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제의 식민지 문화 정책과 국학 운동의 전개
(1)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
1)우민화 교육과 언론 정책
- 제1차교육령(1911):보통학교,실업학교,전문학교로 제한, 사립학교 인가 조건 강화,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 단축(4년제)
- 제2차교육령(1922):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6년으로 연장, 한국어를 필수 과목으로 유지
- 제3차교육령(1938):한국어를 선택과목으로 전환,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강요, 학제 변경(보통학교→소학교, 고등보통학교→중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 고등여학교)
- 제4차교육령(1943):한국어 과목 폐지, 교육에 관한 전시 비상 조치령
※ 초등학교 명칭
소학교[1895.심상(尋常)소학교(3년제),고등소학교(2,3년제)]→ 보통학교(1906-4년제)→소학교[1938.심상소학교(6년제-실제4년),고등소학교(2년제)-거의존재하지 않음 ]→국민학교(1941,6년제-실제제대로 지켜지지 않음)→초등학교(1996,6년제)
① 교육 목표 : 우민화 교육을 통한 한국인의 황국
신민화 시도
② 우민화 교육 정책
㉠ 일본어 교육 강요 : 침략 정책에
맞는 교과서 편찬
㉡ 민족주의 교육 기관 억압 : 사립
학교[ 사립학교령(1908)을 통해 억압], 개량서당, 야학 등
㉢ 실업 기술 교육 치중 : 그들의 식민지
통치에 유용한 하급 기술 인력 육성
㉣ 중·일 전쟁 이후 : 내선 일체,
일선 동조론, 황국 신민화와 같은 허황된 구호 아래 우리말,우리 역사
교육 금지.
㉤ 황국 신민화 정책
- 황국신민 서사 암송, 신사참배, 일본식 성명, 궁성요배 강요,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 제정
- 제3차교육령(1938)이후 한국어 학습 시간 실질적 폐지, 한국어 사용 금지, 국민학교령(1941-소학교의 명칭을 '황국신민학교'라는 뜻의 국민학교로 개편)
③ 언론 탄압
㉠ 국권 피탈 직후 :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박탈, 항일 민족지 폐간
㉡ 3·1 운동 이후 : 조선·동아
일보 발행 허용(1920) → 검열, 정·폐간으로 탄압.
㉢ 1930년대 : 언론 탄압 강화 → 동아일보 일장기 삭제 사건(1936)
㉣ 1940년대 : 조선 ·동아일보 폐간(1940)
2) 한국사의 왜곡과 종교 탄압
① 식민 사관 : 한국 민족사의 근원 왜곡(단군 조선
부정), 한국사의 타율성·정체성 강조, 자율성·독창성
무시 → 식민 통치 합리화(조선사편수회(1925)-일제가 설치한 기관으로 식민 기관을 토대로
조선사(37권),조선사료총간(20종),조선사료전집(3권) 등 편찬, 한국사 왜곡에 앞장섬)
② 종교 탄압
㉠ 기독교 : 안악 사건·105인
사건 조작, 신사 참배 강요
㉡ 불교 : 사찰령·승려법 제정으로
탄압
※ 식민 사관
1. 타율성론(他律性論) : 외세의 지배와 영향을 강조하여
역사 주체로서의 우리 민족의 독자적, 자주적 발전을
부정하였다.
ㄱ. 임나 일본부설(남선 경영설(南鮮經營說) : 고대 한반도의
북쪽은 중국 세력의 지배하에 있었고, 남쪽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
ㄴ. 반도 성격론 : 한반도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대륙과 해양 세력의 영향 아래 있었다.
ㄷ. 만선(滿鮮) 사관 : 한국의 역사는 만주 대륙사의
일부분이다.
2. 정체성론(停滯性論) : 한국의 역사는 오랫동안
발전하지 못하였으므로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
ㄱ. 20세기 초 한국의 역사 발전 단계는 수백 년에서
1천 년 전 일본의 역사 단계에 해당한다.
ㄴ. 한국의 역사에는 근대로의 이행에 필수적인 봉건제가
결여되어 있다.
