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9. 7. 예슈아 비전교회 토라포션 티칭 나눔 포스팅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신26:1)
1. 지난주 토라포션은 '키 테쩨(כי תצא)', '왜냐하면 너는 나올 것이다' 였습니다.
히브리어로 '보(בוא)'는 '들어오(가)다, 가다, 오다' 는 뜻입니다.
가는 인생은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온다는 것은 목적지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이 하나님 것이므로 하나님에게는 오는 것만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키 타보(כי תבוא)'가 없습니다.
2. 주님의 이름 중에 하나는 '하바(הבא)' 가 있습니다.
'바룩 하바 베쉠 아도나이'(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그분은 'The Come', 오는 자체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오는 것 밖에 없습니다.
토라에는 가라(go)는 말이 없습니다.
3. 옛 자아는 언제나 갑니다.
하지만 진리는 언제나 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계22:17)
4. 하나님 아버지(אב)가 내 안에 들어오면 'ב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것은 그 형상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약속의 땅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5.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신26:8-9)
인도하여 낸다는 것은 '키 테쩨(כי תצא)', '나오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다는 것은 '오게 했다(כי תבוא)'는 말입니다.
6. '키 테쩨(כי תצא)'는 구속(애굽에서 끄집어 내는 것) 사역입니다.
'키 타보(כי תבוא)'는 창조(목적지로 오게 하는 것) 사역입니다.
'키 테쩨(כי תצא)'를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는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지불한 피는 우리를 데리고 나오기 위함입니다.
애굽은 나의 옛 자아입니다.
7. 히브리어의 동사 유형 가운데 파알 동사와 힢힐 동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파알 동사는 기본형이고 힢힐 동사는 사역형입니다.
온다는 것은 기본형이지만 오게 하는 것은 사역형입니다.
애굽에서 내가 나오는 것 같지만 나오게 하는 주님의 사역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8. 사역을 내가 하려고 하면 종교가 됩니다.
그리스도가 사역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인간은 사역의 주체가 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역의 비밀을 가진 자가 권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9. 사역동사는 앞에 헤이(ה) 또는 멤(מ)을 붙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유드(י)가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손(י)이 삶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마쉬아흐(משיח)' 라고 합니다.
진리(מ)를 하나님의 손(י)이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내 삶에 거하시는 삶,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삶입니다.
10. 애굽에서 내가 나옵니다(כי תצא).
단, 그것을 이루시는 사역의 주체는 주님이십니다.
원수와 싸우러 나가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주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과 사랑은 내가 합니다.
이것을 하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나의 정욕과 싸우는 것은 나입니다.
싸우게 하시는 분, 이기게 하시는, 사역을 완성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출처 :엘리야가 먼저 와서 원문보기▶ 글쓴이 : Bedro Rhee
--------- 예배 전 말씀 ---------------------------------------------------------------
샬롬은 그분의 형상을 닮아가는것이다. (고후 3:18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는 가끔 자기 자신과의 싸움 가운데서 샬롬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과의 전쟁임을 선포하며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시험임을 깨달을 때 샬롬을 누릴 수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토라를 해석해주시려 오셨다. 이전의 시험 가운데 절망하여 넘어져 있을때에 또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또 회복을 주신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매주 새롭게 하실 주님의 해석을 기대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기에 삶을 해석하시고 거하시는 빛이 되신다.
그분의 해석의 핵심중 하나는 히브리어 해석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언어가 아니라 그분의 해석방법을 의미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스라엘은 신비라고 이야기한다.
신비는 원래 이야기 해줘도 잘 모르는 것이 맞다. 주님이 그 신비를 풀어주시기를 기대한다.
---------- [키 타보](Ki tavo) ; 신 26:1-29:9 ----------------------------------------
- [키] : 왜냐하면
- [타보] : 너는 올 것이다
1. 오는것이란?
지난주에 [키 테쩨]하며 나왔으니 이젠 어디론가 와야하는것이다. 오다(come)는 신비한 말이다. Come은 오는것도되고 가는것도 된다. 이 사람입장에서는 오고 저 사람은 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여기에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점이 있다.
사람은 늘 어디론가 간다, 아니 가야만 한다. 내 장소가 있으면(마콤) 저 사람에게 오라고 할 수 있다. 내 장소가 있어야지 오라고 하는 것이다. 내 장소가 없으면 어디론가 가야하는 것이다
인생은 오는 것일까 가는 것일까? 인간의 입장에서 인생은 가는 것이다. 어디론가 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불안함이다. 내 장소가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가는 인생은 항상 불안하고 뭔가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주님은 이번주에 너는 "온다" 또는 "왔다"고 말하신다.. 왜 간다고 안하고 온다고 하실까?
