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일컬어지는 3천년 역사의 고도이며 중국의 수도이다. 중국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전해 내려온 만리장성을 비롯하여 고궁, 이화원 등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볼거리들이 무궁무진하여 날이 갈수록 관광도시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총면적은 16000㎢이며, 서·북·동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지가 전체 면적의 1/3을 차지한다. 또한 온난 습윤 기후에 속하여 사계절이 분명하다. 봄·가을이 짧은 반면, 겨울과 여름이 비교적 길다. 연평균 기온은 13℃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506㎜이다. 인구는 약 1,090만 명이며, 그 중 시내에 거주하는 인구는 500만 정도이다. 광대한 시역(市域)은 다음과 같이 10구(區)·9현(縣)으로 나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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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옛 베이징성(省) 내성(內城) 안의 둥청구[東城區]· 시청구[西城區], 내성 밖 외성(外城) 안의 충원구[崇文區]·쉬안우구[宣武區]및 그들 성구(城區)를둘러싼 차오양구[朝陽區]·펑타이구[豊臺區]·먼터우거우구[門頭溝區]·하이뎬구[海淀區]·스징산구[石景山區]·옌산구[燕山區]가 있고, 그 외곽에 창핑[昌平]·퉁현[通縣]·순이[順義]·다싱[大興]·팡산[房山]·핑구[平谷]·화이러우[懷柔]·미윈[密雲]·옌칭[延慶]의 9개 현(縣)이 있다. |
【자연】
광대한 화북(華北) 평야의 북연부(北緣部)에 샤오우타이산[小五臺山]·쥔두산[軍都山]·옌산산[燕山]등 평
균 해발고도 400∼500m의 산지에 의해 동·서·북의 3면이 둘러싸인 분지가 펼쳐져 있다. 그 주머니 모양의
평지 중앙에 베이징이 자리한다.
하이허강[海河]의 지류인 융딩강[永定河]·차오바이허강[潮白河]이 각각 북서쪽·북동쪽 산지에서 분지로 흘러드는데, 베이징
성(城)은 두 하천의
중간에 위치한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를 보여 겨울에 한랭건조하고, 여름에 고온다우하며, 봄·가을은 기간이 짧으나 날씨와 식
생(植生)경관이
화사하다.
1월 평균기온 ―5℃ , 7월 평균기온 26℃, 연평균기온 11.9℃이고, 연강수량은 635mm이다. 한편 국지적으로는 지형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아 연강수량이 톈진[天津]의 530mm에 비해100mm 정도 많고, 겨울의 혹한일 수도 톈진보다 5일 정도 적은 80일을 보인
다. 그 까닭은 베이징 분지를 3면으로 둘러싼 산지가 여름에는 남동계절풍의 바람받이가 되고, 겨울에는 북서 계절풍을 어느 정
도 가로막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역사】
베이징은 일찍이 화북(華北) 대평원과 북방의 산간 지대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역사상에 등장하였다.
베이징은 처음에는 ‘계()’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그 고대 취락의 위치는 현재 루거우차오[蘆溝橋]가
있는 곳, 즉 예로부터 융딩강의 도하지점(渡河地點)이 되어왔던 곳에 인접한 지추[丘]라는 작은 언덕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평야 지대와 산간지대 사이의 교통이 빈번해지자 그 교통로의 요충을 차지한
고대 취락이 점차 발전하여, 주대(周代) 초에는 연(燕)나라의 도읍(都邑) 계성(城)이 그곳에 조영되었
다. 진(秦)·한(漢) 이후 당(唐) 말에 이르는 기간에는 대체로 유주(幽州)의 치소(治所)로서 동북변방
(東北邊方)의 정치·군사상의 요지가 되었다. 2차에 걸쳐 실패를 거듭한 한민족(漢民族)의 고구려(高
句麗) 침략, 즉 수양제(隋煬帝)와 당태종(唐太宗)의 고구려 원정 때에는 다같이 계성(城)을 그 원정의
전진기지로 삼았고,당태종은 고구려에 패한 뒤 전몰장사(戰歿將士)의 넋을 애도하여 민충사(憫忠寺
:현재의 베이징외성에 있는 法源寺의 전신)를 건립한 바 있다.오대(五代)에 이르러 요(遼)는 938년에
이곳을 부도(副都)로 삼아 남경(南京)이라 하고, 요를 물리친 금(金)은 처음 연경(燕京)으로 부르다
가 1153년에 이곳으로 천도하여 중도(中都)라고 고쳤다. 다시 몽골족이 남하하여 중도성(中都城)을
빼앗은 뒤 쿠빌라이(世祖) 때에 신성(新城)을 건설하고 국도로 정하여 대도(大都)라고 명명하였다.
몽골족이 중국을 통일하여 원(元)을 세우자 대도는 중국 전역을 지배하는 정치 중심지가 되었고, M.
폴로는 칸발릭(Khanbalik)이라는 도시명으로 그 호화로운 번영상을 기록하고 있다. 명대(明代)에는
처음 국도를 현재의 난징[南京]에 두었다가 1420년에 영락제(永樂帝)가 이곳을 국도로 정하고 북경
(北京)이라 하였는데, 베이징이라는 명칭은 이때에 비롯되었다. 명대에는 남문(南門) 밖에 외성(外
城)을 구축하고 북부의 성역(城域)을 대도 때보다 축소하여 내성(內城)이라 불렀는데, 그 내·외성이
현재의 베이징성의 규모를 이루고 있다. 명을 멸망시킨 청(淸)도 1644년 이후 멸망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국도로 하였는데, 만주족과 한민족의 거주지역 을 구분하여 내성에 만주족, 외성에 한민족을
살게 하였다. 중화민국(中華民國) 시대에도 계속 이곳을 국도로 삼았으나 북벌(北伐) 완성 후 난징
[南京]으로 천도하여, 이곳을 베이핑[北平]으로 개칭하였다. 1949년에 중화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다시 그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업】
정치 도시로서의 역사를 거쳐온 베이징은, 종래 스징산 제철소의 중공업 외에 소비재공업이 활발했으
나, 역시 소비도시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공산정권 수립 후 계획 경제가 실시되어, 시
역(市域) 서부에 종전의 스징산 제철소 및 징시 탄전[京西炭田]을 바탕으로 대규모 철강 콤비나트
가 형성되고, 동부·북동부·남부에도 새로운 공업 지대가 형성되어 기계·전자제품·철도차량·전기기기·
합성섬유·플라스틱등 중화학공업, 면방직·모방직·식품 등 경공업이 일어났다. 그 밖에 경태람(景泰藍
:七寶)·옥기(玉器)·상아조각(象牙彫刻)·칠기 등 전통 수공예공업도 이루어진다. 징시탄전은 매장량
20억 t의 풍부한 무연탄전으로, 스징산에는 그 무연탄을 연료로 하는 화력발전소가 있고, 또 융딩강
상류의 관팅댐 외에도 차오바이허강 상류의 미윈댐, 원위강[溫楡河] 상류의 스싼링[十三陵]댐·화이
러우[懷柔]댐등 다목적댐 축조에 의해 건설된 발전소에서도 전력이 공급되고 있다. 한편, 그들 다목
적댐은 치수(治水)·관개 및 용수 공급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관팅댐 건설에 의한
용수 조절 및 농업·공업·생활 용수 확보의 성과는 특기할 만하다. 근교의 농업 지대에서는 채소·과수
농업 및 오리·젖소 사육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고, 수리 개량에 따라 논도 많이 조성되었다.
