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는 친구, 동창생
4월은 봄볕이 따뜻한 달이다. 춥고 스산한 겨울을 무탈하게 잘 지내고 따사로운 햇빛과 부드러운 바람을 품고 오는 봄은 역동적이다. 앞 다투어 피어나는 벚꽃, 개나리, 진달래, 목련, 철쭉 등 봄꽃들은 우리의 눈을 정화시키고 투명하고 여린 연둣빛으로 새 잎을 피워내는 나무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상큼하게 만든다. 아쉬움이 있다면 해가 갈수록 ‘봄’이란 계절이 짧아져 화창한 날씨와 상쾌한 바람과 반짝이는 햇빛 속에 봄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풍경을 오래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짧은 계절의 멋진 풍경을 혼자 보는 것도 아쉬워 추운 겨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만나 봄빛을 즐기며 시간을 함께하기도 한다.
복잡하고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깐의 여가시간이라도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가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동창생이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동창생이 반갑고 좋은 이유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했던 시절에 아무런 이해 관계없이 오로지 학교생활을 하면서 긴 시간을 함께했기에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알아 편안하기 때문이다. 또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인격 형성이 덜 된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같이 겪으며 깊은 신뢰를 쌓아 고민을 나누고 미래를 상상하면서 스스럼없이 친해져서이기도 하다. 인생의 여정에서 처음 맞는 가장 힘든 시기에 서로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된 존재가 동창생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 공유하고 있는 추억도 많아 오랜만에 만나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넘쳐나 밤새 이야기꽃을 피워도 아쉽기만 하다.
요즘 흔히 쓰는 신조어로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있다. 일종의 언어유희로 “나 때는 말이야~”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처음 시작은 그런 뜻이 아니었지만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 시대의 변화를 의식하지 않고 본인들이 살아온 지난 이야기를“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할 때 농담처럼, 혹은 재미로 발음이 비슷한 “라떼는 말이야~”라고 한다.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다. 그런 뜻에서 지금 필자가 하는 이야기는 “라떼는 말이야~” 이야기가 되겠다.
필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중학교도 시험을 치고 들어가야 했던 때라 초등학교 때(그때는 국민학교라고 했음) 이미 합격의 기쁨과 불합격의 쓴맛을 알게 되었다. 전기 중학교 시험에서 떨어지면 후기 중학교 시험을 다시 치고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 일찌감치 인생에는 쓴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친구들은 초등학교6학년 때부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고 성적이 중요해졌다. 월말고사, 학기말고사, 연말고사에서 성적이 잘 나오면 행복했다. 성적이 좋아야 소위 말하는 명문중학교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필자는 서울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우리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고등학교를 별일이 없는 한 자동으로 올라갔다(시험 쳐서 들어가는 고등학교도 있었다).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은 친구들과 6년을 지내다 보니 내 친구가 네 친구, 네 친구도 내 친구, 그 친구의 친구도 내 친구가 되는, 허물없이 터놓고 친하게 되는 친구가 여러 명 생기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대학을 가고, 재수를 하고, 직장을 얻고…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새 삶이 시작되고 동창생들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다들 살기에 바빠 순수했던 학창시절은 그저 추억 속의 일로만 남았다. 그러기를 몇 십 년… 어느 정도 생활에 자리가 잡히고 아이들도 커서 엄마의 손길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으니 시간에도 여유가 생겼다. 슬슬 갱년기를 겪으면서 우울감과 가족들이 모두 나간 빈둥지증후군을 극복할 활력이 필요한 시기가 찾아왔다.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나 갱년기 증상은 여자들에게 아주 치명적이다. 극복해야 할 중대한 현상이다. 가족들은 각자 바쁘고 혼자 남은 주부들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여가시간을 활용할 일들을 찾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친구가 그리워졌다. 두루두루 수소문하면서 친구 찾기에 나섰다. 때마침 인터넷의 폭풍 발달로 사람 찾기가 수월해져 여고 동창생들을 하나둘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인터넷 덕분으로 동창생들을 찾아 여고 졸업 30주년 기념 동창회에 졸업생 400명 중 200명이나 참석하는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이런 동창회 행사는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신문에 기사로 나가기도 했다.
30년 만에 만난 동창들은 헤어져 있던 세월이 무색하게도 어제 만난 듯 삼삼오오 어울려 활발하게 소통하였다. 이야기가 산더미였다. 다시 만난 이후 반모임을 한다, 산악회를 만든다, 합창반을 만든다며 마음 맞는 친구끼리 소모임을 만들어 자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우정을 이어갔다. 애경사를 같이 챙기며 기쁜 일에는 두 배로 같이 기뻐하고 슬픈 일에는 슬픔을 함께 나눴으며 힘든 일은 두 발벗고 나서서 도왔다.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며 친구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30주년 행사를 치른 이후 해마다 동창회 단체행사로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관광버스를 대절해 유명 사찰이나 수목원, 성당이나 유적지를 돌아보는 문화재 탐방을 겸한 나들이를 가고 있다. 손주들을 돌보느라 황혼육아에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으나 그날 하루만큼은 모든 일 제쳐두고 친구들과 어울려 자연을 벗 삼아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다. 그러면 또 충전이 되어 일상생활에 충실할 수 있게 된다.
또 연말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 일 년 동안 무탈하게 잘 지내온 것을 서로 기뻐하고 새해에도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살기를 기원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회를 연다. 그러기를 어언 20년… 살아가면서 진실한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 사람은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 사람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 그 씨앗은 퍼져 더 크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성실함과 겸손함이 바탕이 된다면 누구나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다. 평생 가는 친구, 동창생이 많은 우리 친구들은 성공한 삶을 사는 행복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아름다운 인연들이다. 정말 잘 살아줘서 고맙다!
(봉은 판전 4월호 게재)
첫댓글 좋은글 감사!
동창회의 시작부터 다시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너무 멋져요~~!!! 특별한 미사여구도 없이 그대로 아름다운 글, 공감속으로 빠져듭니다~~잘 살아온 동기들, 너무 아름다워요~~서촌 봄나들이 갈때 내가 초대한 강사님 말씀, 우리 동창들 너무 아름답다고 한 말이 이제 실감이 납니다~~언제가지나 즐겁고 건강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