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도 금일읍 함안조씨 입도유래
조선조 인조때 경상도 마산(慶尙道 馬山)에서 함안 조씨(咸安 趙氏) 석장(碩璋)이라는 관리가,
배를 타고 인천(仁川) 으로 항해 하던 중
평일도(平日島) 근해에서 심한 풍랑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
평일도에 상륙하여 구동(龜洞)에서 일시 거주하다가
1628년 감목리(柑木里)로 이주하여 장착한 이후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을 이름은 뒷산에 큰 감나무(柑木)가 무성하여 감나무골로 부르게 되었는데
한자로 쓰면서 감목리(柑木里)라 부르게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上 .下 화전리(花田里)를 합하여 화목리(花木里)라 하였으나
1945년 해방이후에 각각 감목리와 화전리로 구분되었다.
감목리는
금일면 때부터 읍으로 승격된 지금까지 읍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각급 기관단체가 있다.
[ 하화전리 유래 ]
1880년대에 함안 조도순(咸安 趙道淳)씨가 장흥 대덕에서 회진포(會鎭浦)에 내려와 살면서
상화전리의 안씨와 결혼한 후 정착하였고, 상화전리가 점차 커지자
1890년대에 안홍도 (安洪道)씨가 하화전리로 내려와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해방이전에는 가구수가 적어「화전포(花田浦)」또는 「야금(冶金)」으로 불리워졌는데
야금이라 함은 쇠가 녹도록 돈을 모아 부촌(富村)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붙여진 이름이었고 1961년에는 하화전리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월송리 유래 ]
조선 효종때에 함안 조씨(咸安 趙氏)가 처음으로 입주하였고
조선 숙종때는 청주 한종국(淸州 韓宗國)씨가 들어와서
마을을 이루고 송호재(松湖齋)라는 서당을 만들고 후진양성에 힘썼었다고 한다.
부근에 백사장이 있어 자연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마을 주위에 송림(松林)이 울창하여
달밤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고 하여 마을이름을 월송리(月松里)라 명명 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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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정 아버지의 23대손 석장 할아버지가 입도하여 현재 금일읍에 80여호에 150명정도 살고 있으나 전국에는 약 2000명 이상 분포 되어 있을 것으로 예측됨
상록수님은 어느문파인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