하나님에게는 사실 가는것이 없다. 전부다 하나님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어에는 오는 것만이 있다.
"오라!" 그리고 너는 "올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오는것, 즉 [키 타보]가 없다. 알지 못하는 자는 언제나 알지 못할 곳으로 "갈"뿐이다. 그곳이 천국이 될지 지옥일지 알지 못한채 계속 가야만 하는 것이다.
2. 주님의 이름 "오는것"
그러나 우리에게 주님은 너는 올 것이다 라고 한다. 그래야 주님의 이름중의 하나가 [하바](the come)이다.
키 타보의 원형은 [바]이다.
[바룩 하바 베쉠 아도나이](요 12:13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의 [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의 [바]
그분은 그냥 [바]자체이다. 오는 것 자체이시다. 그분 안에는 오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 [바]를 하게 된다. 인생을 얻은 자는 인생을 가는게 아니라 오는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게 "오라"하시지 가라하시지 않는다. 토라에는 가라(go)라는 말이 없다.
옛 자아는 언제나 간다. 그러나 진정한 인생을 얻고 나면 오라고 하신다.
옛 자아는 끊임없이 내가 원하고 만족하는 곳으로 끊임없이 가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바]이다.
암송구절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신명기 26:1)
- 들어가서 : [타보]
[אב ; 아브] : 아버지 = [א ; 아](나) + [ב ; 바](오다)
아버지가 내게 들어오면 [바]가 나온다. 하나님이 내게 들어오면 [바]의 삶을 살게 된다. 오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나의 목적은 그것을 향해서 내가 가는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내게 오는 것일까?
우리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는것이다(고후 3:18).
사실은 내가 그 형상을 향해 가는것이 아니라 그 형상이 내게 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약속의 땅으로 내가 가는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으면 약속의 땅이 오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것이 오는 것이다.
인생이 힘든 이유는 가려고 하기 때문에 힘든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그분이 가지고 오는 것이다.
신26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 인도하여 내시다 -> 끄집어 내다.
- [키 테쩨] : 네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끄집어 낸 것이다. 애굽에서 나오게 했다는 말씀이다.
- [키 타보] : 나오게 해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다". 즉 약속의 땅으로 오게했다. (Come)
- 내 입장에서는 내가 온 것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오게 한 것이다.
- [키 테쩨]와 [키 타보]가 주님의 가장 큰 사역이다. [키 테쩨]는 구속사역을 의미한다. "이는 애굽에서 건진 내 딸이다." 그러면 끄집어 내서 어디론가 들어가게 해야 한다. [키 타보]는 구속 이후의 창조사역이다.
3. 절기의 측면
유월절([키 테쩨]) : 우리를 데리고 나오시기 위해 모든 비용을 지불하시는 것이 유월절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모든 피는 우리를 데리고 나오기 위한 것이다. 애굽은 나의 옛 자아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모든 구속사역은 나의 옛 자아에서 나를 꺼내시는 것이다.
- 그 옛 자아로 부터 나오는것이 너무 중요하다. 나오지 않는다면 [키 타보]. 약속의 땅도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옛 자아로 부터 내가 나오는것인가? 주님이 꺼내주시는 것인가?
그런데 옛 자아로부터 나와서 사는것은 내가 하는것인가? 주님이 하시는것인가? 이 부분을 명확히 해야한다. 이를 히브리어 동사 구조를 통해 알아보자
4. 히브리어의 동사구조와 삶의 주체
히브리어의 독특한 구조가 있다. 삶을 설명하는것은 전부 동사이다.
동사를 적용할 수 없으면 살아있는것이 아니다. (무엇에게 이리오라고 했는데 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는것이 아니다)
히브리어의 4개의 동사 중에 2개만 배워보자.
[파알]동사, [힢힐]동사. 모든 삶의 구성은 이 두가지로 되어있다.
