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의 생성변화와 문화콘텐츠 확산 관련 연구
-춘천시 ‘공지천’ 지명의 스토리텔링사례를 통해서
이학주
(강원대학교)
<국문초록> | ||
이 논문에서는 지명의 생성변화에 따른 문화콘텐츠의 확산을 스토리텔링이라는 차원에서 알아보았다. 연구의 대상은 강원도 춘천의 대표 관광지로 알려진 공지천 지명이었다. 이에 공지천 지명의 생성배경과 그 원형을 바탕으로 문화콘텐츠로 확산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지천 지명의 생성과 변화양상이다. 공지어와 공지천은 곰짓내에서 비롯하는데, 그 어원을 추적해 보면 원형이 곰(神)+짓(짓다)+내(川)였고, 그것은 대룡산신이 지어준 물을 쓰면서 그 고마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원래 곰짓내라 불렀던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공지천으로 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곰짓내에 신이성이 개입되어 ‘공지어(孔之魚)’를 낳는 지명설화가 탄생되었다. 둘째, 공지천 지명의 생성원형에 따른 문화콘텐츠 창작이다. 공지천의 원천 지명인 곰짓내와 비슷한 생성어원을 가지고 있는 충남 공주의 곰나루이야기가 있다. 그 주인공 곰은 마을공동체의 신으로 좌정하여 제의로 남았고 이야기는 신화(神話)로 고정되었다. 그 때문에 이야기의 생성변화가 더 이상 이뤄지지 못하고 곰이야기로 고착화 되었다. 반면에 공지천의 지명은 제의가 사라지고 신이성(神異性)으로 남았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생성될 때 환상성이라는 사실이 포함되었다. 이에 곰짓내와 공지어가 원형이 되어 다양한 이야기를 낳았다. 이로 인해 설화, 소설, 마임, 조형물 등의 문화콘텐츠로 확산하였다. □ 주제어 공지천, 곰짓내, 신이성(神異性), 지명의 환상성, 지명의 생성과 변화, 문화콘텐츠 확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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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2. 공지천 지명의 생성변화와 문화콘텐츠 확산 2.1 공지천 지명의 생성과 변화 양상 2.2 공지천 지명의 생성원형에 따른 문화콘텐츠 창작 3. 결론 |
1. 서론
본고의 목적은 지명(地名)의 생성과 변화에 따른 문화콘텐츠의 확산을 스토리텔링이라는 차원에서 알아보는 것이다. 그 대상은 춘천의 대표 관광지로 알려진 ‘공지천’으로 한다. 공지천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공지천이 춘천에서 가장 잘 알려진 지명 가운데 하나이며, 공지천 지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공지천이란 지명에서 시작하여 지명이 설화, 소설, 마임, 관광, 유원지 등으로 다양하게 확산되어 가는 원인이 무엇일까를 찾는 것이다.
공지천이 수많은 문화콘텐츠로 생성하게 된 것은 그만큼 공지천이 춘천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지천이 왜 춘천사람들에게 그런 관심을 불러 일으켰을까? 그 대답은 상당이 많이 나올 수 있다. 공지천이 입지가 좋아서, 접근성이 좋아서, 경관이 좋아서 등처럼 말이다. 그런데 공지천이 춘천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런 우리의 상상과는 달랐다. 바로 우리의 생활에 가장 필요한 ‘물’을 제공하는 고마움에서 비롯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사실을 본고에서는 지명의 생성과 변화라는 사실을 통해서 밝힐 것이다.
