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추억
김동호 목사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갖지 아니한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여 잊지 아니함”을 기억이라 합니다. 기억은 두뇌 회전을 활발하게 하며, 머리를 명석하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나쁜 것, 실수한 것, 슬펐던 일, 실패했던 일들은 기분을 언짢게 하므로 일부러 잊으려 하며, 좋은 것, 유익한 것, 성공적인 것, 즐거웠던 일들은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합니다. 국가나 기업에서는 중요한 일들은 기록하여 보관하지만, 개인과 연결이 없는 옛일들을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일들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퇴계원교회 70주년 기념에 맞추어 옛일들을 유추하여 내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성찰과 뒤돌아보는 일이 앞으로의 삶의 질을 높여 줄 수 있기도 하니까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하지 않고 자라가면서 배우고 경험하면서 실생활을 통하여 성장하지 않습니까? 수십년 전 퇴계원교회 초창기의 삶은 올챙이적 생활이었기에 성숙하지 못한 면들이 있을 것이니 이해와 아량으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억은 감사의 삶을 살게 합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잊는다”면 지금의 나의 삶이 아니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열성과 힘뿐, 기획하고 예산을 세우고 의논하며 일을 벌리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즉흥적으로 박병수, 손기판, 우홍정, 우희승, 윤길우, 이순범, 장기복, 김영희, 박옥례, 백흥순 청년들과 마루바닥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이 불편하다고 하여, 하루 저녁에 여러 명의 청년들을 모아서 마루 바닥을 뜯어 강단을 올린 일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위한 일이라도 요즘 같으면 아연실색하여 징계 대상이였겠으나, 그때는 웃음으로 끝이 났습니다. 청년들에 대한 어르신들의 배려가 아니었으면 기절초풍할 엉뚱한 행동이 아니었습니까?
기억은 나를 하나님과 연결시켜 줍니다. 이를 우리들은 “관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하늘 나라와 내 자신을 매일 연결시켜주지 않습니까? 하늘 식구로 자신감을 갖게 하며, 매일의 삶에서 높은 꿈을 키워 주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생명강변에 살 식구로 긍지를 갖게도 합니다. 심복래 집사님 부부, 하두이 집사님, 손영진 집사님 부부, 김옥순 집사님은 실수가 많은 청년들을 넓은 가슴으로 보듬어 주셨기에 어설프고 어수선하기만 했던 젊은이들이 지금은 변모한 모습으로 자신들이 속한 각 교회에서 장로와 집사님으로 열심으로 봉사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추억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라니 지금도 이런 일이 생겨난다면 아마도 기절초풍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기억은 협력심을 키워줍니다. 아마도 청년들의 열성은 뒤에서 지원하셨던 박연관 형님의 도움이 컸다고 봅니다. 청년들의 하는 일을 직원회에서 지원을 받게 도와주셨습니다. 가난했던 시절이었으니 재정적인 면에서는 미약했으나 너털웃음으로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힘은 열심, 정열, 무대보적으로 일하려는 젊은이들을 성경 공부를 하도록 예언의 소리 통신학교에서 교과를 받아오고 배달하는 일을 하여 성경통신학교 졸업식을 하게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서로 모르는 형편이니 먼저 자전거포, 목공소를 찾아 배우고 가르치며 향상급 마크수여식을 위하여 서로 격려하며 함께 성장하면서 미약한 실력을 키웠습니다. 어른들과 안식일 오후에 여신도들께서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미를 가지고 열심으로 구도자들을 방문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장마가 극심하던 안식일 오후, 신하촌에서 옆으로는 물길이 거세게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풍우 대작할 때와”를 힘차게 부르던 찬미 소리는 지금까지 귓가에 메아리 치는 듯 합니다. 또 그 당시에는 가까이에 군 부대가 있어 안성수 군인의 도움이 컸습니다. 년말 음악회에서 노아 방주 연극, 삼육동 지구 연합합창제 참여는 안성수 군인(현재는 장로님)의 공이며, 찬양대 인원이 모자라니 봉두리 교회 여청년(김정숙, 신민식)들과 삼육대학 학생(신광휴)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기억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나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때로는 타인의 장점을 보는 일에 등한할 수도 있으며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적어질 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좋은 점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으면 항상 나의 생각이 옳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변형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 내가 수시로 변하는 것을 자신은 모를 수도 있는 혈기 왕성한 청년들의 활동에 정성과 기도로 후원해 주시던 김옥순, 박연관, 박노선, 손영진, 심복래, 하두이, 집사님의 도움은 큰 힘이 되어 하기성경학교를 끝내면 소소한 파티를 만들어 용기를 주셨기에 젊은이들은 많은 일들을 나누며 감사와 자기 발견의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간혹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기에 당장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희석될 수도 있으나,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억하시고 “갚아 주시마(계 22:12)”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기억은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담임목사님이 계시지 않고 화요일, 금요일 예배는 교인들 스스로 해결하는 시기였기에 기도주일 경우에는 낭독문을 나누어 읽으며 힘겹게 신앙생활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입으로 발설한 소중한 말씀들이 가슴에 배이고 잊혀지지 않아서 많이 배우지 못했으며 학술적인 배경이 빈약했으나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천천히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지구와 대회에서 실시하는 웅변대회, 성경퀴즈대회에서는 입상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작은 일에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큰 일에도 자신감”과 하늘의 섭리를 믿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비록 당시에는 힘이 들었으나 배운 것을 즉시 입으로 말하고, 가르치고 힘겹게 성장하는 길을 선택이 아닌 숙명적인 길을 견디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어린 마음은 비닐과 같아서 한 번 “자국이 나”면 본래의 모양이 아니고 변하지 않습니까? 집사, 장로로 택함을 받은 일은 없어도 보이지 않게 성숙되며 변화하는 모습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큰 일꾼들로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기억은 이미 지난 일이요, 지나간 일들입니다. 그러나 추억은 사라진 일들을 생각해 내는 일이기에 두뇌 회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이를 행하라(요 13:15)”고 권고하셨습니다. 퇴계원교회 70주년은 “자기 반성, 자기 정리, 자기 발전”의 기회라 생각합니다. 옛일들을 기억해내는 일은 비록 미미한 보잘 것 없는 일들일지라도 모두가 소중한 것들이며 하나님을 믿고 동행하는 길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비록 소수의 신도들이 거의 쓰러져 가는 건물에서 예배를 드렸었으나 가슴만은 열성과 진심 어린 눈물 섞인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은 잊지 아니하셨습니다.
1965년 2월 군 입대로 결혼, 졸업, 회기동 교회, 답십리교회, 미국 이민으로 퇴계원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눈 오는 날이면 일찍 빗자루를 들고 교회 오는 길을 쓸며 먼저 출석하던 일, 제대로 난방 시설이 안되어 덜 마른 장작으로 난로 불이 잘 달궈지지 않아 연기도 채 빠지지 않아 찔끔찔끔 눈물을 닦으며 예배를 드리던 예 추억들이 주마등 같이 지나갑니다. 함께 예배 드리던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곁을 이미 떠나기도 했으나, 지금은 흰머리의 주인공들로 건강을 유지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신들이 소속한 교회에서 맡은 바 직책에 책임감 있게 충실히 봉사하는 일들을 가끔 소식을 접할 수 있음은 하나님의 섭리요 축복이지 않겠는가! 언젠가 생명강변에서 그때 그 청년들 모두가 재회할 믿음으로 오늘도 지낼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퇴계원 건아들이여! 건강하고 굳세게 신앙 안에서 오늘도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행복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