定公 4年(紀元前 506年)
四年春三月, 劉文公合諸侯于召陵, 謀伐楚也. 晉荀寅求貨於蔡侯, 弗得, 言於范獻子曰 : 「國家方危, 諸侯方貳, 將以襲敵, 不亦難乎? 水潦方降, 疾瘧方起, 中山不服, 棄盟取怨, 無損於楚, 而失中山. 不如辭蔡侯. 吾自方城以來, 楚未可以得志. 祗取勤焉.」 乃辭蔡侯.
사년춘삼월, 유문공합제후우소릉, 모벌초야. 진순인구화어채후, 불득, 언어범헌자왈 : 「국가방위, 제후방이, 장이습적, 불역난호? 수료방강, 질학방기, 중산불복, 기맹취원, 무손어초, 이실중산. 불여사채후. 오자방성이래, 초미가이득지. 지취근언.」 내사채후.
[解釋] 정공 4년 봄 3월에, 劉나라 文公이 諸侯를 召陵에 모아, 楚나라를 칠 것을 상의했다. 이때 晉나라의 荀寅이 蔡나라 소후에게 뇌물을 요구했으나, 얻지 못하자, 范獻子에게 말하기를, 「나라가 바야흐로 위험하고, 제후가 두 마음을 품고 있는데, 적을 습격하는 것은, 또한 어렵지 않습니까? 장마가 내리려 하고, 전염병이 퍼지려고 하고, 중산마저 복종하지 않는 이때에, 초나라와의 맹약을 버리고 원망을 산다면, 초나라에게는 손실이 없으면서, 中山마저 잃게 되오. 그러니 채나라 소후에게 사례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우리가 方城을 침략한 이래로, 초나라에게는 아직까지 뜻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다만 수고만 할 뿐입니다.」고 했다. 그래서 곧 채나라 소후에게 사례했다.
晉人假羽旄於鄭, 鄭人與之. 明日, 或旆以會, 晉於是乎失諸侯. 將會, 衛子行敬子言於靈公曰 : 「會同難, 嘖有煩言, 莫之治也, 其使祝佗從.」
진인가우모어정, 정인여지. 명일, 혹패이회, 진어시호실제후. 장회, 위자항경자언어영공왈 : 「회동난, 책유번언, 막지치야, 기사축타종.」
[解釋] 晉나라 사람이 정나라에게서 깃으로 장식한 기[旄]를 빌리더니, 정나라 사람은 그것을 내주었다. 다음날, 이 기[旆]를 걸고 개회하자, 진나라는 이 때문에 제후들의 마음을 잃었다. 바야흐로 회합이 열리려고 하자, 衛나라 대부인 子行敬子가 衛나라 靈公에게 말하기를, 「회합이 잘되기가 매우 어려운 데다, 언쟁이 일어나면, 아무도 다스릴 수가 없사오니, 祝佗를 데려오도록 하십시오.」라고 하니,
公曰 : 「善.」 乃使子魚, 子魚辭曰 : 「臣展四體, 以率舊職, 猶懼不給而煩刑書. 若又共二, 徼大罪也. 且夫祝, 社稷之常隷也, 社稷不動, 祝不出竟, 官之制也. 君以軍行, 祓社釁鼓, 祝奉以從. 於是乎出竟. 若嘉好之事, 君行師從, 卿行旅從, 臣無事焉.」 公曰 : 「行也.」 及皐鼬. 將長蔡於衛.
공왈 : 「선.」 내사자어, 자어사왈 : 「신전사체, 이솔구직, 유구불급이번형서. 약우공이, 요대죄야. 차부축, 사직지상례야, 사직부동, 축불출경, 관지제야. 군이군행, 불사흔고, 축봉이종. 어시호출경. 약가호지사, 군행사종, 경행여종, 신무사언.」 공왈 : 「행야.」 급고유. 장장채어위.
[解釋] 영공은 말하기를, 「매우 좋다.」라고 말하고, 子魚를 데려오려 하니, 子魚는 말하기를, 「신은 몸 전체의 힘으로, 예부터의 직무를 다했으나, 오히려 이루지 못해 형벌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두 직무를 겸하면, 이는 반드시 대죄를 받게 됩니다. 더욱이 祝이란, 社稷神을 섬기는 천관으로, 사직이 움직이지 않으면, 축도 변경으로 나갈 수 없는데, 이것이 관직의 제도입니다. 임금이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하려면, 우선 사신에게 불제하고 불에 피를 발라 제사지내고, 축이 사직신을 받들고 임금을 따라갑니다. 이런 때나 축이 변경으로 나갑니다. 만일 좋은 일로 모이는 회합에, 임금님이 나갈 때는 사가 따라야 하고, 경이 나려면 여단이 따라야 하니, 신에게는 할 아무 일도 없습니다.」고 말했으나, 위나라 영공은 말하기를, 「가라.」고 하므로, 동맹할 곳인 고유로 갔다. 그런데 채나라가 위나라보다 먼저 동맹한 의식상의 피를 먼저 마시려 했다.
