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바닥에 버려져 있는 새끼줄이 뱀처럼 보인 적이 있습니까?

[K]

  하일지, 『경마장을 위하여』, 민음사(1991)

  작가 스스로가 체험한 7일 간의 병영체험을 토대로 썼다는 이 소설은 하나의 추억담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소설은 K가 U읍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도착했다는 말은 적당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또한 K는 버스에서 내리는 걸로 되어있지만 그 버스가 달리던 버스인지, 시외버스터미널에 잠시 정차한 버스인지 정확하지가 않다. 이 정확하지 않음이 더 이상의 궁금증을 가지지 못하는 건 단순하게 말해 K가 내린 것이 굳이 버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차건, 택시건 그는 도착한 것이다. 게다가 그가 버스에서 내려서 처음 하는 행동은 옥수수밭 가에 오줌을 싸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닥 정확하거나 중요한 장치가 아니다. 왜냐하면 K가 똥을 싼다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K의 도착은 터미네이터가 미래에서 현재로 도착하는 그 장면과 유사하기도 하다. 그러나 대체로 터미네이터는 야밤을 틈타 도착한다. 그것도 미국의 한 도시에 도착한다. 게다가 도착과 동시에 그는 사람들 앞에서 엄청난 괴력을 과시한다. 터미네이터는 자신이 착지할 자세와 적당한 장소를 가진다. 다시 말해 미래에서 현재로 와야 할 것은 사이보그 인간 터미네이터이지, 용가리, 신밧드, 헐크 등등의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이 어떤 의의를 가진다면 그건 인물과 배경의 적재적소가 아니다. 어느 누가 도착해도 그만이고 그 도착한 장소가 외딴 섬이건, 사막 한복판이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K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니나를 대마왕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시간이 정지된 틈을 타 벽에 구멍을 내고 그 이상한 나라로 갈 때 가지고 가는 것이 고작 딱풀이 하나이듯, 군대에 가기 위해 준비한 것이 고작 낡은 칫솔 하나 뿐이다. K는 하나의 고안된 인물이고 그가 A나 B라고 명명된다고 해서 달라 질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U읍은 C면, D리가 아니어서 소설의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가 아니라 거기에 그게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의 장치들은 그것이 담배이건, 대학 후배 조상호이건 우위가 가려지거나 하나의 특징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무의미이거나 의미 그 이상의 것들이다. 어떤 장치들도 과거를 암시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미래로부터 올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령, 내일 새벽에 옆집 아이가 군대를 간다고 하자. 이 소식을 우연히 들은 내가 취해야할 생각은 그래요? 던가 조금 아는 사이라면 그 녀석이 벌써 군대갈 나이가 됐나? 기타등등일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옆집 아이가 아니라 앞집 아이가 군대를 간다고 하자. 그 변경된 사실이 나의 일상을 뒤흔들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집 아이는 내일 새벽에 보험금을 노리고 자기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것도 아니고 옆집 아이 역시 전쟁 중인 이라크로 인간방패를 하러 간다고 하는 게 아니고 단지 군대를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K역시 바로 그런 친구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내 짝꿍일 수도 있고, 내 짝꿍의 친구의 친구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K가 군대를 간다는 사실 이외에 것이 아니다. 하지만 소설은 그 이외의 상황들의 전개 속에서 연출되는 의외의 면면들을 구성해 낸다. K를 제외한 대개의 청년들은 필요이상의 구타를 당하지만 이 소설 전체를 통해서 K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숟가락 개수가 틀리다는 이유로 딱 한 번 정강이를 걷어차인다. 하지만 K는 운이 좋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구타 가능성에 대해서 초연하다. 그는 다른 청년들이 어떻게 해서든 뺑소니를 치던 사역에 차출되지 않는다. 역시 딱 한 번 화장실의 똥을 풀뿐이다. K는 대가 없는 노동에도 불만이 없다. 간단히 말해서 K에게 군대는 어떻게 해서든 빠지고 싶은 곳도 아니기 때문에 군대 규칙에 큰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군대를 간 건 국가로부터의 호명에 의해서이지 굳이 남자구실을 하거나 제대 후에 사회에서 어떤 득을 보려고 간 게 아니다. 또한 K가 군대에 간 건 휴전이라는 국가이데올로기가 아닌 순전히 작가 때문이다. 역으로 작가가 군대를 간 건 국가이데올로기 때문이다.

  -군에 남아 있으라고 하면 남아 있을 일이고, 나가라고 하면 나갈 일일 뿐, 저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런 건 제가 결정하는 일이 아니니까 저한테 물으실 필요가 없습니다(227).

  말하자면 이 소설은 스스로가 허구임을 곳곳에서 고백하고 있다. 마치 예비군 훈련장의 시가지 전투 교장처럼, 이 소설은 인공구조물 안에서의 K의 게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인공구조물이 문제가 되는 건 실로 그것이 가짜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흉내냈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가령 대공원의 귀신의 집에 들어간 아이가 가짜 귀신을 만나 공포를 느끼고 눈물을 흘릴 경우, 그 공포와 눈물 역시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의 소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거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그것의 경로는 대체로 가짜를 진짜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을 통해서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경우는 다르다. 이 소설은 군대라는 진짜를 가짜로 착각하게 하면서, 그 가짜를 고백하면서 진짜일 수 있다는 걸 역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혹시 『경마장을 위하여』라는 소설 읽어보셨
  어요?
  그녀는 돈을 계산하면서 K에게 물었다.
  -아니오,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네요. 그 책이 있으
  면 좀 보여주시겠어요(43)?

