨다고,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 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동안 쭉 이 아첨하는 선지자들의 말만을 들어왔던 아합인지라 하나님께서 함께 했다고 모든 사람이 아주 여출일구(如出一口) 같은 마음과 같은 말로서 말하게되면 틀림없이 올라갈 것 같으니 하나님께서 "그것 좋구나. 너는 가서 꾀이겠고 그리고 그 아합은 올라가게 될것이며, 내 뜻대로 그는 죽게 될 것이라!" 이렇게 해서 이제 하나님 앞에 보고를 드렸던 영은 이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서 이제는 선지자들 입에 가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갔던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입에 거짓말의 영이 들어온 것을 이 선지자들은 알지 못하고 왕이 소집을 하므로 왕궁에 모두 모였습니다.
"여러분. 선지자들이여 들으소서. 지금 나 아합과 이 유다의 여호사밧 두 왕은 연합하여 지금 우리의 전에 가졌던 땅 길르앗 라못을 다시 찾으려 하오. 저 아람군대를 물리치고 우리가 그 땅을 찾아서 함께 잘 살아보기를 원하는데 과연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길 것인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내게 말해 주시오." 하고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랬더니 400인이나 되는 선지자가 어찌 그리 마음이 똑같았던지 여출일구(如出一口) 본문에 나타난 대로 똑같은 말로다가 "왕이여.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소서. 성공합니다.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땅을 왕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이렇게 이제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5절 이하에서 볼 수 있겠습니다. 22장 5절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컨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소서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인쯤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라 말랴 저희가 가로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왕상22:5-6)
이렇게 말씀을 드리게 되었는데, 이 400인의 선지자가 이 말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 이전에 "누가 아합을 꾀이겠는가. 누가 아합을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게 해서 죽게 하겠는고…" 할 때 한 영이 나와서 "내가 거짓말하는 영으로 변하여서 가서 그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해서 이 선지자들은 일색으로 거짓말하는 영의 영향을 받아서 "올라가소서. 승리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성을 당신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이렇게 보고를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여호사밧에게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자 출발합시다." 그랬는데 여호사밧이 아무리 생각해도 "선지자가 어찌 이렇게 400명이 똑같이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짜고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여호사밧이 다시금 7절이하에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한마디 하기를 허락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는 선지자가 꼭 이 400명밖에 없습니까. 이 사람들이 모두입니까?" "예. 모두나 다름이 없습니다. 다 왔습니다. 그러나 한 놈 있기는 있는데, 그 사람은 미가야라고 이름하는데 이 친구는 예언해 달라고만 하면 내게 불길한 예언만 평생 해 주어서 좋은일 하러 가면서 이 친구 얘기 들으면 아주 부정을 타는 판이니 아예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 신경쓸 것 없습니다. 400명이 여출일구 한마디로 말했는데, 한사람 그까짓 것 말하는 것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 지금까지 400명이 말하는 말 듣고 해와도 이렇게 크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 필요 없습니다."
여호사밧이 말하기를 "그래도 나는 그 한사람 얘기도 듣고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들어보지요. 크게 기대할 것은 없지만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해서 미가야를 부르러 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이 사람이 미가야를 부르러 가서 미가야를 이제 데리고 오는데, 중간에 뭐라고 부탁을 했는고 하니 "여보시요. 미가야씨. 오늘은 제발 엉뚱한 소리좀 하지 말고 다른 선지자들과 보조를 맞추시오. 조금 전에 400인이 와서 그저 여출일구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소서. 그러면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을 당신의 손에 붙이셨습니다'라고 했으니 기왕에 전쟁하려 나가는 판에 당신이 기분 나쁜 소리하지 말고 오늘 바른말 좀 하시오" 하면서 부탁하면서 이제 데리고 왔지요. 아까 본문에 소개되었지요.
그래서 데리고 와서 왕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왕에게 이르기 전에 이 미가야가 말하기를 "나는 맹세코 하나님의 말씀만 말씀할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만 말씀할 것이라" 하면서 도착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 미가야를 데리고 오는 이 사람이 "이 양반이 들어가서 무슨 왕궁을 복잡하게 만들 것인고, 왕이 기분 나쁘면 우리 신하들고 긴장되는데, 어쩔꼬…"하고 들어갔는데, 아 두 왕이 미가야 앞에 척 나타나서 "아. 선지자 오셨습니까.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가랴. 말랴?"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랴. 마랴?"이렇게 물었습니다.