衛侯使祝佗私於萇弘曰 : 「聞諸道路, 不知信否, 若聞蔡將先衛, 信乎?」 萇弘曰 : 「信. 蔡叔, 康叔之兄也, 先衛, 不亦可乎?」
위후사축타사어장홍왈 : 「문저도로, 부지신부, 약문채장선위, 신호?」 장홍왈 : 「신. 채숙, 강숙지형야, 선위, 불역가호?」
[解釋] 衛나라 영공은 祝佗를 보내어 萇弘에게 몰래 말하기를, 「이것은 길에서 전해들은 것으로, 확실한 것은 모르겠으나, 채나라가 위나라보다 먼저 희생의 피를 마신다는 것이, 사실이오?」라고 하자, 萇弘은 말하기를, 「사실이오.」 蔡叔은, 康叔의 형이었으므로, 위나라보다 먼저 마시게 하는 것이, 옳지 않소?」라고 했다.
子魚曰 : 「以先王觀之, 則尙德也. 昔武王克商, 成王定之, 選建明德, 以蕃屛周. 故周公相王室, 以尹天下. 於周爲睦.
자어왈 : 「이선왕관지, 즉상덕야. 석무왕극상, 성왕정지, 선건명덕, 이번병주. 고주공상왕실, 이윤천하. 어주위목.
[解釋] 이에 子魚가 말하기를, 「先王의 예로 보면, 德이 제일입니다. 예전에 주나라 武王은 商나라를 이기고, 成王은 나라를 안정시킨 다음, 어진 덕을 가진 사람을 뽑아, 주나라의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주공이 왕실을 도와, 천하를 바로잡았습니다. 주왕실로는 제일 친한 사람입니다.
分魯公以大路大旂, 夏后氏之璜, 封父之繁弱, 殷民六族, 條氏, 徐氏, 蕭氏, 索氏, 長勺氏, 尾勺氏, 使帥其宗氏, 輯其分族, 將其類醜, 以法則周公, 用卽命于周. 是使之職事于魯, 以昭周公之明德.
분노공이대로대기, 하후씨지황, 봉보지번약, 은민육족, 조씨, 서씨, 소씨, 삭씨, 장작씨, 미작씨, 사솔기종씨, 집기분족, 장기유추, 이법칙주공, 용즉명우주. 시사지직사우로, 이소주공지명덕.
[解釋] 그래서 그의 아들인 노공에게는 금수레[大路]와 용을 그린 기[大旂]와, 夏后氏의 璜玉과, 封父의 繁弱이란 활과, 殷나라 백성이었던 六族, 곧 條氏, 徐氏, 蕭氏, 索氏, 長勺氏, 尾勺氏를 나누어 주어, 주공의 宗氏를 거느리게 하고, 문왕으로부터 갈라져 나간 일족을 다스리며, 그들에게 붙쫓는 무리들을 이끌어, 周公을 본받아, 周나라의 명령을 받들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노나라를 다스리는 직책을 받아, 주공의 밝은 덕을 세상에 드러내게 했습니다.
分之土田陪敦, 祝宗卜史備物典策. 官司彛器, 因商奄之民, 命以伯禽而封於少皞之虛. 分康叔以大路, 少帛, 綪茷, 旃旌, 大呂, 殷民七族, 陶氏, `施氏, 繁氏, 錡氏, 樊氏, 饑氏, 終葵氏.
분지토전배돈, 축종복사비물전책. 관사이기, 인상엄지민, 명이백금이봉어소호지허. 분강숙이대로, 소백, 천패, 전정, 대려, 은민칠족, 도씨, `시씨, 번씨, 기씨, 번씨, 기씨, 종규씨.
[解釋] 또한 토지와 민적을 주었으며, 태축과 종인과 태자와 장식품과 서적과 종묘에서 필요한 기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商나라와 奄나라의 사람들을 주어, <伯禽>을 명하여 그들로 少皞 지방에 나라를 세우게 했습니다. 한편 康叔에게는 천자의 수레와, 少帛, 綪茷, 旃旌, 大呂, 殷民七族, 여러 빛깔로 된 정기와 붉은 책의 큰 기와 대려의 종과 은나라 백성인 7족 곧 陶氏, 施氏, 繁氏, 錡氏, 樊氏, 饑氏, 終葵氏를 나눠 주었습니다.
封畛土略, 自武父以南及圃田之北竟, 取於有閻之土以共王職, 取於相土之東都以會王之東蒐, 聃季授土, 陶叔授民, 命以<康誥>而封於殷虛.
봉진토략, 자무보이남급포전지북경, 취어유염지토이공왕직, 취어상토지동도이회왕지동수, 담계수토, 도숙수민, 명이<강고>이봉어은허.
