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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변화산 사건
1-13절, 변화산 사건, 엘리야가 먼저 왔음
[1-2절]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엿새 후라고 날짜를 꼽은 이유는 바로 앞부분의 예언대로 세 제자들이 주께서 그의 나라에 임하시는 영광을 미리 보았음을 증거하는 것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서 변형되셔서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 그것은 그의 본래의 영광, 곧 그의 신성(神性)의 영광을 보이신 것이었다. 영광의 주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의 본질을 취하셨고 그것도 연약하고 낮은 모습을 취하셨다. 이사야 53:2에 보면, 선지자 이사야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예언했었다. 사도 바울은 그에 대해 이 세상의 관원들이 그를 알지 못하여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했다(고전 2:8).
[3-5절]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말씀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였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직접 받은 인물이었다(요 1:17).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해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다”고 증거하셨다(민 12:7-8). 엘리야는 선지자들 중에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산 채로 하늘로 올리운 특별한 인물이었다. 그 둘이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말씀하는 것은 예수께서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증거했다고 보인다.
베드로는 예수께 말하였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그가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이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친 음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또한 후시대에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친 음성으로 아들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여 주셨다.
베드로는 후에 그의 두 번째 서신에서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예수님의 신성(神性)의 영광을 눈으로 보았고 귀로 들었으며 하나님께서 친 음성으로 주신 증거를 들었다고 말하였다. 베드로후서 1:16-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6-8절]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그의 신성의 영광의 나타남은 짧은 시간 동안만이었다.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경험의 반복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영광의 주로 확실히 믿고 그 믿음대로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그를 위해 사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것이 필요하다.
[9절]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영광은 참된 믿음을 위해서만 알려질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광을 오용치 않도록 주께서는 그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자신이 알려지지 않게 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그의 신적 영광과 기적들은 단순한 호기심의 만족이나 지상 왕국 건립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또 믿으려 하는 자들에게는 성경에 증거되고 기록된 이런 일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확실한 표들이다.
[10절]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말라기 4:5-6은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고 예언하였다. 당시 성경학자들인 서기관들은 이 예언이 메시아께서 나타나시기 전에 엘리야 같은 한 선지자가 나와서 대중들을 회개시킬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11-1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人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엘리야가 먼저 왔다는 것은 사람의 환생(還生)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승천한 엘리야가 다시 어린 아기로 출생하거나 하늘로부터 강림할 수는 없다. 이 예언은 한 선지자가 엘리야의 심령으로 나타나 엘리야 당시와 같이 배교적인 시대의 상황을 거슬러 외로이 그러나 능력 있고 충성되게 사역할 것을 의미한 것이다. 그 선지자가 왔다. 그가 세례 요한이었다. 누가복음 1:17에 증거한 대로, 그의 출생을 예언했던 천사는,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서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말하였다.
그가 예언대로 왔으나,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해 임의로 대우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고 그의 가르침대로 회개의 세례를 받았으나, 대중의 지도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와 비슷하게, 메시아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에게도 합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도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많은 고난과 죽임을 당하실 것이다. 무지한 대중들은 그를 핍박하는 일에 동참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눈과 귀가 열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를 공경하고 따를 것이다. 동일한 인물에 대해 또 동일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그 두 부류는 나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래의 영광, 즉 그의 신성(神性)의 영광을 알아야 한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광의 주님이시다. 그는 본래 하나님이시다(요 1:1).
둘째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친히 음성으로 예수님에 대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증거하셨다. 그것은 주의 제자들을 위해 또한 후시대에 그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증거이었다. 우리는 이 증거들을 믿어야 한다.
셋째로, 영광의 주께서는 연약하고 낮고 비천한 사람의 몸으로 오셨고 고난을 당하셨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우리는 낮아지시고 고난과 죽임을 당하신 주님을 믿고 또 본받아야 한다.
14-27절, 간질병 아들을 고쳐주심, 반 세겔 세금을 내심
[14-16절]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린 사람은 예수님의 신성(神性)과 신적 능력을 인정하였고 예수께서 자기 아들의 불치의 병을 고쳐주실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아들의 병은 간질병이었다.26) 그 아들은 그 병으로 심히 고생하고 있었고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졌다. 몸이 상했고 여러 번 죽을 위험도 겪었다. 그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지만, 그들은 그를 고치지 못하였다.
