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서 문안 합니다.
매월 첫째주 화요일과 셋째주 화요일은 구조분석 방법론을
함께 연구 할수 있도록 하신 성령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목사님들께서 동참하시여 성서의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고 하나님만 자랑해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아주 좋아 하세요.
주제절
외울 말씀 5장 8절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라
로마서 5장 1-11절 【칭의의 결과로서 하나님과 화평】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5: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c) 누립니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
직역:
5:1 Δικαιωθέντες οὖν ἐκ πίστεως
의롭게되었으므로 그러므로 에서 믿음(확신) (분사: 과거 수동태 주격 1복)
εἰρήνην ἔχομεν πρὸς τὸν θεὸν
평화를 가지고있다 향하여 그 하나님을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1복)
διὰ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통하여 그 주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
주해
▣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인 이신득의(以信得義), 즉 모든 사람이 죄인이므로 스스로의 힘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여 결론짓고 있는 구절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이러한 믿음을 통한 '칭의'(稱義)가 곧 이하에서 말하려 하는 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축복의 생활의 배경이 됨을 강조해 준다. 즉 이제 바울은 이신득의의 원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신득의의 결과로서 성도들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이는 곧 그리스도의 중보(仲保) 사역을 의미한다. 즉 아담 이래 범죄하여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하여서는 양자 사이를 중재해 줄 중보자가 요구되었는데, 이를 위하여 예수께서 먼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을 대표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심으로 대속(代讀) 사역을 이루셨다. '예수의 성육신과 대속 수난을 통한 인간 구원의 필연성'을 참조하라. 그리고 이 대속 사역에 의거하여 이제는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이 사역의 영원한 효력을 적용시키기 위해서 승천하신 후에도 하나님 우편에서 참소자인 사탄의 고소에 맞서 인간을 변호하고 계신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그랜드 종합 교리 기독론, '그리스도의 중보직임'을 참조하라. 한편 여기서 바울이 예수를 호칭함에 있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란 말을 중복시킨 것은 지금까지의 논리 전개가 주로 죄의 보편성과 이신득의 교리의 구약적 배경을 다룬 반면, 이제부터는 보다 확실하게 예수를 표면에 내세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특히 바울은 초대 교회 교인의 예수에 대한 일반 호칭이기는 하나 본절에서 그 호칭을 사용하여서 성육신하여 이 땅에 존재하신 그 예수가 확실히 모든 성도의 주인이시며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여기서 '화평'(에이레네)은 유대인들이 자주 사용하고 구약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샬롬'에 대응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분쟁이 없는 상태나 아니면 심적 평안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히브리어 '샬롬'이 '보상', '회복'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듯이 본문의 화평도 빚진 상태를 청산하고 상호 간에 긴장 관계를 해소하여 본래 상태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인간의 상태가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정결한 피를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가 완전히 청산되고 이제 다시 하나님과 범죄 이전처럼 새롭게 교제를 나누게 된 관계 회복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즉 '하나님과 함께'란 말이 화평이란 단어에 부연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비록 한글 개역 성경은 시내산 사본(H), 알렉산드리아 사본(A), 바티칸사본(B), 에브라임 사본(C), 베자사본(D) 등 여러 권위 있는 사본들에 따라 '화평을 누리자'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이후에 나온 수정판 사본들 및 오전시스 사본(F), 보엘네리안 사본(G), 풀피리안 사본(P) 등 여타 사본들에는 이 구절이 '화평을 누리도다'로 나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자들도 후자를 보다 더 지지하고 있다. 사실 본절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칭의의 결과가 성도들에게 어떠한 열매를 가져오는지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화평을 누리자'는 권유형은 다소 부자연스럽다. 반면에 '화평을 누리도다'는 결과문으로써 전후 문맥 관계를 보다 분명히 나타내 주고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5: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d) 자랑을 합니다. (d. 또는 자랑합시다)
5:2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기뻐한다.
직역:
5:2 δι᾽ οὗ καὶ τὴν προσαγωγὴν ἐσχήκαμεν
통하여 그분 역시 그 나아감을 우리가누리고있었다 (동사: 직설법 완료 능동태 1복)
[τῇ πίστει] εἰς τὴν χάριν ταύτην ἐν ᾗ ἑστήκαμεν
그 믿음으로(확신) 안으로 그 은혜를 이 안에서 그 우리가서있어왔다 (동사: 직설법 완료 능동태 1복)
καὶ καυχώμεθα ἐπ᾽ ἐλπίδι τῆς δόξης τοῦ θεοῦ.
그리고 기뻐하고 있다 위에서 소망 그 영광의 그 하나님의 (동사: 직설법 현재 중간태 1복)
주해
▣ 또한 그로 말미암아. - 1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란 말이 있으나 여기서 다시 이를 반복하는 것은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중보자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었었으며. - 공동번역은 본절을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은혜' 또는 '은총'은 물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된 것(1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들어가다'(프로사고게)는 하나님께 '나아가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즉 아담 이래 범죄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믿고 그 피의 공로로써 의롭다함을 얻은 자들은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 것이다.
