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노을 시낭송회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문학 게시판 스크랩 한맥문학 2009년 6월호-시월평
李 乙 추천 1 조회 34 11.07.01 08:4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맥문학 2009년 6월호/시월평


                                                      상호모순의 양면 속에서

                                                                    -패러디의 기본개념에 대하여

                                                                                                                                                     이 만 재


 로마의 폐허된 지하 동굴인, ‘그롯데(grotte)’에서 발견된 스핑크스, 나뭇잎, 바윗돌, 자갈들로 구성된 장식을 일컬어 ‘그로테스크(grotesque)’라고 한다. 이 용어는 인간, 동물, 식물의 테마들과 형태들의 혼합混合을 묘사한 그림에 쓰이게 되었다. 라파엘과 아르킴볼도의 일부 작품은 전형적인 그로테스크에 속한다. 16세기 라블레는 그것을 육체의 부분들에 대해 사용했으나 18세기에 이 용어는 우스꽝스럽고, 괴상하고, 엉뚱하고, 기형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지시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조화, 균형, 부분과 전체와의 올바른 관계라는 바람직한 규범으로부터의 일탈逸脫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에서 그로테스크적인 요소들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패러디(parody), 회화(caricature), 풍자(satire), 욕설(invective), 벌레스크(burlesque), 블랙 코미디(black comedy), 소름이 끼치는 것 그리고 부조리 연극 등에서이다. 이들 중에서 패러디를 주목해 보도록 하겠다.

 패러디의 어원인, ‘paradia’는 “다른 것에 대한 반대의 입장에서 불려진 노래”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어원의 의미로 보면 ‘반대’와 ‘모방’ 또는 ‘적대감’과 ‘친밀감’이라는 상호모순의 양면성兩面性을 띤다. 이 양면성, 모방과 변용이 패러디의 기본개념이다.  

 문학에서 패러디란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 운율 등을 흉내 내어 풍자적 또는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기법을 뜻하며, 넓게는 우스꽝스런 모작模作인 벌레스크의 범주에 속한다. 주로 원작原作의 유명세에 편승하여 자기 의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이용되기도 한다. 본질적으로 패러디는 풍자와 위트,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전대 또는 당대의 불합리한 세계에 억압적 특성이나 허위의식을 폭로하려는 태도가 반영되어있다. 패러디는 모방적인 인유의 대표적 형태이자 문학적 장치이다. 패러디의 역사는 문학의 역사만큼 오래다. 현대문학, 특히 서사문학敍事文學에서 주목되는 원리이며, 현대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패러디는 ‘원전의 풍자적 모방’, 또는 원전의 ‘희극적 개작改作’으로 정의된다. 시집이나 문예지에 이미 발표된 몇몇 시인의 작품들을 살펴보겠다.


①당신이 내 곁에 계시면 나는 늘 불안합니다 나로 인하여 당신의 앞날이 어두워지는 까닭입니다 내 곁에서 당신이 멀어지시면 나의 앞날은 어두워집니다 나는 당신을 붙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떠나갈까 안절부절합니다…(중략)…나는 당신이 떠나야 할 줄 알면서도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성복, 시「앞날」의 일부.


②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도와 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아버지의 나라를 우리 섣불리 믿을 수 없사오며/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 뜻은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 주시고/우리가 우리에게 미움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 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 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론ㅎ지 마시고/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두시겠습니까?//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밤낮없이 주무시고만 계시는/아버지시여/아멘.

                                                                                                                -박남철, 시「주기도문, 빌어먹을」의 전문.


③중원제일미를 뽑는 미인대회에서 중원땅이 떠들썩하다/서시 같은 얼굴 수밀도 같은 젖가슴 팽팽한 둔부의/여인만이 대우 받는 중원무림/무공이 고강한 고수들만 사랑하는/강호의 여인들/넌 어제 한 아리따운 남자에게 닭잡을 힘도 없는/시인묵객이란 이유로 퇴짜의 장풍을 맞고/울컥 선혈을 한모금 토해냈다.

                                                                                                                   -유하, 시「중원무림 태평천하」의 일부.