[17-18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제자들이 그 병을 고치지 못한 것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병을 고치려는 제자들도, 병 고침을 받으려는 당사자도 믿음이 없었다. 믿음이 없으면 병을 고칠 수 없고 병 고침을 받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20절에서 믿음을 강조하셨다. 그는 고향 나사렛에서도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고 배척하므로 아무 권능도 행하지 못하시고 소수의 병자들에게만 안수하여 고치셨었다(막 6:3-5).
예수께서는 간질로 고생하는 그 아들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신 후, 그 병을 꾸짖으셨고 그러자 그에게서 귀신이 나갔고 그 아이는 그때부터 나았다. 그 아이가 미친 것같이 자주 발작을 한 것은 단지 신체적 이상이 아니고 귀신으로 인해 일어난 현상이었다. 성경은 모든 병이 다 귀신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본문의 사건처럼 어떤 병은 귀신으로 인한 것임을 증거한다(눅 13:11의 경우도).
[19-20절] 이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믿음이 없기 때문이라](전통본문).27)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겨자씨는 매우 작은 씨이다. 주께서는 제자들이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도 없음을 말씀하셨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자들이다. 주께서는 그들이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저기로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기적주의를 가르치신 말씀이 아니다. 성경은 기적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슨 일이나 어떤 동기나 의도를 가지고서든지 믿음을 가지고 명령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나님께 구하면 얻을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성경의 일반적 교훈에 맞다.
[21절] [그러나 이런 유는 기도와 금식으로가 아니고서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전통본문).28)
주께서는 기도와 금식을 강조하셨다. 금식은 간절한 기도이다. 예수께서는 다른 곳들에서 강청의 기도를 가르치셨다(눅 11:8). 또 그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탄원한 과부의 비유에서 낙심치 않는 간절한 기도도 가르치셨다(눅 18:1-8).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의 부르짖는 간구, 특히 금식 기도를 잘 들어주실 것이다.
[22-23절]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人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심히 근심하였다.
[24-26절]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반 세겔’이라는 원어(디드라크몬)는 ‘두 드라크마’라는 뜻의 단어이다. 이것은 성전 세금이다. 출애굽기 30:11-16에 보면, 이스라엘의 20세 이상된 모든 사람은 생명의 속전(贖錢)으로 반 세겔을 내어야 했고 그 돈은 성막 봉사에 쓰였다. 베드로는 주께서 세금을 안 내는 자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시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아마 그는 자신과 주님께 돈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의 대답은 주께서 모든 것을 처리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한 것이었다고 본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말하기 전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그의 한 일을 알고 계셨다. 그의 지식은 사람의 제한성을 초월하신다. 관세(텔로스)는 소득세, 통행세를 가리키고, 정세(켄소스)는 인두세나 주민등록세를 가리킨다(BDAG).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성전세를 받는 것은 합당치 않다. 성전세가 면제될 자가 있다면 바로 그 분이시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온 세상의 왕의 아들이시며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다.
[27절]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부요하신 주께서는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한 삶을 사셨다(고후 8:9). 그에게는 한 세겔도 없으셨다. 제자들의 주머니도 비어 있었다. 주께서는 사람들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해 낚시한 물고기의 입 속에 있는 한 세겔을 성전세로 내게 하셨다. 우리는 국가에 대한 정당한 의무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얻은 이 사건은 신기한 일이었다. 주께서는 바다 속에 물고기 입에 물린 한 세겔을 보셨다. 그것은 그의 전지(全知)하심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그 고기가 베드로의 낚시에 첫 번째로 걸린다는 것도 놀랍다. 그는 그 물고기를 보셨고 그 입 속에 있는 한 세겔을 보셨고 그 물고기가 정확히 바로 그 시각에 베드로의 첫 번째 낚시에 걸리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신적 능력으로 되어졌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영광이 다시 한번 더 드러났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귀신 들린 간질병 환자를 고쳐주셨고 물고기 입 속의 한 세겔을 보셨고 그 물고기를 낚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다. 주께서는 간질병을 꾸짖으셨고 귀신을 복종시키셨고 불치의 병들을 고치셨다. 우리는 무슨 문제든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 그에게 기도하고 겸손히, 간절히 의탁해야 한다. 우리의 건강도, 경제적 안정도, 자녀 문제도, 사회적 평안도 그에게 기도하자.
셋째로, 우리는 비상한 경우에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주께서는 “이런 유는 기도와 금식으로가 아니고서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강청의 기도, 결사적 기도를 드려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교회나 국가에 대한 정당한 의무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국가가 정한 세금을 정당하게, 기꺼이 납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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