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
[1절]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그러므로’라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신 분이시므로’라는 뜻이다. ‘모든 들은 것’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을 가리킨다. 이미 1:2-3에서 말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그의 본체의 형상이시며 그를 통하여 모든 세계가 창조되었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고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셨으며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고 만유의 후사이시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하시는 일 곧 창조와 섭리의 일을 하시고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와 영광을 누리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가 들은 이 모든 진리들을 더욱 간절히 삼가야 한다. ‘삼간다’는 원어(프로세코)는 ‘주의한다. 주목한다’는 뜻이다. ‘더욱 간절히’라는 말은 강조하는 말이다.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는 말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이라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모든 들은 것에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배운 많은 성경 진리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더욱 간절히 주의하고 주목해야 한다.
[2-4절] [이는]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공의로운]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피할까 함이라.]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본문은 우리가 모든 들은 것을 더욱 간절히 삼가야 할 이유를 말한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은 구약시대에 주신 율법들을 가리킨다. 우리가 받은 구원을 ‘이같이 큰 구원’이라고 말한 것은 천사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구원이며 죄사함과 영생을 주시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값없이 받은 은혜의 구원을 어떻게 소중히 여기고 간절히 주의하고 주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천사들을 통해 주신 율법도 어길 때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받았다면, 천사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구원을 우리가 소홀히 여길 때 얼마나 더 큰 심판을 받겠는가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구원을 거절하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요 3:36). 이것은,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범죄치 말고 진지하게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본문은 이 구원의 확실함에 대해 몇 가지로 증거한다. 첫째로, 이 구원은 처음에 주(主)로 말씀하신 바이다. 구원의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증거하신 내용이다. 마가복음 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둘째로, 이 구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이다. ‘들은 자들’은 주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따랐던 제자들을 가리킨다. 히브리서 저자가 ‘들은 자들’과 ‘우리’를 구별한 것을 보면,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제자들에게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 예수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은 구원의 복음을 확증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그가 행하신 기적들을 직접 보았던 증인들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셋째로, 하나님도 기적들과 초자연적 은사들로 함께 증거하셨다. ‘표적’과 ‘기사’와 ‘능력’은 기적을 표현하는 세 단어이다. 표적(sign)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어떤 진리를 확증하심을 보인다. 기사(奇事, wonder)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줌을 나타내고, 또 능력(power)은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보인다. 또 ‘성령의 나눠주신 것’이라는 말은 성령의 은사들, 특히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 즉 방언, 예언, 병 고침, 기적 행함 등을 가리킨다. ‘자기 뜻을 따라’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나눠주심을 의미한다. 기적들과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시는 수단들이었다.
이와 같이, 성경이 증거하는 구원은 여러 면으로 확증된 확실한 것이요, 결코 불확실한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증거하신 바이었고, 그의 교훈들과 행한 일들을 직접 듣고 본 제자들이 확증한 바이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기적들과 성령의 은사들로 친히 증거하신 바이었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확실한 구원을 소홀히 여기고 등한히 여긴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5-9]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 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人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휘페르 판토스)[각 사람을 위하여](관사가 없을 때)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우리의 말한 바 장차 오는 세상’은 복음의 내용인 천국을 가리킨다. 본문에 인용된 시편 8편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존귀케 창조하셨음을 노래한 시이다. 본문은 사람이 범죄함으로 인해 잠시 천사보다5) 못한 존재가 되었으나 결국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을 의미한다. ‘잠깐’이라는 원어(브라퀴)는 ‘잠시’ 혹은 ‘조금’이라는 뜻이다. 개인의 일생인 100년과 인류의 역사 6,000년은 ‘영원(永遠)’에 비추어 볼 때 ‘잠시’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려 하셨으나, 사람은 타락 후 오히려 만물에게 복종하고 있다. 우상숭배가 그렇다. 그러나 사람은 마침내 만물을 다스리도록 영광스럽게 회복될 것이다. 본문은 시편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시킨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택한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맛보셨다. 예수께서 택함 받은 각 사람을 대신해 죽음을 맛보신 것은 죄의 형벌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죄는 자신의 죽음이나 구주의 대리적 죽음을 필요로 하였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께서는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앉으심으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
[10절] 만물이 인하고(디 호 타 판타)[만물이 그 분 때문에 있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라는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킨다. ‘많은 아들들’은 택함 받은 자들을 가리킨다.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가리킨다. 구원의 목표는 영광 곧 죄가 하나도 없는 상태이다.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다는 말은 인간 예수께서 고난을 받음으로 온전한 구주가 되셨음을 말한다.
