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 누가복음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말씀나눔】
누가복음 19장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세리장으로서 로마의 권력도 등에 업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세무서장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돈과 권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삭개오의 이름은 히브리어 자카이의 음역이며 그 뜻은 순전한, 의로운, 순결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리 장이었던 관계로 이스라엘 안에서 의롭거나 순결하다고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삭개오에게는뭔지 모르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에 부하 직원들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리도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직원들이 하나 둘 변화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변에 세리들을 바라보던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한 번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키자 작아서 군중들 틈에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가 생각한 것은 세리장이라는 체면을 버리고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무성한 잎사귀 사이에 몸을 숨기고 그 틈사이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시는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예수님이 무화과나무 앞에서 멈추어서서 삭개오를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오늘 삭개오의 집에서 머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뭇잎 뒤에 잘 숨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까지아시고 부르시고 삭개오의 집에 가신다고 하시니 삭개오는 깜짝 놀랐습니다. 정신없이 내려와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성껏 예수님을 대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은 예수님께 다짐을 합니다.
먼저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재산 절반을 예수님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결단 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맹목적인 헌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큰 개념에서 다른 지체들을 섬기는 개념입니다.
당시 유대인에게는 구제를 위한 십일조가 있었습니다.
그 의무는 삼년에 한번 소산의 십일조를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재산의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내겠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누구를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갑절로 갚겠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도둑질 한 것을 두 배로 갚는 것이 원칙입니다.(출22:1, 민 5:6)
그런데 삭개오가 만일 내가 남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남을 속여 빼앗은 것이 없다는 것이 전제된 구문이 됩니다.
그럼에도 본의 아니게 착취한 것이 혹시라도 있다면 네 배로 갚겠는 말입니다.
이러한 삭개오의 회개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삭개오의 회심에는 전조증상이 있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세리들과 함께 종종 식사를 하셨습니다.
① 마9:10-11에 보면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라고 비판합니다.
② 마11:19에는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으시고 세리, 죄인 그리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③ 막2:15-16에는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④ 눅 5:29-30에도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리들을 만나시고 그들에게도 차별 없이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복음은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세리들도 예수님의 치유하심과 가르치심을 들었고 그들도 침례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침례 요한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 할 때 이미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복음 3:12에 보면,
세리들이 침례요한에게 나와서 침례 받기를 원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 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이 말씀을 들은 세리 들 중에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말씀대로 살려고 회개했다는 것은 누가복음 18장의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의 모습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11-13절 말씀을 보면,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도 세리도 회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도 세리였습니다.
마10:3에 제자들을 소개할 때 세리 마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5:27에는,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는 세리였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로마의 권력을 이용하여 과다한 세금을 부과하던 시기에 분명 예수님을 만난 세리들은 무언가 달라도 달랐을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예수님을 만난 세리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공의와 사람에 대해 삶으로 실천하였을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말대로 부과된 것이상으로 세금을포탈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세리장이었던 삭개오가 몰랐을 수가 없고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삭개오 자신도 동조했을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는 세리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들었을 것이다.
세리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메사야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쩌면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은 이후에 자신의 이름처럼의로운 사람으로살아가기 위해 노력했을 수 있습니다.
부하들인 세리들을 삶을 통해서 이미 마음이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세리들은 자신들의 삶의 모습으로 세리장인 삭개오를 전도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부하들을 보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이 오셨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하였으며 변화의 삶을 결단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변화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회심한 삭개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삭개오가 나중에 베드로의 동역자가 되어서 가이사랴 지방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결단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단이 이루어지기에는 오늘 본문에 보이지 않는 이들의 섬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삶의 모습으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해야합니다!
변화된 삶의 영역은 모든 영역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회보다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기대합니다.
가족 전도가 쉽지 않은 이유는 성도들의 삶은 분명히 변화되었지만 불신 가족을 감동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확실한 방법은 예수님을 만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됩니다.
성도들은 변화된 그를 제자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으로 예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오늘 연합 예배 중에 정해규 장로님의 뭉클한 간증을 들었습니다.
모든 간증에는 변화 된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이 변화는 하나님이 이끄신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이후, 저와 여러분의 변화된 삶이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끌어내는 도구로 사용되길 원합니다.
누군가 내 삶의 변화를 보고 나를 변화시킨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 변화된 삶을 통하여서 예수님께로 VIP들을 이끄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온전한 회개와 삭개오와 같은 믿음의 결단이 우리들의 삶에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에 순종하여 많은 이들을 주께로 이끄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추천찬양】
우리 보와 앞에 모였네(F), 나의 가장 낮은 마음(A), 많은 사람들(A) 오직 주 만이(A), 예수 피를 힘 입어(A) // 밀알, 다시 복음 앞에,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주는 완전합니다. 교회, 세상 모든 민족이, 주가 일하시네, 하나님께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