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심기
요즘은 배추심는 때이다. 우리집 옆의 넓은 밭은 어떤 교회 재단 소유인데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넓은 밭도 당일치기로 일을 끝낸다. 동원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그리고 농기계.
바라보는 나는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오늘도 반나절 만에, 추산하기로는 1,000개 넘게 배추를 심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저렇게 많은 배추도 모자라서 안양에는 더 큰 밭이 있다고 하니 가히 기업 수준이다.
화전리 밭에 있던 수박들이 제 때에 따 주질 못해서인지 아니면 일광이 부족해서인지 수확 시간을 더 연장하면 혼자서 터져버려서 버리고 일찍 따면 단 맛이 덜해서 수박김치나 담가야 하는 우리에겐 어정쩡한 금년 여름이다. 작년만 해도 평상에 앉아 수박 쪼개는 맛이 별미여서 마트에서 수박 살 일 없다고 좋아했는데 금년은 아니다. 누구 손님 초대도 못한다. 수박 자랑할 일이 없어서다. 모종값이야 얼마 안되지만 둑 만들고 거름 넣고 검정비닐 치고 다시 흙을 덮어 비닐 날아가지 않게 하여 풀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수고를 땡볕에서 했는데, 그간 들인 공이 얼만데 우리에게 이런 실망스런 결과를 안겨 주다니. 쯧쯧. 작년의 풍요를 기대했는데 금년에는 실망이다. 내년부터는 수박을 심지 말까보다!
23일에 이장님이 배추 한 판을 가지고 오셨다. 한 판에는 배추모종이 7개 15줄 도합 105개이다. 우선 현관 앞 그늘에 두었다. 배추를 심으려면 밭둑을 만드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지금 밭의 상황은 여러 작물들이 있어서 정리를 한 다음에 심어야 한다. 밭에 나갔다.
우선 정리 대상이 바로 수박이다. 힘없이 널부러진 수박들을 정리했다. 뿌리를 걷어내고 검정비닐도 걷어 냈다. 옆에 고구마는 아직 수확 시기가 아니기에 그냥 둔 채로 곁에 있던 갓이며 비트를 다 들어 냈더니 대략 배추 100개 정도는 충분히 심을 수 있는 면적이 나왔다. 우선 긴 풀들을 뽑기가 어려워서 예초기로 잘라 내었다. 자로 밭둑 간격을 잰 후에 골을 파고 밑거름과 농협에서 나온 퇴비를 뿌린 후에 기본 흙과 대충 섞은 다음 둔덕을 만들었다. 제대로 농사를 지으려면 이렇게 한 다음 몇일을 두어서 거름의 가스가 빠져나가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기다릴 인내가 부족한 나는 그냥 흙을 덮고 검정비닐을 쳤다. 땀에 흥건히 젖었다.
옷을 간편하게 입으면 더 좋긴 한데 이 동네에 유독 심한 내가 정확히 몰라서 붙인 이름인 땡비라는 것이 무척 많아서 망사 모자를 써야 하고, 들에 있는 아주 조그만 검은 모기가 물면 너무 가렵기 때문에 그 모기가 침을 꽂을 수 없게 옷을 두텁게 입어야 한다. 그러니 수시로 모자를 벗고 땀을 닦아야만 한다. 더우니까 살짝 짜증도 나는데 잠시 땀을 닦으면서 지금 한창 피고 있는 해바라기 노란 꽃잎을 보며 얼굴을 펴고, 곁에서 힘차게 흘러내리는 개울물 소리가 마음에 위로를 준다. 가끔 윗동네로 올라가는 자동차 소리 외에는 고요와 적막으로 꽉 차 있다. 하늘을 본다. 하도 고요해서 나라도 소리를 질러 얼어 붙은 고요를 깨우니 쩌렁 갈라지는 소리가 골짜기를 돌아 나온다. 오늘은 일 잘 하라고 비구름이 해를 가리고 잿빛이 되어 있어 그나마 낫다. 구름 위를 날고 있는 전투기 소리가 도가니같은 산에 잠겨 여운을 남긴다. 매미도 이젠 처서를 지났음을 아는지 울다 지쳤는지 우는 소리도 전과는 다른 것 같다. 그 많은 새들은 또 다 어디로 갔는가! 온 산이 고요하니 마치 딴 세상처럼 느껴진다. 짝을 찾던 새들도 이젠 사랑하는 짝을 찾았기에 굳이 울 필요가 없어서인가 적막강산을 만들어 놓았다. 이때 나를 위해 지지배배 노래해 주면 뭐 어디 덧나기라도 하냐 지금 좀 얼굴 보이고 내게 미소도 보내려므나 더위 좀 날아가게! 나는 너희들이 없어 외로운데 이때 나를 좀 위로해 주지 어디에 있는 거냐?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밭으로 가면서 일을 마치면 11시 정도는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배추를 심고 나니 11시 30분이었다. 예상대로 되었다. 정말 쉬지 않고 일한 덕분에, 따가운 햇살이 없는 덕분에 배추를 심을 수가 있었다. 내일 서울 성전봉사일이라서 그에 맞추기 위해 기를 쓰고 일한 덕분이다. 일을 마치고 나니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이제 저 배추들이 잘 자라서 수확의 기쁨도 느껴보리라. 잘 보살펴야 하겠다.
잘 되면 딸에게도 보내 주어 손자에게 맛있는 배추국도 끓여 주고 맛있는 무공해 배추김치를 담가 줄 수도 있겠지. 부디 금년에는 진드기 등의 해충들로부터 보호받기를 염원해 본다. 내일 성전에 가서도 배추농사가 잘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늘이 돕지 않으면 나의 노력만으로 성공하기는 힘들다고 믿기에 말이다. 풍작은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나오게 한다. 진정한 풍작이 주님의 보호 속에 이루어지려나 한껏 기대에 부풀어 본다.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건강 등의 많은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며칠 째 아픔을 주었던 통풍도 약을 복용한 후로 많이 좋아져서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으니 또한 감사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생명이 숨쉬는 칠읍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