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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글 스크랩 인왕산... 인왕천약수터길, 홍제동길 답사 (2006. 7. 30 일)
무릉 추천 0 조회 22 11.09.14 09: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인왕천약수터길, 홍제동길 답사... 인왕산

 

(인왕천약수터 길의 비위)


〔산행개요〕


- 산행일 : 2006. 7. 30(일) 흐림

- 산행자 : san001


- 산행요약

■ 코스 : 사직공원~인왕천약수터~능선~정상~기차바위~홍제동현대그린아파트~

            홍제역

■ 시간 : 산행시간 1시간40분, 총시간2시간10분

■ 구간별

사직공원~(14분)~황학정~(8분)~삼거리~(4분)~인왕천약수터들머리~(11분)~인왕천약수터~(9분)~주능선~(13분)~정상~(4분)~자하문갈림길~(6분)~기차바위~(4분)~갈림길~(13분)~홍제동갈림길(정자)~(7분)~현대그린아파트~(7분)~홍제역

 


〔산행기〕


아침 내내 눅눅하던 날씨가 조금은 개인 듯하다. 안개는 여전하지만 습도는 한결 낮아졌다. 광화문에서의 볼일을 끝내고도 아직도 이른 시간. 아침 일찍 광명의 구름산을 다녀왔어도 몸 상태는 좋다. 다만, 허기가 지는 것이 문제. 북한산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우선 가까운 인왕산에 올라 준비한 도시락을 먹기로 한다.


평상시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간단히 아침 또는 점심을 해결하다가 모처럼 도시락을 준비하였지만 구름산에서는 눈치만 보다가 기회를 잡지 못했다. 좋은 장소에는 등산객들이 있고, 큰마음 먹고 아무데서나 먹자고 생각하니 비가 오고,,, 간단한 음식은 몰라도 홀로 도시락을 꺼내어 먹는 게 아직도 조금은 쑥스럽고 적응이 되질 않으니 문제 아닌 문제이다.


인왕산 산행에 앞서 사직공원으로 들어간다. 사직공원은 인왕산의 들머리로 가는 출발점이 되는 장소이다. 사직공원 좌측 도로를 땨라 지겨운 포장도로를 걷는 것보다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산길을 따라 걸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사직공원이란 이름은 사직단에서 유래되었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 사직단 정문부터 보물(제177호)이다. 정문은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처음 세원진 것으로 보이는데 임진왜란 때 다른 건물과 함께 붙 타 없어지고 담만 남아 있다가 그 후 복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위치는 도시계획에 의해 원래 자리에서 14m 뒤로 옮겨진 것이다.

(사직단 정문)


사직단 정문

사직단이란 나라와 국민 생활의 편안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 지내는 곳으로 사(社)는 땅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말한다. 또한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때에 의식을 행하기도 하였다.


이 문은 사직단의 정문으로 태조 3년(1394) 사직단을 지을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 그 뒤 숙종 46년(1720) 큰 바람에 기운 것을 다시 세웠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임진왜란 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 지금 있는 자리는 1962년 서울시 도시 계획에 따라 14m 뒤쪽으로 옮긴 것이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는 새부리 모양의 부재를 이용해 기둥 위에서 보를 받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기법과 튼튼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어, 사직단 정문의 법식과 넉넉한 느낌을 주는 건축 문화재이다.


정문을 들어가면 사직단이 나타난다. 사직단을 돌아 단군성전을 거쳐 황학정으로 오른다. 황학정은 국궁장.  의외로 과녁이 멀다.

(사직단)

(사직단)

(당군성전)

(단군상)

(황학정)

(활과 과녁)


사직단

사직단은 조선시대에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을 모시고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곳이다. 조선 태조는 한양에 천도한 후 경복궁의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단을 배치하는 원칙에 따라 태조4년(1395년)에 사직단을 현재의 위치에 건립하였다.

