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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예배에 참여한 모든 성도님들께서는 축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정의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보통 ‘복’ 하면 부족함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는 소유의 복을 연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축복과 행복은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삶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인데 행복의 파랑새는 소유의 포로가 된 사람에게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소유의 철학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아무리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며 그 반면에 이상하게도 나누고 드리면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것이 바로 축복 받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복을 받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약간의 기쁨이고, 낮은 차원의 기쁨이 아닌가 생각해 해 보며 맡기고, 드리며 바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기한 희열로 중독성이 나타남으로 또 은혜의 자리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이 땅 가운데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 때문에 사회가 얼마나 큰 비극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이제 더 많이 소유하려는 ‘소유지향의 삶“ 보다는 복된 존재가 되려는 ‘존재지향의 삶’으로 자신을 바꿔 가야 할 때인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야 인류의 미래에도 희망이 있고, 우리 영혼에도 축복과 행복이 넘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이 항상 이런 성찰을 통해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으로 기도와 간구로 묵상하며 가지시길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예수님을 믿고 삶이 정말 변했는가? 내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고 예수님의 성품이 있는가?” 이런 묵상과 성찰을 통하여 아무리 작은 은혜라도 크게 보면서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며 나타내는 사람이 진정으로 복된 사람인 것이라 믿으시면 아멘! 입니다.
어떤 가정에 중중장애 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커가며 자기의 장애를 비관하다 어느 날 칼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을 목격한 어머니가 소리쳤다. “아들아! 제발 살아만 다오.” 제발 살아만 달라고 애원하는 그 어머니에게 가장 큰 축복은 돈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고, 오직 아들이 살아만 있어 주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작고 기본적인 진짜 축복은 너무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왜 그런가요? 바쁘고 분주하고, 부담되고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시는 말씀을 통해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축복은 ‘눈에 드러나는 삶’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라면서
진정한 축복 여부는 물질과 명예의 유무에 따라 판별되지 않고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진짜 판가름 나는 것으로 지금 저와 여러분은 스스로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 삶이 정말 변했는가? 내게 진정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고 예수님의 성품이 있는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축복을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 오해가 없도록 오늘 본문으로 산상수훈(팔복)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복 있는 자’를 가르쳐주시는 가운데 그 첫 번째 복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인 것입니다.
이 산상수훈이란? 산 위에서 하신 예수님이 설교로써 마 5장 7절애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이 설교를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의 태도에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법과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 명심하시고 이 시간 우리들에게 말씀하시 줄 믿습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복 있는 자’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까?
가장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한 것은 어떤 것인가? ‘심령의 가난’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먼저 ‘심령의 가난’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심령의 가난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그 첫째가 심령의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없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하고 물질이 있는 사람이 심령이 부한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물질이 없지만 심령이 가난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물질이 많지만 심령이 가난한 사람도 많다는 것으로, 중요한 것은 물질이 없어도 심령의 가난함을 잃지 않고 물질이 있어도 심령의 가난함을 잃지 않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심령의 가난은 지식적인 가난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지식이 많아야 꼭 성숙해지는 것은 아닌 것으로 영적인 성장은 “얼마나 말씀을 많이 아느냐?”보다 “얼마나 말씀대로 사느냐?”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 속에서 성장하고 사회의 쓴맛을 체험하면서 점차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으로 배우는 것이 좋은 사람만을 만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배우기를 힘쓰고, 특히 성경을 더 많이 알기를 힘써야 할 줄 믿습니다.
셋째, 심령의 가난은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가련하게 여기는 것을 심령이 가난한 것으로 오해하지 말고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지 말고 현재 모습 그대로 말씀 안에서 바르게 생각하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자신을 가련하고 불쌍하게 보라는 말인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는 심령의 가난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덕목인 것입니다.
그러나 심령의 가난은 ‘겸손 이상의 것’으로 심령이 가난한다는 것은 자기가 바둑 9단인데 자기를 낮춰 바둑 6단처럼 행세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는 지극히 자신을 낮춰서 바둑 9단이 바둑 9급으로 행세하는 것도 아니며 그것은 겸손을 가장한 자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지도 않으면서 거룩한 척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 헬렌 헌트 잭슨(Helen Hunt Jackson)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지금 깨닫고 보니까 제 생각에 옳았다거나 제가 겸손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도 죄였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이러한 고백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스스로의 파산상태를 인정하고 가난한 심령이 되는 것은 고통스런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을 통해 섬기는 교회와 가정과 사업장과 자녀들에게 이르기까지 행복과 축복 받기 원한다면 심령을 가난하게 만들어 가시길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심령이 가난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축복이 받게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평안이 주어진다.