▣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 원래 '하나님의 영광'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과 천사를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할 경배와 찬양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부여받게 되는 영광을 가리킨다.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도 이러한 영광의 일부가 있었으나 범죄함으로 인하여 잃어버린바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성도들은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러한 영광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성도들에게는 이미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이 확보되어 있으며,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다 분명하게 분여(分與)받게 된다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미래의 영광을 소망하는 가운데 비록 현재 겪고 있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본절의 '즐거워하다'(카우카오마이)는 '영광스럽게 여기다', '자랑하다'(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랑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
5:3 이뿐 아니라 우리는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직역:
5:3 οὐ μόνον δέ,
아니다 그뿐 그리고
ἀλλὰ καὶ καυχώμεθα ἐν ταῖς θλίψεσιν,
다만 역시 기뻐하고 있다 중에도 그 환난들 (동사: 직설법 현재 중수디 1복)
εἰδότες ὅτι ἡ θλῖψις ὑπομονὴν κατεργάζεται, (동사: 직설법 현재 중수디 3단)
알아오고있기 때문에 그 환난은 인내를 이룬다 (분사: 완료 능동태 주격 1복)
주해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환난'(들립시스)은 '괴롭히다', '에워싸다'는 뜻의 '들리보'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는 심적 고통이나 고뇌는 물론 육체적 고통이나 핍박 등도 의미하는 말이다. 성도들이 흔히 착각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예수님을 믿으면 무조건 이 세상에서 만사형통하며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축복 역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자는 받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대체적으로 예수 믿는 자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더 환난을 당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는바 저를 믿는 자들에 대하여서도 역시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즉각적인 영광이 보장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저로 인하여 질고를 겪는 형극(荊棘)의 길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러한 환난을 능히 참으며 도리어 이를 기뻐할 수 있는데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러한 환난을 참아낼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둘째, 그 같은 환난은 우리의 신앙을 연단하는 것으로서 이를 견디어내고 나면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즉 우리는 과거 욥의 신앙 자세를 본받아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고 외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이는 환난은 인내를. - '인내'(휘포모네)는 '오래 참음'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말로서 믿고 확신하는 바에 '굳게서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원한 사망의 자리에서 영원한 생명의 자리에로 옮겨주신 것과 그 무엇도 우리를 그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굳게 믿는 자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난 가운데서도 인내할 수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4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다.
직역:
5:4 ἡ δὲ ὑπομονὴ δοκιμήν, ἡ δὲ δοκιμὴ ἐλπίδα.
그 그리고 인내는 증거를 그 그리고 증거는 소망을
주해
▣ 인내는 연단을. - '연단'(도키메)은 '시험', '경험', '증거'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여기서는 외부적인 시련을 통하여 인내력이 증진되고 신앙적으로 성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를 '성숙한 인격'으로도 번역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하신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다.
▣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소망'(엘피스)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① 부활과 영생의 소망, ②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함, ③ 장차 천국에서 받을 상급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인간은 자신의 공력(功力)으로써는 도무지 이러한 소망하는 바를 획득할 수 없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고자 약속하신 것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를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받은 믿음에 착념(着念)하여 끝까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5: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5:5 그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아니하니,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졌기 때문이다.
직역:
5:5 ἡ δὲ ἐλπὶς οὐ καταισχύνει,
그 그리고 소망은 아니다 (조금도) 부끄럽다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ὅτι ἡ ἀγάπη τοῦ θεοῦ ἐκκέχυται ἐν ταῖς καρδίαις ἡμῶν
때문이다 그 사랑이 그 하나님의 부어져 왔다 안에 그 마음 우리의 (동사: 직설법 완료 수동태 3단)
διὰ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τοῦ δοθέντος ἡμῖν.
통하여 영 거룩한 그 주어진 우리에게 (분사: 과거 수동태 소유격 단수)
주해
▣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 본절은 성도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근본 이유를 밝힌다. 한편 공동번역은 본절을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로 번역하고 있다. 즉 여기서 '부끄럽게 하다'(카타이스퀴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낙심시키다' 또는 '수치를 당하게 하다', '모욕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주 안에서 지니는 소망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므로 이를 기대하다가 훗날 낙심하게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근본 속성 가운데 포함된 신실성과 불변성 때문인데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食言)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라는 구절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난다.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 우리가 주 안에서 지니는 소망으로 인해 부끄럼당하지 않게 되는 근거이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이 세상에 보내 주신 보혜사(保惠師) 성령께서 성도의 구원을 보증하시고, 이 지상에서도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성화(聖化)의 과정을 돌봐주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령 강림 이후 교회는 성령의 인 치심과 내재하심을 경험한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항상 이러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나타나게 된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한편 본문에서 바울은 또 한 가지 성령님의 사역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곧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현재와 더불어 미래에도 계속될 것임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는 성도들은 결단코 주 안에서 지니는 소망으로 인해 낙심당하지 않게될 것임을 강조해 준다.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 여기서 '마음'(카르디아)은 인격의 좌소(坐所)를 가리킨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주신 구원의 은혜를 뜻한다. 즉 하나님께선 마른 땅에 물 붓듯이, 영적으로 죽어있던 우리의 심령에 풍성하고도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소생한 것처럼 영원한 사망에 처할 수밖에 없던 우리들을 영원한 생명의 길로 옮기워 주신 것이다. 바울은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시되었는지를 6절 이하에서 언급하고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6 우리가 아직 연약한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5:6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때를 맞추어서,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위하여 이미 죽으셨습니다.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정해진 때가 되어,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
직역:
5:6 Ἔτι γὰρ Χριστὸς ὄντων ἡμῶν ἀσθενῶν ἔτι
아직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있을 때에 우리가 연약하여 아직 (분사: 현재 능동태 소유격 1복)
κατὰ καιρὸν ὑπὲρ ἀσεβῶν ἀπέθανεν.
따라 적합한때 위하여 경건치 않은자 죽었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 이는 영적으로 무력할 때, 즉 전적으로 부패하여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는 어떠한 의(義)도 이루지 못한 때를 가리킨다. 바울은 8절에서 이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여기에서 '연약'이란 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육신에 속하여 선을 행하기에 무력했을 뿐 아니라 악을 대항하기에도 무력했던 것을 의미한다.
