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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회]
당소홍의 눈에 흥미롭다는 빛이 떠올랐다.
그는 당문이란 거대한 가문의 일원이다. 그것도 일반 문인이 아니라 당문의 문주인 당만천의 셋째 아들이었다.
일광(一狂), 이선(二仙), 삼존(三尊), 사제(四帝)로 분류되는 대륙십강(大陸十剛) 중, 당만천은 사제의 일원인 천수암제(天手暗帝)였다.
대륙 십대 강자중의 한명을 아버지로 둔, 당소홍의 일상은 오로지 당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무공을 익히고 암기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뿐이었다.
당소홍 자신은 이미 당가를 빛낼 기재로 강호에 소문이 났지만 그것뿐이었다. 정작 그 자신은 무료했다.
가법에 얽매여 전혀 강호를 출입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혼인을 빌미로 천하를 구경할 기회를 얻었다.
“난주에 와서 심심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겠군. 제법 살기를 내뿜는 것을 보니까 심심하지는 않겠어.”
신황의 몸에서 나오는 서릿발 같은 기세를 대하고도 그는 웃었다. 이 정도에 겁을 먹어서는 당가의 직계라는 말을 쓸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조금이라도 겁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사제의 일원인 그의 아버지뿐이었다.
다른 사람을 보고 겁을 먹는다는 것은 가문의 명예에 스스로 먹칠을 하는 것이었다.
“꽤 기품이 있는 자네요.”
당수련의 생각은 약간 다른 듯 했다.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당문에서만 생활했던 그녀에게 신황 같이 냉철하면서도 거친 기운을 품기는 자는 처음이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네가 원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줄 수도 있다.”
당소홍이 당수련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당수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잠깐 동안 하인으로 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당수련은 예쁘게 웃으며 입을 가렸다. 매우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당소홍이 웃으며 말했다.
“알았지?”
“예!”
그의 뒤에 서있던 당문십영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들은 모두 당가의 방계(傍系)의 자제들로 자질이 출중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그들의 암기솜씨는 일절이었다.
그들 일곱 명이 나서자 공간이 꽉 차 보였다. 그만큼 그들의 존재감은 컸다.
그러나 신황은 개의치 않고 한발 앞으로 걸었다.
‘흐흐흑! 어어허헝! 엄~마!’
그의 귀에 무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팽하연의 죽음을 인지한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안 들리지만 신황의 귀에는 무이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질겅!
그의 입술이 질근 일그러졌다.
당문십영의 우두머리인 당지홍이 신황을 보며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홍 형님의 말씀이 있고 하니 특별히 목숨은................”
쉬이익!
순간 신황의 신형이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당지홍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너무나 빨리 신황이 사라져 아직 그의 잔상이 그 자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살려주지.”
“그럴 필요 없어.”
“응?”
당지홍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소리가 바로 그의 뒤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문십영 전체가 놀라서 그들의 뒤를 돌아봤다.
쉬이익!
순간 은색의 섬광이 그들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사아악!
무언가 섬뜩하게 베어져 나가는 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미세한 바람이 그들의 코끝을 간질였다.
“잘 새겨둬. 하나야. 오직 단 하나!”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신황, 그가 어느새 현월보를 이용해 그들의 뒤를 점유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오른팔에서는 검붉은 선혈이 소매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똑똑!
선혈이 한두 방울씩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조용한 적막. 그 적막을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사람들의 심령을 이상하게 울렸다.
“너..............?”
당지홍이 무언가 말을 하려했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어라 말 하려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죽은 놈한테 말은 필요 없지.”
신황이 고개를 돌렸다.
쿠-웅!
당지홍이 무너져 내렸다.
쉬이익!
그들이 놀라 움직이기도 전에 신황이 움직였다. 그의 팔에는 어느새 월영인이 맺혀있었다.
“젠장!”
당지홍의 동생인 당사홍이 소름끼치게 놀라며 급히 잡히는 데로 단혼사(斷魂沙)를 뿌렸다.
단혼사는 말 그대로 혼을 끊어내는 모래였다. 그것도 아주 미세한 모래였다. 단혼사는 인간의 모공을 통해 파고들어가 심맥을 갈가리 찢어발긴다.
때문에 이것에 당한 자는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당문 자체에서 철저하게 금지된 금용암기지만 당소홍을 어여쁘게 여긴 당노대부인이 특별히 허가한 암기였다.
그러나 그가 채 팔을 뿌리기도 전에 그의 팔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이미 그의 팔은 바닥에 떨어져 퍼득이고 있었다.
“크아아!”
고통에 찬 그의 비명이 난주이가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폐속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그 처절한 소리에 난주이가 근처의 사람들이 모두 겁에 떨었다.
콰지직!
순간 신황의 팔꿈치가 당사홍의 입 부위를 모조리 뭉개버렸다.
“크어어~!”
서서히 무너지는 당사홍, 그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잘 기억해둬! 오직 단 하나만이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신황이 다시 한 번 곱씹듯 말했다. 그의 몸에서는 마치 어둠처럼 암울한 기운이 거미줄처럼 주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
“크...............음!”
장내가 순식간에 질식할 것만 같은 정적 속에 빠져버렸다.
누구도 이 정적을 깰 수 없었다. 만약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나라도 냈다가는 신황이 자신을 쳐다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아남은 당문 십영들과 당소홍 남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언제 이런 광경을 봤을까? 항상 당문이라는 거대한 틀에서 생활하던 그들이다. 비록 수련이 고되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누리는 그들이었다.
일단 당문의 사람이라고 하면 강호 어디에서도 대접을 받았다.
무인들이 제일 꺼려하는 것이 바로 암기와 독이었고, 당문은 바로 그 두 가지의 조종이었으니까.