지명은 땅이름이다. 땅이름은 사람이 생활의 필요에 의해서 명명한다. 명명하는 순간 고유명사(固有名詞)가 되어 생명을 갖게 된다. 이렇게 이름을 갖게 된 땅은 고정된 공간이기 때문에 위치를 나타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땅이름을 따라 그 위치를 찾아가고 그 위치에 있는 나무나 돌이나 평야 같은 현상을 보게 되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에 의해서 상상하고 추억하고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 나간다. 이제 땅은 땅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런 사실은 더 나아가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고 영화의 배경이 된다. 그 콘텐츠는 우리의 감성을 일깨워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이나 상상이나 전승환경에 따라 지명이 변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지명은 ‘원래지명의 원형상징을 지닌 채’ 변하기도 하고, 어떤 지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그 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확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명의 변화는 어쩌면 세월이 변하듯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지명의 변화가 원래 가지고 있던 원형상징(原型象徵)을 잃지 않고 변화를 지속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변화는 마치 새로운 마인드맵(New Mind Map)처럼 중심어(원형)-개념어(발상)-확대어(연상)로 확산되고 있다. 이때 중간의 개념어를 빼고 중심어와 확대어를 보면 둘은 전혀 연결이 안 되는 별개의 모습일 수 있다. 변화 과정에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의 원리를 공지천 지명을 통해서 찾아보도록 한다. 이를 통해 지명이 사람들의 생활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으며, 지명이 변할 때 그 원형상징은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왜 사람들은 지명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며 끝없이 문화콘텐츠로 확산시키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학자들은 한국지명학회를 운영할 정도로 지명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그 가운데 본 논문에서 밝히고자 하는 지명의 생성과 문화콘텐츠 확산에 대한 몇몇 연구가 있어 본고의 작성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공지천 지명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되는 공주의 곰나루 관련 지명연구도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공지천의 지명과 관련해서는 춘천지역에서 발간된 지명관련 책과 설화집에 단편적으로 언급이 되고 있다. 이들 자료에 힘입어 본 논문을 작성한다.
2. 공지천 지명의 변화와 문화콘텐츠 확산
2.1 공지천 지명의 생성과 변화 양상
공지천 지명의 생성 변화를 보기 위해서 자료를 중심으로 검토해 보자. 공지천(孔之川)이 지리지에 한자로 처음 언급된 것은 『관동지』(1830) 춘천 교량(橋梁)조에 ‘孔脂川’(공지천)이라고 쓴 내용이다. 지금 쓰는 한자표기와 지(之, 脂)자가 다르다. 『관동지』 이전에 기록된 춘천 지명 관련 책은 모두 한자로 기록했기 때문에 한글표기는 없다. 그러니 그 이전에는 어떻게 공지천을 표기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미 이때도 공지천(孔脂川)이라고 한자로 썼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보면 공지천의 한자표기는 상당히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관동지』 이후 공지천을 언급한 문헌은 1911년에 출간된 『조선지지자료』이다. 이곳에는 한자와 한글이 같이 기재되어 있는데, 천명(川名, 강이름)으로 부내면 소속에 “孔之川 곰지ᄂᆡ 又 곰짓ᄂᆡ 藥司院里所在”라 한 것과 동내면 소속에 천명(川名)으로 “孔之川 곰지ᄂᆡ 支石里所在”라 했다. 여기서 약사리와 지석리 소재로 나누었는데 같은 공지천을 일컫는다. 이 기록은 아주 짧은 언급인데 상당히 중요한 사실이 적혀 있다. 곧, 『관동지』에서 한자로 표기한 공지천의 ‘지(脂)’자가 ‘지(之)’로 바뀌었다. 『관동지』 이후의 문헌에는 모두 공지천(孔之川), 공지어(孔之魚)라고 갈 지(之)자를 표기한다. 그러니 이때 이미 한자어는 통일돼 있었다고 본다.
참고로 공지천이라고 할 때 가운데 ‘지(之)’ 자는 ‘곰지내’와 ‘곰짓내’의 가운데 해당하는 ‘짓다’의 이두식 표기로 볼 수 있다. 이무상은 “중간의 〈之(지)〉는 〈곰(熊)〉과 〈내(川)〉을 연결하는 보조 토씨”라 했는데, 자세히 보면 조사가 아니라 분명히 의미가 있는 글자이다. 이에 대해서 김영하는 『수춘지』에서 “‘공지(孔之)’는 마땅히 ‘공지(孔旨)’가 되어야 하는데, ‘공’은 ‘매우[甚]’란 말이고 ‘지(旨)’는 맛이니 지금 공지의 ‘지’자는 아마도 틀린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이 언급은 ‘공지어는 맛있다’고 하여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 하므로, 본 논의하고는 크게 관련이 없다. 그러나 최소한 지(之)자가 조사로 쓰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뒷받침 해준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한국구비문학대계』 2-2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퇴계동과 공기천〉이라 하여 공지천을 ‘공기천’, 공지어를 ‘공기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표기는 한글 표기이다. ‘곰지ᄂᆡ’와 ‘곰짓ᄂᆡ’라는 두 개의 표기를 보이고 있다. 이 이후 한글로 표기한 모든 문헌에는 ‘공지천’, ‘곰지내’, ‘곰짓내’라는 세 가지 표기가 섞여서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춘천사람들은 공지천을 부를 때 최근까지도 ‘공지천’과 ‘곰짓내’를 썼다는 이야기이다. 이 사실은 1984년에 발행된 『춘주지』에 〈공지천과 이퇴계〉라는 설화에 “대룡산(大龍山)에서 시작하여 공지천교(孔之川橋)를 거쳐 의암호에 흐르는 하천을 ‘곰짓내’라 부른다.”고 했다. 이후의 문헌에도 곰짓내를 잊지 않고 기재한다.
