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촬영.
모닝은 이렇게 끝내고,
9시경 숙소를 출발해 사천왕사로 향했다.
숙소에서 내려다보이던 작은 절.
지나는 길에 안에 들어가 봤다.
우리나라의 절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절을 나와 사천왕사를 향해 걸었다.
도톤보리에 걸린 다리를 건너며,
멀리 있는 돈키호테 상점을 바라봤다. 오사카 시내의 깨끗한 운하는 언제 봐도 좋다.
은혜네 하우스, 오사카 시내를 걷다 보면 수시로 한글을 볼 수 있다.
중화요리집에도 한복을 입은 여성의 사진이 있다.
천일전 통(千日前 通) 거리에 있는 보행자용 고가다리.
이 거리엔 선인장도 있고.
교회도 있다.
전철역으로 내려가는 길.
타니마치큐초메역(谷町九丁目)에서 전철을 타고,
시텐노지마에유히가오카역(四天王寺前夕陽亇丘)에서 내렸다.
4번 출구로 나가서,
사천왕사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학교가 있는 방향(북문이 있는 곳)으로 가는 바람에,
靈苑(영원, 묘역) 한가운데를 통과했다.
시텐노지(사천왕사) 본방의 출입문(북문)이다. 이곳은 비공개 지역으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사천왕사의 지도(배치도)이다.
사천왕사는 외곽에 담을 두르고 6개의 문(동대문, 당문, 남대문, 서대문, 중지문, 건문)을 두었다.
정전인 금당이 있는 곳은 장방형의 회랑을 두고, 정면과 좌우 3 곳에 문을 달아 이곳을 통과하여야 금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정원이 있는 본방도 별도의 담장을 설치하여 북문이나 당문을 통해야만 출입할 수 있다.
동대문. 앞에는 일본불법최초사천왕사라고 새긴 석주(돌기둥)가 있다.
동대문 양옆에 금강역사를 모셨다.
오른쪽에는 아(哦) 하고 입을 벌린 나라연금강
왼쪽에 흠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밀적금강.
동대문으로 들어오면 보이는 석등 뒤에는 伊勢神宮(이세신궁) 요배석(遙拜石)이 있다.
우측은 출입금지 구역인 본방의 정원이 있는 곳이다.
동대문으로 들어가며 본 풍경. 앞에 구정당 건물이 있다.
龜井堂(구정당)
龜井堂(구정당)
좌측은 금당을 둘러싼 회랑과 강당 건물이고 우측은 太鼓樓(태고루)이다.
금당의 회랑.
구정당 앞에 있는 거북못이다.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거북이들이 이 못에서 살고 있다.
우측의 건물은 보수 중인 육시당 건물이다. 좌측에는 금당이 있고, 서대문도 있다.
태고루 앞에 있는 육시당(六時堂)과 舞臺講(무대강)
육시당(六時堂)과 舞臺講(무대강) (2018년 4월 3일 촬영).
육시당(六時堂)과 舞臺講(무대강) (2018년 4월 3일 촬영).
거북 못.
밖에서 본 남대문.
남대문에서 본 금당의 출입문인 중문과 오중탑.
남대문 안에서 본 能野権現禮拜石(능야권현예배석)과 석등.
能野権現禮拜石(능야권현예배석)
남대문에서 본 금당의 中門(중문)과 회랑.
금당의 정문인 중문(中門)은 인왕문(仁王門)이라고도 부른다.
인왕문 양편에도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다.
인왕문(중문)에서 들여다본 오중탑(五重塔),
오중탑(오층탑) 뒤에는 금당과 강당이 있다. 금당은 현재 서중문(西重門)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다.
이시노토리이(石鳥居,석조거) / 중요문화재
닌쇼화상이 발원에 의해 세워진 산문(이시노토리이)은 사천왕사의 신앙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그 현판에는 <석가여래 전법륜처 당극락도 동문 중심>이라고 적혀 있어, 사천왕사가 석가여래께서 설법하신 성스러운 토지이며,
극락정토의 동문에 해당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산문을 지나 가람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문이 있다. 이것은 서대문으로서,
극락문이라고도 칭한다. 이 주변 일대는 예부터 정토신앙의 성지로서 사람들의 신앙심을 불러일으킨 곳이다. - 리플릿 내용 -
붉은 깃발이 있는 곳 안쪽이 納骨總祭塔(납골총제탑)이 있는 곳이다.
서대문(西大門), 고쿠라 몬(極樂門)이라고도 부른다.
안쪽에서 본 서대문.
사천왕사는 587년 쇼토쿠태자(聖德太子, 574~62에 의해 일본에서 최초의 사찰로 지어졌다.
6세기에 백제의 성왕이 쇼토쿠태자에게 보낸 불상과 경전을 계기로 불법을 옹호한 소가(蘇我) 씨족과 불법 도입을 반대한 모노노베(物部)
씨족과의 불교 전쟁(538~587)에서 소가 씨족의 승리로 불법이 일본에 정착하게 되었다.
율령제 국가를 지향했던 쇼토쿠태자(聖德太子, 574~622)는 전쟁의 승리가 불교에 있다고 하여
백제에서 사찰을 지을 장인들을 초청하여 네 명의 장인(중촌, 금강, 다문, 오자)이 일본에 건너와서 사천왕사를 지었다.