▣ 기약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카이론'은 '정한 때에', '때를 맞추어'라는 뜻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이 임시 처방, 임기응변식의 것이 아니라 이미 영원 전부터 예정되고 진행되어 온 것임을 나타내 준다. 사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이 여러 차례 예언한 바이다. 그리고 드디어 기약한 때가 되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사 십가가 상에서 구속(救贖)사역을 성취하게 하신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을 위하여 대속적 죽음을 당하신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방법이 오직 이 길밖에 없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예수의 성육신과 대속 수난을 통한 인간 구원의 필연성'에서 상세히 다루었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 경건치 않은 자. - 이와 동일한 사람이 8절에선 '죄인', 10절에선 '원수'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곧 육신에 속하여 하나님 없이 사는 경건치 않은 자들이 생활 가운데서는 마귀에게 속하여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음을 가리키는데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에는 이와 같은 자들 이었다. 이처럼 '경건치 않은'이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필요로 하는 자들의 상황을 잘 나타내 주는 적절한 표현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5:7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5:7 의로운 자를 위하여 죽는 자가 많지 않고, 선한 자를 위하여 용감히 죽을 자가 간혹 있기는 하나,
직역:
5:7 μόλις γὰρ ὑπὲρ δικαίου τις ἀποθανεῖται·
거의 않다 참으로 위하여 의로운자 누군가 죽을 것이다. (동사: 직설법 미래 중간태/디 3단)
ὑπὲρ γὰρ τοῦ ἀγαθοῦ τάχα τις
위하여 참으로 그 선한 혹시 누군가
καὶ τολμᾷ ἀποθανεῖν· (부정사: 과거 능동태)
조차도 감히하나 죽는 것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바울이 본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근본 의미는 의인과 선인을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 가운데는 가끔 타인을 위해 죽는 자도 있긴 하나 그러한 희생적 죽음조차도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대신 죄를 짊어지고 대속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는 비할 바 못된다 는 것이다.
▣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 라이트푸트는 '의인'에 대하여 풀이하기를, '엄격할 정도로 공명정대하여 타인으로부터 비방 당하지는 않으나 호감을 얻지는 못하는 자'라고 하였다. 즉 굳이 설명하자면 의인은 악을 멀리 하기는 하나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는 않는 자이다. 따라서 저가 죽음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선뜻 저를 대신하여 죽음을 자청하는 자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고 평하였다.
▣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 '의인'에 이어 '선인'에 대하여서 라이트푸트는 풀이하기를, '불의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와 친절을 베푸는 데도 인색하지 아니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사는 자'라고 하였다. 즉 선인은 의를 손상치 않음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자이다. 따라서 저가 죽음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에는 평소 저를 흠모하던 자들 중에서 대신하여 죽기를 자청하는 자가 있을 수도 있는 자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본절에서 논하고자 하는 핵심은 의인과 선인을 대비시키는 데 있지 않고 다음 절에 이어지는 죄인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을 강조키 위함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직역:
5:8 συνίστησιν δὲ τὴν ἑαυτοῦ ἀγάπην εἰς ἡμᾶς ὁ θεός,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그 자신의 사랑을 위하여 우리를 그 하나님이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ὅτι ἔτι ἁμαρτωλῶν ὄντων ἡμῶν
때문이다 아직 죄인 있을때에 우리가 (분사: 현재 능동태 소유격 1복)
Χριστὸς ὑπὲρ ἡμῶν ἀπέθανεν.
그리스도가 위하여 우리를 죽으셨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 헬라어 원문에서는 본절이 '그러나'(데)란 접속사로 시작함으로써 앞절에서 언급한 의인 및 선인가 대조되는 죄인된 상태에 있는 현실을 강조한다. 한편 본절의 '죄인되었을 때에'란 표현은 6절의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및 10절의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와 상응하는 구절로서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상태를 보여 준다. 여기서 '죄인'(하마르톨로스)이란 물론 율법적인 측면에 비추어 보아도 우리가 그 의문(儀文)의 규정을 어긴 범죄자임을 가리킨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간이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 이래 그 죄책을 전가 받으므로 전적으로 부패한 죄성을 지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을 수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기대할 수도 없는데 바로 그러한 인간을 위하여 예수께서 친히 대속 죽음을 당하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자연인의 대표로 볼 수 있는 아담과 연결되어 죄인의 위치에 서게 되고,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받게 됨에 대하여는 본장 연구자료, '대표와 연합의 원리 이해'를 참조하라.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 '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르'는 '~을 대신하여', '때문에'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굳이 '위하여'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갖는 대속적 성격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이에 함축되어 있는 인간의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드러내기 위함이라 하겠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여기서 '자기의 사랑'(텐 헤아우투 아가펜)은 '그 자신의 사랑'이란 표현으로 사랑을 주는 주체를 강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7절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은 인간의 사랑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놀라운 신적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 자신의 자발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즉 어느 누구의 모범을 따라 보인 모방적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본성을 좇아 보이신 신적 사랑이니 특별하고도 놀라우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사랑이다. 다음으로 '확증하셨느니라' (쉬니스테신)는 현재 진행의 의미를 지닌 현재형 동사이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 나타내 보이신 사랑이 오고 오는 세대에 걸쳐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부어지고 있음을 뜻한다(5절). 다시 말해서 이는 예수께서 단번에 성취하신 구속 사역의 효력이 영원토록 성도들에게 미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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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5: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e)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5:9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 더욱 그분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
직역:
5:9 πολλῷ οὖν μᾶλλον δικαιωθέντες
많은것에 그러면 더욱 의롭게되었기 때문에 (분사: 과거 수동태 주격 1복)
νῦν ἐν τῷ αἵματι αὐτοῦ
이제 으로 그 피 그의
σωθησόμεθα δι᾽ αὐτοῦ ἀπὸ τῆς ὀργῆς.