그런데 최근 춘천사람들에게 ‘곰짓내’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반반이다. 요즘은 곰짓내를 잘 쓰지 않고, 공지천을 중심으로 문화콘텐츠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지천이라는 한자어 지명에도 곰짓내의 원형상징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 생성되는 관련 문화콘텐츠도 좀 멀기는 하지만 곰짓내의 원형상징이 녹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된 사연을 지명의 변화를 중심으로 따라가 본다.
먼저 어찌해서 ‘곰지내’ 또는 ‘곰짓내’가 ‘공지천’으로 불렸는지를 추적해 본다. 충청남도 공주의 ‘곰나루’가 ‘웅진(熊津)’으로 쓰이듯이 어원에 따르면 ‘곰지내’는 한자로 표기할 때 ‘웅작천(熊作川)’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공주가 ‘고마나루→곰나루→곰주→공주’로 바뀌듯이, 공지천은 ‘곰짓내→곰지내→공지천’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공주의 옛 이름이 웅천(熊川)․웅주(熊州)이었고, 금강은 웅천하(熊川河)였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공지천은 직접적으로 웅천(熊川) 또는 웅작천(熊作川)이라 쓴 사실은 없지만, 곰 웅(熊)자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증거로 『여지도서』(1760)와 『관동지』의 방리조에 보면 동내면 지명에 ‘후웅곡리(後熊谷里)’라는 표현이 나온다. 후웅곡리는 지금의 고은리(古隱里)이다. 바로 공지천의 상류 지점이다. 여기서 ‘웅곡(熊谷)’이 곧 고은리 일대인데, 웅곡이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고은리(古隱里)로 바뀌었다. 『춘천의 지명유래』에는 곰실을 “고은리, 웅곡(熊谷)이라 부른다.”고 했다. 『조선지지자료』에도 “洞名 古隱洞 곰실 古隱洞所在”라 하여 한글로 ‘곰실’이라 하고, 한자로는 ‘고은동(古隱洞)’이라 했다. 그리고 현재 고은리 주변 사람들도 이 지역을 ‘곰실’이라고 부른다. ‘곰실보리밥집’, ‘곰실공소’ 등처럼 ‘곰실’이라는 말이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필자가 2021년 이곳 『동내면 지명유래』를 내었는데,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고은리보다는 곰실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울러 『한국지명총람』(1967)에는 ‘고은리(古隱里), 곰실, 웅곡, 고은동’을 같이 명기해 주고 있다. 이렇듯 공지천은 충남 공주의 곰나루 표기와 흡사하면서 어원도 같이 쓰였다.
이때 곰실[熊室]은 한자어 웅곡(熊谷)이라는 지명의 이칭이면서, 공주에 있는 웅진단(熊津壇)이나 곰사당에서 제사하는 것처럼, ‘곰’을 숭배하던 사당이나 제사 공간 정도로 볼 수 있다. 물론 현재 춘천의 곰실에는 곰을 제사하는 사당도 그 어떤 제사도 없다. 다만 지명을 통해서 공주의 사례에 비추어 얼마든지 유추가 가능하다. 이 사실은 공주의 〈곰나루 설화〉에서 곰을 모신 사당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볼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공주의 곰은 어부(漁夫)인 인간과 혼인을 해서 곰의 아이인 곰 새끼를 3마리 낳아 길렀다. 일종의 이물교구(異物交媾)가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어부인 남편이 결국 곰의 굴을 벗어났고 돌아오라고 애원했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곰은 배신감에 새끼들과 같이 강물에 빠져 죽었다. 그 후 그 강에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아 사람들은 사고의 원인을 한이 맺혀 죽은 곰에 두고 곰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주었다. 이후 더 이상 사고는 없었고, 사람들은 곰을 신(神)으로 모시고 제사하는 단계까지 이어졌다.정호완도 이 단계에서 ‘검, 곰’과 ‘신’의 의미를 거론하지만, 이미 ‘검, 곰’은 고대에 ‘신(神)’을 뜻하는 용어였음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이로 보면 곰짓내는 곰+짓+내로 분석될 수 있다. 