[解釋] 그리고 영토는, 武父 이남으로부터 圃田 북쪽까지 봉해 주었고, 또 有閻의 땅을 주어 천자를 모시는 직분을 다하도록 했고, 또 相土 東都의 땅을 주어 천자가 동쪽에서 수렵할 때 도와주도록 했으며, 한 사공인 聃季가 토지를 주고, 사도인 陶叔이 백성을 주어. <康誥>로써 명하여 殷虛에 봉해 주었습니다.
皆啓以商政, 疆以周索. 分唐叔以大路, 密須之鼓, 闕鞏, 沽洗, 懷姓九宗, 職官五正, 命以<唐誥>而封於夏虛.
개계이상정, 강이주삭. 분당숙이대로, 밀수지고, 궐공, 고세, 회성구종, 직관오정, 명이<당고>이봉어하허.
[解釋] 그래서 노나라 위나라는 모두 상나라의 정치로 나라를 열었고, 주나라의 법도로 토지의 구획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唐叔에게는 천자의 수레와 密須國의 북[鼓]과 闕鞏이란 갑옷과 沽洗의 종과 懷姓의 옛 9종족과 5正의 장관을 나눠 주고, <唐誥>를 주어 夏虛에 봉해 주었습니다.
啓以夏政, 疆以戎索. 三者皆叔也, 而有令德, 故昭之以分物. 不然, 文武成康之伯猶多, 而不獲是分也, 唯不尙年也.
계이하정, 강이융삭. 삼자개숙야, 이유령덕, 고소지이분물. 불연, 문무성강지백유다, 이불획시분야, 유불상년야.
[解釋] 그래서 당숙은 하나라의 정치제도로 나라를 열었고, 경제를 다스리는 데는 융적의 법률을 사용했습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천자의 동생들로, 그들은 모두 뛰어난 덕성을 지니고 있어, 물건을 나누어 주고 그들의 덕을 밝혔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文王, 武王, 成王, 康王의 형들도 많은데, 그들에게 각종 물건을 나누어 주지도 않고 봉해 주지도 않은 것은, 그들이 나이를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管蔡啓商, 惎間王室, 王於是乎殺管叔而蔡蔡叔, 以車七乘徒七十人. 其子蔡仲改行帥德, 周公擧之, 以爲己卿士, 見諸王, 而命之以蔡.
관채계상, 기간왕실, 왕어시호살관숙이채채숙, 이거칠승도칠십인. 기자채중개행솔덕, 주공거지, 이위기경사, 현저왕, 이명지이채.
[解釋] 관숙과 채숙은 상나라 유민의 난리를 끌어들여, 주나라 왕실을 어지럽혔으므로, 주나라 성왕은 곧 管叔을 죽였으며 또 蔡叔에게는, 수레 7량과 70명의 무리를 주어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채축희 아들인 蔡仲은 행동을 고쳐 덕을 닦았으므로, 주공이 그를 천거하여, 자기의 卿士로 삼고, 그를 천자에게 보여, 채나라 임금으로 봉하도록 했습니다.
其命書云 : 「王曰, '胡! 無若爾考之違王命也.' 若之何其使蔡先衛也? 武王之母弟八人, 周公爲大宰, 康叔爲司寇, 聃季爲司空, 五叔無官, 豈尙年哉?
기명서운 : 「왕왈, '호! 무약이고지위왕명야.' 약지하기사채선위야? 무왕지모제팔인, 주공위대재, 강숙위사구, 담계위사공, 오숙무관, 기상년재?
[解釋] 그때 임명서에 이르기를, 「천자는 말하노니, '胡야! 너는 네 아비와 같이 천자의 명을 어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채나라를 위나라보다 먼저 마시게 하는 것입니까? 武王의 동모형제가 8인으로, 周公은 大宰가 되었으며, 康叔은 司寇가 되었으며, 聃季는 司空이 되었고, 그 밖의 5형제는 관직이 없었는데, 어째서 연령으로 따집니까?
曹文之昭也, 晉武之穆也, 曹爲伯甸, 非尙年也. 今將尙之, 是反先王也. 晉文公爲踐土之盟, 衛成公不在, 夷叔, 其母弟也, 猶先蔡.」
조문지소야, 진무지목야, 조위백전, 비상연야. 금장상지, 시반선왕야. 진문공위천토지맹, 위성공부재, 이숙, 기모제야, 유선채.」
[解釋] 또 조나라 선조는 문왕의 소이고, 진나라 선조는 문왕의 목이며, 조나라는 백작으로 전복에 살았으니, 이는 연령으로 천거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나이를 따지는 것은, 선왕의 옛 법에 위배됩니다. 晉나라 文公이 踐土에서 맹약을 주관할 때, 위나라 성공은 참가하지고 않고, 대리로 온 이숙은, 성공의 동모제였는데도, 채나라를 먼저 마시게 했습니다.
