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산 - 안개, 구름, 바람, 억새를 따라 흔들리다"

[병학이]

머무르시는 동안 줄곧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명산 순례기] 신불산 - 안개, 구름, 바람, 억새를 따라 흔들리다


신불산은 ‘영남 알프스’라는 뭉텅이 호명에 불려 나온다. 이른바 영남 알프스는 낙동정맥 남단의 고헌산(1,032), 가지산(1,240), 능동산(983), 간월산(1,083), 신불산(1,208), 취서산(영축산 1,059)과 낙동정맥의 서쪽 가지줄기에 맺힌 운문산(1,188), 천황산(1,189), 재약산(1,189) 등을 뭉뚱그려 이르는 말이다. 이들 산을 하나의 산군으로 묶는 동질적 요소는 산등성이의 드넓은 억새밭이다. 누군가 이들 억새밭의 풍광을 알프스 산자락에 비유해 ‘영남 알프스’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조금은 생뚱맞은 이 이름의 내력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기로 하자.

▲ 신불재에서 취서산 가는 쪽 첫 봉우리에서
서쪽 기슭으로 흐르면 백련계곡과 청수골에 닿는다.

영남 알프스라는 집단적 명칭의 후광효과는 대간이나 정맥의 산들보다 위압적이다. 예컨대 백두대간의 산들은 그 낱낱의 개별성이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에 가려 희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높이와 넓이에 따른 우열 개념보다는 독자성이 부각된다. 윤지미산이나 눌의산 같은 산들은 백두대간이 아니었다면 동네 뒷산으로나 존재했을 것이다. 백두대간이라는 이름 속의 이들 산은 백두산과 동등하다. 비중과 선호도의 차이는 사람살이의 역사와 문화의 결과일 뿐이다.

영남 알프스라는 이름으로 집단 호출 당하는 산들은 마치 제복에 갇힌 사람들 같다. 더욱이 이 이름에서는 ‘남의 밥에 든 콩’을 바라보는 가난한 눈길이 느껴져서 마음 한 귀퉁이가 그늘진다. 한국의 땅덩이가 넓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알프스나 히말라야의 고산과 대륙의 풍광과 비교해 마냥 그것들을 부러워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좋아하면 된다. 당장, 아니 언제나 중요한 일은 내 밥의 콩을 꼭꼭 씹어 먹는 일이다. 징집당한 군인이라 해서 개성마저 버리지는 않거늘, 영남 알프스의 산이라 하여 왜 독자적 존재감이 없겠는가.

오로지 ‘신불산’만을 오르기로 했다. 속 좁은 남자가 제 마누라를 바라보는 남자들은 모두 음흉한 놈으로 간주하는 쩨쩨한 태도로 온 하루를 신불산에 바치기로 했다.

거침없이 지나면서도 점령군 행세를 하지 않는 바람처럼

▲ (위)간월재에서 신불산으로 오르는 길.
(아래)간월재 억새평원으로 내려서는 길.

배내골에서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상단지구)을 경유해 간월재로 오르는 행로를 택했다. 배내골은 지금 행정지명으로 이천리(梨川里)로 불린다. ‘배내’의 음을 한자 ‘이천(梨川)’으로 옮겨 적은 것인데, 실은 ‘뱃속처럼 길고 깜깜한 골짜기라는 뜻’이라는 게 김장호 선생의 견해다. 한자 지명이 뜻하는 ‘먹는 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간월재엔 북상한 장마전선의 꼬리가 뿌려놓은 안개로 가득하다. 배내골, 즉 서쪽 기슭에서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상승기류는 간월산과 신불산 꼭대기에 구름을 쌓았다가 다시 거두기를 반복한다.

간월재는 산허리에 걸린 여느 고갯마루와는 사뭇 다르다. 광활한 평원 같다. 평원의 주인은 억새다. 그 무리는 약 10만 평에 이른다. 간월산에서 또는 신불산에서 구름을 밟고 이곳으로 내려선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넉넉하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고산 평원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고산 평원은 사람의 마음을 그곳을 지나는 바람의 크기로 확장시킨다. 거침없이 지나면서도 점령군 행세를 하지 않는 바람처럼, 조금의 소유욕도 없이 천하를 얻은 듯한 기분에 젖어들게 한다. 그것은 보는 대로 느끼는 마음이다. 기암이나 거목을 만났을 때 느끼는 경외감 혹은 표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관념적 번역을 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일단 눈앞에 펼쳐지는 풍정은 쉽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는 만큼 다 내 것이다. 시인 묵객의 안목 따위도 필요 없다. 그것은 배불리 먹을 만큼 사냥을 한 사냥꾼이 눈앞에 지나는 사냥감을 느긋이 바라보는, 어쩌면 조물주와 같은 높이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억새밭 위로 안개가 흐른다. 안개는 좀 색다른 어둠이다. 눈을 무력화시키는 능력은 밤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유혹적이다. 도시의 안개처럼 음습하거나 불안감을 유발하지 않는다. 공개된 은밀함은 산과 나만의 비밀을 만든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도 다른 사람과 온전히 공유하지는 못한다.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신불산을 오른다. 사람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 나는 안개 속이고 저 사람들은 구름 속이다. 안개와 구름의 차이는 무엇일까? 상식적인 수준에서 말하지만 안개와 구름은 본질적으로 같다. 모두 작은 물알갱이가 응결해 생긴 것이다. 차이라면 구름은 공중에 떠 있고, 안개는 지표면 가까이에 있다는 점이다. 산에서의 경우는 관측 시점이 안개와 구름을 가른다. 조금 후 나는 구름에 가린 봉우리에 올라 다시 안개와 함께 흐를 것이다.