때문에 은연중 떠받음만 받았지 한 번도 이런 광경을 눈앞에서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앞에서,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형제들이 순식간에 두 명이 피거품을 뿜어 올리며 쓰러졌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쓰러졌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명이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있다.
그 말이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왔다. 이제야 신황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그들은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진짜 신황은 단 한명만을 남겨두고 그들을 모조리 죽이려는 것이다. 이제야 그것이 허풍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미.......친놈!”
“감히 당문의 사람을 건들고 무사할 줄 알았느냐?”
당문십영이 두려움을 떨쳐내려는지 급히 암기를 펼쳐내며 외쳤다.
신황은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며 그들의 암기를 피했다. 그러자 다시 나머지 인원이 독질려와 혈적자, 단혼사 등을 뿌려댔다.
휘이익!
다섯 명이 암기를 뿌려대자 그야말로 모든 공간에 빈틈 하나 없이 암기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그 어느 곳에도 신황이 피할 공간은 없어 보이는 듯 했다.
그마저도 못미더운지 당문십영의 뒤편에서는 당소홍과 당수란이 당문의 절기중 하나인 구환살(九幻殺)을 펼칠 준비를 하였다.
혹시라도 만일을 대비하는 것이다.
“당문이..............”
신황의 신형이 뒤로 활짝 젖혀졌다. 동시에 그의 팔에 맺힌 월영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월영인이 유형화를 이룬 것이다.
쉬이익!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
그의 팔에서 매서운 소리를 내며 월영인이 당문 십영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액!
월영인은 신황을 향해 날아오던 암기들을 튕겨내며 당문 십영에게 날아왔다.
그 기세와 속도가 어찌나 매섭던지 당문 십영은 미처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팔에 구절만옥수(九絶萬玉手)를 끌어올려 월영인을 쳐갔다.
구절만옥수는 모두 세 가지 독물을 섞어 만든 특별한 용액에 손을 담근 후 독문심법을 운용해 단련을 시킨 후
다시 천일 후에 또 다른 세 가지 극독을 섞어 만든 용액을 흡수해 익히는 독공이었다.
이것을 완성하게 되면 수련자의 손은 본래의 독성 여섯 가지와 그것들이 조합해 만들어내는 새로운 독성 아홉 가지를 더해 모두 열다섯 가지의 독성을 가진 손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만약 구절만옥수에 당하게 된다면 상대는 열다섯 가지나 되는 독 중 어느 것에 중독된 줄을 모르기 때문에 해독을 할 수 없어 처절한 고통 속에 죽게 된다.
더구나 완성된 구절만옥수는 강철에 버금가는 강도를 이루게 된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구절만옥수를 믿고 신황의 월영인을 맨손으로 해소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은 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서거걱!
“크윽!”
“허흐흑!”
“큭!”
당문십영의 입에서 짓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촤하학!
그들의 손가락이 잘라져 나가며 피가 치솟았다. 그들의 피는 녹색의 빛을 띄고 있어 그들의 피가 극독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망할 새끼야! 멈추지 못해!”
당소홍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품에서 아홉 줄기의 빛이 터져 나왔다.
그의 눈에는 당문 십영을 향해 무심한 표정으로 달려드는 신황의 무심한 얼굴이 크게 확대 되 보이고 있었다.
쉬쉬쉬쉭!
신황의 팔다리가 마치 칼날처럼 바람을 가르며 당문 십영의 가슴을 난자했다. 어떻게 반응하고 움직일 틈도 없었다. 말 그대로 신황의 움직임은 바람과도 같았던 것이다.
그 순간 당소홍의 손에서 떠난 구환살은 신황의 몸 주위 석자까지 쇄도하고 있었다. 피할 공간도 피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엄폐물은 있었다.
신황은 자신의 앞에 무너져 가는 당문 십영 중 한명의 시체를 자신의 앞에 세웠다.
퍼버버벅!
예전엔 당문 십영 중 한명이었던 시체의 뒤통수와 등짝에 구환살의 기운을 실은 아홉 개의 쇠구슬이 처박혔다.
시체의 입에서 혀가 빠져나오며 눈이 돌아갔다. 그러나 신황은 시체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당소홍을 향해 던졌다.
“히익!”
당소홍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시체를 보자 기겁을 하며 옆으로 피했다.
그 과정에서 피 몇 방울이 그의 얼굴에 튀었다.
그러자 어이없는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앗! 드러워.”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말, 그는 지금 이순간 자신이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유난히 깔끔을 떠는 그의 성격 탓이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결벽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지금 발동된 것이다.
“오빠!”
옆에서 당수련이 그 모습에 놀라며 구환살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신황은 그녀를 무시하며 당소홍의 몸에 어깨를 들이받았다.
어찌나 그 충격이 강하던지 당소홍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신황은 당소홍의 몸에 올라타며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 독질려를 들어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날렸다.
퍼버벅!
“히익!”
“큭!”
이정무와 이정후가 고통에 겨운 소리를 냈다. 그들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몰래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이미 신황은 그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빠짐없이 감지하고 있었다. 그가 던진 독질려는 그들의 무릎부위에 박혀 있었다.
“너희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하나에 속하지 않는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말이었다. 그는 그렇게 아무 감정 없는 말투로 말했다.
“히........히엑!”
“흐으으~!”
자신을 보지 않음에도 이정무 부자는 그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마치 심혼 깊숙한 곳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저 무심한 눈, 오히려 분노의 감정이라도 담겨 있다면 차라리 덜 무서울 텐데, 저자는 마치 자신들을 무슨 물건을 보듯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더욱 무서웠다. 너무나 무서워서 그들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오줌을 지린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정무 부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신황은 자신의 발밑에 깔려있는 당소홍을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당수련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구환살을 펼치고 싶어도 신황이 자신의 오빠의 몸을 들어 막을까 겁이 났다. 자신의 손으로 오빠를 죽일까 겁이 나는 것이다.