심령이 가난하면 더 이상 자신을 가장하려고 하지 않기에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행복하려면 완벽하게 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완벽한 존재가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존재인 것처럼 행동하지 말고, 심령이 가난하면 모든 것이 잘 되어야만 행복을 느끼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결국 심령이 가난한 것은 천국 평안을 소유하는 열쇠와 같은 것인 줄 믿으시길 소망합니다.
어떤 목회자의 간증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민족주의자였다고 합니다.
특히 일본 얘기만 나오면 이를 갈고 미워했다고 합니다.
옛날에 운동회를 하면 만국기를 걸어놓는다. 만국기에는 일장기도 있다. 그러면 “저 일장기 뜯지 않으면 운동회를 못한다.”고 하면서 교장 선생님과 싸웠다고 합니다.
또한 매년 1월 1일이면 경주 토함산에 올라가서 일본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짐했는데다. 주먹 불끈 쥐고 한 그 다짐은 “내가 반드시 저 일본을 삼키리라.” 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 가운데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는데, 그 후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여전했지만 그 마음 위에 일본을 사랑하는 마음도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때 일본을 극도로 미워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고 회개하면서 천국 평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민족갈등, 지역갈등, 계층갈등, 교회갈등, 가정갈등, 자녀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성도의 마음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으로 ‘심령이 가난한 마음’은 ‘선교하는 마음’이고 그런 ‘선교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어떤 환경도 이겨낼 수 있는 평안을 얻는 것으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등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으로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과 뜻에
아멘! 으로 순종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2. 인간관계가 깊어진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세상은 물론이고 하물며 교회 안에서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거만한 사람과 식사약속을 하고 그 식사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어느 누구라도 사람이라면 대개가 겸손한 심령을 좋아할 것입니다.
겸손한 태도와 언어로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부터 희망과 격려를 해주라는 것으로
그리하면 이레 공동체뿐 아니라 여러 성도님들이 속해 있는 바로 그곳이 얼마나 큰 힘을 얻게 되겠습니까?
그처럼 겸손하기만 해도 환영받는데 심령이 가난한 것은 겸손 이상의 것이기에 인정과 환영을 받게 되는 것을 생각하고 기억하시기 바라면서 이러한 심령의 가난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 인정받고 환영받는 사람들이 다 되길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가끔 고민합니다. “왜 내게 축복이 적을까? 왜 인간관계가 이렇게 힘들까?” 만약 그런 고민이 있는 분들이 이 자리에 계신다면 “더욱 겸손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고 주인 삼고 있는 물질, 생각, 지식, 경험등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령이 가난하면 대화가 통합니다.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대화도 막히고 사소한 일에도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강조)
옛날 사오정 시리즈에서 왜 사오정과 대화가 왜! 안 되는 줄 아십니까?
그 이유는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오정은 자기만 생각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묘사하는 것으로
어느 날, 사오정 집에 강도가 침입해서 위협했습니다.
“돈 어디 있어? 내놔!” 그때 사오정이 말했습니다. “네? 저는 사오정이예요.” 얼마나 엉뚱한 대답입니까? 그러자 강도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사오정에게는 “나는 사오정이다!”라는 자기 생각밖에 없어서 대화가 통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사오정이 세상과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사오정과 같이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남을 조금 더 생각하고 이해함으로 여러분들의 소유한 것 하나님의 것으로 가난한 심령으로 이 세상 떠나기 전 섬기고 나누며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그래야만 인생이 넉넉해지고 행복이 찾아오고 인간관계도 깊어진다는 것을 깨달으시길 소망합니다.
3. 풍성한 축복을 받는다.
주님은 (렘 1:5) 예레미야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때 예레미야가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말할 줄 모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제가 어떻게 그 사명을 이행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시길 “내가 네게 말할 것을 주고 너와 함께 하겠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축복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주님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주어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도, 제자 훈련도, 교회학교도, 교회 안에 신앙 생활과 기도의 삶도. .)