이때 ‘곰’은 신(神)을 뜻하고, ‘짓’은 ‘짓다’가 원형이 되는데 ‘재료를 들여 만들다’의 뜻이다. 또 ‘짓’ 자체는 사전에서 풀이하기를 ‘몸을 놀려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이라 했다. 그리고 ‘내’는 여기서 ‘천(川)’ 또는 ‘강(江)’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뜻을 종합해 보면 곰짓내는 곰(神)+짓(짓다)+내(川)의 의미를 갖는다. 곧 ‘신이 지어준 내’, ‘신이 내려준 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신은 대룡산 산신(山神)정도로 볼 수 있다. 대룡산 밑에 신을 모시는 사당을 뜻하는 ‘곰실’이 있었고 그것이 지명으로 쓰인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대룡산 산신이 내려준 물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이것은 산신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충청도 공주의 설화에서 ‘곰신’은 무엇을 상징하는가가 증명 돼야 할 것이다. 일상적으로 산신은 사람이 죽어서 좌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단군은 산신이 되어 갔다. 신라의 탈해도 동악(東岳)의 신이 되었다. 김유신은 죽어 대관령 산신이 되었다. 동해안 일대에서는 매년 단옷날이 되면 조상신을 제사하는 산멕이를 한다. 우리가 무덤을 산소(山所)라 하는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산신이 되어 간다는 인식을 많이 한다. 또한 곰은 〈단군신화〉에서 여자로 변신했듯이 민간신앙에서는 여신으로 많이 등장한다. 이 때문에 공주에서도 곰은 여신으로 받들어 진다. 이처럼 산신은 보통 조상신이 기거하는 곳이고, 곰신은 여신으로 생각했다.
이에 대룡산 아래에서 공지천 물을 이용해서 먹고, 빨래하는 등 생활에 유용하게 쓰던 사람들은 그 물을 조상신이 내려 준 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고마움을 나타내어 불렀던 이름이 곰짓내(조상신이 지어준 내)였다. 이처럼 곰짓내의 지명은 범상치 않다.
그런데 이 지명은 어느 때 갑자기 ‘공지천’으로 바뀌게 된다. 그 역사적 실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명이 새롭게 생성되고 바뀌는 사례를 담은 설화가 『춘주지』에 〈공지천과 이퇴계〉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대룡산(大龍山)에서 시작하여 공지천교(孔之川橋)를 거쳐 의암호에 흐르는 하천을 ‘곰짓내’라 부른다.(중략) (퇴계)선생이 한때 이 퇴계동 외가에 은거하고 있을 때 하루는 상노아이에게 소 여물짚(藁)을 썰라고 시켰다.
상노아이(심부름 하는 사람)는 해가 기울지 않은 한낮에 소여물집[藁]을 썰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 되었지만 선생의 말씀대로 썰어 놓으니 선생은 다시 삼태기에 담아 앞 내[川]에 내다 버려 보라고 일렀다.(중략)
선생은 상노아이의 얘기는 들은 체도 아니 하고 다시 썰은 ‘짚’을 앞 냇가에 가서 추겨 보라고 가볍게 말씀 하고는 썰은 짚을 손수 삼태기에 담아 들고 나가 냇물에 버리니 소 여물짚이 모두 ‘물고기’로 변하더라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고기를 신기한 고기라는 뜻에서 진어(珍魚)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공자(孔子)이래의 대유(大儒) 퇴계선생이 만든 고기라고 하여 공지어(孔之魚)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한다.
지명이 설화로 바뀌고, 그 명칭과 유래가 새로 생긴 경우이다. 이는 어쩌면 곰짓내의 지명이 담고 있는 원형상징 때문에 이렇게 변천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이 내려 준 물(내)’은 이미 신령이라는 환상적인 시공이 개입되어 있다. 이에 사람들은 이를 통해 새로운 연상 작용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다. 곧 ‘신(神)⇒환상(幻想)’이라는 상징이다 여기에 ‘물⇒공지어, 공지천, 용궁, 깨비’ 등으로 그 확산이 이뤄지고 있다. 그 때문에 ‘곰짓내’의 이런 신이한 원형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설화, 소설, 마임 등 모든 문화콘텐츠가 신이성(神異性)을 가지게 된다.