其載書云 : 「王若曰, '晉重, 魯申, 衛武, 蔡甲午, 鄭捷, 齊潘, 宋王臣, 莒期.' 藏在周府, 可覆視也. 吾子欲復文武之略, 而不正其德, 將如之何?」 萇弘說, 告劉子, 與范獻子謀之, 乃長衛侯於盟.
기재서운 : 「왕약왈, '진중, 노신, 위무, 채갑오, 정첩, 제반, 송왕신, 거기.' 장재주부, 가복시야. 오자욕복문무지략, 이부정기덕, 장여지하?」 장홍열, 고유자, 여범헌자모지, 내장위후어맹.
[解釋] 그리고 그때 그 맹세하는 중에는 이르기를, 「천자는 말하노니, '진나라 문왕, 노나라 희왕, 위나라 숙무, 채나라 장왕, 정나라 문왕, 제나라 소왕, 송나라 성왕, 거나라 자비왕 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중서가 지금 주나라 부고에 비장되어 있으니, 가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주나라 문왕과 무왕의 법을 회복하려고 하면서, 지금의 덕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으니, 장차 어찌 하시려는 것입니까?」라고 했다. 이에 萇弘은 매우 기뻐하여, 유나라 임금에게 알리고, 사앙[范獻子]과 상의해서, 위나라 임금을 먼저 마시게 하기로 했다.
反自召陵, 鄭子大叔未至而卒. 晉趙簡子爲之臨, 甚哀曰 : 「黃父之會, 夫子語我九言曰, '無始亂, 無怙富, 無恃寵, 無違同, 無敖禮, 無驕能, 無復怒, 無謀非德, 無犯非義.'」
반자소릉, 정자태숙미지이졸. 진조간자위지림, 심애왈 : 「황보지회, 부자어아구언왈, '무시란, 무호부, 무시총, 무위동, 무오례, 무교능, 무부노, 무모비덕, 무범비의.'」
[解釋] 그 뒤 소릉으로부터 돌아올 때, 鄭나라 子大叔은 鄭나라에 이르기 전에 죽었다. 晉나라의 조앙[趙簡子]은, 매우 슬퍼하면서 말하기를, 「黃父의 맹약을 맺을 때, 그이가 나에게 아홉 가지 말을 가르쳐 주었다. '곧 난리를 만들지 말고, 부를 의지하지 말며, 총애를 믿지 말고, 동료를 배반하지 말며, 예절에 어긋나지 말고,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지 말며, 거듭 화내지 말고, 덕이 아니면 도모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고 했었는데.」라고 하였다.
沈人不會于召陵, 晉人使蔡伐之. 夏蔡滅沈. 秋楚爲沈故, 圍蔡. 伍員爲吳行人以謀楚. 楚之殺郤宛也, 伯氏之族出, 伯州犁之孫嚭爲吳大宰以謀楚.
침인불회우소릉, 진인사채벌지. 하채멸침. 추초위침고, 위채. 오원위오행인이모초. 초지살극완야, 백씨지족출, 백주리지손비위오대재이모초.
[解釋] 沈나라 사람이 召陵의 회합에 오지 않았으므로, 晉나라는 蔡나라를 시켜 沈나라를 정벌하게 했다. 여름에 蔡나라는 沈나라를 멸망시켰다. 가을이 되자 초나라는 沈나라를 위하여, 蔡나라를 포위했다. 伍員은 오나라의 행인이 되어 초나라를 도모하려 했다. 楚나라에서는 郤宛을 죽였을 때, 그와 같은 한파인 伯氏의 일족은 외국으로 도망가고, 伯州犁의 손자인 嚭가 오나라의 大宰가 되어 그도 곧 초나라를 도모하려 했다.
楚自昭王卽位, 無歲不有吳師. 蔡侯因之, 以其子乾與其大夫之子爲質於吳. 冬蔡侯吳子唐侯伐楚, 舍舟于淮汭, 自豫章與楚夾漢.
초자소왕즉위, 무세불유오사. 채후인지, 이기자건여기대부지자위질어오. 동채후오자당후벌초, 사주우회예, 자예장여초협한.
[解釋] 楚나라는 昭王이 卽位한 이후로는, 오나라의 군대가 침범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蔡나라 임금은 오나라의 이런 강성함을 의지하여, 그의 아들 乾과 그의 대부의 아들을 오나라에 인질로 잡혔다. 그래서 그해 겨울에 채나라 임금과 오나라 임금과 당나라 임금이 초나라를 정벌할 때, 배를 회수 입구에 대 놓고 육지로 올라가, 豫章으로부터 공격하여 초나라 군사와 한수를 끼고 진을 쳤다.
左司馬戌謂子常曰 : 「子沿漢而與之上下. 我悉方城外以毁其舟, 還塞大隧直轅冥阨, 子濟漢而伐之, 我自後擊之. 必大敗之.」 旣謀而行.
좌사마술위자상왈 : 「자연한이여지상하. 아실방성외이훼기주, 환색대수직원명액, 자제한이벌지, 아자후격지. 필대패지.」 기모이행.
