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 치앙라이 여행기
3월의 하늘이 화창하게 내리는 좋은 계절이다. 겨울잠을 자고 있던 화초들이 봄바람을 타고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매화,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벗 꽃들이 우리의 눈을 호사시키는 절기에 우리 청안 회원들은 태국의 북부에 있는 치앙마이로 문학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2024년 3월 24일 11시 30분 일요일 명일역에서 만났다. 우리 문단의 고령이신 박영환님, 이광녕 지도 교수님, 김영우 전회장님, 이연정 사무총장님, 김보경 회원님과 5호선에 승차하였다. 또 천호역에서 전승권 사무국장님도 동승하여 김포 공항역에서 환승하고, 인천 국제공항 제 2 역사에서 하차를 하였다.
인천 제2공항은 새로 건축된 건물로 제1 터미널 크기의 멋진 시설 이였다. 세계적으로 으뜸이라는 인천 국제공항을 볼때마다 우리의 자부심을 높여주었다. 3층에서 김영희, 최명숙. 조건상, 허용희, 김순란, 왕영분, 서현연, 지명숙 회원님과 김부배 회장님을 만나 16명이 모두 가방을 탁송하고 대한항공 탑승권을 받았다.
17시 25분 우리 일행은 234 탑승구로 찾아가서 태국행 대한항공에 승선하였다. 대한항공은 속도 460mph 고도 40,000 피드로 222 마일을 비행하여 현지시간 21시 42분(한국시간 23시 42분에 도착)에 안착하였다.
태국 치앙마이 공항 출구에서 현지인 가이드 M씨를 만났다. 버스 승차장으로 가서 한국인 김도훈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타고 어두운 길을 달려 더 센타라 리버사이드 치앙마이 호텔로 갔다.
태국의 국토는 51만 평방미터, 인구는 7,200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태국의 문자는 라오스와 태국의 언어가 같으나 문자는 다르다. 태국에는 56개의 소수민족과 결합하여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이곳의 소수민족인 라후족은 고구려의 유민으로 고구려가 멸망하자 이곳으로 이동하여 800년 전부터 살고 있다고 한다. 라후족의 후손들은 지금도 호랑이를 산양하고, 씨름, 땅 뺏기, 자치기 등의 놀이를 한다. 라후족의 인구는 점점 줄어서 지금은 멸종위기에 있다고 한다.
태국의 종교는 94%가 소승불교이고 5%가 무슬림 신앙을 가지고 있다. 사찰마다 화려한 황금 불상들이 여기저기에 진열되어 있다. 우리 일행이 이동하는 도로에도 불상과 국왕 부부의 사진이 선전물처럼 전시되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의 절에 가면 부처님 한 분과 양쪽에 보살상을 두고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갖게 하지만, 태국의 사찰은 박람회장처럼 어수선하고 호화로운 황금 불상들이 사찰 경내의 요소마다 어수선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태국의 역대 왕 앞에서는 고위 관리들도 얼굴을 들지 못하고 무릎걸음을 하여야 하는 엄격한 권위를 누렸으나, 현재 국왕의 아버지인 "라마 9세"는 재임기간 동안 소수의 경호원만 수행하게 하고, 국토의 오지를 찾아다니면서 빈민들의 생활을 돌아보고 이들의 생활을 향상 시키려고 선도 했다고 한다. 라마 9세는 스스로 빈민들 앞에서도 동등한 높이로 무릎을 낮추고 이들의 고충을 듣고 화훼작물등을 제공하여 마약을 퇴치하였다고 한다. 그런 라마 9세의 선정으로 국민들은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왕이 되었다.
國旗(국기)의 빨강색은 국민의 피, 흰색은 부처님의 순결, 노랑색은 부처님의 지혜, 가운데 파랑색은 王(왕)을 표시한다. 국민과 종교가 국가인 왕을 보호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노랑색은 왕족, 빨간색은 시민 혁신당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깃발아래에서 일정한 날에만 시위를 한다고 한다.
