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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실천, 역사
거창 아림초등학교 문 영 진
덴마크 교육 기행을 마치고 다녀온 이야기를 글로 쓰려니 우선 ‘왜 내가 그 곳에 가고 싶어 했는가’ 가 가장 먼저 풀어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에 대안학교의 현장에 계신 분들과 다르게 ‘공립학교 교사로서 왜 그곳에 가고 싶어 했는가?’를 구체적으로 풀어내어 시작해야 그 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 같다.
공립학교 교사로서 왜 덴마크 자유교육 현장을 보고 싶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공립학교에서의 나의 10년간 교직생활과 교사를 꿈꾸게 된 이유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같은 학교 친한 선생님이 나에게 살면서 가장 외로웠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었을 때 나는 주저함 없이 초등학교 시절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때 나에게 100%는 아니지만 작은 위로가 되 주었던 분들이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담임선생님이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신앙을 갖고 회복이 된 이후로 나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 선생님들처럼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무난히 교대에 가게 되고 임용시험이 어려워지기 직전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하여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큰 기대와 희망을 갖고 첫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기대와 희망은 생각보다 빨리 무너졌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주가 아니라 부인 현실, ‘교사’라는 것보다 ‘공무원’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는 현실에서 학부모와 사춘기 5,6학년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은 그저 공립학교 교사로의 자질 부족이라는 결론을 내게 만들기도 했다. 내 나름 공립학교를 벗어나는 것으로 성급한 결론으로 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몸부림을 쳤던 것 같다. 제주도 파견을 다녀오기도 하고 경기도에서 부모님이 살고 계신 경상남도 거창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거창에서 나의 진심이 그대로 통하는 학부모와 아이들을 만나 한 때는 학교를 그만 두고 싶은 이유가 이제는 나의 발목을 붙잡는 이유가 되었다. 또한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선생님들을 만나 정말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공립학교 시스템에서 나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내가 교사인지 행정실 직원인지 분간이 안 갈 때도 많고 정치적인 연결고리에 의해 학교까지 내려오는 많은 업무적인 일들과 교육 활동은 교사나 아이들의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이제 3월 19일이 되면 정확히 교직생활 10년이 된다. 작년 12월에 학교 문집에 쓴 글(수정본)이 10년 좌충우돌 교직생활과 현재 공립학교에서 내가 어떻게 아이들과 만나야 할지 숱한 고민의 결론인 것 같아 그 글로 위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선 물
수학 시간에 우리 반 친구들이 어른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조사해서 표와 그래프로 나타내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 질문을 많이 하는 철환이가 묻는다.
“선생님, 선생님이 되니까 뭐가 좋아요?”
잠깐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첫 번째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과 생활해서 좋은 거고, 두 번째는 방학이 있어서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도 공부할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어서 좋아.”
철환이는 ‘아, 그렇구나.’ 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그래프를 그리는 데 집중한다. 질문에 대답을 해 주고 나서 그 날은 하루 종일 ‘선생님이 되니 좋은 점’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자리에 앉아 그것에 대해 번호를 매기며 생각해보지를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 과중한 학교 업무와 사춘기와 가정의 문제가 얽혀 나에게 독을 뿜어냈던 아이들을 만났던 그 해에 아주 심각하게 그리고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가르치는 일이 부가 되고 정치적인 연결고리에 의해 학교까지 내려오는 많은 일과 교육 활동들을 해야 될 때 공립학교 선생님의 안 좋은 점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을 해 보았지만 좋은 점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에 사람들이 불평할 일은 너무 자연스럽게 잘 이야기하면서 감사할 일에 대해서는 자리를 잡고 앉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감사할 일을 찾아보면 불평할 일보다 개수가 많지는 않지만 더 큰 힘을 주는 것처럼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좋은 점이 안 좋은 점을 덮을 만큼 더 강력하다.
오랜만에 올해 쓴 일기들을 들춰보았다.
“선생님! 오늘 우리한테 선물로 주시는 것 같아요.”
극기 훈련으로 스포츠 파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하늘에 있는 예쁜 구름을 보며, 강에 있는 새를 보며 한 아이들의 말. (중략)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고 지나치는 작은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매우 놀라워한다. 때로는 손톱 근처의 아주 작은 가시조차도 굉장히 힘겨워하기도 하지만. ^^;; 극기 훈련 날, 스포츠 파크에서 학교로 돌아올 때 강변의 돌다리를 건너 갈 때와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나를 부른다.
“선생님! 선생님!”
나는 또 큰 일이 났는가 싶어 뒤를 돌아보며 왜냐고 묻는다.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하늘에 구름이요.”
그 손가락 끝을 따라 본 구름은 거창에 4년째 살면서 본 구름 중에서 가장 예쁜 구름들이었다.
“와!”
탄성을 지르고 아직 그 구름을 못 본 아이들에게 구름을 보라고 일러준다. 우리는 감탄을 입으로 말하며 한참을 보고 나는 얼른 사진을 찍는다. 구름을 실컷 보고나니 또 아이들이 부른다.
“선생님, 저기 강에요.”
강에는 새들이 있었다. 우리는 강에 있는 새도 실컷 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가는데 한 아이가 이야기한다.
“선생님! 오늘 우리한테 선물로 주시는 것 같아요.”