“무인이 피를 더럽다고 느낀 순간 이미 무인이 아니다.”
촤아앙!
신황의 오른손에 다시 월영인 맺혔다.
“사......살려줘!”
그의 발밑에 깔린 당소홍이 바둥거렸다. 그의 눈에는 눈물 콧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항상 멀찍이 떨어져 암기만 날리던 그는 한 번도 자신의 몸에 적의 손을 허용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배위에 남의 발이 얹혀 지자 그간 배웠던 무공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무언가를 펼치고 싶은데 마치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서린 듯 그렇게 무공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어 나왔다.
“나......날 건들면 당문에서 평생 쫓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밥도, 물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평생 쫓겨야 되오. 그러니 날..........”
“살려달라고?”
“그렇소! 그렇다면 오늘의 일은 불문에 붙이겠소. 그러니.”
“싫어!”
푸우욱!
신황은 더 이상 당소홍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가차 없이 그의 가슴에 월영인을 박았다. 신황은 협상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은 것이다.
몇 차례 당소홍이 몸을 부르르 떨다 서서히 멈춰갔다. 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짙게 떠올라 있었다.
“다.....당신?”
당수련의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그녀의 고운 얼굴은 온통 그녀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 있었다.
그녀의 다리는 지금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악에 받친듯 소리쳤다.
“다.....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당신이 죽인 사람이 누군지 알아? 사제(四帝)중 한명인 천수암제의 아들이야.
나의 오빠라구. 당문에서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이제부터 당신은 당문과 적이라구.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턱!
신황의 손이 당수련의 옆에 있는 벽을 짚었다. 그가 당수련의 귀에 대고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였다.
“상관없어!”
“너, 평생 당문과 적이 되어도 좋단 말이냐?”
당수련의 목소리 파르르 떨려나왔다. 그러나 신황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먼저 건드린 것은 너희들이야. 천수암제가 와도 좋고 당문 전체가 와도 좋아. 하지만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거야.”
“천년 당문이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어린애처럼 징징 대지 말아. 너의 이름 앞에 꼭 당문이란 것을 앞세워야 하나?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당문이란 이름만 믿고 날뛰지 말란 말이야.”
쾅-!
“컥!”
신황이 더 이상 듣기 짜증난다는 듯이 당수련의 고개를 벽에 처박았다.
그러자 그녀의 고운 얼굴이 깨지며 금세 피로 물들었다.신황은 몸을 돌렸다.
“살아남는 하나는 너다. 나의 마음이 변하기전에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좋을 거야.”
신황이 당수련을 살려주는 것은 그녀가 예뻐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대륙 전체에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 적임자로 당수련이 뽑힌 것뿐이다.
이제 자신의 악명은 당수련의 입을 통해 대륙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비록 대륙에는 살귀(殺鬼)로 소문나겠지만 그만큼 그의 명성은 커질 것이다.
어설픈 모습을 보였다가는 대륙의 모든 무인들이 달려들 것이다.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 치의 자비도 없는 손속이 소문나야 대륙을 횡단하기가 편했다. 그것이 신황이 노리는 바였다.
“당신.......의 이름은?”
당수련이 원독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당소홍의 시체를 걸머지고 원독에 찬 시선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잠시 멈칫했던 신황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명....왕(冥王).”
그 말을 끝으로 신황은 이정무 부자를 향해 걸어갔다.
“이제부터 당문과 명왕은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당수련은 선언하듯 말을 뱉고는 몸을 돌려 집밖으로 빠져 나갔다.
신황은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정무를 향해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기대하지! 우리가 다시 마주치는 날, 그날이 바로 당가 최후의 날이 될 거야.”
이정무 부자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신황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공포란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제......발 살려주시오. 재산이라면 어.......얼마든지 드릴 테니.”
“살려주세요.”
그들이 떨리는 두 손으로 신황에게 빌었다. 그러나 신황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정무 부자의 얼굴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으아아아아~!
그날 처절한 절규가 난주를 울려 퍼졌다. 그 처절한 소리에 난주의 주민들은 잠을 자지 못하고 공포에 떨었다.
그리고 난주제일의 권력을 자랑하던 난주이가가 화마(火魔)에 휩싸여 한줌의 재로 사라졌다.
“으아아앙!”
불꽃 사이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사라졌다.
“엄........마! 엄........마!”
몇 번인지 모른다. 무이는 계속해 팽하연을 찾다 졸도를 하고, 다시 깨어나서 또다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었다.
때문에 이미 무이의 목은 온통 쉬어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신황은 무이가 쓰러질 때마다 자신의 내력을 공급해 주었다. 다친 속을 달래주고 막힌 기혈을 풀어주며 무이의 몸이 상하지 않도록 돌봐주었다.
“이 어린것을 불쌍해서 어떻게 볼까! 불쌍해서 어이할까! 우리 무이.”
신황은 울다 지쳐 두 눈이 퉁퉁 분채 잠들어 있는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중얼 거렸다. 그의 눈에는 무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한 달 사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잃었다. 그것도 자연사 한 것이 아니라 모두 남들한테 죽임을 당하였다. 이만큼 기구한 삶이 또 어디 있을까!
무이의 얼굴을 보자 백우인과 팽하연의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그들이 자신을 보며 무이를 부탁하는 것 같았다.
신황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내 무이 만큼은 반드시 지켜주마. 반드시 팽가로 데려다 줄 것이다. 걱정하지 말거라.”
그는 자신의 주먹을 꽉 움켜주며 맹세를 했다.
무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구음절맥에 의해서 몸이 많이 상해있던 차에 아버지의 죽음을 비보로 듣고 어머니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때문에 이미 무이의 몸과 정신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이제 일곱 살에 불과한 아이가 견딜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엄마.......엄..마!”
