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이야기
김 응 환
퇴직 후 연금공단 상록아카데미 문을 두드렸다. 안내 문자를 받고 무슨 과목을 수강할지 고민하다 먼저 문화해설사반에 들어갔다. 문화해설사반은 대구반과 경북반이 따로 운영되고 있었다. 두 반을 수료하는 데는 2년이 걸렸다. 다음에는 무슨 과목을 신청할지 고민하다 어느 분의 권유로 수필반에 들어갔다.
처음 수필반에 들어갔을 때 나를 소개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글을 써본 경험은 별로 없고, 시민기자 경력과 신문에 기고는 몇 번 해봤습니다! 열심히 배워 자기 생각을 글로 나타내 보고 싶습니다!” 먼저 수강하고 계신 선배 문우님들의 소개말을 들어보니 이력들이 쟁쟁하다.
수업을 마치고 함께 인근 커피숍으로 갔다. 이른바 제2교시다. 여기서도 글쓰기에 대한 대화가 오간다. 글을 잘 쓰려면 독서를 많이 해야 하고, 우선 많이 써봐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이나 주변에 일어나는 것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느낌을 글로 옮기면 된다는 것이다.
선배 선생님이 ‘독서통신’ 자료를 보내주셨다. 유명 서적을 30페이지 내외로 내용을 요약하여 이메일로 한 달에 두 번 정도로 보내주셨는데, 독서가 부족한 나로서는 매우 유용한 자료였다. 지도교수님과 문우들의 도움으로 차츰 글쓰기에 재미를 들이게 되었고, 수필에 대해 조금씩 눈뜨게 되었다.
글쓰기를 하고 3년쯤 되는 시기에 고민이 생겼다. 아직 실력이 되지 않는데 지도교수님이 등단을 권하신다. 처음에는 몇 번 거절했다. 그런데 저와 비슷한 시기에 입문한 문우들이 이번에 등단 심사에 임한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나도 등단 심사에 응하기로 했다. 다행히 중앙 계간지를 통해 등단했다.
문우들의 권유로 수필단체에도 가입했다. 가입하다 보니 상록수필문학회, 대구수필가협회 등 회비 내는 단체만 네 곳이 되었다. 매월 열리는 월례회 등을 통해 회원 간 친목 도모와 문학적 소양도 쌓을 수 있었고, 문학기행 등 행사를 통해 그 지방의 역사 공부는 물론 글감을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수필 경력만큼이나 수필 서적도 쌓여가고 있다. 서재 책꽂이에는 수필 관련 책자가 늘어나고, 내가 소속된 수필단체에서 발간한 연간집들과 문우들이 보내온 수필집도 책상 위에 쌓여가고 있다. 한편으로 수필 관련 출판사에 보내는 원고도 늘어가고, 컴퓨터에 저장된 나의 글도 늘어가고 있다.
수필을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머릿속으로는 그려지는데 막상 써보면 잘되지 않는다. 문학적 감성과 문장력 부족을 많이 느낀다. 그런 중에서도 가끔 옛날에 써놓은 작품을 꺼내 읽다 보면, 퇴고할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것들이 글 쓰는 사람의 기쁨이다.
며칠 전에 나의 칠순 잔치가 있었다. 몇 개월 전부터 아들들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내게 이런 제안을 해왔다. 아버지가 수필을 쓰고 있으니, 이번 행사에 수필집을 발간하여 참석하는 가족들에게 한 권씩 나눠주자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자신이 없었다. 비용은 아들들이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책을 낼만큼의 작품이 부족했고, 남에게 발표할 정도의 실력도 되지 않았기에 고민 끝에 책 발간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퇴직 후 내가 가장 잘한 일은 글쓰기다. 평소에 생각한 것들을 글로써 표현할 수 있으니 축복이다. 길거리를 가다가도 항상 글감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고, 교회 목사님 설교 시에도 좋은 말씀은 메모를 한다. 얼마 전 해외여행 시 기행문을 정리하여 같이 간 일행 단톡방에 올렸더니 모두 좋아했다. 우리가 관람한 해외 관광명소를 지나고 나면 잊어버릴 텐데, 내가 쓴 기행문을 저장하여, 필요할 때 꺼내볼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글쓰기는 가장 보람 있는 취미활동이다. 머리를 스치는 생각들을 모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남다른 즐거움이다. 글을 쓰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 글쓰기 최고의 수확이다.
첫댓글 김응환 선생님 작품을 모아서 수필집을 한 권 발행해보시기 바랍니다. 작가가 자기 책을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자부심이 됩니다. 더욱 정진하시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