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味적인 시장-106]-[거창 사과와 오일장(4,9)] -2023. 5. 5. 금. 경향신문 기사-
경남 거창은 사과의 고장이다. 거창을 둘러싼 높은 산이 있어 사과 재배에 딱 좋은 환경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덕유산과 수도산을 뒷산으로 두고 백두대간 남덕유산에서 가지 친 진양기맥을 따라 거망산과 황석산이 서쪽에 있다. 높은 산 주변은 일교차가 크기에 당도가 높고 단단한 사과가 난다. 사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과일이다.
생과 중심의 유통이 일반적이다. 가공품이라고 해봐야 사과를 건조한 말랭이나 칩 정도에 착즙한 주스를 용기 모양만 달리해서 유통할 뿐이다. 사과빵이라고 해봐야 수입 밀에 색소를 더해 사과 모양을 흉내낸 것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거창은 다른 사과 산지들과 다르다. 사과로 만든 많은 것들을 만들고 있다.
2023년 현재 시점에서 거창을 가는 방법은 고속도로에서 거창 나들목으로 나가는 방법과 3번국도 또는 24, 26번 국도, 그리고 거창에서 무주로 이어기는 37번 국도 외에는 달리 접근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해 철도 교통편은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무주와 거창의 경계는 빼재를 통해 백두대간을 넘어다녔지만 현재는 빼재 터널이 개통되어 재를 넘는 수고로움은 없어지고 빨라졌다. 무주에서 거창으로 치닫는 37번 국도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반기는 것은 약간의 붉은빛은 안으로 머금은 하얀색 사과꽃이다.
사과꽃은 그 꽃향기가 진할 거 같지만 코를 갖다 대야 겨우 향기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여리다. 50년 된 고목에서 나는 사과가 있는 농원이 터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 사과를 사러 간 건 아니다. [사이다]를 사러간 자리에 사과 판매 문구를 봤을 뿐이다. [사이다]는 우리가 아는, 찐 달걀과 환상의 궁합인 그 음료가 아니다. 사과를 발효해서 만든 술을 말한다. 일본에서 잘못 부르던 것을 우리가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사과 발효주 사이다는 맥주처럼 탄산이 강하다.
세 가지 맛이 있다. 달콤한 [스위트]는 알코올 함량이 3%, [스탠더드]는 4.5%, 그리고 단맛이 적은 6%의 [드라이]가 있다.
스탠더드를 숙소에서 차갑게 해서 마셔봤다. 맥주 홉의 쌉싸름함을 뺀 맛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듯싶다. 포도로 만든 샴페인과는 다른 풍미가 제법 매력적이다. 가볍게 한잔할 때 딱 좋은 술이다. 농원은 술 작업장 외에도 사과나무 주위에 잔디를 깔아 산책하기 좋게 만들었다. 식사와 차도 판매를 한다. 사과를 넣고 만든 피자라든지 카레가 있다. 몇 가지 안 되는 메뉴 중에서 사과를 넣고 만든 새콤달콤한 소스가 좋은 햄버그스테이크를 선택했다.
햄버그스테이크는 다른 곳의 달달한 소스와 달리 새콤한 사과 맛이 좋다. 햄버그스테이크를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 괜찮다. 느끼한 맛을 사과의 신맛이 딱 잡아준다. 식사에는 디저트가 포함되어 있다. 커피보다는 사과로 만든 소르베를 선택했다. 깔끔한 맛이 식사 후 딱 맞았다. 거창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풍경 또한 좋다. [해플스사이더하우스]
또 다른 사과 제품은 거창 나들목을 나오면 바로 우측에 로컬푸드 매장과 사과를 테마로 만든 빵집 겸 카페에서 볼 수 있다. 사과주스나 사과젤리, 빵 등을 판다. 여기서의 선택은 사과파이, 거창 사과로 만든 파이가 있다. 일전에 사과 산지에서 이런 제품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들 모양만 본뜬 식상한 빵만 만드는 현실에 아쉬움을 담아 사과파이를 이야기했었다. 거창은 사과를 제대로 가공해서 팔고 있다. 사과파이에 있는 조린 사과가 약간 흠이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예전에 먹어본 파이가 생각났다. 단단한 사과인 홍옥이나 황옥 품종으로 한 것으로 파이를 만들어도 신맛과 단맛에 식감이 좋았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거창의 사과와 딸기로 만든 팝시클과 로컬 재료를 사용한 젤라토 또한 괜찮다. 다른 것은 맛을 보지 못하고 사과와 딸기가 60% 들어간 팝시클은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맛이다. 거창에 간다면 필히 맛보면 좋다. 관과 민이 합쳐서 다양한 사과 가공품을 내는 곳은 거창이 유일한 곳으로 추정된다. [지애플]. 사과 구경을 얼추 했으니 장터 구경이다. 전날에 도착해 거창 시장을 둘러봤다. 상설시장에 점포가 여럿 열려 있어도 지나는 이가 드물다. 전형적인 시골 장터 모습이다. 거창 오일장은 (1, 6장)이다. 오일장은 상설시장과 사뭇 다른 모습일 것이다.