미가야가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요.
다른 400인의 선지자들은 "올라가소서. 올라가면 성공합니다. 승리를 거두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셨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 미가야는 지금 와서 뭐라고 했을까요. "왕이여. 올라가지 마소서. 올라가면 죽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한 것처럼 생각되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미가야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400인의 말과 여출일구(如出一口)하였습니다. "왕이여.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소서. 올라가면 승리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성을 당신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보통은 이 미가야가 그렇게 말씀드린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미가야는 바른말 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바른말한 것이 아닙니다. 불과 얼마 전에 함께 읽었으니 여러분이 이해되시겠지만 한번 더 성경을 보실까요? 22장 12절 이하에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더라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가 일러 가로되 선지자들의 말이 여출일구 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컨대 당신의 말도 저희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미가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저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 저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왕상22:12-15)
그렇게 말씀을 똑같이 드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미가야는 이 전쟁을 시작하려고 하는 이 두 왕의 연합이 이루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당신의 천사들을 불러모아 놓고서 "내가 아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니 저의 밑에 있는 백성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도 아합을 쳐야 되겠은즉 목자를 잃으면 그 양들이 자유롭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은즉 누가 아합을 꾀일꼬. 지금 전쟁을 할까 말까 하고 있는데 누가 아합을 꾀워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갈꼬, 올라가면 죽게될 것인데 누가 그렇게 할수 있을꼬?"
한 영이 나와서 "내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가 좋아하는 선지자 400인의 입에 있어서 저를 꾀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꾀어서 길르앗 라못으로 가게 될 것이고, 그는 죽게될 것입니다"라고 보고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너는 가서 꾀이라 그리될 것이며 아합 왕은 죽게될 것이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을 낱낱이 보고 온 미기야 입니다.
올라가면 죽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미가야입니다.
그런데 전에는 항상 다른 선지자들과 다른 말만 하던 미가야가 오늘은 왜. 여출일구 다른 선지자와 똑같은 말을, 거짓말하는 영의 영향을 받아서 거짓말하는 선지자들과 똑같은 말을 했을까요. 좀 색다르지 않습니까?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그가 그렇게 거짓 예언을 한 것은 자기의 정직하고 자기의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은 자기를 위해 좋지만 자기의 좋은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되겠다는 것이 자기의 의를 눌렸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바른말하기로 소문나 있는 미가야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정직한 말만 했습니다. 그것이 미가야의 명예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사건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아합에게 거짓말을 해 주어서 아합이 길르앗 라못으로 가야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치시기를 원하시는데, 내가 평생에 참말 해오던 사람이라고 해서 오늘도 참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망치게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참말 하는 것도 중요하고 내 평생에 지켜온 의도 중요하지만 나의 성공보다는 하나님이 성공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 미가야는 자기가 출발하여 오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아합을 제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한 영이 나아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가면서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미가야는 생각했습니다.
그 사자와 함께 아합왕 앞으로 오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만 말씀할 것이라"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내가 보기에는 길르앗 라못으로 가면 아합왕은 죽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원하는 대로 말하리라. 내 기분대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아는 대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말만하리라." 이것이 바로 미가야의 자세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거짓예언을 당당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명예를 지키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명예는 무너져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해서 거짓말하는 영이 말했던 것과 똑같은 얘기를 말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400인의 선지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하는 영이 들어와서 마치 성신이 일러주는 것처럼 해서 올라가라고 말했지만 멀쩡하다가 거짓말하는 영이 된 이 천사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자의로 거짓 예언을 했던 이 미가야는 어떻습니까?
거짓말 예언을 했던 미가야, 그가 거짓말했기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멀쩡하던 영이 거짓말하는 영이 되었다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보다 내가 더 중요합니까?
그러면 하나 물어봅시다.
참말 중에 참말을 한 가롯 유다, 그는 예수를 예수라 하였습니다. 참말입니다. 예수를 잡고자하는 사람들 앞에서 입을 맞추며이 사람이 예수라고 했습니다. 아주 참말을 했습니다. 그가 참말 한 것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참말 한 것이 아니라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가서 사단이 시킨 참말이었습니다.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가니…"
누가복음22장3절에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가니…" 예수 팔려는 생각을 강하게 하더니 "이 사람이 예수요." 그의 말은 정직했습니다.