내가 선생님이 되어서 좋은 점 중 제일 첫 번째가 바로 선물과 같은 이 아이들과 인생의 여정 가운데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그 선물이 예쁜 포장지가 아니라 아픈 포장지로 싸여져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포장지를 보고 두려워 열어보지 않는다면 그 안에 담긴 진짜 선물을 받지 못할 지도 모른다. 교직 생활 10년 동안 나는 많이 아프기도 슬프기도 좋기도 기쁘기도 했지만, 그리고 포장지를 보고 두려워 뒷걸음친 적도 있지만 결국은 마주하여 뜯고 열어보았기에 다양한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 우리한테 선물로 주시는 것 같아요.’ 라는 말을 들으며 2014년 4월 16일부터 시작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라는 내 삶에 대한 고민과 ‘아이들에게 어떻게 무엇을 가르쳐야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대한 실마리가 보였다. ‘선물들과 보내는 하루 하루가 선물임을 알고 소중하게 보내는 것부터 시작하자.’ 라는 와중에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 오연호 씨의 강연에서 ‘우리 안에 덴마크가 있다.’ 라는 것이 나를 울렸고 그 소중한 하루에 당장 큰 발전을 얻을 수 있는 일이 되지 않을지라도 조금씩이라도 변화와 발전을 위한 내 교실에서 그리고 뜻이 맞는 선생님들과 연구와 실천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깨달음과 달리 현실의 삶은 치열하고 우아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현실은 숙제 검사, 아이들의 각종 민원 접수, 잔소리이겠지만 또한 학교 시스템은 소모적인 것에 집중하며 교사들을 닦달하겠지만 그래도 서로 진심을 알아준다면 그보다 멋진 선물이 있을까!
공립학교 교사로서 본 덴마크 자유 교육 현장의 모습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 오연호 씨의 덴마크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 두 가지 중 첫 번째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는 것이다. 프리스콜레, 릴레스콜레가 폴케이스콜레와 동등한 입지를 가지고 있고 반 이상의 정부 지원을 받는 등 학교 교육의 다양한 형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한 예이다. 또한 성인이 된 후에도 직장이 보장되면서 3개월 정도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학생들에게는 에프터스콜레, 포크하이스쿨이라는 제도가 또 다른 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는 20살이 되기 전인 고등학생까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나 진정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없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언가에 등 떠밀려서 20살이 되어 20대에 사회에 나가 현실에 부딪히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20대 후반이나 30대가 되어서야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거나 또는 나이 탓을 하며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거나 결혼으로 인해 그냥 자신의 그런 욕구는 안에 넣어두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덴마크는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제도 안에서 여유롭게 학생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고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다양한 에프터스콜레와 포크하이스쿨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방문단이 방문한 에프터스콜레는 총 4군데였다. 에프터스콜레는 보통 덴마크의 초중등학교를 마치고 10학년 또는 8,9학년에 우리 나이로 말하면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갈 수 있는 학교이다. 에프터스콜레는 대부분 기숙학교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집을 떠나서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학교에서 공부와 숙식을 같이한다. 각 에프터스콜레는 특징이 있는데 그런 특징을 충분히 알아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여 갈 수 있다.
우리가 간 첫 번째 에프터스콜레는 국제 에프터스콜레로 언어와 사회 과목을 중점적으로 배울 수 있는 Rejsby 에프터스콜레였다. 4명의 학생들이 학교 안내를 해 주었는데 영어도 참 잘하고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특히 점심시간에 학생들과 같이 식사를 하였는데 점심식사를 다 한 후 전달 사항을 전달할 때 학생들의 듣는 태도가 나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스키 캠프를 갈 때 짝인지 모둠을 제비뽑기로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학생들이 신이 나서 함성을 지르거나 옆 친구와 예를 들면 ‘아 어떡해. 제발 잘 뽑혔으면 좋겠다!’ 라는 등의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눌 법한데도 모두 전달 사항을 말씀하시는 선생님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볼 수 없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교장선생님 이하 이사님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여쭈어 보니 아무래도 Rejsby 에프터스콜레에 오는 학생들은 언어나 사회를 더 배우고 싶어서 오는 학생들이라서 차분한 모범생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많은 편이고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그들의 모습에 직, 간접적으로 같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자발적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Rejsby 에프터스콜레는 학교 특성상 공부 내용이 많은 편인데 학생들이 그것을 더 공부하고 싶어서 왔기 때문에 양이 많아도 한다는 것이다. 일률적으로 많은 같은 양의 공부를 다 해야 하는 우리 교육 현장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선택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두 번째로 간 에프터스콜레는 Vestfyns 에프터스콜레이다. 가축을 기르고 농작물을 키우는 등의 내용이 특성화된 곳이었다. 덴마크에서 이런 내용이 유일한 에프터스콜레라고 한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여자 교장선생님이 열정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축을 기르고 농작물을 키우는 것은 매일 살펴봐야 하는 것인데 학생들이 방학이거나 학교에 없을 때는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무감이 아닌 정말 이 일이 좋아서 하시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던 에프터스콜레를 이어 받아 운영하시는 데 교장선생님을 보면서 정말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아서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1시간도 안 본 나도 느낄 수 있는 것을 학생들은 당연히 알 것이고 그래서 학생들 자신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이고 찾아서 살겠구나 싶었다.