국왕의 사진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금기행위로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집에서 음식을 조리해 먹지 않고 직장 근처 식당에서 외식을 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추가로 주문을 하면 한국의 식당처럼 무상으로 주지 않고 추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이곳의 평균온도는 38도로 열대성 기후이다. 5월부터는 雨期(우기)라고 한다. 이곳의 산악인들은 잡초와 숲이 우거지면 땅속에 숨어있는 "먼지버섯"을 찾을 수 없으므로, 5월이 오기전 건기에 의도적으로 산불에 불을 낸다. 火災(화재)로 인한 미세먼지가 심각하게 국민의 건강을 해한다고 하지만, 먼지 버섯은 현지인들에게 유용한 藥草(약초) 이기에 국가에서도 이를 방조한다고 한다.
태국에는 일본차를 생산하는 공장이 많아서 일본차가 전 국토를 누비고 다닌다. 외국차는 거의 없는 실태이다. 현지에서 생산하는 공장이 없는 현대차나 외국 차는 가격 경쟁에 밀려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처럼 차의 운전대는 우측에 있고 좌측 길을 통행을 하고 있다. 고속도로는 방콕 한 곳에만 있다. 차도를 가로 지르는 횡단 보도와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차가 오지 않을 때에 무단으로 횡단을 하여도 사고가 나지 않으면 허용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첫날은 쎈타라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나는 903호에 김영우 전회장과 투숙하였다.
나는 3월 25일 06시에 기상하여 면도를 하다가 윗입술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다. 불길한 생각을 가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식당에서 음식을 들고 가다가 식당 계단 아래로 넘어지는 실수를 하였다. 다행히 큰 상처는 입지 않아 마음을 가다듬고 식사를 하였다. 우리 일행은 09시에 버스에 승차하고, 퀸 시리킷 보타닉 가든이라는 라짜프루 왕가의 정원으로 갔다. 산림이 우거진 산 계곡에 유리 온실 건물로 지어 열대 식물을 잘 관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여러 곳의 온 실을 다니면서 수십종의 희귀한 연꽃을 구경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배하는 호접 난은 태국이 원산지라고 한다. 식물원을 나와 밀림지대로 놓인 철조망으로 된 잔도를 거닐었다. 영화 "해리포터"는 “나비” 라는 뜻으로 이곳에 서식한다는 날개가 달린 동아 뱀을 보고 착안하여 중국 장가게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코끼리 캠프를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코끼리에게 먹이주기 체험을 하였다. 코끼리 먹이는 주로 사탕수수, 바나나, 옥수수를 먹었다. 먹이를 주자 코끼리는 코끝으로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사탕수수보다 맛이 없는 옥수수는 코밑 턱에 이중으로 받아 발 밑에 떨어뜨리고 나중에 먹었다.
두번째 날 3월 26일에는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오전에는 자유시간을 가졌다. 일행 중에는 호텔 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근처의 재래시장을 답사를 하였다. 시장의 좌판에는 현지 과일과 고기류를 놓고 팔고 있었다. 그러나 환경이 불결하여 구입하지 않았다.
12시에 차로 이동하여 점심으로 현지인 식당에 갔다. 도로변에 설치된 항아리에 숯불을 피워놓고 쇠고리에 돼지고기를 걸어서 익힌 바비큐와 연 잎에 찹쌀을 넣고 찐 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당을 나와 세계 꽃 박람회가 열렸던 라차프록 꽃 박람회장으로 이동하였다. 라차프록 꽃 박람회장은 왕실 공원으로 각국의 조형 건물도 설치해 놓았다. 이곳에 한국의 조형건물도 있었다. 넓은 곳이라 공원 내에서 운영하는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관람을 하였다.
다음은 과거에 강대국이던 버마의 침략을 막으려고 조성된 성터와 해자를 보았다. 당시에 강국이던 버마가 약소국이던 태국을 침략하자 태국왕은 인접한 국가의 두 왕을 만나 버마가 침략하여 태국이 망하면 연쇄적으로 침략을 당하게 될 거라고 인접한 국가를 설득하였다. 이렇게 3국이 협상하여 동맹을 맺고, 버마가 침략하자 결국 버마를 물리쳤다고 한다. 이러한 협상의 모습을 형상 화 한 삼왕상(3인의 동상: 전설적인 도시의 3대 개국공신의 조각상)을 보았다.