구원을 받을것이다 통하여 그로 부터 그 진노로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 1복)
주해
▣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 본절은 언뜻 보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1절)이란 구절과 상치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은 1절이 인간 편에서 의롭다고 칭함 받게 되는 방편을 강조하고 있는 것임에 비해, 본절은 하나님 편에서 제시해 준 칭의의 근거에 관해 강조해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종합하여 이해하면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구약에서 짐승의 피를 흘림으로 예표된 바와 같이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희생 제물이 되사 흘리신 그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된다. 이처럼 인간구원을 위하여 예수께서 반드시 대신 피를 흘려야만 하신 이유는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홀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 때문이었다. 즉 스스로는 죄 없으신 정결한 분이 타인의 죄를 위하여 죄를 지음에 반드시 수반되는 죽음의 형벌을 대신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 더욱.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폴로 말론'은 문자적으로 '보다 더 많이', '더 풍부하게'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정확한 의미는 '보다 더 확실하게'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나타내 보이신 구원을 절대적으로 보증하는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 여기서 '진노하심'이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세상 종말에 있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정한 공의의 심판을 의미한다. 그때 모든 불 신앙인들은 죄인의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영벌(永罰)의 심판에 처해질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들은 영생(永生)의 자리에로 옮기움 받게 될 것이다. 한편 구원은 누구든 예수를 믿는 그 즉시로 주어진다. 그러나 그 최종적이고도 완전한 형태라 할 수 있는 천국에서의 영원하고도 새로운 삶은 예수 재림 시에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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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5: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로 있을 때에도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니, 화목하게 된 우리는 더욱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다.
직역:
5:10 εἰ γὰρ ἐχθροὶ ὄντες κατηλλάγημεν τῷ θεῷ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1복)
만일 왜냐하면 원수들로 있을때에 화목하게되었다면 그 하나님께서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1복)
διὰ τοῦ θανάτου τοῦ υἱοῦ αὐτοῦ,
통하여 그 사망으로 그 아들을 그의
πολλῷ μᾶλλον καταλλαγέντες
많은것에 더욱 화목됨으로서 (분사: 과거 수동태 주격 1복)
σωθησόμεθα ἐν τῇ ζωῇ αὐτοῦ·
구원을 받을것이다 으로 그 생명 그의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 1복)
주해
▣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 앞부분에서 이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 자연인은 '연약하며', '죄인임'(8절)을 밝혔는데 여기서는 보다 강도 높게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과 원수됨을 밝히고 있다. 즉 여기서 '원수'는 죄로 말미암아 절대 공의로우시므로 불의를 용납하실 수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신적 축복에서 소외된 상태에 처해 있을 뿐 아니라, 자연인은 이 세상의 권세를 잡은 사탄과 합하여 하나님께 대항하는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학자들 간에는 이를 능동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으로 보거나, 수동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미워하시는 것으로 보는 견해, 그리고 양자를 종합하여 쌍방적으로 보는 견해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이미 암시했듯이 이 중 전후 문맥에 비추어 볼 때 가장 타당한 것은 두 번째 견해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아 창조된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미워하심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속성 및 그의 진노하심(9절)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타락하고 범죄한 인간은 원수이나 그러한 원수까지도 긍휼히 여기사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속성과 일치하기 때문이다(8절). 그러나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측면도 있음을 전혀 간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죄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있으며 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 이는 곧 1절의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는 말과 같은 구절이다. 여기서 '화목되다'(카탈랏소)는 본래 '교환하다'는 뜻으로 양자 간의 미움과 적개심이 사랑으로 바뀌어 마음이 허물없이 교류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희생 죽음을 당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으니, 이에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이러한 칭의를 근거로 하나님과의 본래 관계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 '그의 살으심'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속 죽음을 당하사 덕분에 이미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도의 궁극적 구원의 근거는 예수의 부활에 있다. 만일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성도의 부활도 있을 수 없으니 영생에 대한 소망은 헛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십자가에서 수난 당하신 후 다시금 살아나 승천하신 예수께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시니 이에 우리의 궁극적 구원은 더욱 확고한 것이다. 1절 주석 참조, 이와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기까지 하셨는데 다시금 살아나신 그분께서 어떻게 우리를 멸망 가운데 그냥 버려두실 수 있겠는가?'라고 한 그레다너스의 말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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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5:11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5:11 이뿐 아니라 우리는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다.
직역:
5:11 οὐ μόνον δέ,
아니라 오직이뿐 그러나
ἀλλὰ καὶ καυχώμενοι ἐν τῷ θεῷ
다만 그리고 기뻐하며 안에 그 하나님께 (분사: 현재 중수디 주격 1복)
διὰ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통하여 그 주 우리들 예수 그리스도
δι᾽ οὗ νῦν τὴν καταλλαγὴν ἐλάβομεν.
통하여 그분 이제 그 화목을 우리가 얻었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1복)
주해
▣ 이뿐 아니라. - 앞부분에 나오는 바와 같이 의롭다함을 받으며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미래에 구원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미래의 소망은 현재에도 기쁨이 됨을 밝히기 위한 도입부이다.