이후 네 명의 장인 중 3명은 쇼토쿠태자의 발원으로 나라 현(奈良縣)에 호류사(法隆寺)를 짓기 위해 이동하였지만,
쇼토쿠태자가 금강만은 남아 사천왕사를 지켜달라고 하여 그때부터 14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금강 가문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사천왕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고건축 회사인 곤고구미(금강조,金剛組)가 바로 후손들이 이어온 회사이다.
금강 가문은 초대부터 36대까지 죽어서도 사천왕사를 떠나지 않고 사천왕사의 영원(靈苑)에 잠들어 있다. 37대는 회사가 부도의 위기에
처하자 조상의 무덤 앞에서 면목이 없다고 할복자살하여 부인인 곤고 요시에가 뒤를 이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38대 회장이 되었다.
그는 1936년 태풍으로 무너진 오중탑을 창건 당시의 방법으로 나라에서 나무를 베어 소를 이용해 오사카까지 운반해 1941년 옛 모습대로
중건하였다. 금강 가문은 꼭 직계가족으로 대를 잇지는 않았다. 곤고 요시에를 이어 아들 곤고 토시타카가 39대 회장이 되었으나,
40대는 곤고 요시에의 사위 곤고 마사카즈가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사천왕사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오사카 공습으로 전부 소실되었으나 1963년 시멘트 건물인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常夜燈(상야등)
親鸞聖人舊跡(친란성인구적)
나무아미타불이 새겨 있는 돌기둥.
서대문(西大門, 極樂門,고쿠라쿠몬) 뒤로 보이는 오중탑과 금당.
금당의 출입문인 西重門(서중문)이다. 금당의 입장료는 300엔이다.
입장해서 전면인 중문에서 보면 좌측(서쪽)으로 난 회랑이다.
출입할 수는 없는 문이지만 금당의 정문인 中門(중문)이 보인다.
좌측 코너에서 본 오중탑과 금당과 강당.
남쪽인 중문에서 본 오중탑(오층탑)이다. 좌측이 출입문인 西重門(서중문)이고 우측이 東重門(동중문)이다.
사천왕사는 1400여 년 전 성덕태자의 서원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일본 최초로 막부의 보호하에 있던 사찰이다.
경내의 건축물은 창건 이래 몇 차례의 화재를 입었으나 사람들의 돈독한 신앙에 힘입어 거듭 복원되었다. 그중 가마쿠라시대의
산문(이시노토리이), 에도시대 초기에 재건된 육시당과 원삼대사당은 화재를 입지 않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중심 가람은 전쟁 후의 발굴조사에 기초하여 아스카시대의 창건 당시 양식 그대로 복원된 것이다.
연중행사 중에는 성덕태자의 기재일요법요가 있다. 그 기재일에는 무악(일본전통음악)과 법요가 합쳐진 성령회를 비롯하여
춘분, 추분피안회, 여름의 백중행사 등 천 년 이상의 전통을 오늘날까지 계승하고 있으며,
성령회의 무악은 중요무형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보물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성덕태자가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병자초립검, 칠성검, 헤이안 시대의 곱고 화려한 선면법화 경책자 등의 국보는
각 시대의 신앙심에 바탕을 둔 불교예술의 진수들이다. 현재의 사천왕사는 성덕태자의 <화,(和)>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和宗(와슈)>으로 독립하여, 교육, 사회복지 등 여러 가지 사업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춘분, 추분피안 회의 활기참이 상징하듯
서민 신앙의 사찰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로 정착되었다. -리플릿 내용 -
중문(中門, 인왕문仁王門) 안쪽에서 본 남대문(南大門)
우측 코너에서 본 오중탑(오층탑)과 금당 그리고 강당의 모습.
우측 회랑.
우측 회랑에서 본 좌측에서부터 중문(中門)과 오중탑(五重塔)과 금당(金堂)
사천왕사의 중심 가람은 사천왕사식 가람 배치로서, 중문, 오중탑, 금당, 강당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그 주위를 회랑으로 둘러싼 형식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람 배치로 일컬어지고 있다.
몇 차례에 걸친 천재지변과 전쟁으로 인하여 소실되고 파괴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오사카 공습에서 전부 소실되었지만 1963년에 복원되었다. - 리플릿 내용 -
東重門(동중문)이다. 뒤에 보이는 팔각의 건물은 태자전의 奧殿(오전)이다.
오중탑(五重塔)과 금당(金堂)
이 건물들은 1963년에 시멘트로 복원한 건물들로 오래된 건축물이란 느낌은 없다.
오중탑(五重塔)
오중탑(五重塔) 1층 정면의 내부.
측면과 후면.
후면.
오중탑은 내부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오는 계단이 따로 있다.
층마다 불탑과 불상들이 있다.
오중탑 꼭대기까지 올라도 전망은 없다.
오중탑에서 본 금당.
금당 내부
2018년 4월 3일 촬영.
금당(대웅전) 金堂四天王寺御本尊救世觀世音菩薩尊像(금당사천왕사어본존구세관세음보살상)
사천왕사의 금당에는 성덕태자의 본지불인 구세 관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주위에는 사천왕을 모시고 있다.
그리고 벽화에는 나카무라가쿠료화백이 불전도(부처님의 일대기)가 있다.
강당.
강당에서 본 금당과 오중탑.
강당에 모신 아미타여래 진상.
강당에 모신 십일면관음상.
강당에서 본 금당과 오중탑.
작성자 : 바위솔
첫댓글 생각 보다 꽤 넓네요.
친란성인구적? 멋집니다.
6세기때 우리나라 백제의 장인들이 사천왕사를.,
1400여년을 지켜내고 있는 금강 가문도 대단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