그의 말은 참말 중에 참말이었습니다. 그의 참말은 사단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고, 이 거짓말하는 영과 이 미가야의 거짓말은 하나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이같이 되었던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가롯 유다가 참말을 했다고 해서 그의 참말이 영원한 의를 얻었고,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롯 유다의 예수는 '예수'라고 한 이 참말은 '큰 죄를 지었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미가야의 이 거짓말과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서 이 아합으로 죽게했던 이 사람과 이 영의 거짓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가 중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 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의 때문에 하나님께서 피해를 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망쳐 놓고도 나의 의로운 참말이 영생할 천국에서 영생의 조건이 되겠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요?
성경은 요구합니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를 부인 할수 있는가. 전에는 네가 너를 위하여 십자가를 나더러 지라고 했지만 이제는 나를 위하여 네가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는가?' 물어보시는 단계도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 때문에 자기가 십자가를 지고 따라올 수 있겠느냐'
미가야는 모든 백성 앞에서 이 왕 앞에서 바른말하기로 유명했던 사람, 그의 자랑이라고 하면, 그의 대대로 이어질 명성이라고 하면 참말 하는 미가야였는데, 오늘은 죄인이 됩니다. 거짓 증언의 십자가를 자기가 지고, 하나님을 성공시키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셨겠는지요.
주님을 따르겠다는 제자들을 향하여 나를 따르는 참 제자 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든지 우리는 주님을 따를 것이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을 위해서 살 것입니다." "그럼 나를 따르라." 한 제자가 나와서 말하기를 "주여. 따르겠나이다마는 내 부친이 죽었으니 장사지내고 가겠나이다." "너희 죽은 자는 저희 죽은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나를 따르는 것이 내 제자가 될 것이라." 또 어떤 사람이 나와서 "내가 소를 샀는데 길들인 후에 따르겠나이다." 아니면 "내 부친에게 가서 작별인사라도 하고 와서 주를 따르겠나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과 너의 일이 겹쳐져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될 때에는 너의 일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택하여 따를 수 있는 자가 참 제자가 될 것이라. 나의 제자가 되려면 전에는 너희가 너희의 의를 위하여 십자가는 나 예수만 지라고 했지만, 이제 나를 위해 살겠다고 한다면 나를 위해서 네가 죄인이 될수도 있겠는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수 있는 자라야 내가 훗날 천국에서 그를 기억하지 않겠는가." 주께서 말씀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사단에 의해서 참말을 했던 가롯 유다의 행동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다 알면서도 거짓 예언을 했던 이 미가야의 행동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실런지요. 정직하고 의롭게 소문 나는 것 귀한 일입니다 마는 더 귀한 것은 미가야에게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천사에게 하나님이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참말 한 것으로 자랑할지 모르지만 그의 참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과 십자가에 집어넣고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빠져나갈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 16절 이하에 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22장 16절 이하에
"왕이 저에게 이르되 내가 몇 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고하겠느냐"
이 말이 왜 나왔습니까?
아합은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미가야만 불러오면 엉뚱하게 자기에게 기분 나쁜 소리만 했는데, 오늘 또 불러오면 틀림없이 다른 선지자와는 달리 "올라가지 마소서. 올라가면 죽습니다." 우리 경상도 식으로 말하면 "올라가면 죽(되집)습니다." 그렇게 말할 것으로 기대를 했는데 오늘은 와서 다른 선지자과 여출일구 똑같이 말하니까 도리어
믿을 수가 없었어요.
늘 엉뚱하게 말하던 사람이 한번 바로 말하니까 이제 또 믿지 못해서 "여보시요 미가야. 내가 어떻게 하여야 얼마나 맹세케 하여야 여호와의 이름 앞에서 진실로만 말하겠느뇨?" 그러니까 미가야가 말하기를 "나의 진실을 듣고 싶소. 나의 진실을 듣고싶소. 그러면 내가 말하리이다" 하면서 이제 아까 읽었던 본문입니다. 17절 이하에 "저가 가로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백성이 왕과 함께 길르앗 라못에 올라갔으나 목자가 죽으니, 왕이 죽으니 백성들은 자유롭게 되었다는 겁니다. 망한 것이 아니라 백성은 자유를 얻었다는 겁니다. "왕이 죽으니 백성은 자유를 얻었다" 이렇게 보고를 드린겁니다.
