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20-35】(새번역)
20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어서, 예수의 일행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다.
21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붙잡으러 나섰다.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예수가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하고, 또 그가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 놓고,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는 버틸 수 없다.
25 또 한 가정이 갈라져서 싸우면, 그 가정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이 스스로에게 반란을 일으켜서 갈라지면, 버틸 수 없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사람의 집에 들어 가서 세간을 털어 갈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어 갈것이다.
2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하는 어떤 비방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인다."
30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악한 귀신이 들렸다" 하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와, 바깥에 서서, 사람을 들여 보내어 예수를 불렀다.
32 무리가 예수의 주위에 둘러앉아 있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바깥에서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3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34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핵심 메시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새 시대 새로운 질서에 합당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말씀 나눔】
요즘 미국 대통령후보자 경선에 세계의 관심이 주목되어있습니다. 특히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선에 관심이 높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시절, 우리나라에 5배나 높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던 관계로 우리 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미국대통령이 되었을 때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미국 국민의 혈세로 나토국가를 지킨다고 생각하여, 나토탈퇴를 주장할 정도로 경제논리로 국가 안보를 판단합니다. 따라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이 현 정권과 같지 않을 것이므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도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러시아, 중국, 특히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이전과는 다른 갈등에 부딪히게 될 것이며 우리나라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중국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처럼 대만을 공격한다면 미국이 대만에 관심을 쏟는 틈을 타서 북한도 도발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중국을 상대하는 미국의 도움 없이 전쟁을 치러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으로 인해 한 동안 잠잠한 핵무장 목소리가 다시 커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 역학관계 때문에 전 세계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지 않으면 국가 간 갈등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전 세계 경찰국가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데 새로운 질서가 성립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 아래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법 적용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대마다 심판의 기준 즉, 의로 여기는 기준이 무엇이었을까요? 아브라함시대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을 의로 여겼습니다.
야고보서 2:21-23을 보면,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2 그대가 보는 대로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작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23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 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율법시대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언약을 체결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으로 인해 성립된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무이자 의로 여겨주시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럼 새 시대에는 의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35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새 시대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의로움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이렇게 족장시대, 율법 시대, 주님이 오심으로 열린 새 시대의 의의 기준이 다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시대마다 강조하시는 것이 달랐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무턱대고 높은 수준의 순종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받는 사람들의 수준을 고려하여 계시를 주십니다.
점진적 계시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점진적 계시란 후대에 주신 성경 말씀이 앞서 기록된 말씀에 비해 하나님의 풍부한 계시를 담고 있음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족장시대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가라고 하면 가고, 아들을 바치라하면 바치는 비교적 단순한 기준입니다.
율법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었습니다. 계명을 준수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었습니다. 족장 시대에 비해 훨씬 많아지고 체계적인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새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단순하고 쉬운 것 같지만 족장시대, 율법시대의 기준이 기본 토대가 된 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신앙의 단계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것으로 만족하고 이전의 기준이 기초를 만들지 않는다면 죽은 믿음이 됩니다. 현 시대 교회가 능력을 잃어 버린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혹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던 시기에는 어떻게 구원 받았나? 라는 질문을 듣습니다. 그 질문의 답은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길은 단 하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의의 기준입니다.
다만 그 행동의 방식, 세부 실천 방향이 조금씩 달랐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 살아가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복을 누리고 우리가 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이 땅에서 주님과 동행하던 시기를 마감하고 하나님 나라, 새 이스라엘에서 주님과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의 임마누엘 약속이 지켜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않고,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담지 않는 비유를 통해서 기존의 질서로 새 시대의 질서를 감당할 수 없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되었음으로 기존의 가치 기준으로는 새 시대, 새로운 질서에 순응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기존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오늘 본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새 시대, 새로운 질서가 이 땅에서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기존 질서를 고집하고 새로운 질서에 불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혈연지간으로서 그 의무를 다하고자 찾아온 친족들입니다. 친족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로 인해 미쳤다 (μαίνομαι, 마이노마이)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미친 것과 귀신 들린 것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베스도 총독이 사도바울을 미쳤다(마이노마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해 할 수 없는 진리였고 받아들일 수 없는 지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어둠에 속해 있기 때문에 빛을 거부하고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을 향해 미쳤다고 평가했습니다.
예수님의 친족들은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잡아서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찾아 왔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뿐더러 예수님의 치유사역도 인정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고발할 거리를 확인하러 온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낸 것은 인정했습니다. 다만 그 힘이 귀신의 우두머리인 바알세불에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친족들이 미쳤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에게 사로잡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권위로 가르치시며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 쫓으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친족들이나 율법 학자들과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과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 12:22-23에 보면,
22 그 때에 사람들이, 귀신이 들려서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고쳐 주시니, 그가 말을 하고, 보게 되었다.
23 그래서 무리가 모두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 아닌가?"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 들을 보며 혹시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이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가 행하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만족하고 제자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마치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 시대에 적용되는 새로운 질서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기존 질서는 율법과 예루살렘 성전이 중심이었다면,
새로운 시대는 그리스도가 중심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로운 질서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새로운 질서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배척당하신 것처럼 세상과 분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진리와 거짓이 나뉘게 됩니다. 세상을 따르는 사람들은 진리를 미친 것으로 매도하다가 영원히 사망에 붙들린 삶을 살지만 새 시대에 합당한 사람들은 사탄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기 때문에 마침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치 네 가지 밭의 비유와 같이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 의롭다 평가 받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입니다(행16:31).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신 이유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구원 계획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요3:16), 요16:7-9에 보면,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8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
9 죄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시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거역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서도 죄가 없다고 한다면 성령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각종 표적으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는데, 이 일을 바알세불의 힘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거부하는 것을 두고 성령을 모독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그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만약에 성령님이 증거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용서 받지 못하는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으로 행하기를 원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새 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1-12에 보면,
11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거부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로 인해서 하나님의 새로운 식구가 된 우리들이 이후로 분별하고 지켜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이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복음의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좋은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본을 보여 주신대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미워하는 원수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섬긴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며 생명 사랑의 자세를 통해서 주님의 제자 되었음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요13:35). 따라서 사회적 약자들을, 나의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새 질서에 순응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삶의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주님의 몸 된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장16-18).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들은 하나님께 주목하는 대표적인 행동이며 이로써 삶으로 드리는 거룩한 예배자가 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나를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롬 12:2).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지금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고 어떤 결실도 없는 것 같지만 열매 맺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달린 것임을 믿고 주님 가신 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이미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에 포함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묵은 질서와 어둠에 사로잡혀 성령을 대적하는 우둔한 삶에서 벗어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추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답게 주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하나님 나라 복음을 확장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새 시대, 새 질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겠다고 결단하는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