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과 싸우는 어린 다윗의 지혜
서점 대형화와 체인화의 물결, 공동 구매와 전문성으로 승부하라
김승태(예영커뮤니케이션 대표)
지난 2004년 몇몇 기독교서점이 부도를 냈다. 한국기독교출판협회 차원에서 부도를 낸 서점의 뒤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비교적 영업 실적이 좋았던 서점에 대해서는 체인을 통한 다점포 전략을 추구하는 일부 서점들과 인수 문제가 논의되곤 했다. 모두 체인서점으로 흡수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아주 큰 변화이다. 예전에는 자본력이 있는 서점 체인이 한 상권에 지점을 개점한다면 그 인근의 서점들이 적극적으로 단합하여 무조건 막곤 했는데, 이제는 기존 서점들의 경계심도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일부 서점들은 자신의 서점이 체인서점의 프랜차이지로 편입되어 새로운 경쟁력을 갖게 되기를 희망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필자에게 아주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진다. 필자는 지난 10여년간 기독교 전문서점의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미국 기독교 출판 산업의 동향과 우리 기독 출판 산업의 미래에 대한 강의를 했다. 필자는 현대 유통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도서정가제가 크게 위협 받을 것이고, 서점 체인의 확장이 가속화되면서 지역 서점의 감소가 불가피할 것을 지적하며 이러한 변화에 대해 공동 브랜드나 공동 구매회사의 설립, 통합 인터넷 쇼핑몰의 운영 등 업계가 공동으로 대처할 것을 권유한 바가 있다. 그때 서점 경영자들은 필자의 강의에 대해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거리가 먼 미국의 이야기라며 다소 비판적인 평가를 했다.
그러나 지금 서점의 경영 현실을 바라보면 대형서점과 이들의 체인화가 지역 서점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도서 유통의 최전선에 있는 서점들이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 출판 산업 발전의 큰 장애가 되어 왔다. 필자는 앞으로 미국 출판 산업의 서점 경영 관리의 새로운 동향을 소개하면서 한국 서점들에게 접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다.
지역 서점의 경쟁력을 잃게 하는 서점의 대형화와 체인화의 물결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발표한 출판 통계에 의하면 2003년말 현재의 서점의 숫자는 1,950개(한국서점조합연합회 집계 3,589개-문방구 겸업 포함)로 줄어들었다. 서점이 가장 많았을 때인 1994년의 5,683개에 비하면 절반 이하로 크게 줄어들었다. 서점의 수가 줄어든 원인을 보면 서점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학습지 시장의 축소가 치명적이었고, 멀티미디어 시대의 도래, 온라인서점과의 경쟁 격화 등 다양하다. 이러한 것들은 서점 경영의 외적 위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출판 산업의 매출에는 큰 변동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서서히 산업의 구조를 바꿔가고 있는 내적 변화의 복병이 바로 서점의 대형화와 체인화의 물결이다. 대형할인판매점들이 인근의 슈퍼마켓의 문을 닫게 했던 것처럼, 대형 매장을 운영하면서 축적한 대형서점들이 경영 노하우와 구매력을 바탕으로 중요 상권을 중심으로 체인점을 늘려나가면서 기존의 서점들의 설자리를 잃게 하거나 체인점으로 흡수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거대한 공룡으로 커가는 미국의 대형 체인 서점
서점의 체인화는 미국이 선도하고 있다. 미국 출판전문주간지 <Publishers Weekly>에 의하면 미국 도서의 45%만이 서점을 통하여 판매되는데, 26%가 체인서점을 통하여 판매되고, 18%가 독립서점(Independent Bookstore)을 통해 판매된다. 1991년의 독립서점의 판매 비중이 32%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비중이 줄어든 것이다. 1990년 미국에는 700여개 체인서점이 있었다. Barns and Noble이 440개, Borders가 180개, Books-A-Million 93개였다. 현재는 Barns & Noble과 Borders가 선두를 다투고 있는데, Barns & Noble이 1,000여 개, Boders and Waldenbooks stores는 1,200개 이상의 점포를 갖고 있는데, Borders가 미국 내에만 460개의 체인점을 갖고 있고, Waldenbooks는 미국 전역의 쇼핑몰에 70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한국의 서점 체인화
한국에도 대형서점들의 체인점들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대표주자인 교보문고는 광화문, 강남점, 성남점, 부산점, 대구점, 대전점, 부천점, 영남대점, 인천점 등 9개로 조용히 체인서점을 늘려가고 있다. 영풍문고도 종각(실평수 2,200평), 강남 센트럴시티점, 영등포문래점, 부천상동점, 부산해운대점, 부산서면점, 인천터미널점, 인천간석점, 대구성서점, 대구삼성금융프라자점 10개점이 있다. 리브로는 을지본점, 구로애경점, 화정점, 분당점, 수원점, 부산점, 아티투스점 등 7개점이 있고, GS Books는 영등포본점, 인천공항점, KBS지점, 방송대 영등포지점, 대전 계룡문고 등 5개점이 있다. 씨티문고는 강남, 돈암동, 이대점 등 3개의 매장을 갖고 있고, 서울문고(Bandi & Runi's)는 코엑스몰본점, 성강대학교 구내점, 현대백화점 목동점에 매장을 갖고 있다. 대동서적은 안산사동본점, 중앙점, 고잔점 등 3개점이 있고, 신촌문고는 신촌과 마포에 2개의 서점이 있다.