Vestfyns 에프터스콜레를 나와 우리 방문단은 Samsø 섬에 페리를 타고 갔다. Samsø 에프터스콜레 교장 Lasse 선생님이 마중을 나오셔서 덴마크 전통음식을 저녁으로 대접해 주시고 각자 나누어져서 홈스테이와 호텔에서 이틀을 묵으면서 Samsø 에프터스콜레와 릴레스콜레, Samsø 에너지 아카데미를 방문하게 되었다. 우선 지금은 Samsø 에프터스콜레에 대한 이야기만 적고자 한다. Samsø 에프터스콜레는 다양한 activity가 특성화된 곳이다. 스쿠버다이빙, 스카이다이빙, 세일링 등 이런 스포츠 여가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이 에프터스콜레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학생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Lasse 선생님의 안내로 학교 곳곳을 둘러 보았는데 비행기 조종 시물레이션을 하는 공간도 있고 스쿠버 다이빙 장비, 보트, 실내 골프 연습장 등 다른 에프터스콜레에서 볼 수 없던 특화된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다양한 활동에 흥미가 있는 학생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1년 이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학교였다. 그리고 학교 부지가 굉장히 넓어서 축구장은 천연 잔디로 거의 우리나라의 주경기장만큼의 크기였다.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공간뿐만 아니라 학교의 난방과 관련된 시설도 보여주셨는데 보일러 역할을 하는 아주 큰 화로는 일부러 석탄이나 석유를 연료로 하는 것이 아니라 폐지나 나무로 연료로 하여 학교 전체 건물에 난방이 될 수 있도록 하였고 에너지 자립 섬답게 태양열로 전기는 공급되도록 시설이 있었다. 학생들과 대화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알게 된 점은 덴마크의 학생들에게는 적어도 성인이 되기 전에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법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4명 정도와 얘기를 나누었는데 모두 공립 초중등학교에서 8-9학년까지 마친 학생들이었다. 모두 공립학교가 답답하고 힘들었는데 에프터스콜레에 와서는 마음도 많이 편해지고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자기가 더 학고 싶은 공부들도 부모님의 강요나 강요같은 추천이 아닌 스스로 찾았다는 것도 참 좋아 보였다. 우리나라는 그것을 20대 후반, 늦으면 30대에 찾고 있으니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시간도 참 많이 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우리나라는 그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Samsø 에프터스콜레에서 그리고 홈스테이 가정의 선생님 부부의 대화 속에서 자꾸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의 홈스테이 호스트는 울라 선생님이였다. 울라 선생님은 50대 중반으로 Samsø 에프터스콜레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학생 상담도 담당하는 분이시다. 또한 정당 활동을 하시는 분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셔서 나에게도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물어보시기도 하셨다. 울라 선생님의 남편인 팀 선생님은 은퇴하신 60대 중반이시다. 마지막 날 밤에 우리 셋은 여러 가지 교육철학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아제, 듀이, 비고츠키, 처음 듣는 이탈리아의 교육자 레지오 등. 그리고 나에게 지금까지 덴마크의 교육 기행을 통해 느낀 점을 물어보셨다. 나는 덴마크의 자연 환경이 참 깨끗하고 아름답고 넓으며 사회적 제도가 참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이 여유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두 선생님 모두 동감 하시며 덴마크가 참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하셨다. 그럼 여기서 보고 느낀 것을 통해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하겠는지? 순간 Samsø 에프터스콜레에 오기 전에 갔었던 Brenderup 폴케이호이스콜레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대단한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방법으로 이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작은 일 하나를 한다는 마음으로 학교를 만들었다. 그것이 작은 일이라도 상관없다. 우리가 작은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울라 선생님과 팀 선생님께 내가 있는 자리에서 여기서 보고 느끼고 적용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을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나의 소박한 다짐에 두 분은 박수를 보내주셨고 나의 짧은 영어에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던 그 밤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울라와 팀 선생님 같은 연세에 이런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사회 전반적으로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 내가 너무 하나를 보고 확대 해석할 수도 있지만 덴마크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라와 팀 선생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니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적어도 상대방의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들어줄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프터스콜레 방문 중 마지막은 Ryslinge 에프터스콜레로 이 에프터스콜레는 최초의 에프터스콜레이다. 또한 에프터스콜레와 폴케이호이스콜레가 같이 있었다. 최초의 에프터스콜레인지라 건물들이 고풍스럽고 마치 옛 중세 유럽의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 곳의 안내를 맡은 Jens 교감선생님은 학생들과 생활하고 같이 소통하는 것이 정말 즐거워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분이었다. 사실 공립학교에서 10년을 근무한 나에게는 덴마크의 모든 교육 현장에 있는 시설들이 새롭고 멋있어 보였지만 학생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신디사이저, 기타, 드럼이 있는 음악실, 드넓고 단열이 잘 되어 있는 체육관, 기숙사 등의 공간은 모든 에프터스콜레에 기본적으로 갖춘 시설이었다. 그런데 Ryslinge 에프터스콜레에서 특히 인상적인 공간은 기숙사였다. 모두가 놀라기도 했던 남녀 기숙사가 따로 있지 않고 같은 건물에 남녀가 같이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철학과 실제로 아무 문제 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에 관심이 많은 시기에 많은 우려 때문에 당연히 기숙사가 건물로 따로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오히려 Ryslinge 에프터스콜레에서는 같이 지내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성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이와 같이 운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성간의 어른들이 걱정하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그렇지만 어른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앞서서 걱정하는 것이 아닌지, 특히 금기시 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툭 터놓고 학생들이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 아니라 금지하기에만 바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기숙사 생활에 있어서 인상적인 부분은 점호 시간에 선생님들이 방안에 까지 들어가서 학생들과 굿나잇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선생님과 친구들과 가족처럼 생각하고 지낼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아보였다. 