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교회
'98. 8. 16 주일낮예배(9834) < 제 목 > 한 사람을 찾습니다 < 본 문 > 렘 5:1~9
오늘은 광복절 기념 주일입니다. 특별히 어젠 대한민국 정부 수립 50주년이었습니다. 정말 기쁜 경축일임에도 불구하고 수해다 뭐다 해서 덤덤하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대통령은 제2의 건국을 선언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였습니다. 또 태극기 공원도 조성한다, '다시 뛰자'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 하면서 각계 각층에서 여러 행사도 벌이고 있습니다. 다 귀한 일들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양이 아니라 국민 각자의 의식과 삶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인 줄 압니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제2의 건국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정말 이번 광복절이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나라가 새롭게 변화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개인의 행복도 그런 뜻에서 오늘은 우리 자신과 나라를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이 먼저 오늘 본문 성경은 BC 7세기 이스라엘 역사 이야기입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의 아들(르호보암) 대에 남북으로 나라가 갈라집니다.(BC 931) 북 이스라엘 왕국, 남 유다 왕국 ... 그런데 북 왕국은 하나님을 거역하다 일찌기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그후 남 유다마저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한 가운데 국운이 쇠해 갑니다. 북방 바벨론 제국이 강성해지면서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봅니다. 마치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 됩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이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심판의 도구로 준비해 두신 하나의 채찍이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사자인 유다 백성들은 감도 못 잡고 있었습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과 무지한 백성들 사이에서 눈물로 절규하는 예레미야 선지자! 이게 본문의 배경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최후의 통첩 같은 말씀을 주십니다. 마지막 기회를 주는데 만일 그것마저 놓쳐 버리면 이젠 유다 백성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은 무서운 바벨론의 침략 전쟁입니다. 그 마지막 기회가 과연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찾아 보십시오. 1절. 당시로는 대도시인 예루살렘을 샅샅이 뒤져서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참 신앙인) 한 사람만이라도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레미야 자신이나 바룩 같은 선지자는 제외하고) 그러면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큰 자비와 긍휼입니다. 여러분! 선지자가 맨처음 그 말씀을 들었을 때에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아마 흥분되었을 겁니다. 이런 생각을 했을 테니까요. "설마 이 큰 도시에 그런 사람 한 명이 없을라구 ... 틀림없이 있을거야 ... 야, 이제 우리 나라가 살 길이 생겼구나 ... 어서 가서 찾아 내야지 ... "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곳 저곳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흐를수록 비관적입니다. 이제는 슬픔과 초조함의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여보시오! 어디 이런 사람 없습니까? 빨리 나와 보시오!" 목이 터져라 외쳐봐도 응답이 없습니다. 도리어 미치광이 취급이나 당하고(13절) 한 사람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결국 BC 586년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게 짓밟혀 70년 포로 살이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아름다운 성전이 번듯하게 서 있던 예루살렘! 어찌 그리 처참하게 망하고 말았는가? 그 이유가 오늘 우리에게 큰 도전과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
[1] 모든 백성이 속속들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이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해 있었는가? 선지자가 하나님이 요구하신 한 사람을 찾으려고 다녔는데, 먼저 일반 백성들에게 가 봅니다. 어땠습니까? 3절. 아주 완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입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백성이 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 타락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오래 참으시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것도 갑자기 그런 게 아닙니다. 오래 동안 참으시면서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