【교통】
베이징은 주요 간선철도의 기점이 되어, 그들 철도에 의해 티베트·윈난성[雲南省]을 제외한 모든 성
(省)·자치구의 중심지와 연결되어 있다. 베이징을 기점으로 산하이관[山海關]·광저우[廣州]·바오터
오[包頭]·청더[承德]·퉁저우[通州]·상하이[上海] 등지로 철도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한편 모스
크바·울란바토르·평양(平壤)·하노이 등지에 이르는 국제열차가 있고, 둥청구 남동쪽에 1956년에 새
로운 베이징역(驛)이 건설되었다. 공항은 시가지 북동쪽 50km 거리의 순이현에 있으며 국내선과
국제선이 열려 있다. 베이징의 외항인 톈진신강[天津新港]에서 중국의 연안 각성(各省) 및 아시아·
유럽 제국과 해상 교통이 열려 있다. 시내교통은 주로 트롤리 버스와 버스에 의존하고 있는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70년에는 전장 23km의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교육/문화】
베이징은 중국 최대의 학술·문화 중심지이다. 중국 과학원의 각 연구소를 비롯하여, 베이징대학
·칭화[淸華]대학·베이징 사범대학·중국인민대학·중국 민족학원 등 20여 개의 대학·전문학교가 있다
. 또 전국 최대 규모의 베이징도서관·구궁박물관[故宮博物館] 및 민족 문화궁(民族文化宮)·혁명박
물관·역사박물관·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 등 문화시설이 많다. 구궁박물관은 옛 명(明)·청(淸)의
왕궁이었던 자금성(紫禁城)을 박물관으로 전용(轉用)한 것이고,역사박물관·혁명박물관은 톈안
먼[天安門] 앞 광장 동쪽에 1959년에 완공한 건물로, 같은 해에 그 맞은편의 광장 서쪽에 건립한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 국회의사당) 등과 더불어 중국이 자랑하는 10대 건축에 포함된다. 그
밖에 국제 학술회의장인 과학대회당과 전시관(展示館)·극장·영화관 및 스포츠 시설·매스컴 기관
등이 있다.
【명승/고적】
1000년의 역사를 가지는 고도(古都)인 만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명승·고적이 시역
안에 산재한다. 성구(城區)의 중심을 이루는 옛 왕궁 자금성은 현재 박물관이 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고궁안의 여러 전(殿)·당(堂)·궁(宮) 등이 진열실로 이용되어, 중국역대의 채
도(彩陶)·청동기·칠기·직물·조각·회화 등 예술품을 진열하고 있다. 박물관 앞 동쪽의 태묘(
太廟:제왕가의 종묘)는 현재 노동인민문화관, 서쪽의 사직단(社稷壇)은 중산[中山]공원이
되어있고, 또 서쪽의 베이하이[北海]공원, 북쪽의 징산[景山] 공원등이 모두 시민의 위락지이다.
왕궁의 정문인 톈안먼 앞에는 4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이 조성되어 매년 메이데이와 국경절(國慶節:10월 1일)에는 퍼레이드가 벌어지며, 톈안먼 문루(門樓)는 그 사열대가 된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그 문루에서 1949년 10월 1일 중공 정권의 수립을 선언하였고, 또 66년에는 홍위병(紅衛兵)을 열병한 바 있다. 외성 안 남동부에는 본래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는 장소였던 톈단[天壇]이 있는데, 현재는 역시 공원이 되어 체육장, 기타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성내 북동쪽에는 현재 수도(首都)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국자감(國子監)및 공자묘(孔子廟)·융허궁[雍和宮:라마교 사원]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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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외에도 명승 고적이 적지 안은데, 이허위안[和園]·샹산[香山]공원·워포절[臥佛寺] 등은 특히 수려한 경치로 알려져 있고,
또 명(明)의 스싼링[十三陵]과 지하 궁전도 유명하다. 북방의 만리장성(萬里長城)과 쥐융관[居庸關]·바다링[八達嶺] 등의
유적지도 시역 안에 있다.
【간단한 소개】
중국의 수도. 중앙 정부의 직할시로, 인구는 약 1,200만 명이다. 오랜 옛날부터 중국의 역대왕조의
수도(요나라, 금나라 때에는 연경으로 불리었다.)로 번영하였던 곳으로,1949년에 중국의 수도가
되었다. 스징산 제철소와 징시 탄전을 바탕으로 대규모의 철강 콤비나트가 만들어진 외에도 기계,
화학, 섬유공업 등이 성하다. 화북 평원 북부에 있는 베이징은 중국에서 정치, 문화, 교육의 중
심지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살기 불편한 수도의 하나로 꼽힌다. 그 이유는 여름에는 찌는 듯이 무
덥고, 겨울에는 몹시 추우며, 봄에는 황사 현상이 극심하여 시내가 온통 고비 사막에서 날아오는 황
사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은 과거의 전통을 간직하면서,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근대
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다른 나라의 대도시처럼 화려하지 않다. 베이징 시가지는 구성 안과 구성
밖, 그리고 성 밖으로 나눌 수 있다. 구성안은 명나라, 청나라 때 성 안쪽에 발달한 지역인데, 고궁
박물원으로 변한 자금성을 중심으로 관청가가 바둑판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구성 밖은 청나라
때에 주로 한족이 살던 지역으로 길이 불규칙적으로 나 있다. 성 밖은 빌딩, 아파트, 공장 등이
몰려 있는 해방 후에 발전된 현대적인 도시이다. 동부에는 공장이 많고 북서부에는 대학, 연구소
등 교육 기관이 많다. 1990년 제11회 아시안 게임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음 식 | ||||||||
중국 북방지역 음식점 간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요리로 북경 사람들이 매우 즐겨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원래는 몽고족의 요리였으나 몽고족이 중국에 원 왕조를 세우고 북경을 원의 수도로 삼으면서 양고기 샤브샤브도 전파가 되어 점점 대중화되었다. 중국식 샤브샤브인 수안양로우는 양고기를 아주 얇게 저민 후 그걸 우리나라의 신선로 같이 생긴 냄비의 육수에 담가 살짝 익히고 소스에 찍어 먹으면 된다. 재료는 양고기와 깨양념장, 부추꽃, 새우젓, 언두부, 가늘게 뽑은 녹말로 만든 당면, 야채 등으로 냄비(후어궈)를 불에 올려놓고 얇게 썰어 놓은 양고기를 후어궈 속 끓는 육수에 살짝 익히며 먹는다. 양고기 샤브샤브는 사계절 모두 괞찮지만 특히, 추운 겨울날 창밖으로 하얀눈이 내리고 안에서는 모여 앉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에 고기를 익혀 멋는 맛이 일품이다. 왕부정 거리의 동안시장 부근의 동래순반장(東來順飯莊) 요리집의 수안양로우가 역사도 오래되고 맛도 최고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잘 구어진 오리구이는 기름칠이 되어 빛이 나며, 바삭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육질을 두루 갖추고 있다. 북경오리구이의 특별한 맛은 재료에서 부터 구워서 썰기까지 독특한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된다 우선, 재료인 오리는 새끼때부터 운동을 시키지 않고 먹이만 억지로 가득 먹여 살을 찌우게 하여 기름진 살을 연하게 한다. 적당히 살찐 오리를 잡은 후에는 겉에 엿을 바른 후 그늘에 말리고 몸속에 공기를 불어넣어 부풀린 후에 불위에 올려놓고 양념을 바르면서 구워낸다. 포동포동 살이 쪄서 지방이 많은 오리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살과 껍질이 분리가 되는데,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진한 갈색의 껍질이 가장 맛있는 부위로 요리사는 살과 분리된 바삭한 껍질을 잘 썰어내야 한다. 보통은 요리사가 손님 앞에서 구어진 오리를 직접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며, 얇게 부친 밀가루 전병과 파, 특별 소스가 함께 제공된다. 북경 오리구이를 먹는 방법은 먼저 밀가루 전병에 소스를 바르고, 그 위에 고기와 파를 넣은 다음 전병을 말아서 먹으면 된다. 젓가락이 나오긴 하지만, 손으로 잡고 먹는 것이 더 편하다.