다시 이동하여 선왕의 유물을 보관했다는 탑으로 이동하였다. 피라미드형으로 벽돌을 쌓고 코끼리 상과 용의 형상으로 조성된 조형물은 벼락을 맞아 반쪽이 무너지고 조각한 코끼리 상도 반은 무너지고 없었다. 근방에 있는 다보탑과 종탑의 모형으로 조성된 백색 탑 공원에는 왕족의 사리를 보관했다는 묘지공원이 있었다. 외형과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한 사원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 거대한 황금 불상 뒤쪽에 있는 부처의 사리를 보았다.
선왕의 사리를 보관한 백색 무덤사원 다음으로 간 곳은 수공예 양산을 만드는 작업장으로 이동을 하였다. 지명은 싼캄팽 이라고 하는데 “마을 옆집”이라는 뜻이다. 마을 입구에서 버스를 내려서 썽타우라는 두줄로 마주보고 앉는 대중교통 차를 타고 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그곳에는 바짝 마른 체격의 할머니들이 대나무를 깎아 우산 겸 양산을 만들고 있었다. 대나무를 깎아 우산의 살을 조각하여 조립하고 우리의 한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두꺼운 종이를 만들어 원형으로 잘라 대나무 살에 붙여서 각종 그림으로 장식하여 판매를 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아리랑 한식점에서 삼겹살 구이로 저녁을 먹고, 전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마사지는 태국의 스님들이 고행 후 피곤한 몸을 풀려고 서로 마사지를 하다가 개발하게 되었다는 방식으로 그 정밀한 과정을 담벽에 그림으로 장식하여 전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후 마사지 학교가 생기고 스님들이 직접 교육을 하였다고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 발을 씻으려고 할 때에 마사지 여인들이 와서 우리의 발을 씻겨 주었다. 그리고 여인을 따라 거실로 들어가 2시간 동안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를 받고 팁으로 4불을 지출하였다. 세째 날 3월 27일 호텔에서 뷔페식을 하고 8시에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왓 쑤언덕에 있는 황금색 사원으로 갔다. 황금색 사원의 이름은 프라탓 도이수텝 사원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이다. 높이가 90미터에 이르는 큰 탑이 있는 사원으로 태국에서 제일 자랑하는 웅장한 규모의 사원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산상의 사원이다. 이곳은 태국을 대표하는 불교의 성지라고 한다. 이곳에서 치앙마이 시를 한눈아래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전망이 좋은 사원으로 황금색 부처상이 많은 곳이다. 황금색 사원의 건축 설화는 사육하던 코끼리를 전쟁 후 방면하고 그 코끼리가 자유롭게 다니다가 후일 병으로 죽은 이곳을 명소로 지정하여 사원을 건설했다고 한다. 우리는 가파른 산길을 버스를 타고 지그재그로 올라가 사원 아래에서 하차를 하고 입장권을 받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원 경내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황금색으로 장식한 수많은 불상들을 구경하였다. 사원을 구경하고 나와 다시 차를 타고 4시간을 달려 치앙라이(Chiang Rai) 시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노천 유황온천에서 잠시동안 족욕을 하였다. ( 태국의 국보 황금사원) Chiang Rai 시에서 렁쿤사원(백색사원)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태국의 걸작사원이라고 하였다. 이곳은 "왕롱쿤"이라는 분이 부모의 유산으로 건축한 곳이라고 한다. 왕롱쿤은 어려서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란 문제 아동이었는데, 이를 걱정하던 어머니가 아들을 설득하여 스님에게 교육을 받게 하여 선도하고, 다시 미국으로 유학하여 미술과 건축학을 공부하고 왔다고 한다.
귀국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느 날 꿈에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구해 달라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하려고 부모님 유산으로 버려진 사원 터를 인수하여 지옥과 천당을 의미하는 섬세하고 화려한 백색 조형물을 혼자 설계하고 건축하였다. 이 건축물은 자비로 건축한 걸작품이라고 한다.
