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생멸(生滅)의 탐색을 위한 생의 인식 --강경애 소시집에 붙여
김 송 배 (시인. 한국현대시론연구회 회장)
현대시인들이 탐색하는 물리적 혹은 정신적 시각(視覺)인 시점(視點-point of view)은 대체로 시인 자신인 간직하고 있는 정서적인 태도와 의식의 시각이다. 개인적인 시점은 시인이 자신의 화자와 담론하는 사이에 유지하고 있는 거리를 가리킨다. 그 시인이 착목(着目)하는 지점에서 생성하는 사물이나 관념의 이미지는 항상 그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거리의 문제와 궤(軌)를 함께 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인이 천작하는 주제가 정립하는 것은 그 작품의 중심적인 골격으로서 주된 화제가 되는 도덕적인 명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작품이 발현하고자 하는 중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현실적인 묘사이다. 강경애 시인이 이 소시집을 통해서 발흥하는 주제는 생멸을 탐색하는 생에 대한 인식의 접근이다. 이러한 테마는 사유(思惟)에 대한 주요한 결과로써 이에 대한 요약적인 진술이나 작품에 묘사된 사상과 감정의 경향에의 상대어가 되는데 이 생의 문제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을 이탈하지 못하는 특성을 갖는다. 강경애 시인은 우선 생에 관해서 분명한 주제의식으로 시적 상황을 설정하고 전개함으로써 이미지를 명징하게 현현하면서 그 의 중심 사상의 내용인 생사 혹은 생멸이라는 인간의 근원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양초에 불을 지핀다 너울대는 불빛 따라 일렁이는 그을음 굽이쳐 흐르는 촛농에 쏟아져 내린다 이내 적막을 감싸 안고 지난 생의 서러움을 불꽃 속으로 감아올린다
몇 해를 더 살아야 잊히고 지워져 온전한 생을 살아낼까
이승은 서럽기만 하다. --「생을 지피다」 전문
그렇다. 강경애 시인은 ‘지난 생의 서러움을 불꽃 속으로 / 감아올’리면서 갈구하는 것은 ‘온전한 생을 살아낼까’라는 어조의 의문형으로 그의 진실을 자문(自問)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상황이나 전개는 그가 우리 인간들이 영위하거나 향유하려는 진실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명민(明敏)하게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는가하는 가치관의 추구에서부터 심오(深奧)한 내면을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결론적으로 적시한 주제의 지향점은 ‘이승은 서럽기만 하다’라는 연민의 언어로 그의 내면의식이 성찰의 잔잔한 어조로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어서 공감을 유로하고 있다. 또한 그는 ‘가면으로 나를 감추고 살면 / 버거운 생이 덜어지려나 / 세상의 아수라장 속에서 / 난 나를 버리지 못하고 / 억지 가면 쓰고 어설픈 생을 위한 / 진혼곡을 연주 하고 싶다.(「가면」중에서)’라는 어조로 생에 대한 여망(혹은 기원)으로 ‘버거운 생’과 ‘어설픈 생’을 위한 ‘진혼곡을 연주하고 싶’은 주제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인식하고 자성하는 의식이 ‘버거운 생’이나 ‘세상의 아수라장’과 ‘어설픈 생’ 등이 결국 그의 정서가 결집된 ‘난 나를 버리지 못’한다는 흐름으로 귀착하고 있어서 이 세상 삶의 이유나 인생의 의미가 자아(自我)의 휴머니즘적 실천과의 괴리(乖離)를 개탄하는 ‘가면’으로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생을 주제로 한 시편들이 대종을 이루는 이번 작품들은 그가 집착하면서 탐색하는 인생-거기에서도 생멸에 대한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사고(四苦)에 대하여 심도(深度) 있는 사유가 발흥하고 있어서 그의 시적인 진실을 궁극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집 어귀의 골목길 변함없이 저만큼 비켜 서 있네