2.2 공지천 지명의 생성원형에 따른 문화콘텐츠 창작
공지천이라는 지명은 ‘곰짓내’, ‘곰지내’에서 비롯했고, ‘곰짓내’는 대룡산의 신을 모시는 곰실[熊谷]에서 흘러내리는 물에서 비롯했음을 알아보았다. 이때 신은 산신 또는 조상신일 수 있다. 이 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신[조상신]이 내려주는 물이 고마웠고, 그 고마움을 강이름 ‘곰짓내’로 나타냈다. 그리고 언제부터였는지 곰짓내는 한자어 공지천으로 바뀌어 부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퇴계 이황의 존재까지 개입하게 되었다. 그 변화가 사뭇 흥미롭고 상당히 의미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곰짓내에는 신이한 모습이 개입되고, 그 신이성은 환상적인 작품을 낳는 바탕이 된다.
이 시점에서 충남 공주의 곰나루 이야기와 비교가 필요하다. 왜 곰나루 전설은 제의성과 곰이야기로만 머물렀고, 공지천 전설은 이야기 확산을 가져왔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충남 공주시의 곰나루전설은 현재 웅진단과 곰사당의 당신화(堂神話)로 남아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로 발전하지 못하고, 동제의 대상으로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곰나루 이야기의 원형은 기족공동체를 기본으로 주어진다. 이야기의 주요골자는 가족을 떠난 인간남편을 원망(怨望)하며 죽은 어미곰과 3마리의 새끼에 대한 원한을 씻어주는 형태이다. 이처럼 애니미즘(Animism)적인 곰신앙과 곰나루라는 지명을 간직한 채 전하는 것이다.곰나루 이야기는 가족공동체의 존속과 파괴에 국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구조화 되어 신앙으로 고착화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로 발전하지 못했다. 한 번 신앙으로 굳어지면 좀처럼 바꾸기가 어렵다. 그래서 곰나루전설처럼 대부분의 당신화는 한 편의 이야기로 끝난다.
반면 공지천이야기는 당신화로 남지 못하고, 신이성을 동반한 지명과 지명이야기로 탄생하였다. 공주시 곰나루전설의 애니미즘적 고착화는 춘천 공지천설화 류에서는 이미 희화화되었다. 곰짓내를 낳은 대상 신(神)은 신앙의 대상에서 벗어나 지명유래와 같은 설화의 일상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직된 신화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바탕을 처음부터 확보한 것이다. 마을제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에 누가 어떤 이야기를 보태도 어디 저촉될 곳이 없었다. 그래서 공지천 이야기는 여러 개로 남을 수 있었고, 또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확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지천 이야기도 일정한 틀을 간직한 채 창작되고 있다. 그것은 ‘곰짓내’라는 원형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이다. 이 원형은 앞장에서 논의했듯이 ‘곰(신)+짓(짓다)+내(천)’라는 것이다. 곧 ‘신(神)’이 개입되는 신이성(神異性)이 있다. 그렇다고 신이성이 신화가 아니기 때문에 신성성으로 굳어지지는 않는다. 단지 흥미위주의 모습이다. 그리고 ‘내[川]’가 있어서 반드시 물이라는 사실과 결부되어 나타난다. 또한 ‘짓(짓다)’에서처럼 자유로운 제재와 장르로 흥미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누구나 지을 수 있다는 의미가 개입된다. 게다가 지명전설이기 때문에 반드시 공지천이라는 지명과 함께 이야기가 전개된다. 공지천이라는 지명을 낳은 전설의 중심어가 공지어이기 때문에 이 물고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현재 공지천 관련 문화콘텐츠로는 첫째로 설화, 둘째로 소설, 셋째로 마임, 넷째로 조형물이다. 이밖에 수필, 시 등 더 많은 콘텐츠가 생성되고 있으나 본고에서는 네 가지를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 공지천 관련 설화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설화는 〈공지천과 이퇴계〉(『춘주지』), 〈공지천의 공지어〉(『춘천향토자료집』), 〈퇴계동과 공기천〉(『한국구비문학대계』) 등이다.
〈공지천과 이퇴계〉는 앞에서 인용한 설화이다. 이 설화는 퇴계 선생이 신통력을 발휘해서 공지어를 만든 사연을 이야기로 엮었다. 이 이야기는 공지천이 퇴계동과 가깝기 때문에 이퇴계와 공지천을 결합시켰다. 그리고 곰짓내가 공지천으로 바뀌는 사연을 이야기에 담았다. 그러고 보면 이 설화는 곰짓내가 공지천으로 바뀐 사연을 활용하여 최초로 만든 설화콘텐츠라 할 것이다.