[2]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타락하는 데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영적으로 타락하고, 이어서 도덕적으로 타락합니다. 유다 백성이 그랬습니다. ① 영적 타락 : 2절. 그들은 자기들 깐에는 신앙을 갖고 있있습니다. 그런데 외식적인 신앙(명목 상의 신앙)입니다. 입술만의 ... 즉 lip faith(주둥이 신앙)입니다. 오히려 마음으로는 우상신을 섬깁니다. 7절상.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 19절하. " ...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 이방신들을 섬겼은즉 ..."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는데,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고 다른 신(혹은 우상)을 모시면 반드시 마음이 비뚤어지게 돼 있습니다. 다음 순서로는 도덕적 타락이죠. ② 도덕적 타락 : 본문에서는 가장 악한 예만 듭니다. 음란! 7절하~8절.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셨건만 그럴수록 죄를 짓습니다. * 그래서 결국 유다 백성은 비참하게 심판을 당하고 맙니다. 6절. 맹수들(사자, 이리, 표범)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잔인하고 사나운 짐승들인데, 바벨론 군사들을 상징합니다. 9절. 수사 의문! 심판할 수밖에 없노라! 여러분, 나라가 망하는 것은 결코 국력이 약해서만 그런 게 아닙니다. 교만해서 버티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다가 망하는 겁니다. 또한 타락해서 망합니다. 아무리 부국강병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면 소용 없습니다. 예> 만리장성(높이 9미터, 두께 4.5미터, 길이 2,400킬로미터) 쌓아도 부패하니까 국난을 당합니다. 축조 후 100년도 세 차례나 크게 침략을 당합니다. 어떻게? 지키는 관리, 군인들이 뇌물 받고 열어 주니까 대책이 없는 거죠. 지금 우리 나라 어려운 것도 따지고 보면 약해서 혹은 무엇이 부족해서가 가 아닙니다. 사실 회고하면 우리가 얼마나 잘 살게 되었습니까? 제 나이가 많지 않지만 제 기억으로도 정말 그렇습니다. 어릴 때 저의 집이 보통으로 살았으니까 한국인 평균 수준을 체험함 셈이죠. 꿀꿀이죽 구경한 기억이 납니다. 쌀이 모자라니까 영양 많다고 선전하면서 혼식, 분식 장려하는 것도 경험했고 ... 짜장면은 생일날이나 겨우 얻어 먹었죠, 그때는 배가 나오면 배 사장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좋다는 것만 골라 먹고, 배가 조금 나오면 질겁을 하고 돈까지 들여서 살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짧은 세월에 정말 기적처럼 우리 나라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결코 이런 나라가 가난해서, 약해서 지금 어려움 당하는 게 아님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그 큰 은혜를 잊고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뇌물 공화국'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고발 접수하는데, 각계 각층에서 별의 별 뇌물이 다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장애인 임대 아파트 행정 처리 해 주면서 수십만원을 요구하고 ... 우리 나라에만 있는 단어들 ... 떡값, 관행, 돈 세탁 ...(꼬마의 질문 - 돈을 어떻게 세탁해? 더러워지면 세탁해서 쓰는 거야?) 언젠가 독일의 잡지사에서 국가 청렴도를 조사했는데 41개국 중 27위였습니다. 그 밑으로는 인도네시아 등 요즘 어려움을 겪는 아시아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부패로 나라가 멍들었다는 증거죠. 또 얼마나 음란한 세대가 되었습니까? 눈만 뜨면 각종 음란물이 곳곳에 범람하고, 10대 접대부, 주부 콜걸 등 해괴한 말들이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고 ... 이게 오늘 한국의 도덕적인 현 주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전체에 영적 갱신, 도덕적인 갱신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구조 조정이니 사정이니 그런 것 백날 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어느 누구를, 혹은 불특정 다수를 정죄하고 성토하고 슬쩍 넘어가자는 게 아닙니다. |
[3] 참 신앙인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1절 봅니다. 그 넓은 거리에 ... 그 많은 사람이 사는 예루살렘 도성에 단 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참 신앙인! 참 신앙으로 성실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빈부귀천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상황 속에서 최선의 삶을 사는 사람말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늘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남을 정죄하는 게 아니라 예레미야처럼, 혹은 아브라함처럼 죄악된 백성들을 위해 눈물로 중보 기도하며 호소하는 사람입니다. 비유하자면 샘물 같은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에 유다 백성은 멸망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샘물 같은 한 사람만 있으면 결코 심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소망이 있기에! 샘물은 정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주변이 흙탕물이 범람해도 샘물이 있으면 더 이상 더렵혀지지 않습니다. 조금씩이라도 정화됩니다. 결국은 물이 맑아질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소망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참 신앙인 한 사람의 존재 가치는 대단한 것입니다. 예> 요셉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애굽 등이 대기근 중에 살았습니다. 바울 한 사람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배 안에 탔던 276명이 살았습니다. 여러분, 한국민 중 20%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한 사람을 찾을 때 나설 자가 누구여야 합니까?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소망이 있습니다. 나와 이 나라에 ... 우리 각자가 나설 수 없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나라를 향해, 기독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외치고 계십니다. "거기 누구 없느냐?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 바로 그 한 사람 ... ?"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미래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데 둘러 볼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내 모습이, 내 자녀의 모습이 바로 우리 나라의 미래입니다. 이 광복절 기념 주일 아침, 아무쪼록 우리 각자가 애타게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응답하는 '바로 그 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