[解釋] 초나라의 左司馬인 戌이 子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한수가를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적을 막으시오. 나는 方城 북쪽의 군대를 전부 이끌고서 적이 회수가에 매어둔 배를 부수고, 大隧, 直轅, 冥阨의 요로를 막으리니, 당신은 그 해 한수를 건너 적을 공격하면, 나는 뒤에서 그들을 칠 것이오. 그러면 반드시 크게 이길 것입니다.」고, 상의한 뒤 좌사마는 떠났다.
武成黑謂子常曰 : 「吳用木也, 我用革也, 不可久也. 不如速戰.」 史皇謂子常楚人惡子而好司馬. 若司馬毁吳舟于淮, 塞成口而入, 是獨克吳也, 子必速戰, 不然, 不免.」
무성흑위자상왈 : 「오용목야, 아용혁야, 불가구야. 불여속전.」 사황위자상초인오자이호사마. 약사마훼오주우회, 색성구이입, 시독극오야, 자필속전, 불연, 불면.」
[解釋] 그 뒤 武成 대부인 黑이 또 子常에게 말하기를, 「오나라는 나무로 된 병기를 사용하고, 우리는 가죽으로 만든 병기를 사용하니, 가죽 병기는 습해지면 오래 가지 못합니다. 빨리 싸우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고 했다. 또 史皇은 子常에게 말하기를, 「초나라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하며 사마를 좋아합니다. 만일 사마가 오나라의 배를 회수에서 부수고, 방성의 출입구를 막고 돌아온다면, 이는 분명히 홀로 오나라를 이길 수 있으니, 당신은 꼭 속전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고 말하자,
乃濟漢而陳, 自小別至于大別, 三戰. 子常知不可, 欲奔. 史皇曰 : 「安求其事, 難而逃之, 將何所入. 子必死之, 初罪必盡說.」
내제한이진, 자소별지우대별, 삼전. 자상지불가, 욕분. 사황왈 : 「안구기사, 난이도지, 장하소입. 자필사지, 초죄필진설.」
[解釋] 子常은 곧 한수를 건너 진을 치고, 小別山으로부터 大別山에 이르기까지, 세 번이나 싸웠다. 결국 子常은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도망가려 했다. 이때 史皇이 말하기를, 「안정된 때에는 정치를 하다가, 어렵게 되어 도망치면, 장차 어느 나라로 도망쳐 들어가겠소? 당신은 여기서 죽어야 하며, 죽지 않으면 죄가 남아 있어 씻기 어렵다.」고 말했다.
十一月庚午, 二師陳于柏擧. 闔廬之弟夫槩王晨請於闔廬曰 : 「楚瓦不仁, 其臣莫有死志, 先伐之, 其卒必奔, 而後大師繼之, 必克.」 弗許.
십일월경오, 이사진우백거. 합려지제부개왕신청어합려왈 : 「초와불인, 기신막유사지, 선벌지, 기졸필분, 이후태사계지, 필극.」 불허.
[解釋] 11월 庚午日에, 두 나라 군대는 柏擧에 진을 쳤다. 闔廬의 아우 夫槩王이 아침 일찍 闔廬에게 청하기를, 「초나라의 낭와는 인자하지 못해, 그의 신하들이 전사할 뜻이 없으니, 먼저 공격하면, 그의 군사는 반드시 도망칠 것이고, 뒤에서 대군으로 쫓으면, 꼭 이길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夫槩王曰 : 「所謂臣義而行, 不待命者, 其此之謂也. 今日我死, 楚可入也.」 以其屬五千先擊子常之卒. 子常之卒奔, 楚師亂, 吳師大敗之.
부개왕왈 : 「소위신의이행, 부대명자, 기차지위야. 금일아사, 초가입야.」 이기속오천선격자상지졸. 자상지졸분, 초사난, 오사대패지.
[解釋] 夫槩王이 다시 말하기를, 「신하는 의를 따라 행하며,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오늘 제가 죽으면, 초나라를 쳐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고 말하고, 곧 그의 부하 5천 명을 이끌고 자상의 군대를 먼저 공격했다. 그리하여 자상의 군대는 도망쳤고, 초나라 군대는 크게 어지러워져, 오나라 군사는 크게 초나라 군사를 패배시켰다.
子常奔鄭. 史皇以其乘廣死. 吳從楚師, 及淸發. 將擊之, 夫槩王曰 : 「困獸猶鬪, 況人乎? 若知不免而致死. 必敗我. 若使先濟者知免, 後者慕之, 蔑有鬪心矣. 半濟而後可擊也.」 從之, 又敗之.
자상분정. 사황이기승광사. 오종초사, 급청발. 장격지, 부개왕왈 : 「곤수유투, 황인호? 약지불면이치사. 필패아. 약사선제자지면, 후자모지, 멸유투심의. 반제이후가격야.」 종지, 우패지.
