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의 즐거움
단독주택에서의 삶의 즐거움을 안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 어릴 적 시골살이가 50이 넘은 현재까지 고스란히 내 마음에 스며든 탓에 단독주택은 여전히 내 보금자리의 원형이 되었다. 널찍한 마당에 싸리 울타리를 둘러 쳐서 한껏 포근함을 던져주던 그 옛날 초가의 정겨움 때문일까. 오래 전에 시골 생활을 접고 도회로 이주했어도 난 여전히 단독주택만을 선호하게 되었다. 단독보다 아파트의 장점이 많다고 해도 고공에 솟구쳐 있는 성냥갑 같은 그 모습을 보면 저절로 현기증이 일었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그게 아니었다. 단독주택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자꾸만 눈에 띄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른 문제보다는 특히 한겨울 난방이 문제였다. 집 안 전체를 따스하게 데우려면 기름값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얼음장 같은 날씨에만 조금 보일러를 틀어 냉기만 몰아내고 맨몸으로 지내는 일이 많았다. 어머니와 거실에서 대화를 할 때면 어머니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두터운 수건으로 얼굴을 친친 감고 눈만 빼꼼하게 내놓은 어머니의 입에서 술술 새어나오는 입김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런 생활도 한두 번이지 집수리를 한다고 해도 대책이 서지 않아 아파트로 이사 할 계획을 세웠다.
무엇보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따스하게 모시는 일은 이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적극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단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화단을 텃밭 삼아 작물을 심고 가꾸던 여유로운 손길을 잊을 수 없어서였고 고공의 아파트 위에서 사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얘야, 아파트에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느냐. 생각만 해도 어질 거려 못살겠다.”
심심하면 반복되는 이 말에 난 다시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어머니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던 나의 실수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실상은 어머니를 위한다면서 우리들만의 안락과 편안함을 앞세웠던 일이 후회가 되었다. 어머니 마음속에 아직도 농사꾼의 삶이 유전처럼 흘러 내려오고 있었던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마당 딸린 초가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왔던 일이 습관처럼 그렇게 어머니의 일상사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파트 대신 좀 더 나은 단독주택으로 이사할 계획을 바꾸었다.
그때 보금자리를 튼 것이 지금의 산성동 단독주택이다. 널찍한 마당과 화단이 딸려있는 단층 양옥에다 가족마다 방 하나를 차지하여 불편함은 덜었지만 구석구석 내부가 낡은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이전 집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아내는 집 전체를 쓸고 닦기 시작했다. 몇 달이 흘렀을까. 가을 찬바람이 슬슬 돌기 시작하자 시름시름 앓으시던 어머니는 갑자기 곡기를 끓고는 홀연히 이승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안 계신 집안이 그렇게 썰렁 수 없었다. 가족 한 명이 빠져나간 집은 동굴 속보다 더 큰 허전함으로 밀려왔다.
깡마르고 허리가 잔뜩 굽어 쓸모없는 존재처럼 보였지만 그동안 어머니의 체온이 집 전체에 속속들이 스며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2년 정도 살자 집이 점점 더 부실해지기 시작했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면 낡은 창문에서는 덜컹덜컹 소리가 나고 지붕이 낡아 방 천장마다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을 수리할 큰 결단을 내렸다. 이왕 살게 된 집, 한평생 살게 될 집, 큰 마음 먹고 집수리를 하게 되었다. 비용은 만만치 않았지만 집수리를 끝낸 후의 삶은 아파트처럼 안온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또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내부는 그런대로 맘에 들었지만 바깥이 눈에 그슬렸다. 낡은 전셋집이 턱 버티고 서있는 마당이 너무나 삭막해서 깔끔하게 수리한 집의 가치를 도리어 떨어뜨렸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꽃으로 바깥을 채우는 일이었다. 꽃들이 피어나면 집 전체가 환한 생동감으로 가득 들어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와 힘을 합쳐 화단을 정리한 것은 이른 초봄이었다. 화단은 텃밭처럼 채소와 작물을 심고 담장 아래로는 다양한 꽃씨를 뿌리고 여러 꽃나무를 사다 심었다. 훈훈한 바람이 마당을 쓸고 지나가자 화단이 꿈틀꿈틀 살아나기 시작했다. 흙이 들썩거리고 연한 새싹이 앙증맞게 고개를 내밀고 호박 넝쿨이 받침대를 휘감고 오르더니 본격적인 봄날이 다가오자 이쪽저쪽에서 팡팡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봄에서 늦여름까지 마당은 온전히 채소와 꽃들의 차지였다. 고추는 탱탱하게 여물고 가지는 물파스처럼 꼬부라지고 한없이 허공을 타고 오르던 호박은 지쳤는지 줄기마다 듬성듬성 머리통만한 호박을 매달아놓았다. 꽃들은 꽃들대로 더 고운 빛깔과 열매로 무더운 늦여름을 장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언제 그 많은 꽃씨들을 뿌리고 가꿨는지 꽃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숨어서 피는 꽃을 합치면 족히 50여 가지는 될 성 싶었다. 무리지어 피는 봉숭아며 분꽃이며 국화와 구절초, 황화 코스모스며 유단동자꽃이나 백일홍, 심지어 장인어른이 가꾸라고 주신 천사의 나팔꽃까지 합치면 집은 온통 꽃 천지나 다름없었다. 꽃들이 많이 피어나니 마음속까지 환한 꽃물로 차올랐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맞아주는 꽃들, 색깔대로 모양대로 술렁이며 주인에게 방긋 웃음을 던져 주는 꽃들이 피로와 스트레스로 가득 찬 마음을 일시에 날려주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단독주택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적잖은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기와집에서 양옥으로의 이동이었지만 마당이 딸린 화단에 꽃을 심고 가꾸는 일이 느리게 사는 삶의 원초적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소리와 꽃의 향기에 섞여 싱싱한 활기로 가득 차오르는 집, 아파트보다는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생활조차 불편하겠지만 집안을 가득 채우는 정겨움과 포근함을 어찌 삭막한 아파트에 비기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