■ 거창에 도착하면 반겨주는 새하얀 사과꽃 ■ 발효주 [사이다]는 사과의 풍미 가득해 가볍게 마시기 좋아 ■ 다른 산지들과 다르게 민·관 힘 합쳐 ■ 파이·소르베·젤라토·팝시클 등 다양한 사과 가공품 제작 ■ 시장서 먹은 비빔짬뽕, 기름지지 않은 깔끔한 맛이 매력 ■ 돌미나리와 무친 도토리묵은 향도 맛도 일품
장이 서는 날, 예상대로 시장은 사람 냄새가 차고 넘쳤다. 상가와 길거리에는 사람도 상품도 많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장터에 들어섰다. 맨 처음 눈에 들어선 것은 바로 싱싱한 오가피순. 가격을 물어보니 1만원. 화순부터 청도까지 지역과 상관없이 나물은 대략 1만원에 가격이 형성돼 있었다. 시장은 봄과 여름이 교차하고 있었다. 시장 초입에서는 늦여름에 수확할 밤고구마순을 팔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햇마늘과 허여멀건한 햇양파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창은 시장 구성이 다른 곳과 달리 재미난 곳이다. 상설시장의 상가는 여느 시장과 다름없지만 선수와 비선수가 서로 다른 곳에 터를 잡고 있었다. 시장 주통로는 장사꾼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용돈 벌러 나온 할머니들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덜 지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할머니들 앞에 놓여 있는 품목들은 대개가 나물과 잡곡류들. 커다란 봇짐은 없고 대개 검은 봉지 몇 개나 상자 하나가 전부다. 그 할머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귀하디 귀한 옻순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이날도 이웃한 함양에서 온 할머니로부터 옻순을 구입할 수 있었다. 옻순은 그 맛이 여리고 긴 여운을 지닌 단맛이 아주 좋다. 두릅이나 엄나무, 오가피가 사포닌 때문에 쌉싸름한 맛이 나는 것과는 맛의 결이 다르다. 이곳 사람들이 [지부]라고 부르는 비비추는 된장에 무치면 고소한 맛을 낸다고 하면서 팔고 있었다. 오가피순에 철동잎(고추나무순)에 옻순과 미나리, 비비추 등 여러 가지 산나물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거창 시장통에는 묵밥을 팔면서 도토리묵과 메밀묵도 파는 몇 집이 있다. 돌미나리와 도토리묵을 사서 무치면 상당히 맛나는 음식이 완성된다. 향기 좋은 미나리에 쌉싸름한 도토리묵의 궁합은 성춘향과 이몽룡 이상이다. 요리 초보자라도 이런 재료로 한다면 선수 못지않게 만들 수 있을 듯싶다. 제철 식재료의 힘을 믿는 순간 초보 탈출이다.
거창 오일장은 다른 장터에는 흔히 있는 족발이 없었다. 시장에 족발과 피순대 파는 곳이 여럿이기에 그런 듯싶다. 거창에서 만나는 비빔짬뽕은 경북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볶음짬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양새다. 볶음짬뽕은 약간 기름지지만 비빔짬뽕은 깔끔하다. 건더기 양 늘리는 것에만 쓸모 있는, 삶으면 껍데기가 유독 커보이는 냉동 홍합이나 위고동, 훔볼트오징어가 들어 있지 않다. 오징어와 채소로만 볶는다. 국물은 아주 조금만 들어 있다. 맛을 보면 보통의 짬뽕과 다름없다. 채소와 오징어가 내는 깔끔한 맛이 매력이다. 금호반점 (055)943-1559 거창시장은 식사할 곳이 다른 곳보다 많았다. 순댓국밥을 먹을 수 있는 곳, 묵밥을 먹을 수 있는 골목과 군데군데 수제비와 멸치국수를 파는 식당이 꽤 있었다. 게다가 비빔짬뽕까지 선택할 수 있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위천이 월성계곡을 지나면서 수송대를 만나고 이 물길은 다시 합천호로 흘러들어 합천을 지나면서부터 황강이란 이름으로 흐르다가 합천창녕보 부근에서 낙동강 본류와 만난다. 물과 산이 좋은 곳, 게다가 다양한 사과 가공품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거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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