1) 파알 : 기본형 동사. 온다 / 나의 삶의 본질과 목적을 설명한다. [바] : 기본형, 온다 /
2) 힢힐 : 사역형 동사. 오게하다(상대방을 ~ 시키는 것)
ex1 ) 온유한 자가 되라. 남편에게 순종하라. 우리가 이 말을 들었을 때 이것저것 말이 왜 이렇게 많은가? '이걸 해야되는건 아는데 도데체 이것이 우리 삶에서 가능하다니 말이나 되?'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면 된다는 것은 [파알]동사라고 한다. 문제는 그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사역이 필요한 것을 모르는 것이다.
ex2 ) 지도자에게 순복하라(로마서) -> "부패한 지도자에게 순복하라는것이 가능이나해? 라고 말하면서 이것은 그렇게 해석하면 안되" 라며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 우리 삶 가운데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자 (; 역자 주)
토라는 목적지를 이야기 한다.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사는 실제 삶 가운데는 사역이 필요한것이다.
바로 하나님 형상을 닮아가는 사역말이다.
인간의 삶은 이 두가지 구성으로 되어있다. [파알]과 [힢힐]이다.
ex) 애굽에서 나와야 된다(파알), 애굽에서 나오게 해야한다(힢힐) ; [파알]을 사역이 되서 현실에 적용해야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원초적 신성을 이야기하고 하나님 형상을 닮은 우리의 모습을 [파알]로 이야기 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기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에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기 위해 사역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사역의 주체가 내가 되면 그것은 종교라는 괴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 사역이신분을 "그리스도"라 한다.
- 내가 사역자로 갈께 ! 너의 기본을 이렇게 만든 자가 나이기 때문에 나만이 너를 거기에 다다르게 할 수 있어...!
믿음 : 할렐루야. 당신이 사역자로 오십시요. 그것을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이라 한다.
대다수의 인간을 삶의 목적을 여기서 얻지 않고 사역하는것 자체를 삶의 기쁨으로 여긴다.
- 하나님의 사역자는 위험하다. 자기가 사역의 주체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 모든 옛 자아는 자기가 사역의 주체가 되려고 한다. 사역의 비밀을 쥐고있는 자가 권력과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ex) 우리가 아프다고 생각해 보자. 아프면 건강해 지고 싶다. 건강을 의한 사역이 일어나야 한다. 이렇게 하면 건강해진다는 사역의 비밀을 가졌으면 떼 돈을 벌수 있다. "이리와, 내가 사역해 줄께." , 사역의 주체가 되려고 하는것이 옛 자아의 가장 큰 갈망. 즉 뱀의 갈망이다. 이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른다. 옛 자아의 특징은 사역을 하고 싶어하고 사역의 주체가 되려고 한다.
5. 사역동사 구조와 그리스도의 히브리적인 의미
이 사역동사를 만들 때 히브리어에서는 맨앞(오른쪽)에 [ה ; 헤이; 생명의 호흡 또는 진리], 또는 [מ ; 멤 ; 진리]을 붙인다.
ex) 5단어(히브리어는 오른쪽 부터 읽는다) : [ㅁ] [י ; 요드] [ㅁ] [ㅁ] [헤이 or 멤]
{י; [요드]의 뜻 : 손}
- 사역동사를 만들 때 중간에 [י, 요드]를 붙인다. 하나님의 손을 앞에 붙인다. 하나님의 손이 내 삶속에 들어오는게 사역이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손이 나타났다 라고 말한다. 내가 되려고 하는것을 하나님의 손이 하는것을 바로 "그리스도" 라 한다.
- 그리스도 : [משיח ; 마쉬앜흐] : [מ멤 ש쉰 י요드 ח헷] / [מ, 멤 ; 진리]를 바로 [י, 요드; 하나님의 손]이 이루시는 것이다. 무엇을 이루는가? 바로 [ש, 쉰];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것을 이룬다. 하나님이 내 안에 와서 거하시는 것. 이 형상이 [ח, 헷]; 삶 이 되려고 한다면 반드시 [힢힐](사역)형이여야 한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삶을 모두 원하시만 그러기 위해선 만드시 [마쉬앜흐]가 있어야한다. 하나님의 사역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와야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구제해야한다, 온유해야 한다, 기뻐하라라는 기본동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것들을 다 아는데 "그게 되냔 말이야"라는 의문을 가지는 그때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한다.
인류역사 이래로 부모를 때리는것이 좋다라는 민족이 없고 욕하는것을 당연시 하는 민족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역이 되냐는 것이다." 맘대로 안되기 떄문에 말씀 자체를 폐기해 버리는것, 토라를 없애버리는 반역을 한다.
동성애자들도 동성애가 틀렸다는 건 안다. 그런데 그들이 이야기 하는것 "그건 아는데 안되는걸 어떡하냐?" 그렇기 때문에 토라(말씀)를 없애버린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동성애가 틀렸다고 하니 말이 안통하는 것이다. 걔들도 이미 그건 알고 있다.