▣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성도들이 이처럼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원한 죄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 문제를 깨끗이 청산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하여 하나님을 자신의 주(主)로 섬기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장차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십자가상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우리의 궁극적이고도 완전한 구원을 보장해 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현세에서의 삶이 비록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넉넉히 이를 극복해 나가는 가운데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실로 하나님을 떠나 참된 평안을 잃었던 자들이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 안에 거하므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진정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로마서 5장 12-14절 【아담 후손의 죄의 보편성】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2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또 그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으며, 그리하여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렀으니, 이는 모든 이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직역:
5:12 Διὰ τοῦτο ὥσπερ δι᾽ ἑνὸς ἀνθρώπου
이러 므로 같은 통하여 한 사람으로
ἡ ἁμαρτία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εἰσῆλθεν
그 죄(세력)이 으로 그 세상 들어왔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διὰ τῆς ἁμαρτίας ὁ θάνατος,
또한 통하여 그 죄로 그분 사망이
καὶ οὕτως εἰς 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 ὁ θάνατος διῆλθεν,
역시 이와같이 으로 모든 사람 그 사망이 왔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ἐφ᾽ ᾧ πάντες ἥμαρτον·
으로 바 모든사람이 죄를 지었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주해
본장에서 바울은 지금까지 이신득의 의 결과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하여 언급하였다. 이제 본절에서부터는 이신득의의 원리가 어떻게 성도들에게 적용되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밝히는 원리라 할 수 있는 '대표와 연합의 원리'에 관하여 언급하기 시작한다.
▣ 이러므로. - 이는 앞부분과 본절 이하 부분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이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앞부분에서는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이 누릴 축복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본절 이하 부분은 아담으로 인한 죄의 시작이 다루어지므로 인과를 나타내는 접속사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새로운 문두를 이끄는 단순 접속사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공동번역은 아예 이를 생략하고 있다.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 여기서 '한 사람'이란 14절에 분명히 밝혀져 있듯이 최초로 창조된 인간 아담을 가리킨다. 그런데 굳이 그를 '한 사람'으로 언급하고 있음은 저가 혈통상 그의 후손인 온 인류의 대표자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죄'는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자유 의지에 입각해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면 어떻게하여 이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온 세상에 죄악을 몰고 오게 되었는가? 이에 대해 해리슨은 마치 한 방울의 독이 물그릇에 떨어졌을 때 온 물이 유독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 비유적 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들어 설명한다. 첫째, 죄책(罪責)이다. 즉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의 범죄는 그 자신은 물론 모든 후손에게까지 법적 책임을 묻게 한다는 것이다. 둘째, 오염(汚染)이다. 즉 아담의 타락은 인간 각 개인의 심령을 부패시켰을 뿐 아니라 온 인류를 부패시켰다는 것이다.
▣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 여기서 '사망'이란 단순히 육체적 죽음 뿐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단절되는 것까지 의미한다. 더욱이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죽음'이 찾아드는데 곧 영영토록 지옥 형벌을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와 같은 죽음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렸기 때문에 온 인류에게 닥친 것이다.
▣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 '엡 호 판테스 헤마르톤'을 보다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모든 사람이 그 안에서 죄를 지었다'이다. 즉 모든 사람이 인류 조상 아담의 후예로서 죄를 범하였다는 뜻이다. 이는 곧 신학적으로 원죄설(原罪說)의 근거가 된다. '원죄'란 온 인류의 대표인 아담의 죄책과 오염이 모든 후손에게 전달되어 나타나, 후손 역시 스스로 범하는 자범죄(自犯罪) 외에도 본래적인 죄가 있음을 가리킨다. 이에 관해서는 그랜드 종합 교리 인간론 중 '죄의 구분'을 참조하라.
▣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이르렀다'(디엘덴)는 '퍼져 나가다', '확산되다'는 뜻으로 한 사람의 행동의 결과가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아담의 후예로서 인간의 연대(連帶) 의식과 연대 책임을 강조하는 성경의 가르침과 부합되는 개념이다. 사실 죄의 삯은 사망이니 아담 안에서 범죄한 모든 자에게 사망이 이르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5:13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5:13 율법이 있기까지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다.
직역:
5:13 ἄχρι γὰρ νόμου ἁμαρτία ἦν ἐν κόσμῳ,
때까지 왜냐하면 율법의 죄가 있어왔다 에 세상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ἁμαρτία δὲ οὐκ ἐλλογεῖται μὴ ὄντος νόμου,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3단)
죄가 그러나 아니다 여겨진다 아니다 있지 율법이 (분사: 현재 능동태 소유격 단수)
주해
▣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 '율법 있기 전'이란 율법 이전 시대, 곧 아담 이후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율법을 받아 이를 기록하게 된 모세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요지는 과연 이 기간에도 '죄'라고 하는 것이 존재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관한 바울의 답변은 이 기간에도 사망이 인간을 지배한 것으로 보아 비록 율법에 의해 정죄당하지는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정죄당한 인간의 범죄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이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받은 것이나, 노아 시대 당시의 사람들이 너무나 패역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홍수 심판을 받은 것 등은 아담으로부터 죄책과 죄의 성향을 물려받은 그 후손들이 스스로도 범죄하기를 서슴지 않았음을 잘 드러내 준다.
▣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친히 주신 최초의 율법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구약 시대 사람들의 가장 바른 행동 규범이 되었으며 이를 어길 시에는 어떻게 정죄당하고 처벌받게 되는지의 규준(規準)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로는 이러한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에도 인간은 비록 원시적인 형태의 것이긴 하나 스스로의 도덕규범과 불문률(不文律), 더욱이 이방 세계의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성문률(成文律) 등에 의해 자신들의 죄악된 행위를 규제하고 통제해 나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인간의 죄악된 행위들을 정죄하사 사망의 형벌을 내리셨다. 그러면 본절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에는 사람들이 범죄하고서도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는 철저한 죄의식(罪意識)을 지니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세 율법이 입법되고 난 뒤부터는 죄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것이란 사실과, 정죄의 당위성을 객관적 기준에 의해 인식케 된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앞에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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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5:14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자들에게도 사망이 다스렸으니,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이었다.
