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원
taewonnp@naver.com
전남 목포시 남악로 162번길 2-23
포스힐리버파크 123호
010-9134-1107
(프로필)
1966년 목포 출생
가톨릭의과대학 졸업
목포 태원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2016년 열린시학 신인문학상
(시인의 말)
정신의학, 문학, 가정이 삼위일체가 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문학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전위예술가 요셉 보이스와 안무가 매튜 본을 좋아합니다. 한국의사시인회에 초대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쓰읍
벼 이삭이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
줄기 사이로 뻗은 햇살에 솔방울이 마르는 소리
태양의 화산 폭발 소리
과수원이 익으며 팽창하는 소리
길 위의 자갈들이 시기하는 소리
옷자락이 바람을 붙잡는 소리
모퉁이 가게 파리채가 우는 소리
파장한 장터 천막이 그늘을 키우는 소리
하루의 방랑 후 돌아온 불꺼진 창
귀에 담아온 유령들을 선반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영원히 오지 않을 답문을 기다린다
그대와 같이 덮은 솜이불이 속삭이는 소리
내가 사라져도
아이들 어리둥절 연극인지
귀여운 질문 끝 슬퍼하다
학교에 가고 놀이공원 열차 타겠지
아내의 손수건 마르지 않고
얼굴의 눈물 주름 깊어지다
양파 썰고 조기에 칼집 내겠지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
빈 자리 공허 질겅대고 내뱉다
한숨 가득 짊어지고 총총히 여름 여행 가겠지
남기고 간 먼지 옹기종기 모여
오래된 주인 기다리다
새로운 먼지에 섞여 어디론가 실려가겠지
음악을 멈춘 스피커 우퍼의 절망
어두운 거실 둘이 보초 서다
누군가의 손가락에 블루스 켜겠지
수변공원 계란꽃 마른 수술
힘없는 혀 내밀고 바람 맞다
스며든 영양분 빨아들여 노랗게 차오르겠지
당신이 사라지면 나는
그림자처럼 긴 항구 애토록 앉아 있다
기둥에 밧줄 감고 매듭 짓겠지
나는 나를
나는 내가 뿜어낸 공기다
나는 목적지 없이 금방 나갔고
나만 남아 집을 지킨다
나는 형태가 가변적이어서 구석구석 움직일 수 있다
소파 아래 책장 위 저금통 안 샹들리에 옆까지
내가 발견하지 못 하는 것들을 나는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뿜어낸 공기들의 시체에 놀란다
나도 언젠가는 죽겠구나
나는 내가 잊어버린 순간을 기억한다
성당 미사에 참여하지 않고 광대를 따라간 날
무당이 '너에게 옛날이 어디 있어' 하면서
저주의 웃음을 던지던 날
금지된 얼음과자를 빨아 먹던 날
나는 내가 읽다만 책들의 끈적거림을 느낀다
나의 것이 되지 못 하고 녹고 있는 계시
금고 안에는 내가 지닐 수 없는 시간의 골동품이 가득하다
나는 어디 있을까
방파제 끝에서 파도를 맞고 있을까
남의 집 유럽식 정원을 기웃거리고 있을까
시장 한 구석에 앉아 소란에 귀를 막고 있을까
나는 언젠가 돌아올 나를 위해 베르가못 향기를 준비한다
피로에 젖은 내가 침상에 누워 바르르 떨고 있을 때
나는 나의 자비로운 손으로 건반을 두드리듯
나를 울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