식사 전 또는 도중에 태족들의 전통악기 공연과 태족 무희들의 춤을 공연해 준다. 볼거리는 풍부하나 음식은 기름기가 많아서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곳은 북경에만 2곳이 있으며, 상해에도 분점이 있다.
그 중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태가촌(泰家村)이라는 곳은 이름처럼 태족들을 볼 수 있는 음식점으로 전통요리를 먹으며 그들의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중국에는 최대의 비율을 구성하고 있는 장족(zhuang, 17.18%)을 비롯해 순서대로 만족(man, 10.87%), 회족(hui, 9.51%), 묘족(mao, 8.15%), 위구르족(uygur, 7.96%) 등 수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으며, 조선족(2.12%)은 12번째에 속하는 소수민족이다. 태족(泰族, dai)은 중국의 전체 소수민족(ethnic minority) 중에서도 1.13%의 소수에 속하는 부족으로 주로 운남의 "서상판납(西雙版納)" 태족 자치주와 "덕굉(德宏)" 태족 경파족 자치주 및 경마(耿馬)와 맹련(孟連) 두 개의 자치현에 주로에 분포하고 있다. 태족이 거주하고 있는 곳은 첩첩한 산이 둘러싸고 있는 하곡 평원지구의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곳으로, 사계절이 온화하고 강수량이 많아 산천이 수려할 뿐 아니라 토지 역시 비옥하다. 이러한 자연환경 덕분에 벼, 사탕수수, 장뇌, 커피, 사이잘 삼, 고무, 셸락, 레몬 등 경제적인 작물들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
오 락 | |||||||||||||||||||||
북경 시내의 극장에서 매일 또는 요일별로 정기적인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가격은 20元부터 시작되지만 극장별로 차이가 있다.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미리 예매를 해 두거나 시작보다 일찍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중 하나인 경극(京劇 : 징쥐) '경희(京戱)', '중국 오페라'라고도 하는 경극은 가극의 일종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양식의 하나이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경극(京劇 : beijing opera)이라고 불리지만 원래 경극은 안휘, 호북 지역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삼국지와 서유기 등의 중국 고전을 소재로 짜여져 있으며,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영화의 제목으로도 유명한 "패왕별희(覇王別姬)"가 유명하다. 경극은 대사보다는 배우의 노래와 연기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북경 시내에서는 장안대극장(長安大劇場)과 이원극장(梨園劇場) 등에서 경극을 관람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외국인을 주대상으로 하는 극장들이 많이 생겨나서 영어와 보통화(북경어) 자막을 함께 볼 수 있는 극장들이 늘고 있다. 가격은 15元부터 있으며, 차와 식사를 함께 하며 즐기는 좌석의 경우는 200元이 남는 경우도 있다.
맛사지 도중 간단한 건강 체크를 해주기도 한다. 또 원하면 머리부터 전신을 모두 마사지해주기도 한다. 발맛사지 못지않게 중국의 머리마사지도 유명하며 미용실에서 간단히 받을 수도 있다.
또한 매년 1-2월 사이에 용경협에서는 빙등제가 개최된다. 이 행사에는 빙등전, 얼음 조각 대회, 조명전, 무역 행사 등이 열린다. 세계에서 위도가 가장 낮은 곳에서 개최되는 실외 노천 빙등제이다. 용경협의 빙등제는 뚜렷한 주제, 독특한 지리적 환경, 빙등과 조명이 서로 결합된 형태를 띠고 있다.
◈ 서커스와 무예, 변검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전통 종합공연 잡기 즉, 중국의 전통 서커스와 소림 쿵푸, 변검등 다채로운 중국의 전통 공연문화를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우선, 잡기는 5천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의 빼놓을 수 없는 문화로서 접시, 의자 등과 같은 간단한 도구 뿐만 아니라 연기자들의 몸 자체가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실감할 수 있는 무대이다. 두번째 무예공연인 소림 쿵푸는 하남성의 숭산에 위치하고 있는 소림사라는 절에서 만들어진 중국 전통의 무예로서 전통종합공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소림사 무술관에서 설립하여 구미,동남아,아프리카,홍콩등지에서 공연하며 감탄과 갈채를 받고 있는 소림쿵푸 공연단이 맡고 있다. 마지막으로 변검은 사천극의 특수한 예술 표현기교 중의 하나로 극중 인물의 내적 심리를 수시로 바뀌는 가면으로 표현한다.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얼굴 모양을 바꾸는 연기는 마치 마술을 보는 듯 하다. 변검의 기법은 말검,취검,차검,운기변검이 있으며 분을 이용한 발검,취검과는 달리 차검은 춤사위 등으로 관객의 시선을 돌린 뒤 순간적인 동작으로 가면을 바꾸어 그 뛰어난 기교와 화려한 가면들은 보는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 중국 전통요리를 맛보며 화려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유럽풍의 극장식 레스토랑 진락궁(秦樂宮)
공연은 크게 "앙가편(秧歌篇)", "토풍편(土風篇)", " 풍정편(風情篇)" 삼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속에서 관객들은 독특한 중국의 전통과 해학을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흔히 볼수 없는 중국민속혼인을 가무로 만들어 극화시킨 "취친(娶亲)" 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중국의 전통 북춤인 "안새요고(安塞腰鼓)"는 공연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 북경 디너쇼 베이징 디너쇼는 북경시 정부에서 북경관광의 대외적인 이미지 향상을 위하여 구상한 지금까지 규모가 가장 크고 평판이 자자한 디너쇼다. 화려한 중국 전통의상과 장엄하고 다양한 전통 음악에 중국의 정중하면서도 화려한 고전가무, 궁중가무, 전통가무, 소수민족 가무 등 다양한 가무를 통하여 중국의 장장 5천년에 걸치는 중국 각 시대, 각 민족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의 정수를 느낄수 있다. 화려한 쇼와 더불어 중국의 명요리를 곁들인 디너쇼를 들면서 아름다운 북경의 밤을 보낼수 있다.
o 건강 온천욕법 좋은 온천효과를 보기위해서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알고 온천욕 규칙도 알아두는 것이 좋다. 온천욕은 식사 1시간이 지난 후 10-15분 입욕했다가 30분-1시간 가량 푹 쉬는 것이 좋다. 온천욕을 많이 하면 좋다는 생각에 탕에 너무 오래 있거나 하루 4회 이상 온천욕을 하는 것은 오히려 몸에 해가 된다. 또 때밀이 타올로 피부를 힘껏 미는 것은 피부를 과도하게 자극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온천물에는 구리, 아연 등 금속이온과 나트륨, 마그네슘, 칼륨 등 몸에 좋은 물질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온천욕 후 수건으로 간단히 닦은 뒤 자연상태로 말리는 것이 좋다.
공연은 고대음악을 배경으로 소년들이 작은의자에 앉아 부르는 노래로 시작되며, 한 흑인청년이 그의 사랑을 찾아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사랑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이어서 천상과 지하세계를 오가는 얼음과 물 위의 아름다운 쇼가 진행되며, 중국인·외국인 연기자들이 하나 되어 무대 위에서 각종 예술로 태평성대를 표현해낸다. 관중들을 흥분과 즐거움 속으로 보내주는 '새롭고(新) ,신기하고(奇), 특별한(特)' 환상적인 이벤트이다. |
북경의 특산품 |
◈ 궁등(宮燈) 북경 궁등(宮燈)의 제작과정은 매우 정교하며, 재료선택부터 매우 정성을 들인다. 궁등의 틀은 일반적으로 홍목(紅木)과 단목(檀木), 화리목(花梨木)등 귀한 목재를 사용하며 틀 위에 채색유리견사로 장식하여 고풍스러우면서 화려하다. 매년 정월보름 "상원등절(上元燈節)"이 되면 거리 가득 화려한 등이 높이 걸려져 있어 명절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외에도 북경에는 궁정색채가 강렬한 일종의 견화등(絹畵燈)이 유명한데, 북경의 공예미술상점에 가면 살 수 있다.