직역:
5:14 ἀλλ᾽ ἐβασίλευσεν ὁ θάνατος ἀπὸ Ἀδὰμ μέχρι Μωϋσέως
그러나 왕노룻하다 그분 사망이 부터 아담 까지 모세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ἐπὶ τοὺς μὴ ἁμαρτήσαντας ἐπὶ
역시 위에도 그(분들) 아니다 죄를 지은 위에 (분사: 과거 능동태 목적격 복수)
τῷ ὁμοιώματι τῆς παραβάσεως Ἀδὰμ
그 같이 그 범죄 아담의
ὅς ἐστιν τύπος τοῦ μέλλοντος. (분사: 현재 능동태 소유격 단수)
아담은 이다 표상 그(분) 장차오시는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그러므로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 '아담의 범죄'란 하나님께서 주신 특수한 계명, 곧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한 명령을 어긴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후 모세의 율법이 입법되기 전까지의 기간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을 해라' 또는 '~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다는 언급은 없다. 본절은 바로 이러한 율법 이전 시대에 범죄한 자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 즉 이들은 비록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계명을 받고서 그것을 어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하였는데 그 까닭은 아담으로부터 죄성을 이어받아 동일한 쾌락과 부패의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 이는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와 같은 말로서 아담의 타락 이래 한 사람도 범죄치 않으므로 죄의 필연적 결과인 사망에서 벗어난 사람이 없었음을 반증해 준다.
▣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 '오실 자'(투 멜론토스)를 중성으로 본다면 앞으로 닥쳐올 일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를 보편적인 사람들의 입장과 같이 남성으로 본다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표상'(튀포스)은 '전형' 또는 '모형', '예표'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라는 것은 아담의 행위가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듯이 그리스도의 행위 역시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아담이 혈통상 온 인류의 대표자로서 그들 모두와 연합 관계에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의(義)의 대표자로서 자신을 믿고 의롭다 함을 얻는 모든 자들과 연합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소위 '대표와 연합의 원리'라고 일컫는다. 이에 대해 보다 상세한 것은 본장 연구 자료를 참조하라. 그러나 그 연합의 내용에 있어서는 아담이 죄와 사망이란 결과를 낳은 반면, 그리스도는 의와 생명이란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다.
로마서 5장 15-21절 【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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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5:15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한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쳤습니다.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않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더욱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
직역:
5:15 Ἀλλ᾽ οὐχ ὡς τὸ παράπτωμα,
그러나 아니다 같은 그 범죄와
οὕτως καὶ τὸ χάρισμα·
이와같이 역시 그 은사도
εἰ γὰρ τῷ τοῦ ἑνὸς παραπτώματι οἱ πολλοὶ ἀπέθανον,
만일 왜냐하면 그 그 한사람의 범죄로 그 많은 사람이 죽었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πολλῷ μᾶλλον ἡ χάρις τοῦ θεοῦ
많은일에 더욱 그 은혜 그 하나님의 [하나님의 은혜: 신성한 영향을 나타냄]
καὶ ἡ δωρεὰ ἐν χάριτι τῇ τοῦ ἑνὸς ἀνθρώπ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그리고 그 선물이 안에 은혜 그 그 한 사람의 예수 그리스도
εἰς τοὺς πολλοὺς ἐπερίσσευσεν.
에게로 그 많은사람 넘쳤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그러나. -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 즉 모형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서로 공통성을 가진다. 그러나 전자는 인류에게 멸망을, 후자는 구원을 가져왔다는 양자 간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는 문장의 도입부로 사용된 역접어이다.
▣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 일반적으로 '은사'(카리스마)는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성령이 주시는 선물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나, 여기서는 그보다 앞선 보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은총,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가리킨다. 그리고 '범죄'(파랍토마)는 '허물'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분부하신 바에서 이탈한 아담의 타락 행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양자가 서로 같지 않음은 그 미친 영향이 판이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하여 바울은 본절 이하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와 같은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모든 사람' 대신 '많은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한 사람'과 대비시켜 그 파급성이 절대적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그 의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즉 한 사람 아담의 범죄는 많은 사람의 죽음을 초래했는데, 그와 달리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은 도리어 많은 사람의 구원을 가져온 것이다.
▣ 더욱. - 이는 단순한 양적인 비교이기보다는 질적인 차원에서의 월등함과 확실성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그로 말미암은 선물'은 모두 같은 말로서 구원의 은총을 가리킨다. 이는 성부 하나님의 구원을 계획하신 그 같은 은혜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부 하나님 계획에 순응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속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 속에 포함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란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 '넘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릿슈오'는 물이 강둑을 넘쳐 겉잡을 수 없이 되듯하는 상황을 묘사한 단어로서 '초과하다', '능가하다'로 번역된다. 이는 곧 하나님의 은총이 아담이 저질러 놓은 죄의 결과를 훨씬 능가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은 저를 믿는 자들을 모두 구원하고도 남을 정도로 넉넉하고 다함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지 못함은 저들이 예수를 믿고 그분의 피 공로를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5:16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범죄에서는 심판이 뒤따라 와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마는,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5:16 또 이 선물은 죄를 범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긴 결과와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들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르렀다.
직역:
5:16 καὶ οὐχ ὡς δι᾽ ἑνὸς ἁμαρτήσαντος τὸ δώρημα·
또한 아니다 같이 통하여 한사람 죄를 지은 그 선물은 (분사: 과거 능동태 소유격 단수)
τὸ μὲν γὰρ κρίμα ἐξ ἑνὸς εἰς κατάκριμα,
그 한편 왜냐하면 심판은 부터 한사람으로 위하여 정죄
τὸ δὲ χάρισμα ἐκ πολλῶν παραπτωμάτων εἰς δικαίωμα.