(강조) 결국 행복의 원천은 자신 밖에 있지 않고 자신 안에 있는 줄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즉 ‘우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라도 모든 사람에게는 축복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가난한 심령이 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축복은 ‘능력이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리고 나누고 베풀려는 섬김과 나눔으로 예수님 닮아가는 삶으로 순종하며 기도하는 삶과 그 마음이 축복의 근원이 되는 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주변을 보면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드리고 나누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사람을 받을 때보다 드릴 때 더 행복을 느끼고 더 축복받는 것으로 결국 가장 수지맞는 투자는 ‘사랑의 헌신’과 행동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맺은 언약 함부로 어기는 죄는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특히 거룩한 일을 위해 자기 것을 드리는 것은 최고로 복 받는 태도인 줄 믿으시고 이 시간 이후 여러분의 가난한 심령을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켜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며 더 하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는가?
그 결단하는 마음이 심령이 가난하여 주님께 복 받는 모든 성도님들이 다 되길 축원합니다.
4. 드릴 때 더 받는다.
지난 주 금요일 음성 글로벌 선진 학교 새 학기 신앙 수련회 3일째 되는 밤에 한 명의 청소년이라도 그냥 돌아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성도님들의 기도와 간구로 금식으로 나아가 섬기기 전 음성 큰사랑 교회 허용식 목사님과 사모님을 찾아 문안드리고 함께 교제 나눌 수 있어 참 감사했습니다.
목회 선배로써 또한 멘토로써 언제나 한결 같은 사랑과 관심으로 이레교회와 김목사를 위해 기도를 아끼지 않으시는 목사님과 교회에 성의를 표하고 싶어 지갑을 열었더니 그 동안 김목사의 재정 상태가 여의치 않아 그 흔한 음료수와 과일도 사가지 못하고 헌금을 드리기엔 너무 겸손한 저의 지갑은 이레교회 담임목사로써 현금 4만원을 헌금 봉투에 넣어 전해드리고 돌아오기가 참 민망하여 염치 불구하고 그냥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 그 동안에 교회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시면서 함께 기도해 주시길 소망하는 가운데 그토록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전 큰 사랑 교회가 새 성전이 세워지기까지 기도와 하나님 허락하신 감동으로 그 은혜 소멸하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많은 후원자들과 함께 후원으로 섬겼을 뿐인데 해마다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보내시고 또한 항상 전화와 문자로 안부를 여쭈어주시는 그 해 맑은 목소리는 후배 목회자에 위한 배려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번 육군 교도소 사역 가운데에서도 저희 단원들을 초청하여 주셔서 맛있는 버섯 육개장으로 대접하여 주셨고 금요일 집회 전 그날에도 식사대접을 하시겠다는데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하여(사라) 금식으로 집회를 감당하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고수하며 정중히 거절하고는 시간이 되어 떠나오려는데 오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 받길 원하신다며 아예 성도님들을 다 호출하여 그 날에 구역 예배까지도 음성 글로벌 선진 학교에서 드리도록 온 성도들을 다 불러 모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가운데 유은정 집사님의 태중에 새 생명 허락해 달라고 안수기도를 받게 하시며 김 목사님께 기도 받으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줄 믿고 받으라 말씀하시며 함께 손을 얻고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권사님은 찬양 중에 거하신 하나님을 통하여 건강의 어려움 속에 치유의 하나님을 만남으로 건강이 회복되어 기뻐 뛰며 박수로까지 치시며 반겨 주셨습니다.
그럼으로 더욱 성령하나님의 그 믿음대로 되는 역사가 나타나길 소망하고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안수기도를 마치고 큰 사랑 교회 성도님들과 인사를 나눈 후 사랑이 입학 선물과 재민이 새 학기 맛있는 것이라도 사주고 나머지는 기름 값 하라시며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찔러 넣어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힘든 고통 중에도 저희 수년전에 저희 선교회의 섬김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소멸하지 않고 한결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그 예배 가운데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을 통해 예배 중 찬양 가운데 거하신 치유의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을 통해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상한 마음이 치유된 것을 믿고 그 믿음대로 되는 역사하심으로 감사하여 섬겨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물론이고 그런 분이 목회를 어렵고 힘든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아니 한편으로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우리 허목사님과 사모님께서 너무 순수하고 고귀해서 너무 세상의 원리와는 다르게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감당하는 목회가 성공할 수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승리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서는 더욱 그 상급이 크리라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외면하겠는가? 너무 감동하여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가슴에서는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그때 저는 마치 또 한 번에 큰 사랑의 빚을 진 느낌을 받은 것으로 돌아오는 길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저 사랑을 받고 어떻게 그냥 있습니까? 기필코 10배, 100배로 갚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10배, 100배까지는 갚을 수 있어도 지금 현재의 능력으로는 천 배, 만 배로는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갚아주실 수 있는 능치 못함으로 진실한 성도들에게 천 배, 만 배로 축복해주시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 허용식 목사님 가정과 큰 사랑 교회를 천 배, 만 배로 축복해주소서!” 라며 기도했습니다.