18절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것만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왕상22:18)
그렇습니다. "이제 보소서. 바른말하는 것 보소서. 나에게 기분 나쁜 소리만 하지 않습니까. 올라가면 나더러 죽는다고 지금 하지 않습니까. 내가 뭐라고 합디까. 그러니까 저 사람은 처음부터 안 불러와야 한다고 하지 않습디까" 이렇게 말하는데 미가야는 또 다시 계속해서 말합니다.
19절 이하에 "19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 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하였는데 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22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3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이제 바른말을 했어요. 바른말을 해 주었습니다.
"조금 전에 400인의 선지자가 와서 여출일구 당신에게 길한 예언을 해 주었고, 나도 길한 예언을 했습니다마는 그것은 이렇게 이렇게 되어서 된 것이니, 당신은 그 말을 듣고 올라가면 죽는다." 바로 그 뜻이었습니다.
이 미가야는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조금 전에 말한 것은 무엇입니까? "올라가소서. 승리합니다" 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말했습니다. 지금 말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아는 진실은 이렇습니다." 두 가지를 놓고서 어느 것을 공식적으로 말했습니까? "올라가소서 성공합니다." 그것이었습니다. 이 미가야는 자기의 가진 진실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가진 판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판단으로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원하는 뜻대로 거짓말 하기를 택하였던 미가야입니다. 진실이 있었습니다.
미가야가 이 말을 한쯤에 아합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무엇입니까?
니느웨 성민이 회개할 것처럼 "정말 끝이 나는구나. 나는 죽는구나.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나는 살아남을 수가 없구나" 생각하고서 40일 후에 망할 것이라는 요나의 말을 듣고 느니웨 성민이 굵은 재에 앉아서 굵은 배 옷을 입고, 재에서 회개하고 금식했던 것처럼 아합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금식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챤스(chance)요. 마지막 기회였는데, 이렇게 일러주어도 아합은 얼마나 악해 빠졌던지 회개하는 것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순간에 회개하기를 기다렸을 겁니다. 니느웨가 망할 것이라 하였으나 니느웨 성민들이 회개하는 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셔서 더 아름다운 태양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 아합이 이 순간에 회개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마는 하나님을 여전히 이용하려고 들었습니다.
"아 알았어. 지금 당신이 하는 것 보니까 알았어. 하나님이 열 받으셨구만. 하나님이 아주 날 잡으려고 작정하셨구만. 그러나 내가 죽는가봐" 하면서 여호사밧왕과 함께 출정을 하면서 여호사밧에게 뭐라고 했는고 하니 "왕이여. 한 군대를 이끄는 왕이 둘이 되어서 되겠습니까. 왕이 하나여야 되지요. 그러니 우리둘이 왕복을 입고 나가면 되겠습니까? 여호사밧 당신이 왕복을 입고 나는 그저 사병의 옷을 입고 진지 안에 있겠습니다."
그 동안에 이스라엘은 열 지파의 왕이요 유다왕 여호사밧은 두 지파 밖에 거느리지 못했으니 자기가 전체 열두지파의 왕복을 입고 나간다는 것은 해볼만한 일이지요. 이 순진한 여호사밧이 "그리합시다. 나 혼자 왕복을 입고 나가겠습니다" 해서 왕복을 입고 척 나가네요. 이 아합은 얼마나 꾀가 많았던지, 하나님의 뜻이 그런 것을 알고서 회개할 것을 택해야 될 것인데, 회개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또 속이려고 들었어요. 사병 옷을 입고 그러나 사병의 옷 속에 온 갑옷은 다 입고 이렇게 사병 속에 들어가서 병거 속에 있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혼자 왕 되었다고 생각해서 막 '나가자.' 하고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에게 무엇을 지시했는고 하니 아람군대장관의 마음을 조정해서 지시를 하기를 "백성에게는 칼 하나 화살하나 사용하지 말고, 오로지 이스라엘 왕만 잡아라." 그랬어요. "이스라엘 왕만 죽이면 이번 전쟁은 이기는 것이다" 해서 명령을 했더니 상대방 군대가 "이스라엘 왕만 잡으리라" 하고서 왕복 입은 여호사밧에게로 쫓아와서 치려고 하니까 여호사밧이 얼마나 혼이 났던지, 아까 미가야 하는 얘기도 들었겠다. '이거 나 죽는구나' 생각해서 "아니요. 나는 이스라엘 왕이 아니요." 투구를 벗어 던지면서 "아니요. 아니요" 하니까 사람들이 미리 화살을 쏘지 않고 와서 들쳐보니까 아니거든요.