우리나라에도 기숙형 대안학교가 많이 있는데 나는 그 곳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좀 더 나아가 매일 학생들과 굿나잇 인사를 한다는 것은 기꺼운 마음이 아니면 학생들이 마음을 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Jens 교감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과 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학생들에게 에프터스콜레에 다니는 시간이 참 좋은 시간이겠다 싶었다. 또한 선생님과 학생들 8-9명이 한 모둠이 되어 식사 시간에도 같이 둘러 앉아 먹고 서로가 또 작은 가족으로서 지내고 있는 모습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였다. 좀 더 세심한 케어가 이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Ryslinge 에프터스콜레에서는 직접 학생들의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수업을 참관하고 또한 학생들과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수학, 영어, 과학 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는데 여건상 나는 수학, 영어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다. 먼저 영어 수업은 학생들이 주어진 주제에 따라 조사를 통해 영어로 보고서를 만드는 내용이었다. 전체 주제는 인도였고 모둠별로 인도의 역사, 종교, 간디, 빈곤, 문화, 파키스탄과의 대립이라는 소주제가 주어져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료를 조사하여 영어로 그 내용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인도라는 주제가 주어진 것에 대해 질문을 하니 선생님이 정해주셨고 덴마크처럼 인도도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지만 두 번째로 영어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국가라서 인도라는 주제가 주어진 것으로 보였다. 우리에게 아프리카나, 남미가 생소한 것처럼 그들에게도 아시아가 생소할 것 같아서 인도에 대해 관심이나 알고 있는 것이 있냐고 물으니 역시 생소한 편이었다. 그 중에는 인도에 여행을 해 봐서 관심이 있다는 학생도 있기도 했지만 모두가 인도에 대해 큰 관심이나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영어 수업을 통해 타 문화권에 대한 이해도도 높이고 영어 작문 실력도 늘릴 수 있어 의미가 있어 보였다. 조사하고 다음 주에는 모둠별로 발표를 한다고 하는데 그럼 듣고 말하기 실력 신장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교과서에 주어진 텍스트를 읽고 거기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 외우고 선생님이 쭉 읽어 가시면서 해석을 해주시거나 학생들에게 해석을 시키고 쪽지 시험을 보는 형식의 수업이 일반적인 내가 받았던 중고등학교 영어 수업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지금 일반 공립 중고등학교 영어 시간에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참신한 수업 구성이었다. 우리가 만난 학생들이 우선은 그 학교에서 영어 사용 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이기도 했지만 Ryslinge 에프터스콜레에서 본 영어 수업을 보면 대부분 학생들이 그 정도 나이가 되면 기본적으로 영어로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영어로 주어진 주제에 대해 보고서를 쓸 정도가 된다는 점에서는 책상 앞에서의 영어공부가 아닌 제 2의 언어로서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학 수업은 통계 시간이었는데 역시 컴퓨터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것 또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지금 현재 공립학교나 대안학교의 중고등학생들의 수학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가 없어서 정확한 비교가 어렵지만 역시 나의 중고등학교 때의 수학 수업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교육대학에서 수학교육 수업을 받을 때 계산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줄 때는 연산까지 이중적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계산기를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과 계산기를 조작함으로써 수학적 원리를 스스로 터득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지만 실제로 학교현장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점에서 더욱 엑셀을 이용한 수학 수업이 인상적이었다. 진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골치 아픈 연산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원리가 적용된 것을 일상생활에서 원리를 알고 잘 사용하는 것인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생각하였다. 사실 나 역시 엑셀에 있는 함수를 잘 사용하지 못한다. 배워본 적도 없고 일부러 배워서 사용하고 싶은 생각조차 없는데 이것을 고등학교부터 학교에서 수학 시간에 배운다면 학생들에게 수학이 우리 생활과 동떨어지지 않다는 것과 실용적인 것도 같이 얻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 수업은 참관하신 선생님들 말씀으로는 양의 눈을 해부했다는 데 그것 역시 생소하면서 인상적이었다. 에프터스콜레이기에 가능한 수업 내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직접 에프터스콜레를 둘러보니 오기 전에 오연호 기자의 책과 강연을 통해서 들었던 ‘참 좋겠다.’ 라는 마음이 현실을 직접 보고 실망하기보다 더 좋아졌다. 이런 제도를 정착시킨 이 나라 국민들의 저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론 정부에서는 75%의 지원에서 매년 1%씩 낮추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에프터스콜레에서 만난 교장선생님 이하 선생님들의 모습을 뵈니 그것과 관계없이 열심히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 제도를 건강하게 운영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올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중학교 1학년 대상으로 자유학기제가 시행된다. 내가 이 아이들 5학년 때 가르쳐서 그런지 더 그 제도에 관심이 간다. 많은 우려 가 있고 나도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없기에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는 무언가 하나라도 얻을 수 있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덴마크 기행을 다녀오고 학교에 가니 많은 선생님들이 어땠는지 물어보시는데 짧게라도 말씀드리면 그 곳에 교육부 관계자들이 가봐야 한다는 말씀을 가장 많이 하신다. 물론 위에서도 변화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또 다시 한 번 마지막에도 언급하겠지만 실제 학생들과 일대일로 만나는 선생님들 개개인의 작은 실천과 노력도 같이 이루어질 때 우리도 덴마크와 같은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덴마크에서 에프터스콜레 이전의 학제는 초중등학교인데 초중등학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공립학교, 사립학교, 자유학교이다. 그 중 사립학교인 Riberhus Private school과 자유학교인 Onsbjerg Lilleskole, Ryslinge 프리스콜레를 방문하였다.