왕롱쿤은 고아나 불량 청소년을 고용하여 선도하고 가르치면서 백색 조형물을 지었다고 한다. 형식은 불교 건축물이지만 스님이 선도하는 사원이 아니라고 한다. 조형물이 섬세하고 훌륭하여 마을 주민과 국가에서 재정의 지원을 하겠다고 하였으나 왕룽쿤은 이를 거절하고 입장 권을 팔아서 재정에 충당하고 기술자는 고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곳을 나와 치앙라이 헤리티지 치앙라이 호텔 718호에서 짐을 풀고 다시 버스로 이동하였다. 저녁에 야시장에 들어가 선물용 물품을 쇼핑을 하고 노천 식당에서 만찬을 하고 호텔에 투숙하였다. ( 청색 사원) 넷째 날 3월28일 더 헤리티지 치앙라이 호텔에서 조식으로 뷔페식을 하고 체크아웃을 하였다. 08시 왓렁쓰와뗀(청색사원)으로 갔다. 청색사원은 백색사원을 건설한 왕롱쿤의 후배가 지었다고 한다. 청색 용의 조각과 불상으로 지은 이곳은 버려진 사원을 인수하여 건축했다는 곳이었다. 선명한 푸른색의 정교한 조각상들이 아름다운곳으로 호랑이 사원이라고도 한다. 백색 조형물 보다는 규모가 작고 불교의 형상이 많은 곳이었다. 아직도 건설 중이라고 하는데 재정은 국가에서 보조를 받고 있다고 한다. 청색사원을 구경하고 백색사원이 있는 곳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여 쌀국수 부패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약사여래 백색 보살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26층 높이의 약사여래 불상) 약사여래 불상은 26층 높이의 거대한 보살 상으로 가난한 지역 주민들을 돕는 불상이라고 하였다. 1층에서 가난한 주민을 위한 쌀 한 봉지씩을 방문자의 기증형식으로 받아서 주민을 돕는다고 한다. 우리 일행 6명의 회원들도 이 쌀을 사서 헌납하고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6층으로 올라갔다. 26층 내부 벽에는 아름다운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고, 보살상의 이마부위에는 원형으로 창문이 있어서 밖의 마을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약사여래 백색 관음 보살상을 현지 용어로는 왓훼이쁠라깡이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씽하파크로 라는 녹차밭으로 갔다. 녹차밭은 338만평이라는데 여의도 면적의 1,5배라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녹차는 품질도 좋고 생산량도 많다고 한다. 그곳을 답사하고 Singha park의 녹색 잔디밭에 조성된 거대한 청동색 개 조각상을 보고 다시 치앙마이로 가다가 전일에 갔던 유황온천 반대편 노천 족욕 탕에서 잠시 휴식을 하였다. 그리고 치앙마이 시에서 꿀벌에서 추출했다는 "프로폴리스" 판매장에서 잠시 상품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판매하는 약(藥)과 건 망고 등을 구입하고 마사지 장소로 갔다. 여성 회원들이 마사지를 받는 동안 남자들은 2시간동안 자유시간을 확보하고 주변 시내를 걸어서 백화점으로 가서 선물용 물품을 구매하였다. 저녁식사는 한식 점 아리랑으로 가서 김치찌개로 식사를 하고 치앙마이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마치고 18시 대한항공편에 승선하고 기내식을 하였다. 항공 노선은 루앙프라방, 하노이, 난닝, 광저우 상공을 고도 5416m, 속도 696 km/h, 거리 101 km를 비행하여 제주도 상공에서 북상하여 익일 06시에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은 모두 사고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치었다. (녹차밭 338만평)
이때에 9호선 지하철을 타고 오다가 김포공항 지하철 승강장에서 5호선으로 환승을 하였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선물용 물품을 복잡 한 지하철 승강장에 놓고 환승하였다. 분실한 선물용 가방을 두고 온 사실을 늦게 생각하고 물건을 찾으러 다시 김포 공항역으로 되돌아 갔다. 다행히 역무원이 유실물을 발견하고 보관하다가 주인에게 돌려주어서 안도의 숨을 돌렸다. 승강장에 분실된 귀중품 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도 분실된 남의 물건을 가져가지 않은 한국인의 국민의식이 다시한번 돋보여서 감격을 하였다.
(백색 사원의 섬세하고 화려한 모습) (청동 조(청동 개 조형물) ( 백색 사원의 황금색 화장실 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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