모든 사역에 대한 오해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사역이시다.
6. 할렐루야의 숨겨진 의미
[힢힐] 동사는 어떻게 해서 우리 삶에 오게 되있는가를 보자.
야훼 하나님의 이름중 사역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י; 야]라고 한다.
[야]를 왜하나? 할렐루[야]. 왜 찬양하나?
- 내가 되고 싶어하는 것에 있어 그분이 사역의 주체로 등장 하실때 할렐루야(הללויה) 하는 것이다.
온유하고 싶은데 잘 안될때, 분노를 참고싶을 때 잘 안 될 때 우리는 할렐루야! 를 해야하는 것이다. 사역의 주체로 [야]를 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분이 내 삶 속의 사역의 주체로 무엇을 하게 하는 것이다. 사역의 주체이신 주님을 꼭 만나야 한다.
- ex) 온유 하게 만드는 것이다.
토라는 이 두가지를 이야기 한다.
- 너는 ~게 되야한다 -> 어떻게 합니까 ㅠㅠ -> 사역의 주체이신 분이 갈 것이다!
사실은 사역의 주체이신 분이 "온다" 즉, "나타난다" 라는 말이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토라는 온통 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분을 영접하라. 우리에게 사역동사가 필요함을 알려주신다. 그것을 구원이라 한다.
하나님이 와서 거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사역이 필요한 것이다.
7. 나오는것의 주체와 나오게 하는것의 주체
Q. 애굽에서 내가 나오느냐? 주님이 나오느냐?
- 애굽에서는 "내"가 나온다(주님이 나오시는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헷갈리는 부분, 주님이 하신다 라고 고백하는것이 신앙이 좋은것 같이 우리는 느낀다). 우리는 [키 테쩨]를 통해 내가 나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을 이루시는 사역은 주님이 나가게 하셔야만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나가려고 하지 않는 한 주님이 나오시게 하는 사역은 일어날 수 없다.
[키 테쩨] : 너는 나갈것이다. 나가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만난다.
- 너는 원수와 싸우러 나갈 것이다. 그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있다.
- 옛 자아와 싸우러 나가기를 축복한다. 그러나 옛 자아와 싸우러 나갈때 사역의 주체가 주님이시다. 그분이 파워이고 능력이시다. 반드시 주님을 만나야 한다.
- 우리는 약속에 땅에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나오는 전쟁을 해야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
나오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주님은 [이쉬]와 [이샤]의 문제라고 하신다. (남자와 여자의 문제) 옛 세상으로 부터 나오는것에 가장 중요한것이 남여의 문제이다.
8. 남여의 비유의 비밀 (이쉬와 이샤)
- 결혼은 내가 한다, 그러나 결혼을 하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 사랑은 내가 한다. 그러나 사랑을 하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 나의 정욕과는 내가 싸운다. 그러나 그 싸움을 하게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 죄와 피흘리기까지 내가 싸운다. 그러나 싸워서 이기게 하시는 사역이 되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남자[이쉬] : 주님
여자[이샤] : 나
[אישה ; 이샤]의 끝에는 [ה ; 헤이]가 있다. [איש ; 이쉬]에는 [י ; 요드]가 들어있다. 합치면 [할렐루야]이다. 손으로 하시는 분은 남자이다.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헤이] : 바라보는것).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는 것은 내가 해야한다. 그 삶을 살아야 겠다는 것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 내가 바라보지 않는 한 하나님의 손은 필요 없다.
우리가 만약 사기꾼이 되려고 사기꾼을 바라보면 여기 올 필요 없다. 그 땐 아무리 주님이 역사해도 소용없다.
[이샤]는 항상 바라본다. 그 전쟁을 하시는 분은 [이쉬]이다.
반드시 이 둘이 하나가 되야만 삶이 완성된다. 어느 누구도 이 두 개가 하나되지 않고 삶의 완성은 불가능하다.
이것을 하나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를 결혼이라고 한다. 바로 옛 자아에서 나오도록 만드신 제도이다.
창세기2장은 하나님의 창조를 완성하신 이야기다.
- 두 남녀가 벌거벗었는데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것이 모든 하나님의 완성의 가장 완벽한 그림이다. 이것은 엄청난 비밀이다.
남자가 여자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아야지만 옛 자아에서 나올 수 있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 벌거벗다. : [ערוה ; 에르바]
레18
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 애굽에서 나왔다는 것은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풍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풍속은 어떠한 행함이다.