그 다른 한편 은사는 부터 많은 범죄들로 안으로 의로움을
주해
본절에서 바울이 비교하고 있는 '심판'과 '은사'의 차이점을 보다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물건을 가득 쌓아 둔 창고에 화재를 일으킨 최초의 상자 하나에 붙은 불이 심판이라면, 그 불로 인하여 창고 안의 모든 물건이 다 타버리기 전에 진화(鎭火)하는 것이 바로 은사인 것이다. 이처럼 심판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어 모든 사람을 정죄하는 결과를 낳았으나, 은사는 모든 사람이 정죄 받은 그 상황을 의롭다 함을 받는 상황으로 바꾸어 놓는다.
▣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 공동번역은 이를 '아담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의 심판을 받게 되었지만'으로 번역하고 있다. 즉 본절은 심판이 전 인류로 확산되는 죄의 전가(轉據)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서는 그랜드 종합교리 '인간론' 부분을 참조하라.
▣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 공동번역은 이를 '은총의 경우에는 죄 지은 많은 사람이 은총을 거저 입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의롭다 함'은 칭의(稱義),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저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 이상에서 보듯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공의로 심판하신다면 인간은 모두 정죄당하여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피 공로를 보시고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칭해 주셨으니 이에 우리는 영생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능가함을 알 수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5:17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생명으로 지배할 것이 아닙니까?
5:17 한 사람의 범죄로,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다스렸다면,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더욱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다스릴 것이다.
직역:
5:17 εἰ γὰρ τῷ τοῦ ἑνὸς παραπτώματι
만일 왜냐하면 그 그 한사람의 범죄로
ὁ θάνατος ἐβασίλευσεν διὰ τοῦ ἑνός,
그 사망이 왕노룻하였다 통하여 그 한사람으로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πολλῷ μᾶλλον οἱ τὴν περισσείαν τῆς χάριτος
많은 일에 더욱 그(사람) 그 넘침을 그 은혜와
καὶ τῆς δωρεᾶς τῆς δικαιοσύνης
그리고 그 선물의 그 의로움의
λαμβάνοντες ἐν ζωῇ
받는 안에서 생명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βασιλεύσουσιν διὰ τοῦ ἑνὸ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왕노룻할 것이다 통하여 그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3복)
주해
이미 앞부분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아담의 죄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와 더불어 그 근거로서 대표와 연합의 원리가 드러나 있다. 이처럼 거듭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중에도 바울은 조금씩 그 강조점을 달리하고 있는데 본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여기서는 사망이 폭군처럼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였음을 들어 사람이 어떻게 하지 못한 채 그냥 죄의 종노릇하고 있는 죄인의 상태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어서 그것과 대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누림은 물론 그분과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될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자들의 상태를 강조한다. 이는 실로 동일하게 죄된 육체 가운데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전혀 반대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라 하겠다.
▣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 보다 정확히는 '은혜, 즉 의의 선물'이다. 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어지는 칭의와 구원을 가리킨다.
▣ 한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 이처럼 대속의 죽으심을 자발적으로 수행하신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아담의 죄악으로 인해 인류를 지배해 온 사망의 권세가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다. 그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여 죄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영광'이란 부활의 영광 및 그분의 우주적 통치를 가리킨다. 이처럼 성도들이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後嗣)로서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는 사실은 성경이 분명히 증거하고 있는 바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5:18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아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5:18 그러므로 한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
직역:
5:18 Ἄρα οὖν ὡς δι᾽ ἑνὸς παραπτώματος
그래서 그러므로 같이 통하여 한 범죄를
εἰς 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 εἰς κατάκριμα,
향하여 많은 사람들을 으로 정죄
οὕτως καὶ δι᾽ ἑνὸς δικαιώματος εἰς
이와같이 역시 통하여 한 의로운 행위를 향하여
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 εἰς δικαίωσιν ζωῆς·
많은 사람들을 으로 의로움 생명의
주해
▣ 그런즉. - 12-17절의 내용을 결론짓는 말이 시작될 것임을 나타내주는 접속사이다. 즉 바울은 지금까지의 논의에 의거하여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담과 어떻게 다른지를 얘기하려 하고 있다.
▣ 한 범죄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 이 말은 '한 사람의 범죄'로 이해할 수 있다. 19절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온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을 가리킨다.
▣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 '한 사람의 의로운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19절에는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곧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상에서 대속 죽음을 당하심으로 저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의롭다 함'을 얻게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가리킨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5: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이다.
직역:
5:19 ὥσπερ γὰρ διὰ τῆς παρακοῆς τοῦ ἑνὸς ἀνθρώπου
같이 왜냐하면 통하여 그 불순종을 그 한 사람의
ἁμαρτωλοὶ κατεστάθησαν οἱ πολλοί,
죄 있는 상태로 되었다 그 많은 사람이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3복)
οὕτως καὶ διὰ τῆς ὑπακοῆς τοῦ ἑνὸς δίκαιοι
이와같이 역시 통하여 그 순종의 그 한사람의 의로운
κατασταθήσονται οἱ πολλοί.
상태로 될 것이다. 그 많은 사람이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 3복)
주해
▣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같이. - 아담이 지은 죄의 성격을 규명해 주고 있는 말이다. 즉 아담은 어쩔 도리 없이 불가피하게 범죄한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에 입각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른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여지가 없었으며, 이미 경고되었던 사망의 형벌을 받고 만 것이다.