꿈속에서 조차 엄마를 찾는 무이, 이미 무이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입술은 검은색으로 변색이 진행되고 있었다. 구음절맥의 발작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신황은 서둘러 무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천산의 만년설처럼 차가운 기운이 무이의 몸에서 느껴졌다.
“급하구나!”
이대로 놔뒀다가는 십중팔구 무이가 죽고 말 터였다.
원래는 무이의 몸을 최상의 상태로 이끌어준 후 치료를 하려고 하였으나 무이에게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 없었다. 때문에 신황은 모험을 하기로 작정했다.
신황은 무이를 등에 업고, 이제까지 그가 구한 약재들을 잘 챙겨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백우인과 팽하연의 유골이 들어있는 항아리까지 모두 챙긴 채 백우인의 집을 나섰다.
그는 대문을 나선 후 집 곳곳에 불을 놓았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곳이다.
흉물로 남겨두어 사람들의 입에 두고두고 오르내리느니 차라리 흔적을 없애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타닥 타닥!
무이가 살던 집은 금방 시뻘건 불길에 휩싸였다. 시뻘건 불길은 탐욕스럽게도 모든 것을 태우며 하늘로 넘실거렸다.
잠시 그 모습을 쓸쓸한 눈으로 보던 신황은 이내 몸을 날려 예전에 무이와 약초를 캐러 갔던 산으로 경공을 펼쳤다.
신황이 찾은 곳은 그가 약초를 찾으면서 눈여겨 봐두었던 조그만 동굴이었다.
그곳은 우거진 넝쿨 뒤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는데 만일 신황이 약초를 찾느라 넝쿨뒤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곳이었다.
신황은 그곳으로 무이를 데려가 뉘었다. 그리고 근처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와 불을 피웠다.
신황은 무이를 치료하기에 앞서 설아를 불렀다.
캬우웅!
설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신황의 말을 기다렸다. 신황은 설아에게 급히 말을 했다.
“설아야, 지금부터 무이의 몸을 치료해야 한다.
그런데 무이가 매우 위급해 치료를 하는 도중에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으면 목숨이 위험하단다. 그러니까 네가 입구에서 짐승이나 사람의 출입을 막아다오.”
크르릉!
신황의 말에 설아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르렁 거렸다.
동시에 설아는 동굴의 입구를 지키고 앉았다.
비록 주먹크기만하지만 설아라면 이곳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신황은 그렇게 생각하며 무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엄마........추워, 추워요.”
무이는 추운지 온몸을 벌벌 떨며 엄마를 찾았다. 신황은 급히 무이를 모닥불 옆으로 옮기고 품속에서 구지영초와 다른 약초들을 꺼냈다.
“일단 구지영초의 독성부터 제거해야 한다.”
구지영초에는 미약하긴 하지만 독성이 있다. 그것은 이른바 열독(熱毒)이라 부르는 것으로 흔히 약성이 강한 영약에서 많이 나타났다.
너무나 강한 양기를 품고 있다 보니 그 탁한 기운들이 뭉쳐 구지영초의 머리 부분에 몰리는 것이다.
때문에 무이의 몸에 구지영초를 넣어주기에 앞서 이 독성부터 제거해야 했다.
신황은 양손바닥 사이에 구지영초를 넣고 공력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 공력이 몰리며 눈부신 빛이 뭉쳤다.
그의 공력은 이른바 음한 계열에 속한다. 세상에서 제일 음기가 강한 천산에서 익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기가 쌓인 것이다.
때문에 그의 공력은 구지영초의 열독을 자연스럽게 소멸시킬 수 있었다.
“후~우!”
열독의 제거가 끝나자 신황은 한숨을 몰아쉬며 급히 구지영초를 옆에 잘 놓아두고 천산에서 가져온 이끼를 잘 짓이겨서 무이의 입안에 넣고 혈도를 건드려 삼키게 만들었다.
천산의 월영봉에서 그가 가져온 이끼는 몸의 탁한 기운을 제거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신황은 이끼를 무이에게 복용시키고 그 상태를 살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무이의 몸에 하얀 이슬 같은 것이 맺히기 시작했다.
구음절맥에 음기를 지닌 이끼가 더해지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신황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구지영초를 복용시켰다.
꾸르륵!
구지영초가 뱃속에 들어가면서 묘한 소리가 울려나왔다.
신황은 그이후로도 몇 가지 약초를 더 무이에게 복용시켰다. 그리고는 무이의 등에 손을 대고 자신의 공력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웅 웅 웅!
그의 웅혼한 공력이 무이의 몸속에서 날뛰기 시작한 구지영초의 약력을 기경팔맥(奇經八脈)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지금 음기로 가득 찬 무이의 몸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구지영초의 약력을 잘 이끌지 못한다면 연약한 무이의 몸은 내부가 모조리 부스러져 죽을 것이다.
때문에 신황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신중하게 공력을 운용했다. 그는 자신의 내공으로 구지영초의 양기를 부드럽게 감싸서 무이의 굳어진 혈맥으로 유도를 했다.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무이는 죽고 만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신황의 일생에 있어 가장 힘겨운 순간을 뽑으라면 바로 지금이었다. 천산파의 무인들과 싸울 때도, 난주이가에서 당문의 사람들과 싸울 때도 이렇게 가슴이 떨리지는 않았다.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어렵고, 더구나 그 대상이 무이라서 더욱 힘들었다.
투둑, 투두둑!
무이의 몸 곳곳에서 무언가 미세하게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까지 구음절맥의 음기로 인해 굳어 있던 혈맥이 타동 되는 소리였다.
너무 세게 양기를 움직여도 안 되고 약하게 움직여도 안 된다. 무이의 몸 상태에 맞춰 그때그때 적당한 힘으로 유도해야 했다.
