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샘의 ‘책’ 이야기 34. 세월 1994-2014>
그림 박건웅: “어떤 이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위로한다. 그러나 시간은 약이 아니다. 치유되지 않고, 기억하지 않고, 무뎌지고, 잊히는 건 약이 아니다. 10년이란 시간은 공간을 잡아먹고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들지언정 사람의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를 그리워하는 모든 분들이 평화로울 그날을 그려 본다.”
글 문은아: “2014년 4월 그날 이후 고래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문득 버겁고 때때로 슬펐다. 그때마다 남은 이들을 떠올렸다. 10년이 흘렀다. 아직 완전히 바꾸지 못했다. 충분히 추모하지 못했다. 2022년 10월 29일 이후 다른 고래가 나에게 왔다. 또 함께 살아 볼 생각이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2024년 4월 16일 아침 10시이다. 10년 전 오늘 이 시간을 떠 올리며 다시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얼마나 더 울어야 할까? 이 눈물이 멈추기는 할까? 304명의 귀한 생명을 허망하게 떠나보내며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생긴 이 깊은 상처는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이 참사가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그동안 제대로 밝혀졌는가?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안겨 준 엄청난 사건임에도 그에 합당한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졌는가?
이 그림책은 세월호의 시점으로 써 내려간 2014년 4월 16일, 그날 전후의 기록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이미 18년 넘게 운항하여 수명을 다해 가고 있었던 배를, 마침 여객선 선령 제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난 우리나라에서 청해진해운이 들여온다. 이때도 운행이 힘든 상황인데, 더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싣고자 무리한 증개축을 거치면서 복원성이 불량해졌지만, 안전 검사는 정밀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2014년 4월 15일, 안개 자욱한 밤에 무리하게 지연 출항한 세월호에는 과적 화물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채 실렸고, 4월 16일 아침, 좁고 유속이 빠른 맹골수도를 지날 때 지휘를 맡은 이는 3등 항해사였다. 방향을 틀다가 타기 장치 고장으로 인해 급선회하며 빠른 속도로 기울었고, 화물칸에 해수가 들이치기 시작했다. 만약 선내 곳곳의 수밀문이 닫혀 있었다면 그렇게 빠른 속도로 완전히 침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피신하지 않고, 안내에 따라 선내에서 대기하던 승객을 갑판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며 구명보트를 적극 사용했더라면 어땠을까. 해경이 윗선에 보고하는 일만 신경 쓰지 말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여 기민하게 선내 승객 구출에 나섰더라면 어땠을까. 대통령과 청와대 조직이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 정도로 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수많은 ‘그러지 않았어야 할’ 일들이 겹겹이 쌓이고 쌓여서 끔찍한 참사를 빚어내고 말았다.
이 아름다운 책은 이 가슴 아픈 과정을 하나하나 묻고 또 묻고 있다. 담담한 기록으로, 아름다워서 더 슬픈 색으로.
“나는 증거다. 꿋꿋이 버티고 서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죽음,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참사를 끝끝내 증언할 것이다.”(책의 맨 마지막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