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할 길
모건 스콧 펙|율리시즈
저자가 심리 치료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정신 질환과 같은 고통과 좌절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고 책임지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분석한 책이다.
캘리그래피를 전면에 활용한 표지로 '길'자의 ㄹ을 길게 늘어뜨린 모양은
막연히 길모양을 표현한 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
건강한 삶을 향해 계속해서 진화해가야하는 사람들의 길고도 짧은 일생을 나타낸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을 지피다
잭 런던|한겨례
저자의 단편소설들을 모아놓은 책이며 제목이 된 '불을 지피다'라는 이야기는
영하 50도의 혹한속에서 동료들이 있는 채굴지로 향하던 사내에게
생각치도 못한 자연의 변수가 생기고, 불을 피워 위기를 모면하려 하나 그조차도 피울수 없는 지경이 되어
이런 날에 길을 나서는 게 아니라던 고참의 말을 떠올리며 후회속에 죽게되는 내용이다.
이야기에서 나온 이런 요소들을 표지에서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는데 발자국도 제대로 안 보일만큼 깊이 쌓인 눈과
타버린 성냥을 이용한 캘리그래피를 통해 절망적인 주인공의 상황을 단번에 보여주고 있다.
사랑아 피를 토하라
한승원|박하
제목과 달리 우리 전통의 맥을 이으려는 소설가의 집념과 열정을 담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주인공은 전설적인 국창 임방울님으로(1904~1961) 그분의 소리에 대한 한, 사랑이야기다.
뼈를 깍는 발성수련의 과정과 최고의 소리꾼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여정이 제목인 '사랑아 피를 토하라'와 맞닿으며
피를 토하는 아픔이 있어야 아름다운 판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글자의 다채로운 색깔을 통해 보여주는 듯 하다.
붓으로 쓴 듯한 표현이 동양적인 느낌을 주고 노란 원은 소설속의 구한말 한국전쟁 이후 뒤숭숭한 현실과 달리
꿈 속 아름다운 달밤의 풍경으로 시작하는 전개부분과 연관된다.
난 두렵지 않아
니콜로 암마니티|시공사
970년대 말의 어느 뜨거운 여름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여섯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버려진 농가를 탐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주인공이 9살이기 때문인지 글씨체가 어린아이가 쓴 것 처럼 서툴어보인다.
'않아'의 노란색과 'ㅇ'대신 쓰인 자전거 쳇바퀴는
이야기 속에서 여섯아이들이 타는 자전거와 버려진 농가의 '노랗게 익어가는 밀밭'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어두운 밤배경과 '두렵지 않다'는 의미의 제목은
농가에서 아이들이 발견하게 될 무서운 비밀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가지런하지 않은 글씨체와 맞물려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은행나무
일본사회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그 문제점들을
독특한 증세를 앓고 있는 환자들과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의 이야기로 빗대어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책이다.
옴니버스형식으로 책제목인 공중그네는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이며
자신도 모르게 자격지심에 빠져 공중그네에서 번번이 추락하는 베테랑 곡예사의 이야기이다.
타이포와 캘리를 섞거나 글자의 일관성없는 배열 때문에 '공중'의 자유로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데
이 책의 문체가 전체적으로 아주 쉽고 가벼운 편이다.
공중그네를 책제목으로 사용한 것도 이런작가의 성향을 고려한 게 아닌가 싶다.
또 흑백과 적색만을 사용해서 일본적인 느낌도 드는 것 같다.
뚝,
이외수, 하창수|김영사
저자 하창수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졌지만 풀지 못했던 질문을
이외수에게 묻고 그가 답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위암'판정을 받은 이외수에게 "삶에서 고통은 반드시 필요한가요? 고통 없이 살 수는 없을까요?"라고 묻자
그는 "문제 되는 모든 것 다 허망한 것이니 모든 문제가 문제 아닌 줄 알면, 문제가 없다. 뚝!"이라고 한다.
버티다 보면 즐거운 일이 생기듯이 고민도 자연스레 해결되기도 하기 때문에
열심히 참고 인내하라는 의미의'뚝'이란 단어를 강조한 디자인이 인상깊다.
중앙배치와 강렬한 붉은색을 사용해 주목성이 높고
쉼표가 붙어 더 단호하고 강직하게 읽게 된다.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곽재식|알에이치코리아
제목이 인상 깊었던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는 출장 중 우연히 알게 된 신기한 사실로 인해
평범한 직장인의 인간관계와 세계관과 인생이 완전히 바뀐 남자의 독특한 모험담이다.
내용도 특이한 이 소설의 작가 곽재식은 항상 색다른 소재와 독창적인 스타일로 소설을 써왔다고 알려져있다.
제목의 의미가 단순하기도 하지만 흑백 대비의 타이틀이 멀리서 봐도 눈에 띄었고
굵게 또박또박 쓴듯한 글씨체와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타이포가 안정적이고 당당한 느낌을 주면서
'흔들리지 않는 사기꾼'이라는 의미를 부각시는 것 같다.
그때, 타이완을 만났다
이지상|알에이치코리아
이 책은 삶의 고비에서 자신의 첫 여행지였던 타이완을 찾아
삶을 되돌아보고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과
20여 년간 일곱 번 타이완을 다녀온 경험이 적힌 여행기이다.
행간과 자간이 넓고 문장이 과거형이라서 작가가 덤덤하게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듯이 읽게 된다.
'그때'가 다른 글자에 비해 크고 중앙에서 왼쪽 상단으로 떨어져있어서 가장 먼저 읽게되고
'그때 무엇을 했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긴다.
'삶이 깊어지는~'이라는 부제목의 내용은 위에서 아래로 읽는 형태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베로니카 마스
롭 토마스|한스미디어
이 책은 베로니카 마스라는 금발의 여성 탐정의 이야기로
비비드한 핑크색과 푸른색 열대 야자수 그리고 비키니를 입은 여성은
소설 속의 미 서부 캘리포니아 냅튠 지역의 기본 배경과 스토리를 바로 연상케 하고
사선으로 배치한 타이틀과 책 속의 주인공인 '마스(MARS)'를 강조한 타이포를 통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타이포 자체는 특이한 점이 별로 없지만 표지 뒷면과 책등의 문장들도
전부 사선 구도로 배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느껴진다.
모르는 척
안보윤|문예중앙
모르는 척은 평범한 네 식구 가정에 찾아온 안타까운 사건사고를 다룬 소설로, 좁게 보면
가정폭력에 관한 이야기지만 일상의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이 가진 내면의 심리와 갈등을 심화시킨 내용이다.
'모르는'과 '척'을 서로 띄어놓음으로써 '모르는'에서 '척'을 읽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듯이 또는 머뭇거리듯이 조심스러운 느낌이 든다.
가는 명조체와 무채색의 타이포때문에 더 조심스럽고 정적이며 섬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종로 반디앤루니스에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