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훈련은 상처를 치유한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16).
-그는 하마터면 유복자로 태어날 뻔 했다(거부감). 어머니가 처녀 임신하는 바람에 남편이 이혼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열등감).
-그는 태어나자마자 살해의 위협을 피해 타국으로 도망쳐야 했다(충격적 사건).
-그는 이름 없는 조그만 마을에서 성장했다(출신배경으로 인한 열등감).
-그의 아버지는 이름 없는 목수였다(직업 열등감).
-그의 외모는 볼 품이 없었다(외모 열등감).
-그가 고향에서 사역할 때 가족은 물론 고향 사람들이 그를 배척했다(거부감).
-그가 3년 반 동안 심혈을 기울여 양성한 제자들은 그가 위기에 처하자 모두 도망쳐버렸다(배신감).
-그의 제자 중의 수제자는 그가 당국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을 때, 그의 면전에서 모른 채 했다(배신감).
-그는 죄 없이 잡혀서 온갖 수모를 당했다(창피와 수모).
-그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했다(극도의 불안감, 스트레스).
-그는 남의 죄를 대신 지고 끔찍한 십자가형을 당했다(억울함, 공포심). 십자가에 매달린 그는 하나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울부짖었다(외로움, 소외감).
‘그’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당할 수 있는 모든 아픔과 고통-태아적 고통, 위협, 열등감, 배신감, 거절감, 창피와 수모, 외로움, 두려움, 극도의 공포-을 다 당하셨다. 그러나 죄는 없으신 분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을 당하셨지만 우리처럼 그분에게도 내적치유가 필요할까?
아니다. 왜 그런가?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어떠한 외부의 도전이나 충격에 대해서도 죄인이 아닌 죄 없는 사람의 방법으로 반응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한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축복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예수님은 아픔과 고통이 있으면 사람에게 화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께 맡기셨기 때문이다.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2-24).
당신이 사건과 충격으로 인해 마음이 아플 때, 당신의 아픔과 고통을 예수님께 맡겨라. 예수님은 능히 당신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실 수 있다.
다윗은 장인인 사울 왕의 추적으로 인해 10여 년 동안 광야에서 고통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친구에게 말하듯 당신의 아픔과 고통과 좌절을 미주알 고주알 주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마음을 지켜주실 것이다.
아픔과 고통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바로 이전의 “마음훈련은 분노를 다스린다”를 참조하라.
-태아 치유
“스승이 10년을 잘 가르쳐도 어미가 10달을 뱃속에서 잘 가르침만 못하고, 어미가 10달을 뱃속에서 가르침이 아비가 하룻밤 부부 교합할 때 정심(正心)함만 못하다.”
임신 때 부부의 마음가짐, 임신 후 태교의 중요성을 지적해주는 말이다.
임신 12주-3개월-가 되면 태아는 신생아로 태어날 때 필요한 모든 체내 기관을 갖추고 성장, 발육하는 단계로 접어들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의 태교가 가장 중요하다.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인 태교의 예는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과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들 수 있다. 두 사람은 사촌지간이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고 기뻐하니 뱃속의 세례 요한이 성령충만하여 기뻐했다(눅 1:41).
마리아는 또한 아기를 임신하게 해주신 하나님게 감사의 찬양-마리아 찬가-을 드렸다. 어머니의 정서적 반응이 태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좋은 예이다.
일반적으로 산모 정서의 90퍼센트가 태아에게 전이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산모는 임신 중 정서적 안정을 취하고 영적으로 자기 마음을 잘 지키고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태아는 그 당시 산모의 정서적 영향을 받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내적치유 세미나를 할 때다. 세미나를 인도한 후 나이가 60정도 되는 여자 분이 필자를 찾아왔다.
세미나 중, 필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복 중에서 이런저런 고통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고 했을 때, 그 말씀이 바로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여져서 하라는 대로 치유했더니 60 평생 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한다.
자기는 태어나서 쭉 신앙생활을 했고 지금도 목회자로 섬기고 있으며, 그 동안 내적치유를 많이 받아왔지만 가끔 자기의 정체성이 모호하고 삶의 허무를 느껴서 치유하려고 수없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원인이 태아적 받은 상처로 인한 것이란 사실을 이번 세미나에서 알게 되었고 치유까지 받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다.
그가 임신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그것이 그대로 태아에게 전이되었던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다양한 방법으로 어린 시절부터의 상처를 치유해왔다.
그런데 영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태아치유를 했다. 그랬더니 금방 주변 사람이 변화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의 여성 중에 ‘남성적 성격’으로 인해 부부관계를 힘들어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필자의 집회에 잘생긴 사모님 한 분이 참석했다. 남편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남편이 교회의 여 집사님들과 어울리고 자기에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대화를 하면서 기도한 결과, 그녀가 임신 중에 ‘부모가 아들 낳기를 간절히 기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뱃속의 태아는 여자인데 부모나 조상들이 '아들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뱃속의 태아가 여자라면, ‘나는 여자 행세하면 손해 보겠구나, 남자 행세를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출생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고 한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여자이지만 남자처럼 털털하고 호탕해서 이런 여자를 남자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하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남자는 좌뇌중심의 화성남, 여자는 우뇌중심의 금성녀로 창조하셔서 서로 보완하게 하셨다.
여자에게는 남자와는 달리 다정다감하고 예쁘게 꾸미려는 여성적 본성을 주셨다.
그런데 남자처럼 행세하는 여성에게는 이런 본성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남편이 아내를 봐도 성적 매력이 잘 유발되지 않고 덤덤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사모님이 그런 케이스였다. 나이 50세가 넘어서도 친정 집에 가면 아직도 ‘네가 남자가 되었어야 하는데’라고 한다고 한다.