Riberhus Private school은 Ribe에서 간 곳인데 학생들 수업이 거의 끝난 시간에 방문하여 학생들을 많이 볼 수는 없었고 교장선생님의 학교 소개 말씀을 듣고 학교를 둘러보았다. 내가 공립초등학교 교사인지라 학교의 시설을 둘러볼 때 다른 급별 학교를 둘러볼 때보다 더 열심히 본 것 같다. Riberhus Private school은 교사 양성 대학 건물이었는데 대학이 이사를 가면서 학교가 이 건물을 사용하게 되어서인지 건물이 참 좋았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보여주었는데 ‘선생님, 호텔 같아요.’ 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다. 교실은 벽이 하얀색이어서인지 통유리 창문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밝고 넓은 느낌이었다. 또한 책상이 나무 책상이 아니라 사무용 책상처럼 밝은 회색빛이었다. 우리나라의 공립 초등학교는 대부분이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 아이보리 페인트칠을 한 벽에 초록색 칠판과 초록색 게시판이 칠판 양 옆과 교실 뒤에 있고 나무로 된 책상이 가득 들어있어 들어서자마자 밝고 넓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신설된 지 5년 된 학교에도 근무해보았지만 하얀 벽은 아니었다. 마룻바닥은 요새 나무가 아닌 곳도 많기는 하지만 해가 잘 나지 않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나에게는 밝고 넓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게시판도 교실 뒤 벽을 꽉 채우지 않고 적당한 크기로 있어서 공지할 사항들만 핀으로 꽂혀 있고 수업 시간에 한 결과물들도 벽에 자유롭게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방문한 모든 급별 학교 대부분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칠판이다. 화이트보드였고 프로젝터가 달려있어서 프로젝터로 쏘아서 선생님 컴퓨터에 있는 내용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내가 3년 째 학교에서 정보기기 관련 업무를 맡고 있어서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학교들은 프로젝터는 학교에 1-2대 정도로 강당에 설치되어 있는 편이고 교실은 프로젝터의 역할을 TV가 하고 있다. 아마 가격의 문제 때문에 그렇게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것이 수업에 더 효율적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서 다양한 교실을 둘러보았다. 복도에 있는 전자렌지, 싱크대, 냉장고도, 쇼파, 축구 게임대 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호텔 같다고 느껴지게 한 부분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느꼈지만 나는 이런 것을 복도에 둘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큰 통 안에 훌라우프랑 줄넘기, 공이 담겨져 있는 것도 좋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체육관 체육교구 준비실이나 운동장 창고에 있어서 수업 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는데 교실 앞 복도에 이렇게 마련해두면 학생들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좋겠다 싶었다. 또한 요리 실습실에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전기로 된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요리 실습은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활동인데 할 때마다 가스가 제일 걱정이다. 하지만 학교에 이런 시설이 되어 있으면 걱정도 덜고 더 많이 활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의 실용적이면서 깔끔한 디자인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학교에서 사용하는 책상, 의자, 신발장, 선반들이 정말 사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고 디자인도 깔끔해서 다시 북유럽 디자인에 대해 감탄하였다. 6학년의 시간표를 사진으로 찍었는데 모두 덴마크어라서 잘 모르겠지만 수업이 8시부터 시작하여 보통 1시 40분에 점심까지 먹고 마치고 늦게 마치는 날은 2시 25분에 마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겨울에는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아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편인데 아침 일찍부터 수업이 시작하고 있었다. 수업이 45분이고 거의 블록식 수업이었다. 중간 쉬는 시간이 30분이 있고, 점심시간이 35분으로 우리 보다 짧은 편이다. 일주일 총 수업 시간은 33시간으로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6학년 29시간에 비하면 많다. 그 대신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학원으로 학교가 끝난 후 시간을 보내지 않으니 학습에 대한 부담이 덜하지 않나 싶다.