3) 친일파의 활동
㉠ 친일파의 형성: 일제의 황국 신민화 정책 강화→한국인의 일본인화 주장, 민족적 가치 부정
㉡ 친일파의 유형
- 일제의 강점 과정에 참여
:을사조약 체결 등에 가담→일제로부터 귀족 작위 부여, 중추원에 참여, 막대한 양의 토지와 은사금으로 부를 축적
- 일제의 식민 통치에 참여
:고위 관료, 경찰,군인,판검사 등 일제의 권력 기구에서 근무→출세를 위해 일제의 하수인 노릇 자행
- 일제의 침략 전쟁에 협력
:식민지 경제 체제 아래 성장한 자본가, 지주,교육가,종교인,언론인,문인,예술가 등의 지식인층 포함, 중·일 전쟁 이후 친일 단체 간부로 참여→국방헌금 납부, 침략 전쟁 예찬, 학도병 지원 권유, 징병제 찬양 등
(2) 국어 연구와 한글의 보급
1) 한글 보급 운동 - 민족 문자 수호
① 조선어 연구회(1921) : 한글 연구, 강습회·강연회를
통한 한글 보급, 가갸날(한글날)
제정(1926),‘한글’ 잡지 간행(1927)
② 조선어 학회(1931) : 한글 보급, 문자보급운동 교재 제작,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표준어(1936) 제정,외래어표기법 통일안(1941)제정, 우리말 큰사전 편찬 시도, '한글' 잡지 발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해산(1942).
③ 문맹퇴치운동
㉠ 문자보급운동(1929~1935) : 조선일보 주도→'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라는 구호를 내세워 한글 교재 보급, 전국 순회강연 개최
㉡ 브나로드운동(1931~1934): 동아일보 주도의 농촌 계몽 운동 → 방학을 맞은 학생들을 동원하여 한글 교육, 구습제거, 근검절약 등의 계몽 활동 전개→일제에 의해 강제 중지됨
(3) 한국사 연구의 발전
① 민족주의 역사학 : 식민 사관에 대항, 식민사관의 타율성 비판, 관념론에 치우쳤다는 비판 받음.
㉠ 박은식 : 민족 정신을 혼(魂)으로
파악, 일제의 침략에 맞선 독립 투쟁의 역사 정리, <한국 통사>·<한국 독립 운동지혈사>
"나라는 형(形)이요, 역사는 신(神)이다"
㉡ 신채호 : 주체적인 한국사 정리로
민족주의 역사학의 기반 마련, 민족 정신을 ‘낭가 사상’으로 파악,
<조선 상고사>·<조선사 연구초>, 낭(郞)사상강조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
㉢ 정인보 : 조선의 얼 강조(5천년간조선의얼), <조선사
연구> 저술,
㉣ 문일평 : 조선심(朝鮮心)강조. 개항이후
역사에 관심<한미50년사>,<조선사화>, 신민족주의 사학
㉤ 안재홍 : <조선상고사감>저술. 신민족주의사학
㉥ 최남선: 조선광문회조직(고전정리),
불함문화론
주장
<참고>조선학 운동: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중심→민족주의사학을 계승한 안재홍, 정인보 등이 1930년대(1934)에 전개→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발간→한국도 스스로를 발전할 수 있다는 역량을 강조→"문화가 살면 민족은 죽지 않는다" 주장
② 사회
경제 사학
㉠ 1930년대에 백남운('조선사회경제사' 저술)등에 의해 대두-정체성론 비판, 민족주의 사학의 관념론(정신주의) 비판
㉡ 유물사관입장에서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
③
진단 학회 : 청구 학회(1930)의 왜곡된 한국사 연구에
대항하여 이병도,손진태 등이 조직(1934) → 문헌고증을 통한 객관적 사실을 밝히고자 함→실증 사관에
입각한 연구, 진단 학보 발간
(4) 민족 교육 진흥 운동
1) 조선 교육회
① 일제의 교육 정책 : 민족 차별 교육(낮은 취학율
- 초등 학교의 경우 일본인의 6분의 1 수준) → 한국인을
위한 민족 교육 부재
② 민족 교육 기관 : 사립 학교, 종교 계통의 학교,