◈ 면인(面人) 면소(面塑)라고도 불리는 면인은 만드는 방법은 간단한 편이지만 그 예술성은 매우 높은 민간공예품이다. 색깔을 입힌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주재료로 하여 반죽하고 이겨서 썰고 깍고 조각하여 각양각색의 인물이나 동물형상을 만들어낸다. 크기도 작아 휴대하기 편하며 모양변형이나 변색도 잘 안되 기념품으로 사기에 적당하다. 유명 관광지라면 어느 곳이나 흔히 볼 수 있으므로 구하기는 쉽다.
◈ 칠기(漆器) 북경 칠기는 크게 두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조칠(雕漆)로 14세기부터 이어져온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공예품이다. 바탕에 동으로 법랑을 입히고 언저리에는 도금을 하며, 바탕에 붉은색, 녹색, 황색 등의 색깔이 있는 옻을 칠한다. 어떤 것은 옻을 입히는 과정을 수백번 거치기도 한다. 그늘에 말린 후 조각을 하면 되는데. 조각의 방식은 부조와 루조 등이 있다. 나머지 하나는 금칠상감으로 채색된 옻으로 금을 입힌 후 자개로 상감한는 방법이다. 조칠이나 금칠상감 우아한 화려함에 옛스러우면서 차분한 느낌을 주어 북경의 색깔이 농후하게 묻어있는 공예품이다.
◈ 옥기(玉器) 중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옥기(玉器)를 신분지위의 상징으로 여겨 옛날 부자들은 항상 옥으로 만든 노리개를 허리에 차고 다녔다. 옥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북경 숭문문(崇文門) 번화한 시가 일대에 모여있었기 때문에 북경은 중국 옥기의 중심도시가 될 수 있었다. 옥기를 만드는 일은 북경에서도 지위가 비교적 높은 직업으로 솜씨있는 장인과 그 집안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선생'이라고 불렸고, 보수 또한 높았다. 지금도 그 전통과 풍격이 그대로 계승되어 북경의 옥기공장은 작은 규모로 운영되면서 옥의 원색과 질감을 살린 화려하면서도 기품있는 창작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
북경의 유명 쇼핑거리 |
◈ 전문대가(前門大街 : 치엔먼 따지에) 이곳은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닌 상업거리로 육필거장원(六必居醬園), 동인당(同仁堂)약방, 서부양주포점, 장일원차장(張一元茶莊)같은 수백년 이상된 전통있는 상점들이 여전히 명성을 유지한채 장사를 하고 있다. 이런 전통있는 상점 외에도 북경 최대의 양복점인 신신(新新)양복점이나 따짜란(大柵欄) 제일,제이 백화점, 숙녀용품상점, 아동 용품상점이 해방(공산화)이후에 새로 생기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최근 몇년에는 이런 오랜 역사를 지닌 상점들 사이에서 전문대가 동쪽을 중심으로 새로운 치엔먼 상업건물이나 런런(人人)호텔 등이 새롭게 들어섰으며, 서쪽에는 정양(正陽)광장, 노서차관(老舍茶館)과 미국의 패스트푸드 업체인 KFC(켄터키 후라이드 치킨)가 들어섰다.
◈ 서단상업대가(西單商業大街 : 시단상예따지에) 많은 경쟁 속에서도 끊임없이 발전해가고 있는 번화한 상업거리로 새로 조성된 문화광장과 유명한 중우백화(中友百貨) , 시대광장, 서단새특(西單賽特)쇼핑센터, 서단백화상장, 서단쇼핑센터 외에도 수많은 노점상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 얼마 전부터는 서단상업거리도 야시장을 열고있어 또다른 볼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 수수가(秀水街 : 쇼우쉐이지에) 수수동가(秀水東街)에 위치하고 있는 수수가는 싸고 좋은 물건을 많이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이곳은 대사관 밀집지역과 가까이 있어 주말이 되면 북경에 상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산책코스로 이용되어 많은 외국인들이 시장을 지나다니며 중국어를 배우기위한 다른 목적의 흥정아닌 흥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거리에 있는 100여미터 길이의 벼룩시장은 외국인들이 북경에서 필수로 거치는 쇼핑거리이기도 하다.
◈ 은가(銀街 : 인지에) 동단(東單)에서 동서(東西)까지 쭉 이어진 거리로 명품패션전문점들이 가득 들어서 있어 '귀족가(貴族街)'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외국 수입브랜드 매장들과 함께 한국의 유명 의류브랜드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KFC나 스타벅스 등 익숙한 패스트푸드점과 커피 전문점도 당당히 거리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젊은층이 주로 모이는 곳이기도하다. |
◐ 북경의 기후(℃)
도시명 |
기온℃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북 경 (北 京) |
최고평균 |
1.4 |
3.9 |
10.7 |
19.6 |
26.4 |
30.2 |
30.8 |
29.4 |
25.7 |
18.9 |
9.9 |
2.9 |
최저평균 |
-9.9 |
-7.4 |
-1.0 |
6.6 |
12.7 |
17.9 |
21.5 |
20.2 |
13.8 |
6.9 |
-0.6 |
-7.3 | |
평 균 |
-4.6 |
1.6 |
5.0 |
13.8 |
20.2 |
24.6 |
26.2 |
24.9 |
20.1 |
12.8 |
3.9 |
-2.7 | |
강수량mm |
2 |
4 |
6 |
29 |
35 |
55 |
210 |
160 |
62 |
8 |
22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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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명소 |
◈ 고궁박물관(자금성(紫禁城)) | |
북경시의 중심에 위치한 명·청대의 황궁으로, 천안문 정문으로 들어가 울창한 가로수 길을따라 단문과 오문을 지나 보이는 곳으로 중국에서는 고궁(故宮)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이용되고 있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과 같은 금지 구역(禁地)과 같다"는 데에서 연유된 것이다. 전체 면적은 72만㎡이며, 총 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 건축물이다. 하늘의 천제가 거주하는 자미단(紫微壇)이 만 칸 규모, 중국 황제의 거처인 자금성은 그래서 9999칸이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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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1420년에 건조된 이래로 5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전시·소장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자금성은 외조와 내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문과 태화문을 지나면 흔히 '3전'이라 부르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나타난다. 3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금성의 내정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는 건천궁, 교태전, 곤녕궁 등이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동육궁과 서육궁이 자리잡고 있다. |
방어의 목적으로 궁전 밖에는 10m의 담이 있는데, 사방에는 성루가 있고 밖에는 호성강(護城河)이 흐른다. 80년대의 유명한 영화인 "마지막 황제"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꼼꼼하게 관광을 하는 데에는 하루가 꼬박 걸린다. 그냥 가로질러 가는 데에만도 2시간 정도가 걸릴 만큼 넓은 곳이다.