  K가 간 군대는 누군가 간 군대이고 어느 누구도 가지 않은 군대일 수 있다. K가 끝내 자대에 배치 받지 못하고 면제되는 이유는 정신이상이다. 이 정신이상은 상관 앞에서 다른 청년들보다 단지 목소리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촉발된다. K에게 목소리란 클 수도 작을 수는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럼 제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의 크기를 보고 무엇인가 알아낼 수 있다는 겁니까(149)?> 이러한 K의 의문들은 곧바로 과거에 머릴 다치거나 크게 아팠거나 정신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냐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K에겐 소위 군기라는 것이 무의한 짓거리일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너에게 정신분열증이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렇게 화를 낼 수 있는가? 여기는 군대야(153).> 물론 거기가 군대이기에 K의 이러한 기행은 군대에서 면제받기 위한 하나의 연극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K는 그럴 생각이 없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군대에서의 면제의 여부는 K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K는 인간의 섭리를 잘 알고 있는, 말하자면 영특한 인물이다.

  나는 그놈이 날 패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어요. 왜냐하면 그놈은 제딴에는 남들보다 후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부류의 족속이니까요(175).

  이 때부터 소설은 굉장히 유머러스해진다. 즉 소설의 공간에서 장군이 되겠다고 다짐하거나 신체검사에서 일급이면 좋다고 말하거나 스스로 내무반의 향도가 되겠다고 손을 드는 K는 정신이상이 되는 반면, 군인으로서 사역에서 뺑소니치고, 어떻게 해서든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줄을 잘 서려는 청년들은 정상이 된다. 그렇다면 군대라는 조직은 진정으로 용기 있는 청년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군대는 군인의 용기를 저하시키려는 이상한 공간이다. <자네는 지금 군에 가고 싶지 않은 거지? 그렇지(199)?> 또한 K는 장래의 꿈이 이발사라고 말한다. 왜? 하는 질문에 K는 적당하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냥 이발사가 되고 싶은 거지 딴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가 보는 이발사라는 꿈은 대학을 나온 이가 꾸어야할 합당한 꿈이 아닌 것이다. 이유를 댈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정신이상의 한 양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군법회의에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나는 승소할 게 뻔해. 왜냐하면 이 부대에서는 우리 대한민국의 용감한 장정 나, K를 모욕했으니. 그는 아마 장정 모욕죄로 유죄판결을 받게 되겠지(206).> 그러나 이러한 K의 정당한 생각들은 동료 청년들에게 군에서 빠지기 위한 고단 수의 쇼로 비쳐지는 것이다. 여기에 정상이고자 하는 K와 정상을 (비)정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군대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어느 날 똥을 푸러 간 K는 일등병에게 물을 받아다 주었다는 이유로 똥을 푸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이렇게 답한다. <내가 똥을 푸라고 한다고 해서 똥을 푸고, 푸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안 풀 사람 같아요(274)?> 더 나아가 <나는 오늘 똥을 푸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똥을 풀 거구요(275).> 하고 말한다. 이렇게 똥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푸는 것 자체가 군대에서는 기행인 것이다. 드디어 군대는 K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누구나 군에서 빠지기를 원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289)?>

  -고무줄 없는 빤습니다.
  -이 새끼 무슨 소리하는 거야?
  […]
  -아! 아닙니다. 못 먹어도 곱니다.
  그러자 초병이 말했다.
  -이 새끼 누가 암호를 물었어? 너 지금 여기서 뭐하
  는 자식이냐 말이야?
  -아 예 저는 산책하고 있는 중입니다.
  K가 이렇게 말하자 보초병은 약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
  을 짓고 있다가 말했다.
  -이 새끼, 여기가 너희집 정원인 줄 알아?
  -그래도 아침 공기가 너무 맑군요.
  K가 말했다. 그의 손에는 그사이에 꺾은 몇 송이의 꽃
  이 들려 있었다.

   군대의 권위는 이런 진지함 앞에서 무력해진다. 아니 진지함이라니. 군대는 진지함 그 자체이다. 이등병은 웃으면 맞는다. 일등병이 11번에서 9번으로 TV채널을 임의로 바꾸면 맞는다. 상병이 점호 시간에 누워 있으면 맞는다. 병장이 아이들을 때리면 영창간다. 얼마나 진지한가. 웃어도 맞고 울어도 맞고 때려도 맞고 맞아도 때리는 이 진지함. 그러나 이 소설이 드러내는 것은 그 진지한 권위와 위계가 하나의 인공구조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까 이 소설이 인공구조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공구조물은 분명 소설 밖에도 있는 것이다. 이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야 하는 인공구조물, 삽질해서 푸고 다시 메우고 또 삽질해서 푸는 인공구조물 가령 이런 유형의 질문들을 나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당신은 밤에 비오는 소리를 들으면 총소리로 들릴 때가 있습니까?>
  <당신은 길바닥에 버려져 있는 새끼줄이 뱀처럼 보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잠자고 있는 당신의 가족들이 시체처럼 보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젊은 여자의 얼굴이 해골처럼 보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까닭도 없이 비명을 질렀던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장례식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이 소설은 허구를 가지고 더한 허구를 드러내는 허구적인 소설이다. 소설의 말미에 K는 끝내 정신이상으로 면제를 받는다. 장군이 되겠다던 K의 꿈은 깨진 것이다. 왠지 K가 이담에 이발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가 떠나던 그 순간에 <어둠이 내리고 있는 뜰 저편에는 새로 군복을 얻어입고 훈련소로 입소하는 청년들이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를 하고 있었다(335).> K의 슬픔은 저들의 대열에 끼지 못했거나 정녕 장군이 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슬픔은 하나의 허구가 드러나고 거두어지면 다른 또 다른 허구가 자신을 어느새 도착시킬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허구란 이것이다. <잠시 후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