기독교전문서점 가운데 생명의 말씀사는 광화문점, 강남점, 신촌점, 분당점, 구로1점, 구로2점, 일산점, LA, 시카고, 워싱턴 DC 등 10개점이 있고, 두란노서원은 서빙고점, 온누리서점, 양재점, 동서울점, 분당점, 부산누란노서점 등 6개점이 있다.
이와 같이 대형서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재력과 다양한 재고를 경쟁력으로 삼아 분점을 늘려가고 있다.
체인 서점의 강점
체인화는 세계적으로 주류를 이루는 하나의 마케팅 전략으로 대형점포 뿐만 아니라 소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소점포도 마케팅과 전문성를 갖춘 체인본부의 경영 지원을 받아 매출을 높일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아마존닷컴에 대항해서 온라인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여 미국 최대의 온․오프라인 서점체인으로 도약하고 있는 Barns & Noble은 현대의 서점은 고객이 편안하게 독서의 기쁨을 누리고 지식을 탐구할 수 있는 곳이라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인구통계자료를 기초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몰에 고객이 편안하게 독서할 수 있도록 매장을 디자인했다. 인테리어도 거의 도서관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매장 입구에는 어린이물과 세일 도서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주말마다 스토리 텔링을 하면서 가족들을 서점으로 끌어들인다. 책뿐만 아니라 음반, 영화 DVD, 연예상품 등 현대인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문화상품들을 판매한다. 매장 한쪽에는 탁월한 감각 마케팅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커피숍 체인인 스타벅스(Starbucks)를 결합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다. 서점에 카페를 결합시키는 아이디어는 앉아서 마시고, 독서를 즐겼던 유럽의 문학 살롱에서 얻어온 것이다. 이러한 매장 형태는 Borders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최고의 바이어들을 고용하여 독자의 구미에 맞게 도서들을 대량구매하고 이벤트와 연결시킨다. 이를 기반으로 체인본부에서 전국적인 마케팅을 하고, 출판사들의 협조를 받아 유명 저자들을 주요 거점 체인점으로 순회시키면서 사인 판매회를 개최한다.
대형서점과 체인점의 한계
대형서점은 다양한 책을 구비하여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지만 모든 상권을 대형화로 접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반면에 서점의 체인화는 부도심 상권에까지 진출이 가능하고 고객이 찾는 책이 없다고 하더라도 네트워킹을 통해 신속하게 고객의 요구에 대처할 수 있다. 체인서점들은 규모가 작은 대신에 구색보다는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회전율을 중요시하게 된다. 미래의 출판 산업은 강한 경쟁력을 갖는 출판사들과 대형서점 또는 체인서점들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측된다. 결국 마케팅이나 브랜드 전략이 취약한 중소형 출판사들의 책은 점점 진열하기가 어려워지고, 고급 독자들은 책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면 중소형 서점의 활로는 무엇인가
이제 기존의 서점들은 이러한 대형서점들의 영업망 확장을 비난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존 전략을 세울 필요성이 있다.
1. 서점 공동 브랜드를 만든다. 지역 서점들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서로 손을 잡고 물류 통합은 어렵더라도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 상호와 로고, 색상, 매장의 분위기를 통일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외형적으로 영업은 독립적으로 하되 내부적으로는 공동마케팅을 전제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함께 풀어가면서 프랜차이즈화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인터넷쇼핑몰을 공유하면서 도서정보지를 발행하고 있는 북새통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미국 Ipsos BookTrends의 2004년 5월 6일자 발표에 의하면 2003년 독립서점(Independent Bookstore)의 판매 비율이 18%(US$ 11.3 Billion)로 2002년의 16%(US$ 11 Billion)에 비해 2%가 늘어났다고 한다. 이에 대해 ABA(American Booksellers Association)의 CEO 마크 돔니츠(Mark Domnitz)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독립서점업자들에게 놀라운 뉴스입니다. 이것은 곧 독립서점들에게 도전할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장을 성취하려면 독립서점들의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지역공동체에 있는 독립서점의 독특한 소매 방식이 고객들에게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Book Sense Program이 5주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 전역에 있는 서점들로부터 그들의 성공을 위하여 이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듣고 있습니다.”