Samsø 섬에서 방문한 Onsbjerg Lilleskole는 내게 가장 기억이 남고 가슴을 울렸던 학교이다. 0-9학년까지 학생들이 다니는 데 전교생은 모두 73명이다. 역시 야콥 교장선생님의 학교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는데 학교의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와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는데 내 가슴이 울렸다. Riberhus Private school에서 교장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이것이 바로 릴레스콜레가 다른 학교들과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끝난 후 그룹별로 아이들이 직접 학교를 안내해 주었는데 학교의 시설보다 안내해 주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수업 중인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서 릴레스콜레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호텔을 개조해서 만든 학교라서 복도가 좁고 시설은 평범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가장 좋은 뷰가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5학년 아이들이 안내를 맡았는데 내가 가르쳤던 5학년 아이들이 학교소개를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안내 중에 가장 가슴이 벅찬 공간은 교장실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집의 내 방 크기 정도에 길고 넓은 책상에 의자 하나가 있었고 책장이 하나 정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들이 벽에 붙여 있던 그림을 설명해 주었다. 바로 저학년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벽을 삥 둘러 아이들 그림이 붙여 있었다. 어느 학교 교장실에 아이들 그림이 붙여져 있을 수 있을까! 나중에 식사를 마치고 잠시 야콥 교장선생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되어 그 그림에 대해 물어봤는데 교장선생님은 업무관련 서류들은 재미가 없어서 아이들 그림을 붙이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은 자신의 배터리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시고 강당에서 수업 시간 종이 쳤는데 수업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웃으며 누워 있는 아이들을 역시 웃으며 누워있는 채로 3명의 아이들을 끌고 가는 교장선생님을 보며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본 나도 느끼는 마음을 아이들은 당연히 느낄 것이고 그 마음이 통한다면 배움도 잘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는 것’의 가치의 실현이지 않을까. 12월에 우리학교에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시는 1학년 선생님과 점심 식사 중에 나누었던 말씀이 떠오른다. ‘그냥 사랑해 줘. 사랑받은 아이들은 엇나가지 않는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진리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통하는 것처럼 교육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릴레스콜레를 나오면서 우리 방문단 선생님들과 이야기한 것이 나는 대안학교를 가보지 못했기에 ‘공립초등학교 중 6학급인 작은 학교에서도 교장선생님이 생각만 바꾸면 이런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했고 대안학교 선생님들은 ‘우리나라의 대안학교와 가장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다.’ 라고 하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희망을 얻는다. 덴마크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오연호 기자의 강연에서 ‘우리 안에 덴마크가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인가 보다.
초중등학교 중 세 번째로 간 곳은 Ryslinge 프리스콜레였다. Ryslinge 에프터스콜레 교장선생님이 이곳의 교장을 했던지라 직접 오셔서 Ryslinge 프리스콜레를 안내해주셨다. 왜냐하면 그 날이 Ryslinge 선생님들이 워크샵을 가서 학부모들이 수업을 진행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Ryslinge 프리스콜레는 우리나라의 어린이집, 유치원부터 있었는데 어린이집에 있는 아주 작은 아이들은 처음 보는 동양인을 보고 놀라서인지 표정과 자세가 얼음이 돼서 우리를 쳐다보았고 유치원아이들부터는 우리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저학년 교실에는 학부모 일일교사가 있었는데 고학년 교실에는 특별히 학부모 일일교사가 없어도 아이들은 해야 할 공부를 알아서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평소 수업시간에도 그렇기 때문일 것 같다. 선생님이 없으면 떠들고 노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 나의 학창시절과 지금 우리나라 교실 대부분의 모습일 것 같아서 더 다가온 것 같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우리 반 아이들이 두 시간을 이어서 만들기를 할 때 중간에 쉬는 시간에 쉬어도 된다고 해도 만들기나 그리기에 집중하는 걸 보면 흥미가 있는 공부는 선생님이 있고 없고가 중요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둘러본 에프터스콜레와 릴레스콜레, 프라이빗 스쿨 모두 학교 내 공간이 잘 되어 있었는데 역시 Ryslinge 프리스콜레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다른 학교들과는 달리 건물 주변에 길을 건너지 않고 학교 공간으로서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 수 있는 곳이 많은 것이 참 좋아보였다. Ryslinge 프리스콜레에서는 이 좋은 환경과 교육의 3주체가 잘 어우러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학부모 일일교사라고 해서 뭔가 많이 어색할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나의 학창시절에 스승의 날에 온 학부모 일일교사처럼 형식화된 수업에 어색하게 서로 적응하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학부모 일일교사가 아니라 Ryslinge 프리스콜레에서 평소에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 같았다. 그것은 아마도 학부모, 학생, 교사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있기 때문에 나오는 분위기일 것이다. 곽영선 하자센터 사서선생님과 우리나라 학교에서 학부모와 교사의 어쩔 수 없는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는데 Ryslinge 프리스콜레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우리아이들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같이 고민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그 어쩔 수 없는 거리를 좁혀나가는 시작이 되면 좋겠다 싶었다.