〈공지천과 이퇴계〉설화가 나오자, 이를 반박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또 만들어낸다. 〈공지천의 공지어〉(『춘천향토자료집』)이다.
춘천시 퇴계동에서 공지교(곰짓내 다리)로 흐르는 내를 공지천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대학자 이퇴계(李退溪)선생이 퇴계리에 은거하고 있을 때 짚을 썰어서 내던졌더니 전부 진어(珍魚)인 공지어(孔之魚)로 화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퇴계선생의 어머니는 춘천박씨의 따님이었으므로 퇴계선생이 외가고을인 춘천에 와서 은거했다고 하지만 퇴계선생은 일생동안 춘천에 한번도 은거한 일이 없다. 퇴계선생의 위대함을 사모해서 후세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공지어라는 냇물 고기도 공지천에는 없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옛날에 두 사람의 도통수련자(道通修練者)가 살생금(殺生禁)의 율법을 어기고 이곳에서 고기를 잡아먹었다 한다. 소화가 안 되어 한 사람이 토하니 고기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면서 살아 나왔고, 또 한 사람은 꽁지가 없는 죽은 고기가 나왔다 한다. 전자는 도통자(道通者), 후자는 미도통자(未道通者)라 하며, 꽁지가 공지로 전화(轉化)된 것이라 한다.
구비문학은 공동작이라는 특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드디어 도사의 이야기까지 개입된다. 공지어와 공지천의 유래가 있는 퇴계의 신통술이야기를 부정하고, 도통수련자를 끌어들였다. 그 발상이 새롭고 흥미롭다. 이 또한 곰짓내의 신이성이 작용한 사례이다. 여기서는 원래 이 이야기의 전문(全文)을 간추려 전승한 형태인데, 원래 이야기가 있다면 상당히 박진감이 넘칠 것이다. 최소한 만화 〈머털도사〉정도는 될 것이다. 이 이야기도 간추린 형태이지만 곰짓내의 원형을 간직한 채 이야기 되었다.
다음은 〈퇴계동과 공기천〉(『한국구비문학대계』)이다. 이 이야기는 1980년 7월 12일 춘성군 신북면 율문1리에 사는 박석산(남, 70) 제보자가 구연한 이야기이다. 공기천이라 했는데 공지천이야기이다. 이야기가 길어서 줄거리를 소개한다.
옛날 퇴계리에서 이퇴계 선생이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때 강아지 한 마리가 서당을 열 때 마루 밑에 왔다가 서당이 끝나면 어디론가 가고를 반복했다. 퇴계 선생은 강아지가 기특해서 자신의 밥을 반 나누어 주곤 했다. 3년이 되던 어느 날 강아지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런데 처음 보는 초립동이 서당에 들어와 퇴계 선생에게 절을 하면서 자신은 용왕의 아들이라 한다. 그동안 용왕인 아버지에게 죄를 지어서 아버지가 개탈을 씌워서 퇴계 선생에게 가서 3년을 있다가 오라고 했다는 사연을 말했다. 그러면서 퇴계 선생을 용왕이 모시고 오라고 했다고 전한다. 퇴계 선생은 초립동이를 따라서 용궁에 가서 대접을 잘 받고 나온다. 그때 용왕이 지푸라기를 선물로 주며 꼬리부터 자르지 말고 머리부터 한 토막씩 잘라 먹으라 했다. 그렇게 먹다보니 지푸라기가 꽁지만 남았다. 퇴계 선생은 그 지푸라기 꽁지를 물에 넣었다. 그랬더니 수많은 고기가 되었고, 그 고기를 한 마리씩 잡아먹었는데, 그 고기를 공기어라 하고, 퇴계 선생이 살던 동네를 퇴계리라 했다.
〈퇴계동과 공기천〉의 줄거리이다. 이 설화는 설화콘텐츠가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공지천과 이퇴계〉(『춘주지』)에서 서당과 용궁화소가 들어가서 설화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곰짓내의 원형은 그대로 유지한 채 신이성이 용궁이라는 이계(異界)로 확장되었다.
