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사무총장<열매나눔재단>
1980년대까지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한국 교회는 90년대에 들어오게 되면서 교회 성장에 있어 정체의 시기를 맛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의 시기를 겪게 되면서 한국 교회는 기존의 성장 일변의 교육의 문제점들을 인식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성장이데올로기(growth ideology)’와 교회주의(churchism)에 대해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면서 세계 복음주의 운동에 대한 시각을 넓혀 가기 시작한다.
즉 복음의 사회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시작되어 사회적 참여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우리나라에 1997년 IMF의 외환위기가 발생 하였다.
정부는 사회안전망 형성을 위해 시민단체나 기타 민간의 역할을 기대 하였으나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할 단체나 종교는 어떤 곳도 없었다.
어려운 시기인 이때 교회가 사회적 참여와 사회 책임적 존재로서의 역할을 주장하며 사회복지 안에 깊이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당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던 노숙인 문제를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어 어떻게 보면 예상 보다 더 빠르게 노숙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우리가 깊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 것이 밥을 퍼주는 1차적 사회복지의 체험이었고 그 체험은 교회의 성장의 정체와 맞물려 새로운 대안과 같은 느껴졌던 시기였다. 이때부터 한국 교회는 교회성장과 맞물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회복지에 대한 필요성을 깊이 있게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노숙인들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당시 노숙인 관련한 쉼터의 많은 부분이 교회를 통해 운영되고 있었는데, 노숙인이 줄어들다보니 지원 기관이 노숙인의 이름을 빌려서 보조금을 타는 부작용까지 생기게 되었다.
외환위기를 벗어나면서 우리나라의 거리 노숙인이 줄어들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국가에서는 시민단체나 교회의 노숙인 지원 사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들은 당시 사회 참여로 대거 들어온 각 개별 쉼터 운영 기관인 교회와 갈등이 생기게 되었고 교회는 종교적 탄압이라는 말들까지 해 가며 가진 것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하였다.
많은 마찰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노숙인 사업이 구조 조정이 되었고 그 결과 후유증으로 인하여 정부는 교회의 사회복지 운동에 대하여 신뢰를 보내지 않기에 이르게 된다. 교회가 정부의 파트너로서의 자격을 잃어간 것이다.
당시 가톨릭은 국민의 성금으로 마련된 재원을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관리·운용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인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설립을 주도 하는 등 다양한 사회복지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회책임에 강한 종교로, 사회정의를 외치는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고아와 과부, 나그네의 친구는 가톨릭이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혔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물질주의, 기복신앙, 다른 종교 무시의 이미지가 강하게 새겨진 기독교는 지난 10년을 지나면서 질적 양적 감소의 아픔을 겪게 된다.
지난 10여 년 동안은 1차적인 사회복지를 중요시했던 시대였다. 의식주에 관련된 복지에 전력투구를 했던 것이다.
기독교는 그 사회복지 대전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정부로부터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그리 높지를 못했다.
그러나 지금부터 앞으로의 10년은 2차적인 사회복지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구호와 구제를 넘어선 자립과 자활의 시대인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자립하고 자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한국 기독교가 2차적인 사회복지에 눈을 떠야 다시금 잃어버린 기독교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