그것은 매우 지루하면서도 지루한 작업이었다. 만약 신황의 내공이 음한계열이 아니었다면 구지영초의 양기를 제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음기가 적절히 양기를 배분해 주면서 무이의 몸에는 차츰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뚜둑! 뚜두둑!
온몸의 혈맥이 타동 되고 근골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어긋나는 무이의 팔과 다리, 그리고 가슴과 척추, 그것들은 이리저리 떨어졌다 다시 붙으며 무이의 육체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에 더해 신황의 전신에서는 비 오듯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무이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하를 지켜보면서 그때그때 맞춰 알맞게 양기를 유도했다.
신황은 밤새도록 무이의 명문혈을 통해 몸의 기운을 제어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하루가 지난 다음이었다.
이제 무이의 구음절맥은 모두 나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이의 육체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재구성 되었다.
무이의 발전을 장애물처럼 막고 있던 천형인 구음절맥이 치료됨으로 해서 무이의 오성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것이고, 육체 또한 무공을 익히기에 최적의 상태로 변한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무이가 무공을 익힌다면 누구보다 빨리 익힐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황은 그런 사실보다도 무이가 별 탈 없이 무사히 낳을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했다.
캬우웅!
그가 나오자 설아가 반갑다는 듯이 울었다. 그것은 마치 무이의 상태가 어떠냐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신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되었다. 앞으로 반나절 정도는 자야 되니까 깨우지는 마.”
크르릉!
설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지간히도 무이의 상세가 걱정되었던 모양이었다.
“휴~우!”
극심한 공력의 소모로 인해서 허탈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그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커다란 덩치에 갈색의 가죽을 가진 동물의 시체가 바로 동굴입구에 쓰러져 있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겨울잠을 끝낸 곰 같았다. 곰의 목 부위는 날카롭게 떨어져 나가있었다.
신황은 그 상처를 보고서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이곳이 곰이 겨울잠을 잤던 동굴이었나 보군. 그런데 자신의 거처에 침입자가 있으니 당연히 돌아온 것이고, 설아가 그것을 막은 모양이구나.’
설아는 작지만 곰 한마리 정도는 충분히 해치울 수 있었다. 설아를 괜히 영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신황은 잠시 앉아 있다 일어나서 곰의 시체를 끌고 근처의 숲으로 들어갔다.
“으응, 으으음!”
무이가 몸을 한참동안이나 뒤척이다 마침내 힘들게 눈을 떴다. 무이는 한동안 초점없는 눈으로 천정을 응시하다 이곳이 낮선 곳임을 깨닫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나 가볍게 일어나는 무이, 몸에 활력이 넘치고 골격에 변화가 있었으나 무이는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캬우웅!
발밑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에 무이의 눈에 반가움이 떠올랐다.
“설아야.”
캬우웅!
무이의 말에 설아가 사뿐히 뛰어올라 무이의 품에 안겼다.
“설아야! 네가 옆에 있어주었구나.”
크으응!
뺨을 설아의 얼굴에 비비며 무이가 말했다. 무이의 눈에는 슬픈 표정이 가득했다.
“다행이구나. 무사히 깨어나서.”
“백부님!”
무이는 신황의 말이 들리고서야 그의 존재를 깨달았다. 무이의 앞에는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곳에서 신황이 곰의 고기를 꼬챙이에 꽂아서 굽고 있었다.
“백부님!”
와락!
무이는 설아를 안은 채 신황의 품에 안겼다. 무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많이 아팠어요. 그리고 꿈을 꾸었어요. 엄마를 만났어요. 근데, 근데 엄마가 웃고 있었어요. 무이는 너무 아픈데 엄마는 웃고 있었어요.
왜 그러냐고? 엄마도 아프지 않냐고 하니까 엄마가 그랬어요. 엄마는 이곳에서 무이를 지켜볼 거니까 하나도 마음이 아프지 않데요. 난 아픈데............”
“그랬느냐?”
신황이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자 무이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마가 그랬어요. 우리는 떨어져 있어도 항상 같이 있는 거래요.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래요. 난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그래도 엄마 말을 들....을 거예요. 그리고 백부님 말도 잘들을 거예요.”
신황은 말없이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슴이 축축해져 왔다. 무이가 신황의 가슴에 눈물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런 무이 앞에서 신황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럴 때는 말 재주가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캬우웅!
설아만이 나직하게 울며 무이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혀로 핥아 주었다.
다음날, 곰의 고기로 배를 채운 신황과 무이는 산정상으로 올랐다. 그곳은 난주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이곳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신황은 무이와 함께 자신들의 발밑에 펼쳐진 세상을 보며 항아리에 담겨있는 유골을 조금씩 바람에 흘려보냈다.
“이제 엄마와 아빠를 편하게 하자꾸나.”
“이렇게 하면 엄마와 아빠가 쉴 수 있을까요?”
“글쎄! 하지만 이렇게 하면 어디든지 무이를 따라다니며 지켜 주겠지.”
“정말요?”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럴 것 같구나.”
무이는 신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고사리 만한 두 손으로 유골을 바람에 날려 보냈다.
“엄마, 아빠. 나 백부님 말 잘 들을 거야. 그러니까 엄마, 아빠도 무이 보고 울지 마.”
신황은 같이 유골을 날려 보내며 말없이 굳은 다짐을 했다. 그가 무엇을 다짐했는지는 오직 그 혼자만이 아는 일이었다.
바람에 유골을 모두 날려버린 후 무이가 신황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이제 전 어떻게 해요?”
“난 너의 어머니한테서 너를 외가에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단다.”
“외가집요? 엄마는 한 번도 그런 말 한적 없는데요.”
무이의 말에 신황은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까지 말 할 기회가 없어서 이야기를 못한 모양이더구나. 너의 어머니가 말씀하기를 북경에 무이의 외가 집이 있다는 구나.