현재 사면으로 둘러싸인 두 겹의 담장안에 사직단이 놓여있다. 낮은 담장의 동서남북 네곳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는데 이 문을 통과하면 담을 드나드는 문이 각각 나있다. 이 문안에 1m 높이로 쌓인 직사각형의 두 개의 단이 동서로 자리잡고 있다. 국토와 곡식은 국가와 국민생활의 근본이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국토의 신을 모시는 사(社壇)을 동쪽에, 곡식의 신을 모시는 직단(稷檀)을 서쪽에 설치하고, 국왕이 매년 정월, 2월, 8월 세차례 제사를 지냈으며, 가뭄이 들어도 기우제를 지냈다. 제사를 모실 때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신을 모셨다.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를 의미하므로 이를 줄여서 종사(宗社)라고 한다. 따라서 나라의 형편을 흔히 「사직이 편안하다」라든가 「사직이 위태롭다」라고 하며, 국가의 중요한 인물을 사직지신(社稷之臣)이라고 하였다. (사직공원 정문 앞 안내문)  


산길은 황학정 정자 우측으로 오른다. 택견수련장을 지나면 인왕스카이웨이 도로상의 삼거리.

(황학정 우측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택견수련장)

 

삼거리(→자하문 1.8km, ←독립문공원 1.4km, ↓사직공원 0.83km)에서 좌측으로 100m쯤 가면 성벽을 따라 오르는 들머리가 있다.

오늘은 인왕천약수터길을 답사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간다. 도로를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인왕천약수터 들머리로 가는 길)


약200m(4분) 걸어가면 들머리(←사직공원 1.06km, →자하문1.61km, ↑인왕천약수터 0.35km)가 나온다. 반가운 물소리, 일단 시원하게 얼굴을 씻는다. 아침부터 누적된 찝찝함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좁은 등산로는 대부분 바윗길이다. 인왕산 동쪽 사면이 가파른 절벽이어서 때론 산허리로 때론 바위 사이로 끊어질 듯 길이 이어진다.

인왕천 역시 바위틈에서 솟아나오는 석간수. 약수터의 온도계는 26도를 가리키고 있다.

(인왕천약수터 들머리)

(인왕천약수터 길)

(처음 만나는 약수터)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등산로상의 석굴)

(인왕천약수터)


철문을 지나 능선에 오른다. 범바위와 정상 사이 군초소가 있는 곳이다. 가슴이 뻥 뚫릴 듯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심호흡을 하며 허기진 배를 잠시 달래본다.   

(능선으로 올라가며 바라보는 우측 범바위)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

(능선상의 성벽)


정상까지는 급경사 바윗길이 이어진다. 정상에는 휴일을 맞이하여 등산객들이 많다. 시계는 아직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정상의 식탁에 앉아 배낭을 칸막이 삼아 늦은 아침을 먹는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정상)

(정상으로 오르며 되졸아본 능선)

(능선상의 성벽)

(인왕산 정상)

(정상에서 바라보는 안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악산)


하산은 아직 가보지 못한 홍제동 방향으로 정한다. 자하문 갈림길을 지나면 양쪽에 난간이 설치된 기차바위길. 기차바위 우측 절벽이 옛 설화가 전해지는 치마바위다. 그리고 이어지는 분위기 좋은 소나무숲길.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성벽길 벗어나니 산의 운치가 달라진다.

(자하문갈림길로 가는 길)

(자하문 갈림길로 가는 길)

(기차바위 정상 봉우리, 우측면에 치마바위가 있다)

(기차바위로 가며 되돌아본 전경, 우측이 정상, 좌측이 자하문 갈림길이다)

(인왕산과 안산)

(기차바위)

(기차바위에서 바라보는 세검정과 북악산)


치마바위 이야기

치마바위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선왕조 제 11대 임금인 중종과 그 정비 단경왕후 신씨.

비운의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는 익창부원군 신수근의 딸로 연산군의 비 신씨의 외질녀였다.

그녀는 1487년에 태어나 1499년, 12세의 나이로 11세의 진성대군과 가례를 올렸다. 그러나 1506년 중종 반정 이후 그녀의 고모부가 연산군이었단 이후로 폐위되었다.

반정 공신들은 신씨가 반정 때 죽었던 부원군 신수근의 복수를 할 것이라 염려하여 중종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궐 밖으로 내 쫓았으니 이 때 왕비의 나이 겨우 19세였다.

그녀는 처음 하성위 정현조의 집으로 쫓겨났다가 본가로 돌아갔는데 1515년 장경왕후 윤씨가 서거하자 신씨를 복위시키자는 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분위기로만 끝났을 뿐이었다.