[解釋] 子常은 도망쳐 정나라로 갔다. 史皇은 자상이 타던 수레를 타고 원수로 가장하고 분전하다가 전사했다. 오나라 군사는 초나라 군대를 쫓아, 淸發의 강까지 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초나라 군사를 공격하려 하자, 夫槩王이 말하기를, 「포위된 짐승은 오히려 최후의 투쟁을 하니,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면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이다. 반드시 우리를 이길 것입니다. 만일 그들로 하여금 강을 건너는 것이 죽음을 면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늦게 건너는 자가 먼저 건너는 쪽을 부러워하면, 싸울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쯤 건너는 시기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공격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오왕은 그의 계획대로 하여, 초나라 군사를 패배시켰다.
楚人爲食, 吳人及之奔, 食而從之, 敗諸雍澨. 五戰, 及郢. 己卯, 楚子取其妹季羋畀我以出, 涉雎. 鍼尹固與王同舟.
초인위식, 오인급지분, 식이종지, 패저옹서. 오전, 급영. 기묘, 초자취기매계미비아이출, 섭저. 침윤고여왕동주.
[解釋] 먼저 강을 건너간 초나라사람들이 막 식사를 하는데, 오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쫓았으므로 초나라 사람들이 달아나자, 오나라 사람들은 초나라 사람들이 만든 음식을 먹고 다시 쫓아가, 초나라 사람들을 옹서 지방에서 패배시켰다. 이렇게 모두 5차에 걸쳐 싸웠으며, 끝내는 초나라 수도인 郢에까지 쳐들어갔다. 己卯日에, 왕은 그의 누이동생인 季羋畀我를 데리고 도망쳐, 저수를 건너는데, 鍼尹인 고가 초왕과 같은 배를 탔다.
王使執燧象以奔吳師. 庚辰, 吳入郢, 以班處宮. 子山處令尹之宮, 夫槩王欲攻之, 懼而去之. 夫槩王入之. 左司馬戌及息而還, 敗吳師于雍澨傷.
왕사집수상이분오사. 경진, 오입영, 이반처궁. 자산처령윤지궁, 부개왕욕공지, 구이거지. 부개왕입지. 좌사마술급식이환, 패오사우옹서상.
[解釋] 초왕은 그를 시켜 코끼리 꼬리에 불을 붙여 틀어 놓아 오나라 군사들에게로 달아나게 했다. 庚辰日에, 오나라는 수도 郢으로 쳐들어가, 신분이 서열대로 초나라 왕구에 거처했다. 오왕의 아들 子山이 令尹 宮에 거처하자, 夫槩王이 공격하려 하므로, 자산은 놀라 도망쳤다. 그래서 夫槩王이 곧 영윤의 궁으로 들어갔다. 左司馬 戌은 息지방에까지 갔다가 초나라 군대가 이미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거느리고 돌아오면서, 吳나라 군사를 雍澨에서 쳐부술 때 중상을 입었다.
初司馬臣闔廬, 故恥爲禽焉, 謂其臣曰 : 「誰能免吾首?」 吳句卑曰 : 「臣賤, 可乎?」 司馬曰 : 「我實失子. 可哉!」
초사마신합려, 고치위금언, 위기신왈 : 「수능면오수?」 오구비왈 : 「신천, 가호?」 사마왈 : 「아실실자. 가재!」
[解釋] 처음에 司馬는 오나라 闔廬의 신하가 되었으므로, 오나라에게 포로가 될 것이 부끄러워, 그의 부하에게 말하기를, 「누가 나의 목을 잘라 간수해서 돌아가겠느냐?」라고 했다. 이에 吳句卑가 말하기를, 「저는 천한 사람인데, 되겠습니까?」라고 하자, 司馬가 말하기를, 「내가 자네를 몰라보았군. 자네라면 되지.」라고 했다.
三戰皆傷曰 : 「吾不可用也已.」 句卑布裳, 剄而裹之, 藏其身而以其首免. 楚子涉雎, 濟江, 入于雲中. 王寢, 盜攻之, 以戈擊王, 王孫由于以背受之, 中肩.
삼전개상왈 : 「오불가용야이.」 구비포상, 경이과지, 장기신이이기수면. 초자섭저, 제강, 입우운중. 왕침, 도공지, 이과격왕, 왕손유우이배수지, 중견.
[解釋] 그는 세 차례의 싸움을 할 때마다 중상을 입었었다 마침내 그는 말하기를, 「나는 다시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자, 吳句卑는 치마를 펼치고, 司馬의 목을 잘라 싸서, 그의 몸에 감추어 갖고 달아났다. 그 뒤 초왕은 저수를 건너고, 또 장강을 건너, 雲中으로 들어갔다. 왕이 자려고 하는데, 도둑이 들어 창으로, 왕을 찌르려고 하자, 王孫인 由于가 옆에 있다가 등을 대어 창을 받아, 어깨에 맞았다.
