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은 날짜 : 2022년 6월 20일 12시 10분 ~ 15시 40분(3시간 30분)
걸은 구간 : 승부역 ~ 양원역 ~ 비동 임시승강장 ~ 분천역(12.1km)
세부 경로 :
12시 10분 - 승부역 출발
13시 55분 - 양원역
14시 40분 - 비동 임시승강장
15시 40분 - 분천역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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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산 105번지.
태백에서 발원한 물이 가느다란 실개천에서 시작해 조금씩 규모를 키우다가, 강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는 낙동강의 최상류 오지 협곡에 영동선이 지나는 아주 작은 기차역이 있습니다. 이 역의 이름은 '승부역' 입니다.
"승부"라는 역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는데, 과문한 저로서는 일본식 술집인 이자까야의 "쇼부"가 생각날 따름입니다..^^;;
이따끔씩 오가는 열차에 타는 이도, 내리는 이도 거의 없는 고요한 역사......
어느 외로운 역무원이 역사 뒤 바위에 페인트로 글귀를 남긴 것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마당도 세 평 ...... "
이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관광열차와 협곡열차가 다니면서 "세 평 하늘길"이라는 트레킹 길도 생겨났습니다. 승부역에서 분천역까지. 물길 따라 철길 따라 구비구비 돌아가는길. 때로는 강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때로는 철로 난간에 기대어 가파른 절벽과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숲 속 짙은 향기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을 수 있는 고적하나 아름다운 길......
많은 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어느덧 오지 트레킹의 명소 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백석동성당 엠마오산악회'에서 산행을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2년 반만에 다시 시작하는 산행.
그 첫 행선지로 바로 이 '세 평 하늘길'을 선택했습니다. 코로나-19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쓰다듬어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적합한 길이라 판단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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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도 반을 훌쩍 넘긴 어느 날, 엠마오의 요셉 회장님, 나자로 산행대장님과 사전 답사를 겸해 미리 이곳을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승부역에 들러서 구내를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역 건물을 등지고 찍은 구내 승강장 전경입니다. 철길은 협곡을 돌아나가고, 승강장 한 켠에서는 한 쌍의 남녀가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는지 아닌지 태평하게 희희낙낙 거리고 있을 뿐 평일 정오의 역사는 한가롭기 그지 없습니다.
아, 그래도 주말에는 얼마나 될지는 모르나 오가는 관광객들로 인해 외로움이 조금은 덜해질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역을 나와서 강가로 내려와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길은 잠시 시멘트 임도를 따라 걷다가 노교를 건너면서 물가의 작은 너덜을 따라 이어지기도 하고 울창한 숲길을 지나기도 합니다.
길 상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과, 자치단체에서 정비를 한 덕분인지 걷기에 아주 편한 상태입니다.
철길 옆으로 난 포장길과 나무계단을 따라 한동안 걸어갑니다.
정오를 넘긴 초여름의 햇살이 따갑기는 하지만 계곡을 감아도는 강바람이 간간이 불어주어 흐르는 땀을 식혀줍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산골의 맑은 공기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아직 장마 전이라 수량이 많지 않지만 맑고 깨끗한 수면에 녹음이 비춰져 물빛조차 녹색이네요.
저 밑 너른 바위에 퍼질러 앉아서 마냥 시간을 죽이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계속 걸어갑니다.
걷기 시작한지 한 시간여를 지났을 무렵에 저 아래로 강을 건너 산 속 터널로 들어가는 기차다리를 만났습니다.
다리 밑으로 내려가 흐르는 강물에 손발을 닦고 잠시 쉬어가기로 합니다.
땡볕을 흐르는 물이라 그닥 차지는 않지만 발바닥의 열기를 식혀주기에는 손색이 없습니다.
쉬는 김에 적당한 그늘을 찾아 아예 점심상을 펴기로 합니다. 점심이라야 봉화 시내에서 산 김밥 한줄이 고작이지만 풍광이 좋은 계곡에서 물소리 바람소리 수풀이 서걱이는 소리를 느끼며 먹는 밥맛은 꿀맛입니다. 디팩에 넣어온 맥주 한 캔을 따서 들이키니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릅니다.
문득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일어나 부지런히 길을 갑니다.
길은 여전히 물길과 철길과 숲길의 반복입니다.
날이 조금 더 더워졌습니다. 태양이 정오를 넘겨 두 시를 향해 다가가는 시점에 양원역을 통과했습니다.
아쉽게도 양원역을 찍은 사진이 사라졌네요. ㅠㅠ
양원역은 승부역과 마찬가지로 무인역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꽤 되는 모양입니다.
강 건너로 카페도 있고 민박집도 보이는군요. 언제고 한 번 시간이 허락하면 저 집에서 하루 묵어가고 싶습니다.
한창 뜨거운 시간이라 발걸음을 좀 더 빨리 하기로 했습니다.
차량통행이 어느 정도 있음을 말해주듯 시멘트 도로는 더 넓어졌는데, 강 한쪽 절벽에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과 위험하게 매달려 있는 각종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진풍경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 날 처음으로 지나가는 기차를 만났습니다.
협곡열차일까요? 관광열차일까요? 분명한 건 영주에서 분천역을 거쳐 승부역을 지나고 강릉까지 가는 기차라는 사실입니다.
영동선......