개량 서당, 강습소, 야학 등 → 민족 의식 앙양
③ 조선 교육회(1920) : 민립 대학 설립 운동 전개(인재
양성 목적)
2) 민립 대학 설립 운동
① 배경: 일제의 제2차 조선교육령 공포(1922)→한국인에 대한 교육기회 확대
② 경과:→조선교육회(1920)를 중심으로 민립 대학 기성 준비회 결성(1922년, 대표 - 이상재)
→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조직(1923) → 모금 운동
전개
③ 결과:일제의 방해로 좌절 : 일제는 한국인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하여 경성 제국 대학(1924)을
설립
3) 농촌 계몽 운동
① 1920년대 : 학생, 지식 청년, 문화 단체 등이
한글 보급을 통한 문맹 퇴치 운동 전개[문자보급운동(조선일보-1929)]
② 1930년을 전후한 시기 : 언론계와 청년 학생이
힘을 합쳐 문맹 퇴치와 농촌 계몽 운동 전개[문자보급운동(조선일보-1929), 브나로드운동(동아일보-1931)] → 민족의
자강을 이룩하고자 함
브나로드운동
4) 과학 진흥 운동:일제의 식민지 교육 정책의 영향으로
선진 기술 습득 못함
(5) 종교 활동
(1) 종교 활동
① 개신교 : 국권 피탈 이후 민족 운동 전개, 신사
참배 거부 운동
② 천주교 : 잡지 ‘경향’ 간행으로 민중 계몽,
의민단 조직(1919-만주, 무장 항일 투쟁 전개)
③ 천도교 : 제2의 독립 선언 운동 계획(1922-자주독립선언문), 사회 운동
전개, 잡지(개벽,신여성,어린이,농민)발간
④ 대종교(천도교와 더불어 민족 종교) : 단군 숭배
사상으로 민족 의식 고취, 만주에서 민족 교육과 중광단(1911),
북로 군정서(1919)(청산리 대첩의 주축)를 조직하여 무장 항일 투쟁 참여
⑤ 불교 : 한국 불교의 일본 불교로의 통합 정책(1911-사찰령)에
저항, 조선불교유신회
⑥ 원불교(1916.박중빈) : 민족의 자립 정신 고취(개간 사업, 저축
운동 전개), 새생활 운동 전개
(6) 문학과 예술 운동
1) 문학 활동
① 근대 문학 : 계몽적이며 자주 사상을 고취
㉠ 최남선 : 근대시 발전에 공헌, 언문
일치의 우리말 문장 확립
㉡ 이광수 : <무정>(1917.최초의현대소설) - 계몽기
신문학 총결산
㉢ 한용운, 신채호, 김소월, 염상섭
: 전통적인 문학의 바탕 위에 근대 문학 발전, 자주
독립 신념 고취
② 잡지 간행 : 동인지 - ‘창조(1919)’,‘폐허’(1920),‘백조’(1922)
종합 잡지 - ‘개벽’(1920),‘조선지광’(1922) → 독립 운동 사실 발표로
일제의 탄압
③ 1920년대: 동인지 중심의 사실주의적 경향, 문학의 예술성 강조, 퇴폐적 낭만주의(3.1운동의 실패로 인한 좌절과 허무감이 드러남)출현, 식민지 현실과 저항 의식이 담긴 작품 발표,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 영향으로 신경향파 문학( 문학의 현실 생활 반영 강조, 문학의 사회적 실천성을 강조하였으며, 무산계급의 현실을 소재로 삼은 프로문학[=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으로 발전)출현
④ 1930년대: 순수 문학(예술성,작품성 강조), 민족의지 표현(이육사, 윤동주), 중일전쟁 이후 친일 문학(이광수, 최남선 등이 일제의 군국주의 찬양) 등장
민족개조론
⑤ 역사 소설 발표 : 김동인, 윤백남 등
2) 예술 활동
① 음악 : 억눌린 민족 감정 표현, 홍난파(봉선화.1920),
윤극영(반달-1924), 안익태(애국가)
② 미술 : 안중식(한국화), 이중섭(서양화)
③ 연극과 영화 : 민중 계몽 운동 전개, 독립 정신
고취, 토월회(1923),극예술 연구회 조직(1931), 나운규(아리랑.1926), 최초 유성 영화 제작(1935) → 조선
영화령(1940)으로 탄압
형성평가 참고자료
7-4-2.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