그곳에는 무이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이모들까지 모두 있다고 했다.”
“정말요?”
무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 모습에 신황이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물론이지. 너의 어머니가 말씀하셨으니 확실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분들이 절 맞아 줄까요?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무이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신황은 그런 무이의 몸을 번쩍 안아 올려 자신의 어깨에 태우며 말했다.
“그들은 반갑게 맞아줄 거다. 그것은 내가 보장할 수 있단다.”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그들은 무이를 정말 반갑게 맞아줄 거야.”
신황의 눈에는 어떤 결의 같은 것이 떠올랐다.
만약 팽가가 무이를 거부한다면?
뚜두둑!
신황의 주먹에서 뼈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의 의미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 것이다.
강호에 한 가지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의 진원지는 신강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다.
사실로 믿기에는 소문이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이다.
천산파가 혈겁을 당했다. 상대는 오직 단 한명 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가만히 있는 천산파에 일부러 쳐들어와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조용히 지내고 있던 천산파에 시비를 걸고 이미 노쇠 해 강호에서 은퇴한 천산노조를 죽이고 봉문을 시켰다.
사람들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한 개인이 천산파라는 거대한 문파를 봉문 시켰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주에서 또다시 혈사(血事)가 일어났고, 난주이가의 무인들과 당문의 젊은 영재들이 또 다시 그의 손에 도륙 당하고
오직 강호사화(江湖四華)중의 한명인 당수련만이 간신히 살아남아 당문으로 돌아갔다는 소문이 나자 사람들은 점차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수련의 입을 통해서 혈겁의 주인공의 별호가 명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도(魔道)에서는 혈겁의 주인을 일컬어 명왕이라는 별호 그대로 불렀고, 정파에서는 그를 월영검마(月影劍魔)라 불렀다.
왕(王)이라는 호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였다.
어떤 이들은 성급하게 명왕을 대륙십강(大陸十剛)에 근접한 인물로 추켜세우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일축하고 그저 또 하나의 살성(殺星)이 나타난 것으로만 치부했다.
아직 그들에게는 명왕의 전설이라는 것은 남의 이야기였고, 또한 우스운 이야기였다.
이야기 그대로 인정하기에는 그들의 자존심이 너무나 강한 것이다.
감숙성 정서(定西)는 난주에서 하루거리에 있는 조그만 현(縣)이었다.
이곳은 난주에서 섬서성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특히 이곳은 감숙과 섬서를 오가는 상단이나 표국이 반드시 들렀기에 표두나 표사들, 그리고 상인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매우 잘 발달 되어 있었다.
목유환은 자신이 묵고 있는 객잔의 1층으로 내려왔다.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실내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곧 자신이 목표로 한사람들이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밤새 편히 잤느냐?”
한 탁자 앞으로 걸어간 그는 포권을 하며 탁자를 차지하고 있는 주인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탁자위에 있던 사람들도 일어서며 그에게 마주 포권을 했다.
“일어나셨습니까? 형님.”
“일어나셨네요. 오라버니.”
목유환과 마주 포권을 하며 반겨주는 일남일녀.
그들은 고급스런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남자는 이제 20대 후반에 하얀 피부, 그리고 균형이 잡힌 몸매가 옷의 굴곡을 통해 나타났다.
허리에는 고풍스런 검이 차여있어 그가 무인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있는 집안의 자제 같았으나 약간 치켜져 올라간 그의 눈이 그의 인상을 사납게 보이게 만들었다.
또한 그의 옆에 있는 여자는 이제 20대 초반의 매우 수수한 얼굴을 가진 여성이었는데 전체적인 얼굴형이 남자와 닮아 있어 그녀가 남자와 핏줄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피곤 하셨을 텐데 저희 때문에 일찍 일어나신 게 아닌가 모르겠군요.”
“하하하! 아니다. 무위야. 평소에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어 원래 이 시간에 일어난단다.”
“그렇습니까! 그건 그렇고 숙부님께서는 안내려 오십니까?”
남자의 말에 목유환이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곧 내려오실게다. 아! 저기 내려오시는구나.”
목유환이 가리키는 곳, 계단을 걸어서 내려오는 검은 수염을 가진 50대 후반의 중노인이 보였다.
그는 목유환이 있는 곳으로 곧장 다가왔다. 그러자 남녀가 일어나서 다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숙부님.”
“인사드립니다.”
그들의 포권에 중노인이 마주 포권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하하하! 아침 일찍부터 일어났구나. 그래 잘들 잤느냐?”
“예! 숙부님.”
“덕분에 좋은 방에서 잘 잤습니다.”
중노인의 말에 그들 남매가 웃으며 대답했다.
중노인의 이름은 목정인(木正絪)으로 바로 난주에서 제일가는 표국인 북로표국의 국주였다.
또한 그의 앞에 있는 남매는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西安)에서 제일 큰 표국인 백령표국(百嶺표局)의 국주 사진우(司進宇)의 자식들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사무위(司無爲)로 종남파에서 속가제자로 수련을 쌓은 인물이었고, 여자의 이름은 사진령(司縉鈴)으로 가전의 무예를 익힌 인재였다.
북로표국과 백령표국은 같은 표국업에 종사하지만 지역이 달라 별다른 경쟁관계에 놓여있지 않았다.
더구나 두 표국의 국주인 목정인과 사진우는 선대부터 내려온 의형제 사이로 매우 돈독한 우예를 자랑했다. 때문에 그들은 번번이 서신을 왕래하며 서로의 안부를 살폈다.
그리고 이번에 백령표국의 국주인 사진우가 60세 생일인 환갑을 맞이했다.
그래서 각지의 친분 있는 사람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목정인의 비중을 감안해 그에게는 바로 자신의 자식들을 보낸 것이다.
