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0월 15일에 사립 대원고등학교를 떠나 서울시교육청으로 발령이 나고 곧 경복고등학교로 전임되었다. 시교육청에 들어가니 장학관실에서 바로 모교로 전보 임명장을 수여한다. 인사를 마치고 곧바로 학교로 들어갔다.
수위실에 인사를 하고 서무실로 올라가 서무과장을 만나 전임장을 내밀며 모교출신임을 알리니 그 자리에서 전화기를 들어 교무부장과 학생부장을 불러 내린다. 서류를 접수하고 교장실로 자리를 옮기니 교무부장 학생부장이 내려와 환영을 해준다. 정말 1962년에 졸업을 하고 거의 30년 만에 돌고 돌아 모교의 교사로 발령받는 기쁨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두 부장이 모두 모교 출신이란다. 교무부장은 29회 김재희(국어) 부장님, 학생부장은 30회 차경재(수학) 부장님, 물론 나보다 훨씬 선배님들이시다. 그 외에도 모교 출신 선생님이 몇 분이 더 계셨다. 4년 넘게 근무를 하고 1996년 상계고등학교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1998년 상계고 근무하던 여름방학 시작 전 교사들은 건강검진을 매년 받았지. 나이가 56살 그래서 암 검진을 매년 하나씩 받기로 마음먹었다. 제일 먼저 위암 검진을 받았다. 검사결과는 위암, 어찌 족집게처럼 찍었을까? 다행히도 상피내암(위암 초기)이라나. 암 판정을 받고 나니 계속 악화될 것이라는 생각에 여름방학 끝나갈 무렵 당장 수술을 감행했지. 이름하여 위절제술, 위장 3/4 떼어내고 또 십이지장까지 떼어내고 남은 위와 장을 직접 연결해야한다나. 하여간 멀쩡한 남자가 그것도 당장 수업을 해야 할 선생이 2주간 입원을 하며 꾹 참았다.
그리고 예방적 차원에서 약을 매달 50만원씩 1년 먹었다. 그리고 또 1년에 2번씩 정기검진을 4년간 계속했다. 5년이 지나서야 정기검진이 없어졌다. 만 5년이 지나면 생존율을 100%로 친단다. 하여간 계속 몸조심하며 살자고 마음먹었다. 아무 약도 안 먹게 되었다.
수술 후 소화 때문에 잘 먹지를 못하고 위가 작아져서 식사량도 줄어 조금씩 자주 먹었지만 그래도 체중은 계속 줄었다. 수술 전 67Kg 정도가 53Kg으로 확 줄어들었다가 그 후로는 조금씩 늘어났다.
수술한 다음해(1999년)에 혜화여고로 전출을 갔다. 휴직을 하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냥 계속 나갔다. 몸도 차츰 나아져 식사량이 준 것 이외에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식사량은 많지 않다.
2005년에 1년 일찍 명예퇴직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여학생들이라 그런지 대학 진학에 매달리지를 않고 독일어도 수능에 들어가지 않으니 누가 열심히 공부하려하는가? 나이가 들수록 학생들이 밉다기보다는 사랑스럽기만 하다. 공부는 제 팔자지 선생인 내가 하라고 해서 아이들이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그것을 보통 수업 장악력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학생들도 눈치가 빤하여서 어려운 선생과 만만한 선생을 쉽게 구별을 한다. 나도 그만 학생들에게는 만만한 선생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은 정말 금방 어려운 선생님과 만만한 선생님을 판단해낸다. 또 나는 청력이 약해져서 이름을 물으면 대답을 해도 금방 알아듣지를 못하고 다시 번호를 물어 이름을 확인하고는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독일어 수업시간이 줄어들어 혜화여고에 근무하면서 태릉고에 금요일 토요일 출강을 하고. 또 남는 시간은 직업반 학생에게 독일어 수업을 하라고 배정을 하지만 실제는 학생 수준에 맞게 아주 필수 한자하고 상식 등 학생에게 맞는 수업과 1학년 학생들에게는 창의력 신장 수업까지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위암에 관한 약은 먹지 않는다. 생존율 100% 기한인 5년에 거의 4배 가까운 세월(19년)을 살고 있으니 약은 없다. 다만 건강을 위해서 철분약은 먹는다. 십이지장이 없어 철분 흡수량이 적어진다고 평생 먹으란다. 일주일에 6번만 먹는다.
첫댓글 어려운 수술을 하고도 잘 이겨내고 완치 판정을 받았으니 천만다행 입니다. 주변에 보면 무슨 암 환자가 어찌 그리도 많은지. 의술의 발달로 요즘은 초기에만 발견하면 거의가 완치되고 장수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네, 다행입니다. 워낙 위장 겉에 암이 존재하는 아주 초기라지만 아주 많이 잘라낸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건강에 대해 아주 크게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 제일 중요한 것은 나, 나의 건강뿐이라고. 사실 없는 사람에게는 돈이 중요하겠지만 그저 먹고 살기에 불편함이 없다면 건강이 더 우선이지요.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으로도 잡을 수 없는 시간,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다 따라 가게 되어있으니까요. 그 외의 여러가지, 사랑, 가족, 친구 등등 다 중요하겠지요. 격려의 이야기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온 현실
늘 자랑스럽기만 하다.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도, 열심히 산 나만은 안다.
늘 행복하시게...........
그래, 맞아! 진 형, 모두 열심히 살았지. 이제는 주변도 좀 살피면서 살아야할 것 같군.
아픈 친구 병문안 가서 따뜻한 이야기,
또 추억어린 이야기에, 듣고 싶은 격려의 말, 하고 싶은 칭찬의 말!
사는 것이 그저 그런 것 같은 오늘, 내일은 무슨 좋은 일 생기지 않을까?
미국에 사는 민문식이 11월에 온다는 소식을 전해주는군!
반갑게 맞을 준비를 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