- 행함 : 옛 자아의 행함에서 나오라.
- 예수님이 강력하게 역사하시기 위해서 먼저 애굽의 풍속을 알고 거기서 나와야 한다. 이들의 풍속이 무엇인가? 알아야기 거기서 나올것이 아닌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지라도 그들으 풍속을 쫓으면 죽는 것이다.
- 나오기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풍속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레18장에 기록되어 있다.
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 이를 행하면 살리라 -> 이것을 모르면 너희는 죽는다.
조금 있으면 대속죄일이다(히브리력 7월 15일). 우리는 그때 무엇을 해야하나?
- 욤키푸르(대속죄일)는 생명책이 닫히는 날이다. 일년에 한번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하시는데 인간의 생명은 기록이 되면 일년을 더 사는 것이다. 이름이 기록이 안되면 다가오는 해에 죽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둬가시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중요한 날인가?
- 그때 자기 이름을 확인하고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대속죄일날 "살리라"하는것이 결정된다.
- 아담은 살리라. 그러면 뭐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 애굽의 풍속에서 나왔느냐? 안나왔느냐?로 결정된다.
생명책에 기록이 안되면 무슨일이 발생하는가?
레 18
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 땅이 토해낸다.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은 주민이나 나그네나 마찬가지다.
28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29 이 가증한 모든 일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 즉 대속죄일날 이름이 기록이 안되면 땅이 토해내고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 애굽의 풍속이 뭐냐? 바로 [에르바]이다.
그것을 레18장에서 하체를 벗긴다 라고 그것을 표현한다 (이것은 벌거벗음을 의미한다)
애굽의 풍속의 핵심은 나의 몸의 즐거움을 위해 벗는것이다. 모든 영적인 것을 폐하고 몸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몸의 기쁨과 즐거움 웰빙. 그것이 애굽의 핵심이다.
주님이 [이쉬]와 [이샤]의 관계를 만드신 것은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몸와 결합하는 것이 결혼의 원형이라는 것인데, 그것을 폐해버리는 것이 애굽의 풍속이다.
"그런거는 중요하지 않고 몸이 서로 느끼고 사랑하면 되는거지. 몸이 서로 사랑하면 되".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애굽의 풍속이다.
모든 옛 자아는 사실은 이 애굽에 있게 된다. 아니, 우리는 사실 다 애굽에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이 큰 은혜이다. 알아야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모든 사람에게 나는 애굽에 있지 않고 내 손가락 저편에 있는 저사람은 애굽에 있다고 착각한다.
우리가 애굽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주님이 우리를 [키 테쩨] 하실 수 있다. 애굽에 있다는 것을 모르면 영원히 주님을 만날 수 없다.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이 없으면 결코 옛 자아에서 구원받을 수 없다.
[에르바] 라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것을 말한다. 벌거벗은 상태라는 것은 완전한 신뢰이고, 내가 당신에게 모든것을 주고 당신의 모든것을 내게 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서야 우리는 한 몸,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어떠함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 벌거벗게 되있다. 하나님 앞에 완전한 믿음으로 서야한다.
중요한것은 하나님앞에서만 벌거벗어야 된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은 우상에게 가서 벌거벗었다. 너희는 매일 나무아래에서 하체를 드러냈고 우상과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하체를 드러냈다. 이것이 온 성경의 이야기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만 이야기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 우리가 교회 잘 다녔는데 도데체 왜 그러시는 거에요?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죄진거 별로 없고 교회 잘 다녔다고 이야기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게 거하는 것을 거절했다. 하나님이 거하는 것에 나의 모든것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이 행복해지는 것에 내 모든 것을 주려고 했다.
인간은 영과 하나되는 일에 오로지 이것을 사용해야 한다.
부부관계에서 섹슈얼한 관계가 핵심인 것은 결혼하기 전에 그것이 불가능 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것이 다 가능해져 버린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결혼하기 전에 절대 벗으면 안된다.
섹슈얼한 관계는 오직 하나됨을 위해서만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과 하나됨을 위하여 벗는것만이 아니라 내 육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언제든지 내준다. 그것이 우리의 죄악됨이다. 하나님이 와서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을 [슈브]라고 말한다. 이 집에서만 벗게 되있는 것이다. 지성소에서만 벗게 되는것이다. 그러면 모든것이 완성된다.
요즘 걱정되는 일이 하나 있다. 이 나라의 성적인 타락이다.
하체를 드러내는 것을 토라에서는 가장 문제로 삼는다.