때문에 지금 목정인은 표국의 업무를 총표두인 마수목에게 맡겨두고 자식인 목유환과 같이 서안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침 식사는 주문했느냐?”
“예! 숙부님. 저희가 미리 주문해놨으니 곧 나올 것입니다.”
목정인의 말에 사진령이 수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잘했구나. 형님의 생신에 맞추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느니라. 때문에 시간을 아껴야 한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준비야 다했으니까 늦을 일은 없을 겁니다.”
그의 말에 사무위가 대답했다.
이곳에서 서안까지 가는 데는 보름정도의 여정이 소모된다.
사진우의 환갑잔치가 스무날밖에 안 남았으니까 이런 저런 변수를 생각한다면 매우 빠듯한 일정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매우 서두르고 있었다.
잠시 후 점소이가 음식을 탁자위에 가져왔다. 탁자를 하나 가득 채우는 별미들, 모두 이곳에서 최고로 쳐주는 음식들이었다.
“웬걸 이렇게 많이 시켰느냐?”
“먼 길을 가려면 든든하게 채워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제가 좀 과하게 시켰습니다.”
“하긴 먼 길을 가려면 체력이 든든해야지. 자 어서들 먹자.”
“예!”
목정인의 말이 떨어지자 그들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비록 아침부터 기름기가 많은 음식들을 먹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맛있게 음식을 넘겼다.
그들이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계단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내려왔다.
평범한 체구의 남자와 이제 일고여덟 살 쯤 되 보이는 조그만 어린 아이, 그리고 어린아이의 품에 안겨있는 앙증맞도록 귀여운 고양이.
수많은 사람들 중 유난히도 그들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
“백부님! 저기 자리가 비어있어요.”
여자 아이가 남자의 손을 끌며 말했다.
여자아이의 목소리는 유난히도 맑고 청명해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때문에 우연히 여자아이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미소를 띠었다.
피부가 하얗고도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이 매우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래! 그쪽으로 가서 앉자.”
남자는 여자아이의 말에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여자아이의 뒤를 따랐다.
여자아이에 비해 너무나 존재감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오직 귀엽다는 표정으로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목정인도 그런 사람들에 속했다. 아직 손주가 없는 그는 우연히 여자아이의 얼굴을 보자 그 귀여운 모습에 마치 자신의 손주를 보는듯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 귀여운 아이구나. 저런 아이의 부모는 정말 좋겠구나.”
부친의 말에 목유환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죄송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그가 자식을 낳지 못해 아버지가 그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곧 뜻밖이란 빛이 떠올랐다. 여자아이의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그의 말에 목정인이 물었다.
“왜 그러느냐?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이냐?”
“아......아닙니다! 그저 예전에 한번 우연히 만났던 사람입니다. 따로 친분이 있다거나 아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느냐!”
얼마 전 그가 신강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기 전에 오로목제에서 만났던 사람, 자신이 사막을 같이 건너자고 했던 제안을 거절해서 더욱 기억이 남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신황과 무이였다. 그들 역시 하북으로 가기 위해 난주를 떠나왔고, 목유환과 똑같은 객잔에서 하루를 묵은 것이다.
목정인은 무이를 보며 말했다.
“전신의 근골이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것이 무공을 익히면 성취가 높을 것 같구나.”
“그렇습니까?”
목유정인 말에 목유환과 사무위 남매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무이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보기에도 무이의 몸은 근골이 알맞게 발달 되 있어 보기가 매우 좋았다. 그러니 아마 목정인의 말이 맞을 것이다.
“아마 저 사람이 저 아이의 백부가 되는 듯 한데 그 사람은 그리 성취가 뛰어나 보이지는 않는구나. 쯧쯧! 아이가 아깝구나. 좋은 스승을 만나면 성취가 남다를 텐데............”
목정인이 신황과 무이를 번갈아보며 혀를 찾다. 절정고수인 목정인의 눈에는 신황의 모습이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전신의 근골이 잘 발달은 되 있는 것 같으나 아쉽게도 내공의 성취가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무이의 재질을 아쉽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는 순간에도 무이는 설아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무이가 설아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치면 설아가 저쪽으로 때구르르 굴러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러면 무이가 꺄르르 웃으며 다시 설아를 살짝 밀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설아. 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예뻐 보였다.
“그것도 저 아이의 복이겠지요. 그런데 저 아이가 안고 있는 고양이는 매우 귀엽군요.”
사진령이 무이와 장난을 치는 설아를 보며 부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에는 신황이나 무이는 잘 보이지 않고 오직 설아만 확대 되 보였다.
“그렇구나! 품종을 보아하니 보통 영물은 아닌 것 같은데.”
사진령의 말에 사무위가 동조했다. 그의 집안 역시 표국을 하다 보니 귀한 물건을 가려볼 줄 아는 눈이 있었다.
그가 보기에도 무이와 놀고 있는 설아는 보통 영물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눈에 약간의 탐심이 지나갔다.
얼마 안 있으면 부친의 생신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선물을 구하지 못한 그는 설아를 부친에게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조금씩 피어올랐다.
만약 이 자리에 그만 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저 고양이를 돈을 주고 사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구하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자리에는 그의 숙부인 목정인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성질을 참아야만 했다. 대신 그는 말을 돌렸다.
“그런데 형님, 요즘 이쪽 감숙에서 유명한 그 사건을 아십니까?”
“난주혈사(蘭州血事)를 말하는 거냐?”
사무위의 말에 목유환이 금방 대답했다.
“예! 요즘 이 일대가 그 사건으로 떠들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 요즘 그 일로 인해서 난주가 난리도 아니야.
난주 제일의 성세를 자랑하던 난주이가가 하루 만에 초토화가 되고 그곳에 왔던 당문 십영과 당 문주의 샛째 아들이 죽고 당수련만이 간신히 살아 돌아갔다는군.