Book Sense Program은 ABA에서 미국 전역의 1,000여 이상의 독립서점들을 돕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공동 브랜드 전략으로 Book Sense의 인터넷 쇼핑몰을 각 서점의 이름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공동의 베스트셀러 목록, 공동의 판촉물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그들이 생각해낸 네트워크를 통한 중고고서의 판매도 매출을 늘리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 공동 구매를 한다. 서점들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에 답이 있다. Book Sense와 같은 공동 마케팅 프로그램도 있지만 공동구매를 하는 예도 있다. 미국에는 Ingram과 Baker & Taylor라는 두 개의 대형도매상이 50% 이상의 시장을 나누어 갖고 있다. 이 도매상들은 체인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중소서점들에게 책을 공급하면서 다양한 판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독교 출판은 The Parable Group과 The Munce Marketing & Buying Group에 600여 개의 서점이 가입하여 공동으로 구매하기도 하고, 초기 상품 진입 창구 역할을 맡기고 있다. 체인과 구매 그룹, 프랜차이즈는 서로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독려한다.
3. 마일리지 제도를 개발한다. 미국의 Family Christian Store는 Family Perks(450만 명 이상), Pastor's Perks(15만 명 이상), 교회회원(4만7천 개 교회 이상)라는 회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400여개의 체인점을 통하여 현재 6백만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매월 12만명씩 가입자가 늘어가고 있다. 고객이 회원이 되면 Family Perks 카드를 받게 되는데 펀치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한 번 상품을 살 때마다 카운터에서 1번의 펀치를 찍어준다. 10번의 펀치를 한 뒤에 제출하면 25%를 할인 받을 수 있는 쿠폰을 한 장 준다. 이렇게 해서 이미 45만장 이상을 회수했다고 한다. 또한 회원들이 계속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카타록, 쿠폰, 새로 나온 상품 안내 우편엽서, 종류별 상품 목록, 월별 상품 카타록 등 다양한 우편물을 제공하고 E-mail로도 상품 안내를 한다. 목회자를 위한 Pastor's Perks 계속해서 20%의 할인가로 상품을 제공한다. 현재 체인서점을 이용하는 고객의 70%가 Perks 회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Barns & Noble이나 Borders도 이와 유사한 마일리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정가제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 서적계에서는 미국과 같은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하기가 어렵지만 비슷한 유형의 서비스를 개발할 필요는 있다.
4. 강점을 살려 전문화시킨다. 중소형 서점들은 지역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가장 강점을 이용하여 전문화시키면서 활로를 찾을 수 있다. 대형서점들이 매출이 많기는 하지만 한 영역의 전문서점만큼은 전문화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음악, 컴퓨터, 종교, 요리, 예술, 미술, 문학 등 다양한 테마의 전문성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중소형 서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지역 사회의 고객들이 원하는 최고의 도서들로 점포의 구색을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책에 대한 전문성이 요구된다. 현대 문화나 예술에 대한 안목, 다양한 인물의 사상과 학문적 계보 등에 대한 폭넓은 식견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책에 대해 그러한 안목을 가지려면 3년 정도는 모든 책과 씨름을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장기 불황으로 직원들의 이직률이 높을 때는 경영자와 핵심간부가 문제의 키를 갖게 된다. 서점종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의외로 출판 정보에 뒤쳐진 사람들이 많다. 서점인은 최대의 독서가와 장서가가 되어야 한다. 독서는 상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얻는 길이요,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최선의 길이다.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들은 발 빠르게 CRM 고객관리를 하고 있는데, 중소형 서점들은 가만히 있으면서 고객이 제 발로 걸어와서 책을 구입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서점들도 체계적으로 고객관리를 할 필요도 있다.
CBA(Christian Booksellers Association)에서는 한 해 동안 뛰어난 매출을 기록한 서점들을 표창하는 Impact Awards가 있다. 2004년에 이 상을 받은 달라스의 로고스서점의 성공요인 중의 하나가 기독교 산업과 상품에 대한 지식이었다. 그들은 상품 공급자들뿐만 아니라 고객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사실은 많은 공급자들과 고객들이 친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고스서점의 매장 책임자 루이스는 말한다.
“우리는 많은 상품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책을 스스로 읽을 때까지 그 책을 잘 팔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손에 팔아야 할 책을 들고 읽습니다.”
기획회의 2005-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