둘째는 소설이다. 공지천을 배경으로 쓴 소설은 여럿 있다. 그 중에 곰짓내의 원형을 살려 공지천의 공지어를 대상으로 소설을 쓴 작품은 이외수의 〈황금비늘〉이 있다. 이외수 작가도 공지천의 공지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공지천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이 소설을 읽으면 금방 공지천의 공지어에서 착상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공지천 의암공원 옆에 ‘황금비늘테마거리’가 만들어진 이유이다. 소설에 나오는 무어(霧魚)는 안개도시 춘천을 상징하는 고기이면서 공지어이고, 금선어(金仙魚)를 낚는 무간조선(無竿釣仙)은 공지천 설화에 등장하는 이퇴계(李退溪)일 수 있다. 황금비늘을 가진 무어의 신비로움은 곰짓내의 신이성에서 착상된 신비의 고기이다. 이외수 작가는 곰짓내의 원형을 활용해서 소설이라는 구도에 맞춰서 새롭게 가공하여 〈황금비늘〉을 썼다. 이는 앞서 본 도통수련자의 설화도 한몫했다. 이는 무간조선의 낚싯대 없는 신선 조사(釣師)처럼 선도(仙道)를 표방한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이는 ‘마음의 빈 낚싯대’라는 언급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낚시와 인생을 대비시켜 사람이 살아가는 참의미를 깨닫게 하려한 이외수 작가의 의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지명 곰짓내를 원형으로 공지천 설화를 차용하여 작가의 이상향을 담아 소설 〈황금비늘〉로 확산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셋째는 마임이다. 춘천의 마임축제는 2022년 34회를 맞았다. 춘천의 마임축제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는데 그 중심 공연은 ‘도깨비난장’이다. 도깨비난장 때문에 춘천의 마임축제는 세계적인 축제가 될 수 있었다. 난장은 축제의 하이라이트이다. 난장이 있기 때문에 모든 축제는 그 재미를 더하고, 축제의 목적에 맞게 난장을 통해 신을 즐겁게 하고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마임축제에서도 축제의 원형에 맞추어 도깨비난장이라는 표제를 내걸었다. 도깨비난장은 용어 자체만으로도 축제를 떠올리게 하고 신비성을 드러낸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난장을 함께하면서 환호했다. 마임프로그램의 하나인 ‘미친 금요일’을 보기 위해 돗자리를 들고 두꺼운 외투와 가벼운 이불을 들고 와 고슴도치섬[蝟島]에서 밤을 새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종이공지어를 만들고 그곳에 소원을 적었다. 종이공지어를 만든 것은 깨비들이 무사히 우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우리나라 도깨비의 선한 마음과 해학성을 작품에 넣어 특성을 살렸다. 희화화된 도깨비가 마임의 신비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런 마임축제의
프로그램을 짤 때 물의 도시를 부각했다. 그리고 재미를 위해서 물과 불의 신을 개입시켜 대결을 하게 만들었다. 선악의 대결은 언제나 흥미를 이끌어 내는 이야기설정이다.
그런데 춘천마임축제의 기본구상을 보면 ‘곰짓내’의 원형을 모두 끌어내서 마임이라는 장르에 담아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신비성을 문면에 그대로 들어내고, 아울러 곰짓내의 물과 공지천설화에 나오는 공지어를 직접 언급했다. 거기에 깨비라는 도깨비를 활용한 도깨비 난장, 화신(火神)을 등장시켜 물의 고장인 춘천 토속 수신(水神)과 대결양상을 만들고, 깨비의 소원을 위해 참가자들이 함께 하는 장면을 넣었다. 이 역시 자세히 보면 ‘곰짓내’의 원형과 공지천설화의 원형을 활용해서 만들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춘천 마임의 도깨비난장 표어를 통해 보면 그동안 공지천 관련 이야기의 원형이 저변에 깔려 춘천마임축제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넷째는 조형물이다. 춘천 공지천이 의암호와 마주하는 강 하류에 가면 각종 물고기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공지천과 의암호가 있는 강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물고기 조형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 물고기 조형물이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공지천 전설에서 비롯한 공지어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아이가 큰 물고기를 붙잡고 있는 청동 조형물, 황금 물고기가 물살을 일으키며 비상하는 조형물, 거기에다 황금비늘테마거리에 있는 신비의 물고기 조형물 들이 공지천의 공간에 우뚝하게 있다. 이 또한 곰짓내의 신이성에서 비롯한 것이고, 공지천 설화와 이외수의 〈황금비늘〉 등에서 착상된 조형물이다.