또 얼마 전에는 영화촬영의 배경지가 되었던 것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공연도 열려 문화유적지나 관광지로서 뿐만 아니라 중국시민의 휴식장소, 문화장소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1987년에 이르러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오 문 (午門) |
고궁의 정문으로서 높이 35.6m이다. 아래는 높고 큰 벽돌 돈대, 돈대위에 승루 5개가 건조되어 있는데 속칭 "오봉루"라고 한다. 오문 주 건물은 면적이 9칸, 겹처마 무전식 지붕이며, 양측에 종고정이 설치되어 있다. 매번 조회나 축전 때 북을 두드리고 종을 쳐 위엄을 과시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할 때면 황제가 친히 오문에 나와서 포로들을 접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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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자 |
태화문 앞 동서 양측에 각각 구리 사자 하나가 웅크리고 있는데 동쪽의 것은 수컷이고 서쪽의 것은 암컷이다.숫사자는 오른발로 수구를 밟고 있는데 권력과 천하통일을 상징 하며, 암사자는 왼발로 어린 사자를 쓰다듬고 있는데 자손들의 창성을 상징한다. | |||
◇ 동거북 |
태화전 앞 동서 양단에 각각 선학과 거북을 하나씩 놓아두었는데 등에 뚜껑이 있어 단향을 피우면 연기가 주둥이로 피어 나온다. 선학과 거북을 장수를 비유한다. | |||
◇ 태화전 (太和殿) |
높이 8.13m 의 3층 한백옥석 기초위에 건조, 궁전 높이 35.05m 동서 넓이 11칸 남북 길이 5칸이밖에 낭하기둥이 한줄 늘어서 있고 궁전 내외, 기둥이 도합 84개이며 번쩍 들린 겹처마에 지붕은 황기와를 얹고 장식이 점쟎고 화려하며, 기세가 비범하다. 명,청 시기 황제의 즉위, 대혼, 축수 및 중대한 축전,출정등 행사를 모두 이곳에서 거행하였다. 태화전의 내부를 보면은 면적이 2377㎡이며, 중앙에 금칠을 한 용조각 보좌와 병풍이 놓여 있고 그 양측에 6개의 금칠 반룡기둥이 서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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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한가운데는 구슬을 갖고 노는 금용으로 장식되어 있고 원구 헌원보경이 거꾸로 드리워 있으며, 천정판에는 옥새 채색화가 그려져 있다. | ||||
◇ 중화전 (中和殿) |
태화전 뒤에 위치, 정자식 건축이다. 황제가 태화전에 나가 청정하기 전에 먼저 중화전에서 쉬면서 내각, 예부 대신 및 시위들의 예를 받은 후 승여(속칭 가마라고 한다. 현재 중화전에 보전되어 있고 청나라 황제가 궁내에서 사용하던 교통수단의 하나)를 타고 태화전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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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 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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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청궁 (乾淸宮) |
내정의 첫 궁전으로서 명, 청 시기 황제의 침실이며 또한 일상 정무를 처리하던 전당이다. 건청궁 내부를 보면 정중은 보좌, 그 위에 "정대광명(正大光明)"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바른 것을 밝힌다는 통치 원리이다. 이 편액은 청나라 순치제의 글씨라고 한다. 청나라 때에는 강희 황제 이후 재위 황제가 생전에 황위 계승자를 선포하지 않고 내정한 계승자 이름을 써서 휼갑(譎匣)안에 봉해 넣고 편액 뒤에 보관해 두었다가 일단 황제가 서거하게 되면 즉시 휼갑을 열고 황제 계승자를 선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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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서거하면 자신의 몸에 간직하고 있던 또 한 장이 계승자 이름과 일치해야 다음 황제가 정해졌다고 한다. 보좌는 전부 금박을 입히고 루비와 에머랄드를 상감한 금보좌로서 팔걸이와 등받이는 모두 금룡으로 휘감았다. 보좌 뒤는 금칠한 병풍이며 병풍 중앙에 8개의 금좌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황제가 자신을 단속하는 격언이다. | ||||
◇ 곤녕궁 (坤寧宮) |
명대에는 황후의 침전이었으나 청대에 와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의 강희, 동치, 광서 황제가 이 궁전에서 혼례식을 했다고 한다. | |||
◇ 신무문 (神武門) |
고궁 후문이다. 문루가 10m 높이이 고궁 성벽 위에 건조되어 있으면 겹처마무전식 건축으로서 문루내에 종과 북을 설치해 놓고 문루 아래 성벽에 3개 아치문을 내었다. 청나라 때 수녀 선발시 응시 여자들이 이 문으로 입궁하였다. 현재 중간문 위에 중국의 문화거인 곽말약선생이 쓴 "고궁박물원" 석조 편액이 상감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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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공원(景山公園 : 징샨공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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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성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황실 정원이다. 전체 면적은 23㎢이며, 소나무와 삼나무가 울창하고 고목들이 하늘 높이 솟아있다. 경산공원은 이미 수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179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명 영락(永樂) 18년(1420년)에 석탄과 자금성 통자하(筒子河)의 진흙들을 가져다가 원나라 건축물인 영춘각(迎春閣)의 옛 터에 쌓아 두었는데, 이것이 하나의 흙산을 이루게 되었으며 당시에는 "만수산(萬壽山)"이라고 불렸다. |
또한 명 숭정(崇禎) 17년(1644년)에는 이자성이 북경성을 공격했을 때로, 당시 황제였던 숭정은 궁궐을 빠져나온 후 이 곳 경산에 올라와 스스로 나무에 목을 걸고 죽었다고 전해진다. 청나라 순치(順治) 12년(1655년)에 만수산은 현재의 경산이라는 이름으로 바꼈다. 경산공원은 북경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북경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날씨만 뒷받침해준다면 그 경관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 천단공원(天壇公園)
천단은 명, 청 시기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교외에 나가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는 것은 주나라 때에는 이미 대전으로 되고 한나라, 당나라(618~907년)때에는 제도롤 되었다. 15세기 초 명나라때 천지단을 천지단을 건조하여 하늘 땅에 함께 제사를 지냈는 데 중엽에는 사방 교외에서 각각 하늘, 땅, 해, 달에 제사 지내는 제도를 실행하였다. 이곳은 전문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제공되었으므로 천단이라 명하였다. 청나라 때 확장하여 현재 중국에서 보존되고 있는 최대 규모의 제단 건축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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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은 부지 272㏊, 건축 배치가 "回"자형을 이루며 2개 단벽에 의해 내단, 외단 두부분으로 구성된다. 외단벽은 총길이가 6,416m, 내단벽은 총길이가 3,292m이다. 내외단벽의 북부는 반원형을 이루며 북부가 높고 남부가 낮은데, 이는 하늘이 높고 땅이 낮음을 표시하며 또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짐"을 표시한다. 천단의 주요 건축물은 내단 중축선의 남북 양단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사이를 넓은 단계교로 연결하고 있다. 남으로 부터 북으로 원구단, 황궁우, 기년전, 환건전등과 그 밖의 신주축, 재성정, 재궁 등 건물과 고적이 늘어 서 있다.