세 번째로 간 학교급은 포크하이스쿨이다. 포크하이스쿨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성인들이 5개월 이상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것을 깊이 공부할 수 있는 학교이다. 이 학교의 뿌리 역시 그룬투비가 농민들이 민주 시민으로서 생각을 깨우기 위해 만든 시민학교라 볼 수 있다. 3군데를 방문하였는데 Ryslinge 에프터스콜레와 같이 있는 Ryslinge 포크하이스쿨은 새로 개교한 지 3주가 되었다. 연기를 전문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학교 방문 시작도 독특했다. 두 명의 학생이 눈을 가린 채 방문단 한 명, 한 명을 안아주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며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끝에 갈수록 굉장히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리고 빙 둘러앉아 촛불을 가운데 켜 놓고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연기 전문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교장선생님은 학교의 철학, 가치를 이야기하셨다. 학생들이 덴마크의 국립 연기학교에 가는 것이 목표이면 무엇보다도 연기의 구체적인 부분이 더 중점화될 줄 알았는데 교장선생님의 말씀에서나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그것보다 그들의 철학이 더 느껴졌다. 국립 연기학교는 전국에서 몇 명만 뽑기에 들어가는 게 힘든데 거기에 못 들어가도 괜찮냐고 하니 연기를 배운다는 것은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학교에 못가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다른 일도 할 수 있다고 얘기했던 학생의 말이 생각난다. 뿌리에 중점을 두는 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부러웠다.
Ollerup 포크하이스쿨은 체조 전문 포크하이스쿨이다. 일정에 없었는데 가게 되었다. 닐스 북이 세운 학교로 체육 전문학교로는 최초라고 한다. 다양한 체조 영역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꼭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도 사람들 중에는 몸을 쓰는 것을 즐거워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넓은 폭이 덴마크에는 있는 것이다. 또한 국제학교로서 외국학생이 오면 국제청년지도자 과정을 받게 된다. 이 과정은 국제기구, 비정부 기구들의 체육과 관련된 ngo들이 국제적으로 교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지원하교 교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제일 인상적인 말은 ‘외국학생들이 왔을 때 저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우선 이러한 삶과 학습의 방식을 익히고 충분히 이해하고, 단순히 카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도록 교육하고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라는 것이었다. 체조전문 포크하이스쿨에서도 철학이 기본이다. 포크하이스쿨 중에서 가장 철학이 얕은 학교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포크하이스쿨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제일 먼저 방문한 Brenderup Folk High School이다. 교장선생님께서 아주 반갑게 맞아 주셨고 학교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는 강의 형태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마음을 울리는 강의식 수업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시간이었다. 국제 학교인지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학생이 오기 때문에 서로가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화두인데 그냥 지금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를 대비해서 의식 개선 정도의 다문화교육이 아니라 이곳은 정말 다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을 기본 철학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교장선생님의 명 강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비단 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이 아니라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잠시 그 곳의 학생이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도 5개월 이 곳에 와서 생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덴마크의 유명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말할 수 없다.’ 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시면서 지금 짧은 시간이지만 느낌을 잡을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성공한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인생은 선택이다.’ 라는 키에르케고르의 말과 함께 내 지능은 노래 부르면 안 되는 데 하지만 내 다른 뇌는 큰 소리로 부르면 된다 라고 말씀하시며 'What a wonderful world'를 부르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덴마크는 사람들의 삶, 역사, 민주주의가 교육되기를 바란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가장 중요한 지점을 나라 전체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웠다. 강의를 듣고 1대 1로 학교의 학생들과 학교를 구경하고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일본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28살인데 일본에서 물리치료사로 일을 하다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영어도 많이 늘게 되었고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학생들이 소통하고 있었고 짧은 시간 나도 그 학생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전 세계가 그렇게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 경제, 보이지 않는 권력에 상관없이 말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하지 말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있는 곳 여기에서 지금부터, 나부터라도 시작하자.
방문한 학교 중 가장 높은 학교급은 Ollerup 자유교사대학이었다. 덴마크 기행에 앞서 자료집과 서울에서 있었던 에프터스콜레 세미나 동영상을 보고 오기를 안내받았는데 나는 자료집만 기억하고 자료집만 열심히 보고, 미리 읽어보면 좋을 책도 제대로 정독하고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자유교사대학이 제일 생소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번에 탐방한 모든 학교들의 철학을 가진 교사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곳이 바로 이 자유교사대학인데미리 숙지하지 못해 안타깝고 학생들과의 대화 시간에 방문단 다른 선생님들께 폐가 되는 질문을 한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덴마크의 자유학교의 교사는 공립학교 교사와는 달리 교사자격증이 없어도 학교의 철학을 공유할 수 있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으면 자유학교 교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대안학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덴마크에는 자유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자유교사대학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없는 학교시스템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행을 주관한 삶을 위한 교사 대학이 자유교사대학과 같은 역할을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멋져보였다. 이곳은 5년 과정인데 3학년 때 교생실습을 1년 나간다고 한다. 그것도 교사들과 같은 보수를 받으면서 말이다. 