그일 때문에 관군이 출동했지만 그 흉수가 누구인지는 밝혀내지는 못했다는 거야.”
“흉수가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대담하군요.”
“그래! 더구나 손속이 잔인할 뿐만 아니라 대담하다고 하더구나.
시체를 보면 모두 날카로운 검기에 당한 것 같은데 그 날카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어 상처의 단면이 마치 얼음처럼 맨들맨들 하기 그지없다고 하더구나.
지금 이곳에서는 그를 월영검마나 명왕이란 호칭으로 부르며 두려워하고 있지.”
사무위와 사진령은 목유환의 이야기에 푹 빠져 들었다. 그들도 난주혈사에 관해 들었지만 거의 단편적인 것이었기에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유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미 그는 천산에서 천산파에서 혈사를 일으킨 경력이 있기 때문에 지독한 살성이 나타났다고 이야기가 돌고 있어.
그렇지만 그가 비록 천산파를 봉문시키고 당문 십영과 당소홍을 죽이긴 했어도 천산노조를 뺀다면 그다지 강한 무인이 없기 때문에 실력이 과대평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
“하기는..........! 비록 천산노조가 천산파의 태상문주이기는 하지만 이미 은퇴한지 오래되었고, 지병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실력이 예전만 못할 수도 있겠지요. 더구나 당문 십영이라고 해봐야 모두 애송이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무림에서 대접받는 것은 독과 암기 때문이지 어디 실력이 당문의 다른 사람들만 해서 그런 것입니까? 그냥 경험이나 쌓으라고 내보냈는데 뜻밖의 혈겁을 당한 것뿐이지요.”
“그럴 수도 있겠지. 강호의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니까.”
“후후후! 그자를 한번쯤 봤으면 좋겠군요. 진짜 명문정파의 검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군요. 제아무리 사이 독랄해 봐야 사파의 검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사무위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는 구대문파인 종남파에서 속가제자로 정통검법을 익혔기 때문에 사파의 무공에 대한 깊은 선입견이 있었다.
그는 아무리 사파의 무공이 깊어봐야 정파의 심후함을 당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명왕이란 거창한 호칭으로 불리는 것으로 봐서 쉽게 보면 안 될 거야. 그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불리는 거겠지.”
“하하하! 형님두. 그런 이름이야 사파의 실력도 없는 인물들이 과장을 하기 위해 흔히 하는 짓 아닙니까. 제 앞에 나타나라고 하십시오. 제가 다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사무위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자 그 옆에서 사진령이 거들었다.
“그래요! 명문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들이 한낱 사파의 무리를 겁내할 필요는 없지요.”
아직 강호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진령은 자신의 오라버니가 하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하는 모습을 보던 목정인이 한마디 했다.
“너희들은 그를 너무 쉽게 보는구나. 그런 자는 실력의 고하를 떠나 독심의 소유자이기 십상이다.
사람을 그리 잔인하게 죽이고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직 너희들의 강호경험은 일천하기 그지없다. 때문에 강호의 무서움을 아직 모른다.
강호에서 무서운 사람은 무공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강한 사람이다.
아직 명왕이란 자의 무공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그가 마음이 강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 너희는 조심해야 할 것이야.”
목정인은 아직 혈기만 믿고 큰소리를 치는 자신의 자식과 조카들이 진심으로 걱정스러웠다.
세상일이란 것은 종종 사람들의 예상을 벋어나 뜻밖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 면에서 보면 명왕이란 자는 정말 소문처럼 위험한 자일지도 몰랐다.
“물론입니다. 숙부님. 저희도 어린아이가 아니니까요.”
대답은 그렇게 하지만 사무위는 수긍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 앞에 명왕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이기면 단숨에 자신의 명성이 올라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목정인은 약간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더 말을 한다고 해서 먹힐 것 같지 않았기에 그저 작은 한숨만 내쉬었을 뿐이다.
한편 목유환은 신황의 모습을 보며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명왕이란 자의 소문과 저자의 행적이 일치하는구나.’
천산파가 혈겁을 당한 시기에 신강을 빠져나와 사막을 건너고 난주혈사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그가 난주근처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저자가 명왕의 종적과 어느 정도 맞춰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목유환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생각이 너무 비약적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자는 그리 강하지 않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지 않았는가.’
그는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식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아침식사 후 목정인 일행은 자신들의 말을 점검하며 먼 길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섬서성 서안까지 가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준비는 매우 꼼꼼했다.
그들이 그렇게 마구간에서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들의 곁으로 신황과 무이가 다가왔다. 그들이 타고 온 말도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신황은 사무위가 했던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자신의 말에 짐을 싣고 점검했다.
“자 출발하자. 서안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목정인이 모든 준비가 끝나자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따라서 말에 올라탔다. 그들 역시 목정인의 말에 대답하며 말을 몰았다.
“알겠습니다. 어서 가죠.”
“그래!”
따각, 따각!
그들이 말을 몰아 나간 후 신황이 무이를 먼저 태운 후 자신 역시 뒤에 올라탔다.
무이가 자신을 안고 탄 신황을 보며 말했다.
“백부님, 우리도 서안으로 가는데 저들도 그곳으로 간데요.”
“그렇구나! 우리와 목적지가 같구나.”
하북으로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섬서를 지나야 했고, 또한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을 반드시 지나야 했다.
때문에 신황 역시 그곳을 지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같은 객잔에 묵었던 저들도 서안으로 간다고 하니 뜻밖이었다.
“우리도 출발하자. 말을 꼭 잡거라.”
“예! 백부님.”
크르릉!
신황의 말에 무이와 설아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고 신황 역시 말을 달려 객잔을 빠져 나갔다.
저 앞에 목정인 일행이 앞에 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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