이 사모님이 태아치유를 했다. 하나님이 여성으로 창조하셨는데 부모나 가족들이 남자가 되게 해달라고 한 죄를 대신회개했다. 본인도 자신의 여성성을 회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변화가 일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멋진 당신을 왜 몰라봤을까’ 하면서 대학생 아들 앞에서도 이전에 하지 않던 애정 표현을 노골적으로 하기 시작하더란다.
자신도 이전에는 남편을 ‘경쟁 상대’(?)로 여겼는데 이제는 ‘돕는 배필’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남자와 남자로 살았는데 이제는 남자와 여자로 살면서 행복해졌다고 한다.
그외에도 태아적에 엄마가 받은 상처나 외부의 편견으로 인해 출생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경우에는 성령의 특별하신 도움을 받아 치유하는 것이 좋다.
-염려와 불안을 극복하라
어떤 여행자가 바그다드로 향하던 중, ‘전염병’과 ‘두려움’을 만났다. 이들은 그곳에서 사람 만 명을 죽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행자는 전염병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죽일 것입니까?”
전염병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단지 몇 백 명만 죽일 것입니다. 나머지는 제 친구 ‘두려움’이 죽일 것입니다.”
사람이 행동을 하게 만드는 4 가지 주요한 동기가 있다. 두려움, 소망, 믿음, 사랑인데 이중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두려움이라고 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말했다.
옛날 중국에 기우(杞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날만 새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봐 한숨을 쉬며 걱정했다.
이후 '기우'라는 말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쓸데없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대명사로 사용된다.
한국은 주거 불안, 고용 불안, 교육 불안, 노후 불안, 안보 불안, 건강 불안 등으로 인해 잠시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물론 이중에는 정당한 불안도 있지만 안 해도 될 일을 사서 불안해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이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을 분석해 보았다. 염려의 40퍼센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을 사서 걱정하고, 30퍼센트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걱정하고, 12퍼센트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비판한 것을 걱정하고, 10퍼센트는 건강에 대해 걱정하였으며, 나머지 8퍼센트만 걱정할만한 가치가 있는 걱정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워싱톤에 가면 링컨이 애용하던 성경이 보관되어 있다. 그 성경 속에 손때에 이겨져 눌린 손가락 자욱이 있다. 여러 번 같은 장소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생긴 자욱이다. 그곳은 시편 34편 4절이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링컨은 남북전쟁과 그의 평생에 걸친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대답해 주신다는 확신과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주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음을 눌린 자국까지 되풀이 해서 읽은 시편에서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의사를 찾는 만성질환 환자들의 90퍼센트가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그들의 질환은 감기나 가슴통증이나 위산 과다로 인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범브렌트 목사는 감옥에 갇혔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려웠다.
그런데 그는 성경말씀에 '두려워 말라'라는 말씀이 365회나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매일 한 번씩 이 말씀에 의지하여 어떠한 환란이나 핍박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이 없이 기쁨과 안식을 누리는 삶을 살아라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윤년까지 감안하셔서, 이 말이 성경에 366회가 나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마음훈련을 시작하면서 필자가 제일 먼저 다룬 것이 염려와 불안이었다.
환경을 보면 특별하게 염려하고 불안해 할 일도 없는데 가끔 가눌 수 없는 염려와 불안이 엄습하여 나를 괴롭혔다.
신자가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100퍼센트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그래서 염려와 두려움을 단순한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 죄로 여기고 집중적으로 회개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저의 염려, 불안, 걱정, 근심, 두려움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보혈로 씻어주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주시옵소서.”
단순히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염려, 불안, 두려움의 뿌리를 뽑아내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기도했다.
매일 기도하면서 때로는 한 번에 한두 시간씩 기도했다.
그러기를 3개월 정도했을까? 이전 같으면 염려하고 불안해 해야 할 환경에 처했는데도 전혀 요동치 않고 평온함을 유지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나도 놀랐다. 그때 예언의 은사도 덤으로 받았다.
물론 아직도 내 안에 겉사람이 남아있어서 환경이 힘들고 문제가 생기면 금방 염려와 불안의 마음이 생기려고 한다.
이때 지면 안 된다. 이때 나는 즉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해석을 기대한다.
“주님, 이것 걱정할 상황입니까, 아닙니까?”
그러면 기도의 응답으로 금방 내 안의 속사람이 나타나서 염려와 불안의 마음이 사라진다.
“아,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이구나. 내가 염려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환경이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나 문제에 대한 나의 반응-해석-이 문제구나.”
어느 사업가는 수년 동안 매달 사업 융자금을 상환하느라 심하게 짓눌려있었다.
그러다가 마음훈련을 받은 후, 불안과 염려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했다면서 ‘이것 하나 제대로 해결한 것만 해도 자기는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다.
어떤 자매는 가정에 문제만 생기면 몸져눕는 것으로 가족들에게 알려졌다.
그러던 중 세미나에 참석하여 염려 불안을 뽑아내는 마음훈련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자기가 멀쩡하니까 가족들이 의아해서 질문했다.
“아니, 엄마 몸져누워야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멀쩡할 수 있어요?”
어떤 사모님 한 분도 세미나에 참석한 후 변화된 자신을 남편 목사가 먼저 알아보더란다.
그때는 교회에서 정말 어려운 일이 있을 때였다. 이전 같으면 방방 뛰고 난리를 부렸을 텐데 조용한 자신을 보고 남편이 ‘정말 변했다’면서 놀라더란다.
환경이나 문제가 사람에게 염려, 불안, 걱정, 두려움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반응’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고난과 환란과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다. 문제는 변하는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이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면 겉에서는 아무리 거친 풍랑과 폭풍우가 몰아쳐도 속에서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주님의 평강과 고요를 누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