글로벌 선지 집회 후에 기도하면 그때마다 허용식 목사님 가정과 교회를 떠오르면서 몇 배로 갚아야 할지를 기도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섬겨주신 물질에 100배로 갚아드리고 싶지만 가물어 매 마른 땅에 심령이 가나한 자의 섬김으로 단비와 같은 생명수 같음 물질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목회자의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용담에 계시는 주창근, 강보수 집사에게 연락을 하여 최고의 상품으로 홍삼 2박스를 보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감동해도 이렇게 갚아주고 싶은데 하나님이 감동하면 얼마나 상상할 수 없는 축복으로 갚아주시겠습니까?
너무 인색하게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므로 드릴 때 더 받는 월리를 생각하고 기억하시기 바라며, 기도 제목이 있을 때 특히 내 삶속에 가정과 사업장과 자녀들을 통해 어려울 때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물론이고 더욱 애통한 자의 마음으로 더 심고 더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드리면 하나님은 더 많이 감동하심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크신 사랑으로 축복을 더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이제 ‘계속 취하고도 넘치지 않는 삶’을 살지 마시고 ‘계속 베풀고도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계란 캐는 방법 두 가지를 아십니까? 병아리가 알에서 최선을 다해 깨고 나오는 것은 살아 있음을 뜻하고, 물리적인 힘에 의해 깨지면 계란 후라이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죽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안에 기도와 간구로 철저하게 겸손과 인내함으로 말씀을 통해 결단하지 않는 그 마음 심령이 가난한 자의 마음이 아님으로 화려하게 복을 받아도 그 복은 하나님 허락하신 받은 복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길 생각하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환경과 고통 중에라도 섬김과 나눔으로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주의 종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업신여기지 말고 행하는 믿음으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 삶이 바로 천국을 경험하는 삶으로 그 모습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는 주님 말씀이 얼마나 맞는 말씀인가?
이제 교회 안에서 누군가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존재들이 되어 주시길 소망합니다.
그리하면 그때 그토록 찾아 헤매는 행복을 얻게 되는 것으로, 행복은 남을 행복하게 할 때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섬김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자신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밝게 하고 세상도 밝게 만드는 이레교회 성도님들로 행복한 천국 심령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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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에게서 덜어내고 제하고 비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천국을 소유하는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이미 천국이 이경옥 집사님의 것임을 믿고 의심치 않습니다.
주일학교를 섬기기까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결단하기 힘들었을 것인데 강단을 통해 언제나 말씀안에서 행하는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귀하고 복된 거룩한 부담감이 있겠지만 함께 감당하여 주시니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다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샬롬!
할렐루야!! 이 아침에 능력의 말씀으로 인해 큰 힘을 얻습니다...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보면서 조롱하고 비웃을지모르고...저 역시도 지치고 괴로울지모르나.. 기꺼이 순종하며 섬겨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겠습니다.온전히 그러기까지 제게 날마다 찾아와 주셔서 힘주시고 위로해주실 주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목사님!! ㅎㅎ 방송이라는게 좀 힘드네요...인터뷰 내용도 많이 제한되고 또는 오버되고....조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침체되어있는 저희에게 또다른 희망과 위로를 주시고자 주님 역사하셨음을 믿습니다...항상 마음써주시고 기도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이번 방송을 통해 대박나면 누구신가요? 이렇게 질문하시면 않됩니다.
누가 물어보면 우리 김목사님 기도덕분에라고 말씀해 주삼요! 꼭!!!ㅎㅎㅎ수고하셨습니다.
귀한 말씀에 감쏴~~~함다. 산상수훈 다음에 나오는 "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는 말씀의 귀결로 결국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모든것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것 이겠지요? 사순절 기간에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제가 지고 가야할 그 십자가 사명을 붙들고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목사님 팟팅~~ 태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