인류가 [키 테쩨] 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적인 타락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무엇인지 모른 채 그 길을 절대 인간은 걸어 갈 수 없다.
소돔과 고모라가 왜 망했는가? 아무나 벗길려고 했기 때문이다. 모든 성 관계에 대한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결합을 의미한다. 이것을 파괴시킨다면 하나님과 인간이 결합되는 길이 막혀버린다.
장담하는데, 성적인 타락을 하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성경에서 많은 것이 성적인 것으로 묘사되는가?
지식을 안다는 것[야다 ; 알다] 자체도 성관계를 통해 상대방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영과 몸이 결합하는 원리를 말한다.
이것을 알아야 우리가 [키 테쩨] 할 수 있는 것이다. [키 테쩨]해야 하는 죄인임을 반드시 고백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의 결합을 싫어한다. 몸과 영은 너무 다르기에 몸은 승질내는 것이다.
- 남자와 여인이 다른 것처럼 몸과 영은 너무 다르다.
- Ex) 부부와의 관계를 통해 영과 몸의 관계를 묘사해 보면 : 누가 그거 몰라? 당신은 너무 심해. 안되는걸 어떡해?
- 그러면서 몸은 영을 점점 멀리한다. 몸은 몸의 즐거움을 위해 살기 원한다.
영과 몸은 애초에 원래! 다르다. 영적인 이야기는 몸은 이해를 못하게 되있다. 그러나 이 둘이 연합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존재한다.
하나님이 내 안에 와서 연합되는것을 싫어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때 우리에게는 [키 테쩨]의 역사가 일어난다.
주님 [키 테쩨]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것, 특히 성(性)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채워야 하는 나의 필요로 여기지 않고 가장 영적인것으로 여길 때 그런 역사가 같이 일어난다.
[키 테쩨]가 그럼 일어나고 그리고 [키 타보]가 일어난다.
9. [키 타보]의 핵심, 첫 열매
[키 타보] : 예루살렘으로. 너의 첫 열매를 가지고 오라.
- 애굽에서 나와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해야될 가장 중요한 일이 이것이다.
- 구속 후엔 창조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 구원 받으면 끝이 아니라 구원을 누려야만 한다.
[타보]는 나온 자(구속된 자)가 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된 자가 산다.
'약속에 땅에 들어가서 네가 살 때에'(레위기)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가 사는 그 삶을 말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 열매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님은 모든 계명과 명령의 종결이라고 하신다.
이 계명 이후에 실제적인 계명은 나오지 않는다. 다 축복과 저주만 나온다.
첫 열매를 가져오라(모든 계명의 결론) : 사역의 주체는 당신이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네 삶을 도와주는 분이 아니라 주체다)
- '농사는 내가 지었으나 실제로 하신분은 당신이십니다'의 고백이다.
옛날에 첫 월급을 탄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그걸 다 가져오라고 하셨다. 옛 어른들에게는 그런 생각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뺏은(?)다음 다 바치신 기억이 있다.
인간이 옛 자아로 살지않고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기 중심적으로 살지 않고 이타적으로 살게 하는 방법은 가정에서 밥을 먹을 때 반드시 아버지가 숫가락 을 뜬 후에 먹게 하면 된다. 그 이야기는 이 모든것이 아버지 때문에 왔다 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맛있는것이 들어오면 반드시 아버지것을 먼저 내놓았다. 그러나 요새는 애들것먼저 빼놓는다.
이 잘못된 관습은 얘들에게 내가 사역의 주체라고 착각하게 하는 망하는 지름길이다. (내가 사는거야! 이 삶은 나 때문에 온거야!)
아버지것을 먼저 해논다는 것은 이 삶은 아버지때문에 왔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이 철저한 이기심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것이 [키 타보]의 핵심 개념이다. 첫 열매를 가져와라.
이것을 가져와서 아깝게 바쳐라가 아니라 거기서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진짜 즐거울 때는 반드시 같이 즐거워한다.
집안 사람들과 노비들과 고아와 과부들과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즐거워 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그것이 [키 타보]의 삶. 하나님 중심의 삶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사시는 길이다.
이번주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것이 도데체 무엇인가? 그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 [키 테쩨] 이후에 어떻게 그리스도가 사시느냐?
그것은 의외로 심플하다. 그것이 우리가 어려운 데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어려웠다.
첫 열매를 주님께 드리고 기뻐하는 것이 비밀이다.
모든것이 주님께로 말미암았다는 그 고백이 있을 때 [키 타보]하며 약속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