"이놈은 왕이 아니다. 엉터리다. 엉터리다. 이놈 말고 진짜 왕을 잡아야 한다" 해서 샅샅이 뒤지는데 이 아합이 얼마나 꾀가 많았던지, 사병의 옷을 입고 그냥 숨어 돌아다니니 찾을 수가 없었는데, 어쩌다 상대방 병사가 쏜 화살이 성경을 읽어보면, 저가 사병의 옷 속에 안 죽으려고 얼마나 갑옷을 철저히 입었던지 화살 들어갈 장소가 없었는데, 이 옷소매의 솔깃 사이로 팔을 벌리는 순간에 틈 사이로 화살이 박혀버려서 그는 죽게 되었고, 백성은 자유를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으리요. 하나님이 죽이자고 결심한 것을 어떻게 사람이 자기의 꾀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아합처럼 지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상대하여 하나님을 끝내 속일 생각을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채찍을 때릴 때에도 회개해야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근을 주실 때에도 회개해서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것을 여기에서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리고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택하여 영원토록 살기를 원하시는 여러분, 우리의 영생은 내가 죄 하나도 짓지 아니한 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나보다 하나님을 위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에 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아니었습니까?
그토록 하여 사랑을 입고 살았으면 이제 이 세상도 어수선하고, 세상이 언제 어찌될지도 모르는 일, 전쟁은 사람이 막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연합군들과 함께, 다른 나라들과 함께 결합을 한다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이기는 것이지, 아합의 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시면 되지 않습니다.
언제 우리가 어찌될지 모르는데 '평화하다. 평화하다' 자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까' 불안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택하시기를 바랍니다. 진실로 나의 정직도 중요합니다. 나의 착함도 중요합니다. 나의 착한 것을 자랑해야 되고, 나의 의롭게 산것을 자랑해야 될 것입니다만 그보다 더 큰 자랑은 '나의 명예를 버리고라도 주님을 택했노라.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노라. 내가 죄의 십자가를 짊어지면서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노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영생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택하는 것이 영생이라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개인이 크면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만큼 클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의로운 의로움이 무엇 그리 대단하고, 우리의 죄 짓지 아니한 것이 무슨 큰 자랑이 되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장래의 자랑은 '주를 위해 살았노라. 주를 위해 내가 십자가를 택했노라. 주를 위해 내 명예를 버렸노라. 주를 위해 내 목숨을 버렸노라. 주를 위해 내 영광을 버렸노라.'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아들을 나보다 더 큰 것으로, 나의 의보다도 더 큰 것으로 여기셔서 주를 택해 주를 따라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영생의 길이 될 줄로 믿습니다.
딴에는 참말 했던 '가롯유다' 그의 참말은 마귀가 시킨 참말이었습니다. 평생에 바른말만 한다라고 소문나있던 '미가야' 오늘은 철저히 거짓말했습니다. 거짓말한 것은 하나님의 예언이요. 내 개인이 아는 것은 "길르앗 라못으로 가면 죽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자기의 아는 정확한 판단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이 나의 맹세코 말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할 내 예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지식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이 더 큰 것으로 아시고, 뜻이 땅에서 이룬 것같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기 바라지 마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우리가 이루어드리도록 기도하시고, 그리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주 오시는 날 주님을 택했던 사람들을 주님은 붙들어 일으킬 줄로 믿습니다. 그때에 가서 가롯 유다처럼 후회하고 창자가 터지도록 뒹굴 것이 아니라 주를 택한 사람은 영생의 나라에서 주와 함께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나도 중요하고, 내가 지킨 의도 중요하고, 내가 죄에 물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으시고, 주와 함께 주를 위해 사시는 오늘 이후의 주 오시는 날까지의 생활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