◇ 황궁우 (皇窮宇) |
전문 신주를 모셔놓는 사당으로서 속칭 침궁이라고 한다. 높이 19.5m, 밑부분의 직경 15.6m, 목조구조이며, 지붕은 8개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대들보가 없이 두공을 쌓아올렸으며, 천장판이 층층이 축소되어 아름다운 궁륭식 천정을 형성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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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음벽 (回音壁) |
황궁우의 담으로 원형이며, 둘레가 193.2m, 높이가 0.9m 이다. 이는 벽돌을 다듬어 가며 빈틈없이 이어 쌓은 담으로 두 사람이 각각 동서 벽밑에 서서 벽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하여도 음파가 담벽을 따라 계속 반사 전진하며 서로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다. | |
◇ 삼음석 (三音石) |
황궁우전 앞 어로 위의 세번째 석판이다.전당 문을 활짝 열어놓고 석판 위에 올라서서 박수를 치거나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를 들을수 있다. 그것은 세번째 석판이 둥근담의 중심에 위치하여 여기서 소리를 치면 음파가 거의 동시에 원형 엔담에 부딪쳐 도울려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왕시대에는 이것은 신비한 색채를 씌워 "인간세상에서 속삭이는 말도 하늘은 우뢰소리 듣듯 잘 알고 있다."고 하였다. | |
◇ 원구단 (圓丘壇) |
한백옥석 난간으로 둘러싼 3층 석조 원대로서 높이 5m, 옥처럼 희여서 그야말로 장관이다. 명청 시기 매년 동지날 황제가 친히 이 곳에 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하늘, 상재가 하사한 풍년과 태평에 감사를 드리고 또 내년의 국태 민안을 기원하였다. 원구단 상층 단면의 중심석을 천심석이라고 한다. 중심석에서 밖으로 층마다 9환의 부채형 석판을 깔았는데 환마다 9개씩 더 가하여 도합 3402개이다. 이 석판은 크기가 같고 모양이 같으며 빈틈없이 밀접시켜 수백년 비바람에 침식되었어도 여전히 평평하다. 사람들이 천심석 위에 서서 낮은 소리로 불러도 즉시 우렁찬 메아리를 들을수 있다. | |
◇ 구룡백 |
회음벽 밖에 위치, 전하는 말에 의하면, 명나라 영락 연간에 재배, 5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나무줄기가 비비 꼬이고 뒤엉켜 흡사 9마리 용이 서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구룡백이라고 이름지었다. | |
◇ 기년전 (祈年殿) |
기곡전이라고도 하며, 명, 청시기 맹춘에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던 곳이다. 그 구조 형식은 위는 집이고 아래는 단이며 3층 처마는 층층이 작아지면서 우산 형태를 이루었다. 기년전 높이는 32m, 밑부분 직경은24.2m, 6m 높이의 둥근 한백옥석대 위에 우뚝솟아 있는데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 기세가 비범하고 웅장 화려하다. 기년전은 "경천예신(敬天禮神)"의 사상으로 설계, 전내의 기둥은 모두 특정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안층의 4개 용정 기둥 간의 공간은 춘하추동 4계절을 상징하고, 중간층의 12대 붉은 기둥에 의해 분할된 공간은 1년 12달 '월'을 상징하고, 외층의 12개 처마기둥은 하루의 12개 시간을 상징하며,보정 아래의 뇌공주는 황제의 "천하통일"을 상징한다 . |
◈ 만리장성(萬里長城) | |
"不到長城非好漢(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한이 될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진의 강력한 통일제국체제가 낳은 상징적 산물이다.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약 75km쯤 떨어진 곳에 교통이 편리하다는 뜻인 "사통팔달"에서 이름이 유래한 "팔달령"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만리장성을 가장 잘 볼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지기 시작한 장성은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실제는 약 6,400㎞(중간에 갈라져 나온 가지를 모두 합하여)에 걸쳐 동서로 뻗어 있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 유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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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은 북방의 유목민족들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지어졌다.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시베리아의 혹한으로 더 이상 북쪽으로는 진출할 수 없게 되자 남쪽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자가 풍부한 농경지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은 단순히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막인 동시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 |
오늘날 말하는 장성은 명나라에 지어진 것으로, 서쪽 감숙성의 가욕관(嘉浴館)에서 시작하여 요녕성 압록강변에 이르는 635km 길이의 성벽이다. 그리고 만리장성에 설치되어 있는 가드레일과 케이블카는 좀 더 편하고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제는 흘러간 역사의 자취가 된 장성은 세계 7대 건축물에 꼽힐 정도로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또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거대한 명성을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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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개방되는 바다링[八達嶺(팔달령)] 근처의 장성은 높이 8.5m, 두께는 밑부분 6.5m, 윗부분 5.7m이며, 위에는 높이 1.7m의 연속된 철자형(凸字形) 담인 성가퀴[城堞(성첩)]를 만들고 총안(銃眼)을 냈고, 120m 간격으로 돈대(墩臺)를 만들어 군사의 주둔과 감시에 이용하였다. 오른쪽이 왼쪽보다 완만하여 오르기가 다소 편하다. 청나라 때에는 군사적 의미를 상실하고 몽골과의 정치적 경계에 불과하게 되었다. | |
☞ "하루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진나라 시절, 각 가정마다 힘 쓰는 남자들은 차출되어 만리장성의 부역으로 끌려가야했는데 어느 마을에 갓 결혼한 신랑이 만리장성 공사장으로 끌려 가게 되었다. 신부는 남편이 돌아 오기만을 학수 고대했지만 시간이 가도 소식이 없었다. 어느 날, 이 마을을 지나던 나그네가 이 집에 묶에 되었다. 너무나 아리따운 신부의 자태에 넋이 나간 나그네는 떠나지를 못하고 며칠을 묶다가 그만 어느 날 밤에 사고를 칠라고했다. 허지만 의외로 신부가 덤덤했다. 신부는 기꺼이 나그네와의 하루밤을 허락했다. 그 대신 조건으로 편지 한장을 만리장성의 관리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루밤을 보낸 나그네는 길을 떠났고 약속이 지키기 위해 신부의 편지를 전했다. 그런데, 편지를 읽은 난 관리는 난데없이 나그네를 붙잡아서 만리장성 노역장으로 끌고 가고 다른 남자 한명을 그냥 보내주었다. 신부는 편지에 결혼한지 얼마 안되서 남편이 끌려갔고, 그래서 아이도 없이 여자 혼자 살고 있다며 나그네와 벌어진 일이며 남편을 위해 정절을 버렸다는 것..등등 구구절절 애절하게 사연을 적었다. 그 편지를 읽은 관리가 감복을 해서는 나그네를 신랑대신 잡아두고 신랑을 집으로 보냈다. 그 관리는 나그네에게 말하기를 "너는 그 지고지순하게 정절을 지킨 처와의 순결을 하루밤이라도 가졌으니 충분히 그 처의 남편대신 일할 이유가 있노라" |
◈ 이화원(頤和園) 이화원은 북경시 서북 교외에 위치, 도심에서 약 19km 거리로 청나라때의 황실 원림과 행궁이었다. 이화원의 원명은 청의원이며 1764년에 건조되었다. 부지 290㏊, 그 중 수면이 220㏊이다. 원내는 궁정구, 전산 전호구, 후산 후호구 3개 경치구로 나뉜다. 전당, 누각, 정자가 도합 3,000여칸으로 황제와 황후가 정치 활동을 하며 휴식, 유람하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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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 버리고 1888년에 자희태후가 해군경비 500만냥 배근을 유용하여 재건, 10년만에 완공, 이름을 "이화원"으로 고쳤다. 이화원은 북쪽은 만수산을 등지고 남쪽은 곤명호를 안고 있다. 불향각을 주체로 지형과 수면을 충분히 이용하여 가산의 조성으로부터 길의 주향, 전당 누가의 배치로 부터 다리의 조형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통적 원림 조성 기예를 충분히 계승, 발양함으로써 상부 상조의 전체적인 원림 예술 효과를 나타내었다.