비록 중신들의 압력에 못 이겨 신씨를 폐위하긴 하였으나 그녀에 대한 중종의 애정은 남달랐다. 그래서 중종은 신씨가 보고 싶으면 자주 높은 누각에 올라 그녀의 본가가 있는 쪽을 바라보곤 했다.

그 소식이 신씨의 본가에 전해지자 중종의 그리움을 달래주기 위하여 폐비가 궁중에 있을 때 즐겨 입던 분홍색 치마를 집의 뒷동산에 있는 바위 위에 펼쳐놓았다.

그리하면 왕은 그 치마를 보며 그리움을 애써 달래곤 하였다.

1544년, 중종이 승하하고 그녀는 1547년에 71세를 일기로 자식 하나 없는 한 많은 삶을 마친다. 그로부터 약 200년 뒤에야 영조조에 단경왕후로 복위되었다.

능호는 온릉이다.  (박영규의 조선왕조실록 참고)


소나무길 끝에는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지만 작은 순찰함이 있다. 여기가 갈림길(이정표 없음). 직진하면 부왕동사무소 방향, 좌측으로 가면 홍제동 또는 문화촌 방향이다.

(기차바위 지난 후의 소나무숲길)

(갈림길, 직진하면 부왕동암문길, 좌측이 홍제동길이다)


좌측길로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기차바위와 정상의 바위면 역시 대단한 절벽이다. 작아도 제왕의 기상이 느껴진다. 무학대사가 도성을 계획하며 주산으로 점지한 까닭을 이해할 것 같다. 물론 정도전의 의견대로 주산이 북악산으로 바뀌었지만...

(내려가면서 바라본 인왕산)

 

산골의 민가가 오른쪽으로 보이며 마지막 이정표(↑관음사 470m, ↓기차바위능선 600m, ←홍제동현대아파트 250m)가 나타난다. 좌측이 홍제동길. 7분 정도 내려오면 홍제동 현대그린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주택가 동네를 따라 계속 직진하여 7분 내려오면 서대문세무소 앞을 지나 지하철 3호선 홍제역 2번 출구에 도착한다. 

(홍제동 갈림길 가기 직전의 능선상의 수도)

(홍제동 갈림길의 정자, 좌측길이 홍제동 방향이다)

(하산길 전경)

(홍제동 현대그린아파트 나오는 곳)

(현대그린아파트 입구)


홍제역에서 갈등이 밀려온다. 큰 산은 아니어도 두개의 산을 조각조각 탔는데오 아직도 오후1시경. 북한산 산행을 하는 일행들을 쫓아갈까 망설여진다. 그런데 하산길이 문제. 사기막골로 내려오면 반대로 올라가기가 쉬운 길은 아니다.

일단 전철을 타고 구파발 행이 오면 쫓아가고, 대화행이 오면 집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어떤 전철이 과연 올 것인가. 

 


- 산행일정

10:54   사직공원 입구

11:04   당군성전

11:08   황학정, 등산로 입구

11:10   출발

11:12   택견수련장

11:13   인왕배드민턴클럽

11:16   삼거리 : →자하문 1.8km, ←독립문공원 1.4km, ↓사직공원 0.83km

11:20   인왕천약수터 들머리 : ←사직공원 1.06km, →자하문1.61km, ↑인왕천약수터 0.35km

11:25   초소(하얀색)

11:27   약수터

11:30   운동시설

11:31   인왕천 약수터

11:34   철문

11:40   주능선 : ↑구서울여상, ←사직공원 1.63km, ↓인왕천약수터

11:51   헬기장

11:53   정상

12:17   출발

12:21   자하문 갈림길

12:27   가차바위

12:31   갈림길(이정표 없음) : ↑부왕동사무소, ←홍제동, 문화촌

12:37   출발

12:46   이정표 : →문화촌아파트 800m, ↓기차바위능선 400m

12:50   갈림길, 정자 : ↑관음사 470m, ↓기차바위능선 600m, ←홍제동현대아파트 250m

12:57   홍제동 현대그린아파트

13:04   서대문세무소, 홍제역 2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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