王奔鄖, 鍾建負季羋以從, 由于徐蘇而從. 鄖公辛之弟懷將弑王曰 : 「平王殺吾父, 我殺其子, 不亦可乎?」
왕분운, 종건부계미이종, 유우서소이종. 운공신지제회장시왕왈 : 「평왕살오부, 아살기자, 불역가호?」
[解釋] 왕은 이때 鄖지방으로 도망치고, 鍾建은 季羋를 등에 업고 뒤따랐으며, 由于도 점차 소생되어 초왕을 따라갔다. 그러나 운공인 신의 동생 회가 왕을 죽이려 하여 말하기를, 「평왕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 내가 평왕의 아들을 죽이려 하는데, 또한 옳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辛曰 : 「君討臣, 誰敢讎之? 君命, 天也, 若死天命, 將誰讎? ≪詩≫曰, '柔亦不茹, 剛亦不吐. 不侮矜寡, 不畏彊禦.' 唯仁者能之. 違彊陵弱, 非勇也, 乘人之約, 非仁也, 滅宗廢祀, 非孝也, 動無令名, 非知也. 必犯是, 余將殺女.」 鬪辛與其弟巢以王奔隨.
신왈 : 「군토신, 수감수지? 군명, 천야, 약사천명, 장수수? ≪시≫왈, '유역불여, 강역불토. 불모긍과, 불외강어.' 유인자능지. 위강릉약, 비용야, 승인지약, 비인야, 멸종폐사, 비효야, 동무령명, 비지야. 필범시, 여장살여.」 투신여기제소이왕분수.
[解釋] 그러자 행인이 말하기를, 「임금이 신하를 죽이는 것을, 누가 원수로 생각하는가? 임금의 명령은, 천명과 같아서, 만일 천명으로 죽는다면, 누구를 원수로 삼겠는가? ≪詩經≫에 이르기를, '약한 자도 그를 능멸하지 않고, 강한 자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홀아비나 과부를 업신여기지 않고, 사나운 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어진 사람이라야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강하면 달아나고 약하면 능멸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며, 사람의 어려움을 틈타 해를 끼치면, 인이 아니며, 종가를 멸하여 제사를 끊기게 하면, 효가 아니며, 행동하여 훌륭한 명예를 얻지 못하면, 지혜가 아니다. 만일 네가 이를 범하면, 내가 너를 죽이겠다.」고 했다. 그래서 투신은 동생인 소와 같이 초왕을 따라 수나라로 도망갔다.
吳人從之, 謂隨人曰 : 「周之子孫在漢川者, 楚實盡之. 天誘其衷, 致罰於楚, 而君又竄之, 周室何罪? 君若顧報周室, 施及寡人, 以獎天衷, 君之惠也, 漢陽之田, 君實有之.」
오인종지, 위수인왈 : 「주지자손재한천자, 초실진지. 천유기충, 치벌어초, 이군우찬지, 주실하죄? 군약고보주실, 시급과인, 이장천충, 군지혜야, 한양지전, 군실유지.」
[解釋] 곧 오나라 사람이 쫓아가서, 수나라 사람에게 말하기를, 「주나라의 자손으로 한수에 있는 나라는, 초나라가 모두 멸망시켰다. 그래서 하늘이 주나라의 마음을 도와, 초나라에 벌을 내렸는데, 수나라 임금이 도리어 초왕을 숨기니, 주나라에 무슨 죄가 있는가? 수나라 임금이 만일 주나라 왕실을 돌아보고 보답한다면, 우리 왕에게 인도하여, 천심을 성취시킬 것이니, 이는 수나라 임금의 은혜이니, 그렇게 되면 한양의 땅을, 수나라 임금이 차지하게 되오.」라고 했다.
楚子在公宮之北, 吳人在其南. 子期似王, 逃王, 而己爲王曰 : 「以我與之, 王必免.」 隨人卜與之, 不吉.
초자재공궁지북, 오인재기남. 자기사왕, 도왕, 이기위왕왈 : 「이아여지, 왕필면.」 수인복여지, 불길.
[解釋] 이때 초왕은 궁중의 북쪽에 있었으며, 오나라 사람은 남쪽에 있었다. 자기는 초나라 소왕과 얼굴 모습이 같아, 왕은 도망가게 하고, 스스로 왕 노릇을 하며 말하기를, 「나를 오나라에 넘겨주면, 왕은 꼭 도망가실 수 있소.」라고 해서, 수나라 사람들은 그 일을 점쳐 보니, 不吉하다고 했다.
乃辭吳曰 : 「以隨之辟小, 而密邇於楚, 楚實存之. 世有盟誓, 至于今未改. 若難而棄之, 何以事君? 執事之患不唯一人. 若鳩楚竟, 敢不聽命?」 吳人乃退.
내사오왈 : 「이수지벽소, 이밀이어초, 초실존지. 세유맹서, 지우금미개. 약난이기지, 하이사군? 집사지환불유일인. 약구초경, 감불청명?」 오인내퇴.