지난날 다정한 눈빛으로 “잘 있어” 속삭이던 그 말 아직도 귓가에 남아 맴도는데
오늘은 희미한 골목길 가로등만 제자리 지키고 있네
그대가 간 곳을 아는 건 오직 골목을 휘돌다 가버린 한 줄기 바람, 그리고 담장을 넘어 휘어져 있는 자목련 한 그루 뿐. --「별리」 전문
여기에서는 존재의 소멸에 대한 체념적 인식이 깊이 배어 있다. ‘별리’라는 축약(縮約)된 한 단어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지만 그가 단정적으로 결론지은 ‘희미한 골목길 가로등’과 ‘한 줄기 바람’ 그리고 ‘자목련 한 그루 뿐’이라는 상황적 진실은 바로 그가 인식한 존재의 의미가 적절하게 내포되어 있는 어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내면에는 화자 ‘그대’가 ‘다정한 눈빛으로’ 속삭인 말 한 마디 ‘잘 있어’라는 언어의 여운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정황(situation)은 불교적 관점의 애별리고(哀別離苦)에 해당하는 하나의 인색적인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강경애 시인은 다시 ‘급히 만든 영정사진 속 얼굴 / 웃는 듯 울고 있다 / 아직 계산된 생은 채우지도 못하고 / 대차대조표 맞추지도 못했는데/ 사진 한 장으로 영영 떠난다(「누군가 나를 깨운다」중에서)’라거나 ‘행간을 넘나드는 기호들로 / 생은 뒤엉키고 / 키를 높히는 바다는 / 밤마다 어김없이 울부짖는다 / 또 다른 쉼표를 위해.(「갯벌, 그 쉼표의 자리에서」 중에서)’라는 어조는 바로 단순한 ‘별리’에서 존재 소멸의 이미지지가 명징하게 적시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다 몸 풀어도 걱정 없을 작은 소품들 다 챙겨 넣고 이제나 저제나 훌쩍 떠날 등짝하나 기다린다 먼지로 뒤덥힌 옷깃을 털며 세상의 짐 벗어버릴 길 찾아 짓무른 눈길 거두고 일어 설 배낭은 나다. --「떠나는 연습」중에서
강경애 시인은 이처럼 ‘떠나는 연습’을 예비하고 있다. ‘먼지로 뒤덥힌 옷깃을 털며 / 세상의 짐 벗어버릴 길 찾아’ 나서는 연습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순리에의 순응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려는 산행(山行)으로 비유된 인생 별리의 홀가분함으로 연습으로 떠나는 생의 여운이 흐르고 있다. 일찍이 톨스토이는 삶의 의문에 대한 그의 탐구는 마치 내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경험하는 것과 똑 같은 경험이라고 『참회록』에서 말한 것을 보면 생과 삶과 죽음과 인생이 깊은 사유의 원류에서 복합적으로 적시되는 이미지나 주제는 존재문제를 참으로 의미 깊게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강경애 시인이 이러한 생의 문제에 심취하는 상황들이 그의 작품들에서 다양하게 현현되고 있는데 ‘정당한 이유 없이 소멸되는 목숨은 목숨이 아니다(「무겁고 너무 가벼운」중에서)’, ‘내 삶의 중추를 흰 불꽃이 / 혀를 빼물고 기웃댄다(「폭염」중에서)’, ‘생전에 읽히지도 않을 생애를 나날이 쓰고 있나보다(「어둠이 취하는 시간」중에서)’, ‘시간을 향하고 있는 저승꽃 핀 얼굴들뿐이다(「어머니의 왈츠」중에서)’ 그리고 ‘내가 나를 버린 듯, 등 시리다(「섬」중에서)’는 등의 어조와 같이 그는 생명이 시간과 혹은 현실적인 갈등들과도 불협화음에서 일탈하려는 확고한 인생관이 적나라하게 현시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시인 P.B. 셸리가 말한 대로 시는 최상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며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라고 한다면 생멸에 대한 시인들의 집념적 탐색은 바로 인생의 의미를 구명(究明)하는 영원한 진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