영동선은 영주에서 강릉을 잇는 철도입니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학창시절, 늦은 저녁에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장장 8시간이 넘는 시간을 견뎌서 영주를 돌아 강릉까지 가 아침을 맞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영동선은 영암선(영주~철암), 철암선(철암~북평), 동해북부선(북평~강릉)의 세 철도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이름을 얻은 철도입니다. 아마 철암선이 가장 먼저 개통되었고, 다음이 영암선, 그리고 동해북부선의 순으로 개통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북평이라는 이름은 지금 거의 사용하지 않고 동해시에 속한 동 명(名)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강릉 쪽의 묵호읍과 삼척 쪽의 북평읍이 1980년(?)에 동해시로 흡수통합되었기 때문이지요. 예전의 대표 어항인 묵호항은 그대로 이름을 유지하고 있으나 북평항은 동해항으로 바뀌었습니다.
동해시의 행정구역을 보면 읍, 면이나 군, 구가 없이 모두 동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마 전국에서 유일한 도시라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뭐, 아니면 말고요..^^;;
양원역을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지점에 매점이 있는 쉼터가 있습니다.
마침 월요일어서인지 문을 닫아놓고 있었는데, 주말에는 영업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법 큰 나무그늘이 있어서 7월에 방문하면 이곳에서 쉬어가도 좋을 듯 합니다.
길을 지나는 중에 산딸기 줄기를 만나서 한참을 따먹었습니다. 보기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달콤했습니다.
이날 길을 걷다가 만난 열매가 제법 됩니다. 산딸기, 버찌, 오디, 그리고 살구......
마침 딱 제철이라 알맞게 익은 열매들을 먹느라 손도 입도 다 븕게 물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 제대로 농익은 살구맛은 아직도 생각만 하면 입에서 군침이 감돕니다. 엠마오 식구들이 방문하는 7월에는 이 맛을 볼 수가 없을 것이라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승부역에서부터 완만하게 내려오던 길이 한 번 가파르게 오르는 구간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짧은 구간이라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양원역에서 비동승강장 사이의 작은 능선이 그것입니다.
양원역에서 비동승강장까지의 구간을 일명 '체르마트길' 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이 구간을 염두에 두고 명명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체르마트는 스위스 고산지대의 산악 휴양지라고 하는데, 분천역과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을 하면서 체르마트길이 탄생했다고 하는군요.
아무튼 가파른 산길을 넘어 비동 승강장이 보이는 철길에 도착했습니다.
두 대장님이 서 계신 곳 다리 건너 편이 비동 임시 승강장입니다. 역사도 없고 그저 열차가 서면 타고 내릴 수 있는 짧은 길이의 승강장만이 있을 뿐입니다.
비동 임시 승강장은 요 근처의 비동마을 사람들이 가장 가까운 역인 양원역에 접근하기가 힘들어 임시로 만들어 놓은 간이 승강장이라고 합니다.
요셉 회장님이 승강장 철로에 내려와 포즈를 취했습니다.
음, 박하사탕의 설경구가 철로 터널 앞에 서서 "나 다시 돌아갈래!" 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
좀 비슷한가요.?......
우리 회장님은 어디로 돌아가고 싶으신 걸까요?
승강장에서 내려와 건너다 본 체르마트 산길입니다. 저 능선을 넘어가야 양원역으로 갈 수 있지요.
비동마을 사람들이 왜 임시 승강장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비동 임시 승강장을 지나면 도착지인 분천역까지 숲그늘이 없는 포장임도를 걸어야 합니다.
다소 재미가 없는 구간이라 여길 수 있지만 한층 폭이 넓어진 강물과, 마을풍경과, 그 너머로 보이는 산그리메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습니다. 다 바라보기 나름이지요.
아무튼 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분천역이 있는 마을이 가까워지고...
이윽고 분천역사로 들어서서 트레킹을 마칩니다. 쉬는 시간 포함해서 3시간 40분 걸렸습니다.
그리 길지도 아주 짧지도 않은 시간이네요. 적당히 기분좋게 걸었습니다.
사족이지만 분천역사 앞에는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습니다.
저희가 간 날에는 무슨 공사를 그리 하는지 어수선한 풍경이었고, 뜬금없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로 짐작되는 사슴과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 등의 조형물이 조악한 모습으로 들어서 있었습니다. 양 모형도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산타 할아버지께서 사슴을 끄시다가 가끔 양도 끌고 다니셨는지............
안내판을 읽어보니 분천역이 스위스의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하면서 그 기념으로 역 앞에 산타마을이라는 테마마을을 조성했다고 하는군요.
핀란드도 아니고 스위스와 산타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어쨌든 기왕 조성을 하기로 했으면 조형물이든 거리 풍경이든 제대로 조성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스토리가 제대로 살아 있는 테마마을로 거듭나 많은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기를 바랍니다..^^
(좋은 산행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아 테마마을의 모습은 사진에 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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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산악회의 첫 산행(? 여행?)에 많은 형제, 자매님들의 참여가 있기를 바랍니다.
'세 평 하늘길'을 찾는 엠마오의 모든 식구들이
좋은 풍광의 기억과 정화된 기운을 선물로 안고 돌아가실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첫산행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날이 기다려집니다.
첫댓글 회장님 초대로 들어왔는데
마치 기행 수필을 읽는 듯 한 느낌입니다.
다리 힘이 2% 부족해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구간이라 날씨만 도와주면 더할나위 없겠군요.
열심히 준비하신 만큼
많은 분들께서 은혜받는 시간 되시길 바래 봅니다.^◇^
ㅎ 카페에 가입을 하셨군요. 환영합니다.
요즘 전국의 산을 안방 드나들 듯이 다니신다는데 가끔 카페에 들르셔서
좋은 사진도 좀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북한산 다니던 때가 아련하네요.
언제 발맞춰 볼 기회가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