그런 다음 2년을 더 배우는데 이것은 참 특별하면서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초임시절 20년 경력의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이 있는데 바로 ‘처음부터 엄마를 잘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처음부터 선생님을 잘하는 사람은 없다. 엄마도, 선생님도 되어가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물론 엄마는 하늘에서 부여해 주신 모성과 엄마로부터 받은 사랑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보다는 좀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선생님은 교과에 대한 지식, 학생들의 발달과정에 대한 이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이 선생님을 하면서 되어가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교사양성 대학에서 지식적으로 배울 것은 배우고 배우면서 마음도 키워간 후 현장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사범대학, 교육대학은 4년 동안 배우고 그 과정 중에 약 한 달에서 두 달 가량 교생 실습을 나가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 역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교사대학처럼 1년을 실습을 나가는 것은 사람을 사계절을 겪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처럼 큰 의미가 있어 참 부러운 부분이었다. 2년을 배우고 1년을 실습을 하면서 자신이 교사로서 더 배우고 싶은 것들을 찾아 자발적인 배움이 잘 일어나지 싶다. 이곳은 정해진 교과가 없다고 하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1년 실습을 듣고 나니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나도 교직생활을 하면서 내가 부딪히고 어렵고 또 관심 있는 부분에 대해 찾아서 연수를 듣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게 되는데 이 자유교사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학에서부터 그런 과정들이 일어나는 것이니 참 부러웠다. 그리고 시험이 없고 졸업 논문을 공동으로 쓴다고 한다. 분명 어렵고 힘들겠지만 그 과정 중에 일어나는 놀라운 배움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일 것 같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20대 초반의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일을 하다가 오는 나이가 더 있는 학생들도 있고, 결혼한 학생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진짜 교사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찾아왔으리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11개의 학교들을 둘러보면서 처음에는 와~학교에 이런 시설이 있구나! 라는 놀라움에서 놀라움을 준 시설들이 거의 모든 학교에 있는 것을 보고는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체육관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체육관의 난방이었다. 덴마크와 우리나라의 날씨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덴마크에 있는 기간 동안 덴마크 사람들도 춥다는 기온도 겪어 보았다. 우리나라가 추울 때만큼 추웠다. 기온은 그만큼 낮지는 않지만 습도 때문에 더 춥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체육관들은 우리가 간 곳마다 춥지 않았다. 특별히 난방을 계속 했던 것도 아닌 것 같다. Ryslinge 에프터스콜레에서 Jens 선생님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체육관 난방을 어떻게 하는지. 특별히 난방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고 하실 뿐더러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춥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체육관에서 겨울에도 체육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공립학교에도 덴마크의 자유 학교들처럼 비슷하게 생긴 형태와 크기의 체육관이 있다. 하지만 우리 체육관은 덥고, 춥고, 비가 올 때 체육활동을 하기 위한 곳인데 밖에 만큼 더울 때는 덥고, 추울 때는 춥다. 비만 피해서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 공간이 체육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 따뜻한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 교육부에서는 체육 교과 시수를 늘리라고 하여 시수는 늘렸으나 공간은 확보해 주지 않고, 있는 공간마저 부실한데 과연 시수를 늘린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가 의문이다. 아마 비단 학교의 체육관뿐만 아니라 덴마크 나라 전체의 건물이 아마 단열이 잘 되어 있을 것이다. 햇빛을 적게 보는 나라라 건물의 채광도 잘 되도록 건설되어 있는 것 같고, 학교 건물이라고 예외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체육관 건물에서 느낀 덴마크의 이런 하드웨어가 참 부러웠다. 거기에 150년에 걸쳐 이룩한 교육시스템마저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들의 소프트웨어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렇다면 이들은 소프트웨어가 먼저였을까? 하드웨어가 먼저였을까? 첫 시작은 아마 소프트웨어였을 것이다. 그룬투비의 철학이 밑바탕이 되어 두 가지가 같이 조금씩 발전해나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을 것이다. 덴마크 자유학교의 현장을 둘러보면서 ‘여기는 이런 환경이 뒷받침이 되니까 이런 교육이 가능 한거야.’ , ‘시스템이 먼저 바뀌어야 해.’ 이런 이야기가 나누어지고 내 속에서도 계속 그런 생각이 올라왔다. 그런데 교육기행의 끝으로 갈수록 ‘나’와 ‘우리나라’를 보게 되었다. ‘우리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 ‘우리도 할 수 있어.’로 말이다. 교육기행이 아마도 우리의 소프트웨어를 자극한 것이 아닌가 싶다. 기행 말미에 방문단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소회를 나눌 때 송순재 교수님의 우리 조상들의 서당과 정약용의 사상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처럼 우리도 우리의 철학을 바탕으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구축을 동시에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보인다.
일이 힘들어도 같이 하는 사람이 좋으면 덜 힘들다는 말, 어디를 여행하느냐 보다 누구와 여행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은 하드웨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사람의 중요성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것을 우리 방문단에서 느꼈다. 이 분들이 각자 처해있는 교육현장에서 작은 실천이 이루어지면 그것이 모여서 바로 역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척박한 하드웨어를 새롭게 갈아엎는 것 역시 막막해 보이지만 한 삽을 뜨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덴마크의 수많은 시민들도 내가 심은 사과나무에서 나는 사과를 나는 못 먹을지라도 내 다음 대에서는 먹을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 아닐까.
그리고 공립학교 교사로서 대안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좋은 철학이 담긴 교육이 대한민국 모든 공교육 현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도록 서로 같이 배우고 성장하는 연대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작은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것은 한갓 꿈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훈데르트 바서(오스트리아 건축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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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연대의 끈을 꽉! 잡고 함께 가요 ^^~ 10년 간의 고민을 엿볼 수 있게 되었어요. 벌써 10년 차 선생님이시군요. 놀라운 동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