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홍기씨 보세요
김순남
안녕하세요? 나 창섭이 고모예요. 뜻밖의 편지를 받고 의아해하는 모습이 떠올라 망설이다가 펜을 옮겨봅니다.
홍기씨는 내동생 또래라 귀여운 모습으로 기억되었는데 오랜만에 친정에 갔을때 보니 세월따라 역시 늙수구레해지셨더군요. 허기야 내가 환갑이 훨씬넘었으니 세월이 누구에겐들 그냥 스쳐갔겠습니까. 우리 친정집은 별고가 없는지 궁금합니다.
칠순도 넘으신 올케언니가 백수에 가까우신 어머님을 모시면서 갑자기 변이라도 생길까 걱정이되고 조바심이 생기는데 홍기씨가 마을일을 도맡아하시며 이웃을 잘 보살피는 이장님이라고 올케언니께 전해 들어 다소 마음이 놓입니다. 늦게나마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옛날 선친께서도 제가 어린시절 이장님을 오래 보셨는데 우리 친정어르신과는 아주 자별하게 지내시며 뜻을 같이하시던 분이셨지요. 부친님의 올곧은 성품을 그대로 닮으셨나봅니다.
다름이 아니라 몇해전 친정동네에 골프장이 들어섰지 않습니까? 물론 지역분들은 일자리확보라든가 사는데 불편을 모르셔서 생각해볼 겨를도 없는일을 일없이 논하는듯해 미안합니다만 어린시절들로 산으로 뛰어놀던 정든 골짜기가 최신장비로 뒤엎고 현대인이 즐길수있는 레져시설이 들어섰다는게 반갑지않고 은근히 화가납니다. 이 아쉬움이 어찌 나하나의 생각이겠습니까 고향을 떠난 모든이들도 나처럼 애석해 할것 같아요.
새순 돋는 봄날 산나물 보따리를 머리에 잔뜩이고 더덕,도라지,잔대를 앞치마에 가득채워 마치 만삭된 모습처럼 뒤뚱뒤뚱 걸어오시던 어머니모습이 보이는듯하는데 이제는 근력이 쇠진하고 거동도 불편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슬결에 돌아오신 아버지의 망태기속에 그득했던 머루,다래,으름등 산과일의 단맛에 마냥 즐거워했던 일, 밥상위의 산나물반찬이며 미각을 더해주던 싸리버섯나물도, 등잔불밑에서 어머님이 삶아주신 알밤의 달큰한맛도, 가을날 멍석에 가득했던 도토리는 어려운시절 여러식구 끼니보탬으로 한몫을 했을겁니다. 그러고보면 샘골 골짜기에서는 해를두고 풍성하게 먹을거리가 수없이 쏟아져나왔던 비밀스러운 보물창고였었지요. 그뿐인가요. 6.25사변이후 전염병 손님마마로 희생된 어린애들이 몰려 묻혔다던 쥐엄나무골에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저녁이면 애청에서 아이울음소리가 들렸다던 무서움증에 소름돋는 전설도 가만히 돌아보면 아련한 그리움으로 찌든 마음을 식혀주곤합니다.
홍기씨 엉뚱하다할지 모르겠지만 골프장 사업주축과 상의하여 그때 그골짜기 살아있는 지명을 새긴 비하나 세워주면 어떨까요. 현장사진 보관한게 있다면 그 사진도 있으면 더욱 좋구요. 고향에 찾아갔을때 모두들 추억하며 즐거워하지 않을까요.난 가끔 행여 잊을까 골짜기 옛지명을 혼자 속으로 외워보곤한답니다.
월봉,웡꼴,욕골,징골,강신재,모종산,늘모탕,음달,큰음달,마당재,쥐엄나무골,손톡골,제피골,약수동,숸내미,샘골,절압,참새골,천지목골,매나무골,장고개,부르니등...겹겹이 쌓인듯한 다랭이논 밑으로 가재와 송사리 노니는 봇도랑둔치에서 발을 담그고 앉아있으면 송사리가 종아리를 간지럽게 물어뜯는 촉감을 느끼며 뜨거운 햇살도 모르고 보낸시간이 있었지요. 개울가엔 크고 작은 바위틈으로 원추리꽃, 들싸리꽃 마구피던 전설같은 고향이 그립습니다.
2011년 10월 9일
순남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