◇ 동궁문 (東宮門) |
이화원 정문이다. 문은 삼명이암의 무전식 건축으로, 중간 정문은 "어로"로 황제, 황후가 출입하고 양쪽 문은 왕공, 대신들이 출입하며 태감, 병졸들은 남북 양측 옆문으로 출입하였다. 편액의 "이화원" 세 글자는 광서 황제가 쓴 것이다. 운룡석에 구슬을 갖고 노는 두 마리의 용이 부조되어 있는데 용은 황실의 존엄의 상징이며 또한 유지와 칙령의 표징이다. | |||||||||||||
◇ 인수전 (仁壽殿) |
궁정구의 주요 건축물의 하나로서 원명은 근정저, 광서 연간에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 어지 정치를 베푸는 자는 장수한다는 뜻이다. 인수전은 청나라 말년 자희태후와 광서 황제가 정무를 보던 대전이며 또한 중국 근대사상 변법유신 운동의 획책지의 하나이다. 1898년 광서 황제가 이 대전에서 개량과 두령 강유위를 소견하고 총리 각국 사무 아문장경상행주로 임명, 이로부터 유신 변법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봉건 보수세력의 반대로 "백일 유신"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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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향각 (佛香閣) |
만수산 전산 비탈 21m 높이의 거색기반 위에 건축, 남쪽은 곤명호를 마주하고 북쪽은 지혜해 불전을 등지며, 이 불향각을 중심으로 각 건축군이 매우 정연하고 대칭되게 양날개로 펼쳐지면서 서로 호응하여 마치 한마리의 박쥐모습을 하고 있다. 1860년 불향각은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버리고 그 후 원상태로 재건하였는데 이는 라마교의 건축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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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연방 (석배) |
석방이라고도 한다. 1755년에 건조, 몸체는 거석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총길이 36m, 상하2층 선실이 있다. "물(백성)은 배(왕조)를 띄울수도 있고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뜻을 취하여 청왕조는 반석과 같이 튼튼하여 물이 전복시킬 수 없음을 비유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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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공교 |
곤명호 동쪽 제방과 호심의 남호도를 연결하는 대형 석교로서 총길이 150m이다. 교두와 난간 기둥에 도합 544마리 돌사자가 조각되어 있는데 형태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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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해공원(北海公園) 고궁의 서북쪽에 있는 이 공원은 북해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중심이다. 여기는 요, 금, 원, 명, 청의 역대 황제의 어원(御苑)이었던 곳이다. 호수의 남쪽에 이 공원의 심벌인 큰 흰탑이 보인다. 이 탑이 있는 곳이 북해공원의 중심지역인 경도(瓊島)이다. 궁정요리로 유명한 음식점이 이 경도 안에 있다. 섬으로부터 배로 서북쪽으로 건너서 조금 가면 흙담에 둘러싸인 일각에 구룡벽(九龍壁)이 있다. 이 구룡벽은 고궁 황극문 내의 구룡벽과 함께 유명하다. 북해공원에는 또 하나 볼거리가 있다. 그것은 공원의 남문 입구 근처에 있는 단성(團城)이다. 단성이란 환상선(環狀線)을 따라 이어진 예전의 성벽 중 일부인데, 역시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옥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옥옹(玉甕)도 있다. 징기스 칸의 손자 쿠빌라이에게 바쳐진 헌상물이라고 한다. 베이징의 700년 흥망을 계속 보아온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값어치가 있다. 여름에는 보트가 있어 호수가 꽤 활기에 넘친다. |
◈ 천안문(天安門)
명청시대 항성 정문, 명나라 1417년에 처음 설립. 황제의 조서를 전국에 발표하던 곳. 초기에 승천문(황제가 하늘로 부터 명을 받아 잇는다)으로 불리웠으나 1457년에 소실, 청나라 1651년 천안문(천하 편안 하게 한다)으로 개명되어 현재까지 사용. 전체 너비 1,710㎡, 성루 너비 62,77㎡로서 매우 거대한 문. 성루 지붕 네 모서리에는 선인을 필두로 용, 봉황, 사자, 기린, 천마 등 전체 11개 조각들이 서 있다. 이는 성루를 호재 등의 재난으로부터 지킨다는 의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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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개의 문 중, 가운 데 문이 너비 5,25m 높이 8.82m, 길이 30m로 가장 큰 규모이다. 이전에는 황제만이 드나들 수 있는 어도였다. 어도의 좌우 두 문은 왕이나 고관대신 들어 드나들던 문이었으며 그 옆 두 문은 관리나 병졸 등이 드나들던 문이다. 문 앞 좌우에는 화표라 불리는 2개의 큰 기둥이 서 있다. 화표 위의 동물은 후라 불리는 짐승이다. 이 후는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천안문 뒤쪽의 후는 북쪽 황궁을 바라 보고 있다. 후는 황제의 거동을 주시하는 신성한 전설상의 동물이다. 뒤쪽 후는 황제가 궁 안에만 머물며 국정을 돌보지 않을 때 황제에게 밖에 나가 민정을 살피도록 권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황제가 출문하기를 기다리는 이 후를 일컬어 망군출이라 부른다. 그리고 앞쪽의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후는 황제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을 때 어서 돌아와 국정을 처리하도록 군했다하여 망군귀라 부른다. 천안문 앞의 조그마한 강물은 금수하이다. 금수하 위의 5개 다리는 금수교이다. 맨 가운데 다리는 황제만이 건널 수 있는 다리이다. 금수교 양쪽의 사자상은 왕궁을 외부로부터 지키고 있다. 또한 황제가 하늘이나 땅에 제사를 지내려 갈때나 출정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문이었다. 1911년12월 25일 천안문에서는 중국 마 지막 황제 푸이가 퇴위조서를 발표하였으려 1949년에는 마오쩌똥이 신중국 성립을 선포하였다. 입장료를 내면 성루 위에 올라갈 수 있다.
톈안먼이 광장은 북쪽 끝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광장 중심부에는 2층의 대리석 기단 위에 민족의 독립과 자유 그리고 인민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인민영웅기념비(1958년 완성)가 있고, 광장 동쪽에는 기념박물관 단지(1961년 개장)가 있다. 여기에는 중국혁명박물관(1919년 이후의 역사를 다룸)과 중국역사박물관(1919년 이전의 역사를 다룸)이 들어서 있다. 인민영웅기념비의 남쪽에는 마오쩌둥 기념관[毛澤東紀念館:1977 완공]이 있는데, 그곳에 마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좀더 남쪽에는 명(明) 영락연간(永樂年間:1402~24)에 세워진 치엔먼[前門]이 있다. 광장의 서쪽에 인민대회당이 있다.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매년 이곳에서 개최되는데, 1만개 이상의 좌석을 갖춘 회의장과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을 갖추고 있다. 대규모 군중집회 장소로 이용하기에 적절하게 설계된 톈안먼 광장은 1919년 이래 학생 시위대의 집회장소가 되어왔다. 특히 1989년 6월 이곳에서 잇달아 발생한 극적인 학생시위가 강제로 진압되었다.
◇ 천안문 앞 화표 |
고대 중국에서는 화표를 대부분 다리, 궁전, 성벽 앞에 세워 장시과 표징으로 삼았다. 천안문 앞뒤의 화표는 옹근 한백옥석을 조각하여 만든 것으로 조형이 아름답고 정교하며, 무늬가 생동하여 화표중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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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문 광장 |
북경의 중심광장으로 면적은 44.5㏊이다. 광장 북쪽에 천안문이 우뚝 솟아 있고 중앙은 인민영웅기념비, 기념비 남쪽은 모주석 기념당과 정양문, 동서 양측은 중국역사 박물관과 인민대회당이다. | |
◇ 인민영웅기념비 |
이 기념비는 1840년 이래 중화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기념비 높이 37.94m 부지 3000㎡, 기념비 정면은 천안문을 향하고 위에 모택동이 친필로 쓴 "인민영웅은 길이 빛나라."라는 금을 도금한 여덟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은 주은래가 쓴 비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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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역사박물관 |
인민대회당과 서로 대칭대는 건축물로서 총면적 6만 9000㎡이다. 박물관 내에는 170만년전의 원인유적부터 1840년전까지의 문화재 30만점이 수장, 진열되어 있다. 그 중 대부분은 1949년 후의 고고발굴품으로서 매우 높은 역사적 가치와 에술적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 |
◇ 인민대회당 |
전국인민대표대회 청사로서 만인대회당, 5000인 연희홀, 전인대 상무위 오피스 3개 부분으로 구성, 총면적 17만여㎡이다. 정문 처마 부위에 중화 인민공화국 국장이 상감되어 있다. 건축이 웅장하고 장엄하다. |
◈ 골동품과 전통의 거리 유리창(琉璃廠 : 리우리창)
북경 화평문(和平門)에 위치해 있으며, 200년 전인 청대 건륭 연간에 형성되었다. 유리창이라는 이름은 원나라때 유리기와 공장이 있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졌다. 처음에는 과거를 치르기 위해 북경으로 온 사람들 중에서 과거에서 낙방한 사람들이 거리를 정리한 다음 가져온 서적, 먹, 벼루 등을 가지고 나와서 팔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청조가 멸망한 이후에는 몰락한 귀족 자제들이 문중에서 소장하던 품목들을 가지고 나와 팔아서 생활을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 점점 하나의 시장이 형성되었고, 마침내는 골동품을 거래하는 전통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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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곳에는 100여 개의 상점이 있으며, 고서 이외에도 도장, 벼루, 먹, 붓, 탁본, 각종 골동품, 공예품 등이 판매되고 있다.