간월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몸을 돌려세운다. 구름에 지워졌다 살아나는 간월공룡릉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하다. 일순간 바람이 모든 안개를 거둔다. 간월재의 억새밭이 훤히 드러난다. 억새밭의 모습은 아직 사춘기를 건너지 않은 아이의 얼굴 같다. 아마도 이런 모습에서 알프스의 산록과의 유사성을 찾았을 것이다. 그래서 영남 알프스라는 이름을 만들었을 텐데, 왜 사람들은 가을 억새꽃에만 집착하는 것일까? 정녕 영남 알프스라는 이름에 값하는 계절은 여름인데.

▲ 간월산 오름길.

영남 알프스라는 이름의 내력에 대해서는 부산일보(2004. 5. 13)에 보도된 바 있다. 진용성 기자가 요약한 바를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의 북알프스를 본떠서 지었다는 설,1971~1972년에 일본 북알프스를 등반한 부산의 원로 산악인 성산씨와 곽수웅씨가 처음으로 불렀다는 설과 영남산악연맹 김동인 회장이 1978년께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한 산악인의 증언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름 자체에 대한 논란을 소개했는데, 너무 왜색적이고 서양 편파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논란에 대해 재론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가을 억새꽃에만 집착하지 말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찾아 즐기며 이 산의 고유미를 발견하자는 것이다. 이름에 집착하는 산행이 아니라 산 그 자체를 즐기다 보면 한 차원 높은 안목이 열리지 않을까 싶다.


유혹당한 자의 눈길로 바라보는 싸리꽃의 아름다움

간월재에서 신불산 정상까지는 보통 걸음으로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아예 시간은 잊고 온갖 해찰을 다 부린다. 등성마루의 바위마다 곱게 핀 돌양지꽃, 드문드문 억새 숲 사이에서 흔들리는 원추리와 나리꽃, 붓꽃과 인사를 나눈다. 만발한 싸리꽃은 안개 속에서 은근히 매혹을 내뿜는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차려 유혹당한 자의 눈길로 싸리꽃을 바라본다.

▲ (위)신불재에서 바라 본 신불공룡릉.
(아래)신불산 동쪽 기슭에서 만난 싸리꽃.

신불산 정상은 두리뭉술한 바위 봉우리다. 돌올한 느낌이 아쉬워 쌓았을 돌무더기는 반쯤 허물어졌다. 산행안내 표지판은 아예 누웠다. 이곳을 지나는 바람이 여간 억세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구름 차지다.

신불재로 내려서자 안개가 싹 가시면서 60여만 평에 이른다는 신불산 북쪽 기슭과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광활한 억새밭이 기운차게 바람을 쓰다듬고 있다. 그 부드러운 능선을 지나며 근골을 키운 바람은 동쪽 자락을 기운찬 암릉으로 조각해 놓았다. 신불공룡능선이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등산로다. 이곳으로 신불산에 올랐다가 홍류폭포나 간월공룡릉으로 하산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신불재에서 영축산 쪽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산마루(1,045m)에서 한참동안 억새와 함께 흔들린다. 눈맛도 좋다. 구름에 가린 신불산은 가히 신불(神佛)이 머물 만하고, 동쪽 산자락 아래의 울주군 삼남면 일대는 넉넉히 사람이 머물 만하다. 서쪽으로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 백련계곡과 청수골은 깊고 아득하다. 마침 구름 사이로 내리는 저녁 햇살을 받은 검푸른 계곡은, 노자가 말한 현빈지문(玄牝之門)이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선 이 봉우리 일대는 고원 습지다. 둘레의 940~970m 능선부는 신라시대에 축성되었다는 옛 성터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언양현 편에는 취서산(鷲栖山, 영축산) 고성이라 적고 “산 위에 있었는데 단조성(丹鳥城)이라 일컬었다. 둘레가 4,050척, 읍 성문이 4척이고 못이 하나 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격전이 벌어졌다는 기록이 조선성곽일람에 전한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 일대를 통틀어 취서산이라 불렀던 모양이다. 오늘날 영축산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통도사의 영향으로 불교식으로 개명된 것으로 보인다. 대동여지도에도 통도사와 취서산이 함께 적혀 있고 그 위로 간월산과 가지산은 표기돼 있지만 신불산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신불산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다.

언뜻 열린 구름의 언저리에 초승달처럼 노을이 진다. 해가 저무는데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간월산(看月山)만이 아니라 내가 오늘 걸은 모든 산등성이가 달 보기 좋을 산마루다.

구름에 걸러진 옅은 저녁 햇살을 받은 안개는 달빛인 양하고, 억새는 쉼 없이 그 빛을 쓸어 허공으로 흩뿌린다. 그러고 보니 억새 줄기의 텅 빈 속도 작은 허공이다. 어떤 바람에도 억새는 쓰러질 수 없다. 둘은 한몸이니까. 안개, 구름, 바람, 이 모든 것의 거처는 허공이다. 이들을 따라 잠시나마 허공을 거니는 기분으로 간월재를 향해 걸어온 길을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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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월간 산 2010년 8월호
글·사진 윤제학 동화작가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나영]

갑시다 ~~ㅎㅎ

[도깨비]

이국적인 분위기가 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공명]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보입니다.

[나리야]

자연에 더불어 사는우리는 감사와 행복을 알게 합니다

[알분단지]

그래요 자연의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