[解釋] 그래서 오나라 사람에게 사절하기를, 「우리 수나라는 벽지에 치우쳐 있는 소국으로서, 초나라에 가까이 붙어 있으므로, 초나라에 속해있습니다. 대대로 동맹을 맺고, 지금까지 변경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만일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버린다면, 어찌 임금을 섬기겠습니까? 당신네 걱정은 비단 초왕 한 사람만이 아닐 것입니다. 만일 이후로 초나라를 안정시킨다면, 오나라의 명령을 감히 듣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오나라 사람은 곧 물러갔다.
鑢金初宦於子期氏, 實與隨人要言. 王使見辭曰 : 「不敢以約爲利?」 王割子期之心以與隨人盟. 初伍員與申包胥友, 其亡也, 謂申包胥曰 : 「我必復楚國.」
여금초환어자기씨, 실여수인요언. 왕사견사왈 : 「불감이약위리?」 왕할자기지심이여수인맹. 초오원여신포서우, 기망야, 위신포서왈 : 「아필복초국.」
[解釋] 鑢金은 처음에 자기 밑에서 벼슬을 살았는데, 그는 몰래 수나라 사람과 약속을 하여 초왕을 오왕에게 양도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나중에 초왕이 이를 알고 사람을 시켜 만자자고 하니 사양하기를, 「제가 감히 이런 약속을 믿고 출세를 도모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초왕은 또 자기의 가슴에서 피를 빼내어 수나라 사람과 동맹을 맺었다. 처음에 伍員과 申包胥는 친구였는데, 후에 오원이 도망가면서, 申包胥에게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초나라에게 보복을 하겠다.」고 하였다.
申包胥曰 : 「勉之, 子能復之, 我必能興之.」 及昭王在隨, 申包胥如秦乞師曰 : 「吳爲封豕長蛇, 以荐食上國, 虐始於楚. 寡君失守社稷, 越在草莽, 使下臣告急曰, '夷德無厭, 若鄰於君, 疆埸之患也. 逮吳之未定, 君其取分焉. 若楚之遂亡, 君之土也. 若以君靈撫之, 世以事君.'」
신포서왈 : 「면지, 자능복지, 아필능흥지.」 급소왕재수, 신포서여진걸사왈 : 「오위봉시장사, 이천식상국, 학시어초. 과군실수사직, 월재초망, 사하신고급왈, '이덕무염, 약린어군, 강역지환야. 체오지미정, 군기취분언. 약초지수망, 군지토야. 약이군영무지, 세이사군.'」
[解釋] 그래서 申包胥가 말하기를, 「모든 힘을 다하게, 자네가 반드시 초나라를 보복한다면, 나는 꼭 우리 초나라를 흥하게 만들겠네.」라고 했다. 초나라 昭王이 수나라로 왔으므로, 申包胥는 진나라로 가서 군사를 청하면서 말하기를, 「오나라는 큰 돼지나 긴 뱀과 같아, 누차 중국을 침범하였는데, 오나라의 잔악함은 우리 초나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임금은 나라를 잃고, 시골로 도망하여, 저로 하여금 위금을 고하게 하시되, '오랑캐는 탐내는 근성이 끝이 없어, 만일 천하와 이웃하게 되면, 곧 국경의 환란이 생길 것입니다. 오나라가 아직 안정되지 않은 틈을 타서, 귀국도 한 몫을 나누어 가십시오. 만일 초나라마저 그 길로 망한다면, 초나라도 전하의 땅이 됩니다. 만일 전하의 위령으로 저희 나라가 안정되면, 대대로 전하를 섬기겠습니다.'」라고 했다.
秦伯使辭焉曰 : 「寡人聞命矣. 子姑就館, 將圖而告.」 對曰 : 「寡君越在草莽, 未獲所伏, 下臣何敢卽安?」 立依於庭牆而哭, 日夜不絶聲, 勺飮不入口七日. 秦哀公爲之賦無衣, 九頓首而坐. 秦師乃出.
진백사사언왈 : 「과인문명의. 자고취관, 장도이고.」 대왈 : 「과군월재초망, 미획소복, 하신하감즉안?」 입의어정장이곡, 일야부절성, 작음불입구칠일. 진애공위지부무의, 구돈수이좌. 진사내출.
[解釋] 이어 진나라 임금은 사람을 보내어 사절하기를, 「내가 이미 들어 알고 있다. 네가 잠시 별관으로 가서 기다리면, 장차 도모하여 다시 알리겠노라.」고 했다. 신포서는 곧 말하기를, 「저희 초나라 임금께서 시골에 피난을 가서, 편안한 거처를 얻지 못하였는데, 어찌 소신이 편안히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고서, 조정의 벽에 기대어 흐느끼며, 밤낮으로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 7일 동안 울었다. 秦나라 哀公은 비로소 그에게 <無衣>라는 시를 읊자, 九신포서는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진나라 군대가 비로소 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