◈ 북경최대의 번화가 왕부정(王府井, 왕푸징)거리 북경시 최대의 번화한 거리로서, 시 동편에 길게 늘어선 상점거리다. 약 1km가량의 거리 왼편으로 약 100여개의 각종 상점이 들어서 있는데, 우의상점을 비롯해 신화서점 등 유명한 상점을 비롯해 우의빈관과 같은 호화호텔도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일찍이 황실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황실의 우물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왕부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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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이 있던 곳이어서인지 이곳은 아직도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상점과 빌딩이 많으며 유리창거리가 우리의 인사동거리와 비교되는 것처럼 이곳은 우리의 명동, 압구정거리쯤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쇼핑에 빠지지 않는 먹거리도 가득한 곳으로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간식거리가 있어서 역시 음식천국이라 불리는 중국을 실감케 한다. 특히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한 불빛으로 행인들을 유혹하는데, 군것질을 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여유가 북경여행을 더욱 즐겁게 할 것이다.
◈ 공묘(孔廟, 공자사당) 북경의 고궁(故宮), 제남의 태산에 있는 대묘(岱廟), 그리고 중국의 3대궁전 건축물의 하나로 알려진 것이 공묘(孔廟)이다. 춘추시대의 사상과 공자를 기원하는 사당(廟)이다. 노나라의 哀공이 공자가 죽은 이후 묘를 세운 것이 시작으로 그 후의 역대황제로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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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길이가 약 1km, 면적이 22ha에 달하고, 용의 승천하는 모양이 새겨져 있는 거대한 18개의 석주를 가진 장대하고 아름다운 대성전, 53개의 돌비석이 세워져있는 13비정(十三碑亭)등, 공묘내에는 귀중한 건축물이 많이 세워져 있다. 대성전과 대성문 좌우에 있는 건물을 새로 개장한 진열관(陳列館)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을 사용하고 있지만 내부는 개수가 되어서 공조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소중한 문물의 보존을 완벽하게 하고 있다. 전시물은 북경의 역사를 대표하는 문물을 전시하고 있다. o 입장료 :10元 |
◈ 명 13릉(明13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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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13릉은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약 50km 상거해 있다. 황릉 구역은 장릉이 있는 천수산을 주봉으로 동, 서, 북 삼면이 뭇 산들에 둘러싸여 천연적인 대정원을 구성하며 정원문은 남쪽에 있고, 그 양쪽에 망산과 호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마친 용과 범이 대문을 지키고 서있는 듯하다. 남쪽은 넓은 분지이고 온유하가 서북에서 감돌아 흐러내린다.명나라 성조 주태로부터 사종 주유검 등에 이르기까지의 13명 황제가 모두 이 군산이 둘러싸고 송백이 무성한 구역내에 매장되었는데 총면적이 약 40㎢이다. 명13릉은 영락 7년(1409년)에 장릉을 건조하기 시작해서부터 숭정 17년 (1644년)에 사릉을 수축하기까지 200여년을 경과하였다. 공사의 거대함과 시일의 긺은 중국 능묘 영조 역사에서 둘도 없다. |
당시 전체 능묘구역의 사방 수십km 범위는 금지구역으로서 매우 많은 신비로운 색채를 씌워 놓았었다. 1956년 중국 문화재 고고학자들이 명나라 만력 황제 주익균의 능묘 - 정릉을 발굴하고 지하 궁전을 발견하였는데 관곽외에 금, 은, 진주, 보석, 복식, 옥기등 보물 3,000여점의 보물이 출토되어 정릉의 비밀이 밝혀졌다. 1959년 10월에 정릉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이때부터 명 13릉은 북경지역의 유명한 관광명소로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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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화궁(雍和宮=용허궁)
옹화궁(雍和宮)은 베이징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가장 잘 보존된 라마묘(喇麻廟-라마를 모시는 사당)이다. 옹화궁은 명나라 시대에는 귀족들이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청광서(淸光緖) 33년(1694년)에는 옹친왕부(雍親王府- 옹시 왕궁)로, 옹정(雍正) 3년(1725년)에는 옹화궁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청나라 건륭 9년(1744년)에 라마묘로 고쳐 라마교의 사무를 보는 곳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옹화궁에는 로천왕전(路天王殿), 옹화궁전(雍和宮殿), 영우전(永佑殿), 법륜전(法輪殿), 만복각(萬福閣), 궁동서원(宮東書院), 평안거(平安居), 여의실(如意室), 해당원(海棠院), 화원 등이 있다. 특히 법륜전(法輪殿)의 모습이 제일 웅장하고 멋있는데, 십자형으로 되어 있는 집 위에는 5개의 작은 누각이 있고, 각 누각에는 한개의 라마탑(喇麻塔)이 놓여있다. 옹화궁에 있는 제일 큰 건축물인 만복각(萬福閣)은 좌우에 있는 영강각(永康閣), 연안각(延綏閣)과 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누각 안에는 백단목(白檀木)으로 된 세계에서 제일 큰(높이 26m) 나무부처가 앉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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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화궁 법륜전(法輪殿)에는 라마황교(喇麻黃敎)의 창시자인 종객바상(宗喀巴像)을 모시고 있는데, 종객바상의 얼굴과 손은 모두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현재 옹화궁은 베이징의 유명한 라마묘(喇麻廟)로서 전국 중점 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 계림의 축소판 용경협(龍慶峽 : 롱칭시아)
북경 외곽에 위치한 팔달령에서 40분 정도가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남방 산수의 부드러움과 북방 산수의 웅장한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또한 "작은 계림(小桂林), 작은 삼협(小三峽)"이라고 불릴 만큼 높이 솟은 가파른 봉우리들이 장관을 이룬다. 북경의 16명소 중의 한 곳으로, 전체 면적은 119㎢이며, 주요 명소는 70m 높이의 콘크리트 댐으로 중국의 북방 지역에서는 최대 규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여름에는 폭포, 겨울에는 얼어붙은 폭포를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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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길이의 배유람은 또 하나의 졀경을 연출한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나와 산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10분 간격으로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면 배를 타고 진강사와 같은 역사적 장소들도 구경할 수 있다. 강은 절벽 측면을 따라 흐르며, 관광객들은 종산(鍾山), 봉관도(鳳冠島)와 같은 깎아내릴 듯한 절벽 등의 30여 가지의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이 곳은 여름의 평균 기온이 6.4℃로 북경 시내보다는 낮다. |
봄부터 가을까지 "작은 계림"이라 불리며, 시원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하던 용경협은 겨울이 되면 물이 얼어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은 아쉬움 대신 환상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환상적인 얼음의 축제, '빙등예술절(氷燈藝術節)'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매년 1월부터 약 두달간 4,000㎡의 얼음바닥 위에서 진행된다. 빙등제는 이미 하얼빈의 것으로 유명해졌지만, 이곳의 빙등제를 "작은 하얼빈의 빙등제"라 불러도 될 만큼 그 재미와 아름다움에 있어서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용경협은 하루 안에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차를 타고 입구에서 내려서 20분 정도 걸으면 댐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258m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된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1996년에 완공되었으며, 용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길이면에 있어서 기네스북에 올라 있기도 하다.
◈ 잡기(雜技)로 불리는 서커스 | |
곡예와 다양한 기술이 집대성된 중국 고유의 전통 예능이다. 중국의 서커스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관람을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접시 돌리기, 한발 자전거 타기, 공중 줄타기 등 전형적인 서커스의 종목은 물론 그림자 공연, 성대모사, 휘파람 묘기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춘 공연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경 시내의 극장에서 매일 또는 요일별로 정기적인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가격은 20元부터 시작되지만 극장별로 차이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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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미리 예매를 해 두거나 시작보다 일찍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첫댓글 제대로 북경 구경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