▣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 아담이 자발적으로 범죄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였음을 강조해 주는 말이다. 즉 아담은 교만하여 하나님과 동등해지려고 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근본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자기를 낮추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이다. 더욱이 이 양자의 결과는 너무나 엄청난 차이를 낳았으니 아담의 불순종은 자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에게 사망이 이르는 파괴적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자신이 다시금 본래의 영광을 되찾았음은 물론 자신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도 사망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는 회복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즉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차대하고도 복된 일인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 의인이 되리라. -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죄인이 된 것같이'에서는 '되다'(카테스타데산)가 과거 시제로 쓰인 반면, '의인이 되리라'에서는 '되다'(카타스타데손타이)가 미래 시제로 쓰이고 있는 점이다. 이에 관하여 렌스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이미 정죄의 심판을 받은 셈이나, 그분의 피 공로를 믿고 의롭다 함을 얻는 자들은 과거에도 생겨났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듯이 앞으로도 생겨날 것이기 때문에 이처럼 서로 다른 시제를 사용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한편 '의인이 되리라'는 말에는 이밖에도 다른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구원의 현재성과 미래성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5:20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많아지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으니,
직역:
5:20 νόμος δὲ παρεισῆλθεν,
율법이 그러나 옆에 들어왔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ἵνα πλεονάσῃ τὸ παράπτωμα·
위하여 더 많아지다면 그 범죄가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단)
οὗ δὲ ἐπλεόνασεν ἡ ἁμαρτία,
곳에 그러나 풍성하였다 그 죄가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ὑπερεπερίσσευσεν ἡ χάρις,
더욱 풍성하였다 그 은혜가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비록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생략하고 있으나 헬라어 성경에는 본절 초두에 접속사 '데'가 나와 있다. 이는 '한편', '그러나', '게다가'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로 지금까지 이야기하던 논조에 추가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단어이다.
▣ 율법이 가입한 것은. - '가입하다'(파레이세르코마이)는 '곁에 들어오다', '부가되다', '미끄러져 들어오다', 현대어 성경)는 뜻으로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쓰인 단어이다. 즉 아담의 범죄로 인한 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인해 칭의와 구원으로 회복되었는데 율법은 아담과 그리스도 그 중간에 왜 주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 이는 결코 율법이 사람들을 충동시켜 더욱 범죄하게 했다거나 율법 자체가 악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죄로 깨닫게 해주는 율법의 역할을 강조하여 표현한 것뿐이다. 또한 이는 율법의 요구에 역행하는 인간의 죄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즉 율법 자체는 인간의 죄성을 억누르거나 사람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완전히 수행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율법에 비추어 볼 때 도저히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인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깨닫게 해주어 하나님의 긍휼과 그분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길을 갈망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가리켜 바울은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蒙學先生)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표현하였다.
▣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이는 곧 사람들이 죄를 죄인줄로 알고 괴로워하며 절망할 때 하나님께서 죄 사함과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것을 뜻한다. 즉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죄 사함도 있을 수 없으나 이를 깨닫고 몸부림치며 그리스도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할 때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이 죄를 깨끗이 도말(塗抹)해 버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율법을 가입시킨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이로써 분명히 알 수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5: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로 사람을 지배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다스린 것같이, 은혜도 의로 말미암아 다스리므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직역:
5:21 ἵνα ὥσπερ ἐβασίλευσεν ἡ ἁμαρτία ἐν τῷ θανάτῳ,
위하여 같이 왕노릇 하였다 그 죄의세력이 안에서 그 사망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οὕτως καὶ ἡ χάρις βασιλεύσῃ
이와같이 역시 그 은혜도 왕노릇 하면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단)
διὰ δικαιοσύνης εἰς ζωὴν αἰώνιον
통하여 의로 위하여 생명을 영원한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그 주 우리
주해
▣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같이.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구원이 있기 전에는 실상 모든 사람이 죄에게 종노릇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이후에는 죄의 한계가 분명해진다. 즉 죄는 그분의 구속 사역을 믿지 아니하고 그 피 공로를 힘입기 거부하는 자들에 한해서만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죄'라는 왕은 '온 인류'를 신하로 삼고서 '사망'이라는 권세로 다스리려고 했지만, 의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므로 여지없이 그 권세가 깨어지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에 대하여서는 더 이상 왕 노릇하지 못하는 제한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 앞부분과 완전히 대조되는 본절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서는 '왕 노릇하여' 앞에 '영생 안에서' 라는 말을 부가함이 좋다. 즉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칭의에 의하여 사람들을 영생에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런즉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도 요한의 말씀을 상기할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 ‘영생’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오니오스 조에'는 문자적으로 '영원한 생명'이란 뜻이나 궁극적으로 '행복에 가득찬 진정한 삶'을 의미한다. 즉 이는 단순히 영원토록 사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장차 불못 가운데서 고통당하게 될 자들도 영원토록 죽지 않게 되나 그것은 오히려 죽는 것보다도 못한 고통스러운 삶일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보는 5장의 간단 개요와 구조 연구 설명입니다.
5:1-11 = 믿음으로 의롭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과 화평[교통]을 누려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되고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아들의 죽으심으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에 대한 사랑의 확증때문이다.
이는 1:18-5:11에서 죄의 진노와 형벌에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구원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을 가져야 죄의 능력의 지배하는 죄의 법에서 벗어나고 해방되어 거룩함에 이른다.5:12-8:4
5:12-21 = 아담과 육신적 연합으로 - 죄를 지어[12] 심판으로[16]정죄에 이르렀고[18-] 결국 사망[12 14 21]에 이르게되었다.
그리스도와 영접연합은 - 은혜로[15 20] 의롭다하심을 받아[16 17 18 19] 생명으로[17] 영생[21]에 이르게 하려 함이다
아직 직역을 못했네요
목사님의 열정에 저도 모르게 활력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