[11-13절]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거룩하게 하시는 자’는 예수님이시며,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성도들이다. ‘다 하나에서 났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이 우리와 같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형제’라고 부르셨다(마 28:10; 요 20:17). 메시아 예언시인 시편 22:22에서도 그는 성도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부른다. 또 ‘내가 그를[하나님을] 의지하리라’는 말씀도 그의 인성의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심을 보인다.
[14-16절]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6)
예수께서 성도들과 같이 사람이 되신 것은 그들을 돕고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 사람이 되신 목적은 네 가지로 표현된다.
첫째로, 그것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기 위함이셨다. 마귀는 죄와 어두움의 세계의 왕이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므로, 그는 또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택자들의 모든 죄와 그 형벌을 담당하여 죽으심으로 마귀의 권세를 파하셨다.
둘째로, 그것은 죽음의 공포에서 일평생 종노릇하며 살던 모든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이었다.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일평생 죄와 돈과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노예상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17-18절]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救贖)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셋째로, 그것은 구원의 일에 있어서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救贖)하려 하심이셨다. 예수님의 대제사장 사역은 사도들의 서신서들에 증거되어 있고 그것이 복음의 핵심이지만, 그가 대제사장이라고 부른 책은 히브리서가 유일하다. ‘구속(救贖)한다’고 번역된 원어(힐라스코마이)는 ‘유화(宥和)한다, 노를 누그러뜨린다’는 뜻이다. 성경적 속죄 개념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노를 누그러뜨린다는 뜻이 있다.
넷째로, 그것은 친히 시험과 고난을 당하심으로 이 세상에서 많은 시험과 고난을 받는 택한 백성들을 도우시기 위함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놀라운 구주이시다. 그는 하나님이시지만 낮아지셔서 사람이 되셨고, 또 죄가 없으셨으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가난과 비천함, 모욕과 핍박과 비난, 고난과 죽음을 경험하셨고 특히 인간의 시험과 연약을 다 경험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는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구주가 되셨다.
히브리서 2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이 크고 확실한 구원을 잘 보존해야 한다(1, 2절).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친히 이루신 큰 구원이며 많은 증인들의 증거와 하나님 자신의 기적들과 은사들로 증거하신 확실한 구원이다. 우리가 아무리 귀한 보화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잘 보존하지 못하고 잃어버리거나 도적을 맞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귀한 보화일수록 보관을 잘해야 한다. 구원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가치 있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마귀에게 도적 맞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신앙생활은 사람편에서의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고귀한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더욱 간절히 주목하고 조심해야 한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고난과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셨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의 사역의 핵심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죄책과 죄의 형벌을 담당하신 대속의 죽음이었다. 그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없이하시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일평생 종노릇하며 살던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함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마귀의 권세는 파하여졌다. 우리의 모든 죄책과 죄의 형벌이 단번에 다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죄책과 죄의 형벌에서 해방되었다.
넷째로, 우리의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친히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많은 시험과 고난을 받는 그의 택한 백성들을 도우실 수 있다. 그는 친히 사람이 되셔서 사람의 가난과 비천한 환경을 경험하셨고 사람들에게 모욕과 비난, 핍박과 고난을 받으셨고 친히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셨다. 그는 이 세상을 사는 우리를 친히 동정하시고 도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