이처럼 공지천을 배경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만들어 지고 있다. 그 원형은 보다시피 곰짓내인데, 이는 공주의 곰나루처럼 가족공동체의 중요성을 부각한다든가 애니미즘적 제의와 신앙으로 남지 않고, 신이성(神異性)으로 발전한 착상에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곰짓내는 이미 그곳에 환상적인 모습이 담겨 있었고, 환상적인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은 다양한 설화와 소설과 마임과 조형물처럼 끝없는 문화콘텐츠로 확산시켜 나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문화콘텐츠가 끝이 아니다. 우리는 곰짓내의 원형을 살린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어쩌면 공지천의 끝자락에 위치한 의암호 중도에 2022년 5월 개장한 놀이터 레고랜드가 만들어진 원인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3. 결론
이 논문은 지명의 생성변화에 따른 문화콘텐츠의 확산을 스토리텔링이라는 차원에서 알아보았다. 연구의 대상은 강원도 춘천의 대표 관광지로 알려진 공지천 지명이었다. 이에 공지천 지명의 생성배경과 그 원형을 바탕으로 문화콘텐츠로 확산되는 사례를 살펴보았다.
첫째, 공지천 지명의 생성과 변화양상이다. 공지천이라는 지명이 처음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관동지(1830)였다. 여기서는 공지천(孔脂川)이라 썼는데, 『조선지지자료』(1911)에서는 공지천(孔之川)으로 바뀌어 지(脂)가 지(之)가 되었다. 그리고 한글로 ‘곰짓ᄂᆡ’와 ‘곰지ᄂᆡ’가 같이 표기되었다. 아울러 대룡산 밑에 있는 마을을 곰실(熊谷, 古隱洞)이라 하였다. 이것이 다른 문헌에는 이퇴계(李退溪)와 관련해서 공지천과 공지어(孔之魚)에 관한 생성이야기가 여럿 나온다. 원래 공지어와 공지천은 곰짓내에서 비롯하는데, 그 어원을 추적해 보면 원형이 곰(神)+짓(짓다)+내(川)였고, 그것은 대룡산신이 지어준 물을 쓰면서 그 고마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원래 곰짓내라 불렀던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공지천으로 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렇게 바뀌는 과정에서 공지천 옆에 있는 퇴계동과 연계되어 이퇴계가 결부되는 등의 이야기가 확산되었다.
둘째, 공지천 지명의 생성원형에 따른 문화콘텐츠 창작이다. 이 시점에서 왜 공지천을 바탕으로 문화콘텐츠가 확산되는지를 알기 위해서 공주의 곰나루신화를 비교차원에서 알아보았다. 공지천의 원천 지명인 곰짓내와 비슷한 생성어원을 가지고 있는 충남 공주의 곰나루는 가족공동체를 기본으로 마을공동체의 신으로 좌정하여 제의로 남았다. 그러면서 관련 이야기도 신화(神話)로 고정되었다. 그 때문에 이야기의 생성변화가 더 이상 이뤄지지 못하고 고착화 되었다. 반면에 공지천의 지명은 제의가 사라지고 신이성(神異性)으로 남았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생성될 때 환상성이라는 사실이 포함되었다.
사람들은 공지천 이야기의 원형인 곰(神)+짓(짓다)+내(川)를 활용하고, 여기에 물고기 공지어가 개입되어 다양한 이야기를 낳았다. 그 바탕이 신이성을 동반한 환상 모티프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디든지 적용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이로 인해 설화, 소설, 마임, 조형물 등의 문화콘텐츠를 확산하였다. 이런 곰짓내의 원형은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생산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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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Place Name and Spread of Cultural Content
-Through the case of storytelling of the name of
Gongjicheon in Chuncheon
Lee, Hak-ju
This study deals with the place name and its cultural content's spread by the way of storytelling. Its subject is Gongjicheon, the first visit place in Chuncheon. It studies the background of naming Gongjicheon and the spread of its cultural contents on the basis of its prototype.
First, the naming of Gongjicheon and its change. The etymology was Gom(god)jit(make)nae(stream) which expresses thanks for the use of water which the god of Mt. Daeryong made. It is reasonable that the name "Gongjicheon" was made when Gomjitnae was translated in Chinese characters. After the divinity added to, Gomjitnae made the story of Gongjieo.
Second, the creation of cultural content following the prototype of naming place. Gomnaru is a story which has similar etymological root. Its character Gom became the host of the shrine of the local community and the story has settled down as a myth which means no more changes or variations. But the name of Gongjicheon lost the shrine and left the divinity which enabled various cultural contents with fantasy. Several stories has left on the basis of Gomjitnae and Gongjieo which spread the cultural contents as of myth, novel, mime, artifacts etc.
[Key Words]
Gongjicheon, Gomjitnae, Divinity, Place name and Fantasy, Place name and change, Spread of cultural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