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되게 하소서
- 초대사목회장 전명구 미카엘 -
저는 전명구 미카엘입니다.
저는 이 본당이 설립되던 2002년 9월부터 본성전이 봉헌된
2007년 6월까지 4년 10개월간 지금은 속초 동명동성당에 계신
엄기영안드리에 신부님을 모시고 본당 사목회장을 지냈습니다.
제가 사목회장을 하는 동안에 이 성전이 지어졌는데 그때 교우들 참으로 일도 많이 하셨고
따라서 고생도 참 많이 시켰습니다.
오랜만에 이 자리에 서서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 그 이후에 본당으로 오셔서 이 스무숲 공동체 발전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시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당시 이 자리는 허허 벌판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저 앞 큰길까지는 건물은 한 채도 없었고
지금 성당 마당에는 개 사육장이 있어서 개들이 삼백여마리가 있었습니다.
2002년 9월 15일 설립미사 때에도 그 전날 약간의 비가 내린 상태여서
그 냄새와 울부짖는 개소리와 함께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나서 당장 다음 미사드릴 장소를 찾아야 했습니다.
당시 주교님은 천막교회로 시작하라고 하셨지만 곧 겨울은 오고
노약자와 어린이들 때문에 안되겠고, 우선 개소리 때문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분가를 하면 임시 성당을 마련해 주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옆의 농공단지에는 빈 건물이 더러 있었는데 종교시설은 안된다고 해서
수소문 끝에 한주아파트 상가 지하에 약 150평되는 폐학원 자리를
140만원에 6개월로 계약했습니다.
그 건물이 삼성생명엔가에 담보가 되었는데 언제 낙찰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우선 겨울이나 나고 보자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교우들은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발등에 불을 달았습니다.
시간이 있는 사람은 아침부터 매달리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성당으로 퇴근을 했습니다.
건물이 원체 낡아서 천정은 거의 내려앉고 천정위에는
완전히 전선과 배관의 정글이었습니다.
받치고, 꿰매고 칸막이하고 칠하고...
이렇게 해서 5일만에 그래도 깨끗하고 아늑한 성당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9월21일 추석날에 감격의 첫 감사미사를 드렸습니다.
그 후에도 우리의 애환은 계속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1km는 족히 될 거리를 매일 밤 걸어서 빈 성당을 순찰하셨습니다.
2003년 1월 13일 월요일 휴일인 그날도 밤늦게 성당에 들렸던
신부님은 깜짝 놀라셨습니다. 성당이 온통 물바다가 돼 있었습니다.
낡은 스프링클러배관이 동파된 것입니다.
급히 교우들에게 비상을 걸었습니다.
순식간에 모여든 교우들은 동네 양수기까지 동원해서
대충 퍼내고 나니 3시가 다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물난리를 겪은 교우들은 오히려 더 가까운 가족애를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교육관부터 짓기로 하였습니다.
당시는 그 개장 때문에 성당 부지가 확정되지 못했습니다.
2003년7월20일 교육관 착공식을 하고 그 공사장 인부들의 밥값에서라도
성전 건립기금을 마련해 보겠다고 현장식당(소위 함바)을 하겠다고
지금의 사제관자리에 비닐하우스 식당을 차렸는데 3일만에 화재가 났어요.
가스불을 점화하려고 하다가 불이 붙었지요.
자매님들이 놀라 자빠지고 가스통을 내던지던 요셉이는 눈썹이 홀랑 타버렸어요.
지하 성당에서는 11시 교중미사가 끝날때쯤 소방차 싸이렌이 들리는 것 같았는데
이내 성당 터에서 불이 났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부랴부랴 모두 올라와보니 불은 꺼졌고 식당은 철 파이프만 앙상하게 서있었습니다.
눈썹이 타버린 요셉은 경찰서로 조사받으러 붙들려 가고...
혼이 나간 자매에겐 온 동네 청심환 다 걷어다 먹이고...
이내 덤벼들어 그으름 닦아내고 비닐 다시 씌우고, 바로 저녁식사를 해 먹였습니다.
이 식당은 바로 성당 식당이 되고 단체 모임식사는 물론 레지오2차 주회까지
다 거기서 치러 냈습니다. 교육관짓고 결산은 1,100만원이 넘었습니다.
이동식 화장실 사는 돈 25만원을 아낀다고 이 앞 토목공사 때 쓰고 버린 것을
싣고오다 트럭바닥이 온통 오물 투성이가 되기도하고,
폐지 빈명을 주어 팔아 그것도 한달에 20~30만원씩은 벌었습니다.
돈도 돈이지마는 교우 가족들의 마음을 모으는 데에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춘천시 닭갈비 축제에 부스 2개를 빌려 일주일간 닭갈비 장사를 했습니다.
본당 전 교우들이 출동해서 춘천시내 성당 친구들을 다 불러내는 호객꾼이 되었고,
손님 치르느라 닭갈비 먹고 팔다가 남은 닭갈비 먹느라 교우들은 닭갈비에 물려버리고
본당 신부님도 그 이후 닭갈비는 아예 처다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700만원을 벌었습니다.
바자회도 열었는데 비가 억수로 퍼부어서 다른 본당 어느 자매는
하이힐 뒷꿈치가 망가지는 사고도 있었지만 이때에도 2,400여만원의 순수입을 올리고
물건도 많이 남아 두고두고 팔았습니다.
2003년 12월 10일 10시30분 지하 성당에서의 마지막 미사를 드리고
감실을 모시고 나올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격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12월13일 교육관 축복식을 마치고 교육관식당에서 교우가족여러분에게
감사의 큰절을 드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는 직업이 전자 기술자입니다.
20대초에서 시작해서 지금 제가 74세가 되었으니 50여년을
이 기술로 밥을 먹고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큰 은총의 달란트이지요.
그런데 제가 성당 생활을 하면서 보니 저의 이 탈렌트가 쓸모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2000년도에 애막골성전을 지을때에
그성전에 필요한 음향시설일체를 봉헌하였습니다.
애막골 성전을 짓고 바로 스무숲으로 왔습니다.
이 성전에서도 음향일체와 영상기재 일체를 봉헌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를 제게 주셨습니다.
또 저의 노력과 지식으로 봉사할 수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찾아갔습니다.
죽립동성당의 음향보수, 퇴계성당의 음향, 영상설치, 소양로성당, 강촌성당,
철원, 군종성당, 강릉주문진성당, 횡계,진부성당, 곰실, 실레마을공소,
청평미원성당등. 제가 필요한곳이라면 또 찾아가겠습니다.
저는 이 일을 저의 성소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겸손되이 사시는 모습 늘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