④그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전 우주가 동원된다고 노래하는 동안/이 땅의 어느 그늘진 구석에/한 술 밥을 구하는 주린 입술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결코 가난은 한낱 남루가 아니다/목숨이 농울쳐 휘여드는 오후의 때/물끄러미 청산이나 바라보는 풍류가 아니다/가난은 적, 우리를 삼켜버리고/우리의 천성까지 먹어버리는 독충/옷이 아니라 살갗까지 썩혀버리는 독소/우리 인간의 적이다 물리쳐야 할 악마다/쪼르륵 소리가 나는 뱃속에다/덧없이 회충을 기르는 청빈낙도/도연명의 술잔을 빌어다/이백의 술주정을 흉내내며/괜찮다! 괜찮다! 그대 능청 떨지 말라/가난을 한 편의 시와 바꾸어/한 그릇 밥과 된장국을 마시려는/저 주린 입을 모독하지 말라/오 위선의 시인이여, 민중을 잠재우는/자장가의 시인이여.

                                                                                                                                    -문병란, 시「가난」의 전문.


 인용한 작품들에서 보듯이, 패러디는 독창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인문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패러디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소외된 변두리 인간에 대한 재정의再定義와 재평가再評價하는 탈중심주의脫中心主義를 가진다. 시①의 원전은, 만해 한용운의 시「님의 침묵」이다. 그 원전은 님을 잃은 슬픔과 님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의지를 상징적 표현과 전통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이것을 패러디한 시「앞날」역시 경어체의 엄숙하고 진지한 어조는 흡사하여 이별이라는 전통적 제재題材를 다룬 점에서 연가풍戀歌風에 속한다. 그리고 원작을 희극적으로나 풍자하지 않았다, 다만 만해시의 사상을 패러딕하게 전도시킨 작품이다. 이는 상호텍스트, 즉 만나면 반드시 이별하고, 이별하면 다시 만난다는 불교적 사유思惟, 만남과 헤어짐, 동과 정, 색과 공空,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선적禪的 사유를, 자신과 함께하면 상대가 불행지고, 헤어지면 자신이 불행해진다는 양자택일兩者擇一의 불가능한 부조리의 세계관, 그 존재의 모순矛盾에서 패러디를 감지하게 된다.

 모방, 변용, 골계滑稽는 패러디의 3대 요소다. 시②의 원전은 <주기도문>이다. 진지하고 엄숙한 문체와 어조인 <주기도문>에 저급한 주제主題를 접목시킨 전형적인 패러디시다. 그리고 풍자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대적 감수성에 의해 원전의 방법, 체재, 문체, 사상을 우롱愚弄하기 위해 과거보다 당대적 관습慣習, 정치와 현실을 비판批判하며 신성한 원전을 왜곡歪曲하기도 한다. 시③은 마치 현실이라기보다 대중예술, 만화, 무협소설, 포르노 영화를 이용하고 있다. 생소한 용어들과 어조를 채용하여 의도적으로 전경화前景化를 시도한다. 전경화란 러시아 포말리스트들이 즐겨 쓰던 현대시법의 하나로서 전경에 대응하는 후경後景을 전제로 성립된다. 다시 말해, 전면에 펼친 풍경은 후경을 의도적으로 개조해서 드러낸 일종의 허위의 진술이란 뜻이다. 진실은 후경으로 은폐시키고 전면에는 이를 상징할 수 있는 표징사물로 장식한다는 점에서는 이중지시二重指示인 셈이다. 이 시는 새로운 상호텍스트에 의한 퇴폐적인 삶 속에 위장된 거짓평화를 효과적으로 풍자한다.

 시④는 서정주의 시「無等을 보며」,「국화 옆에서」,「내리는 눈발 속에서」등의 여러 구절을 발췌하여 재조립한 전형적인 패러디시다. 한 끼 밥이 절실한 가난한 민중의 삶과 한가로이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서정주의 시세계를 빗대어,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듯 꾸짖는, 이 시인의 어조는 매우 신랄하다. 

 『한맥문학』 5월호에서 패러디와 연관되는 모방, 변용, 골계를 살펴보았으나, 언제나 불변의 시작법詩作法, 타성에 젖은 작품들이라서 새로운 변혁變革을 거부하는, 철옹성鐵甕城 같은  콘크리트사이언스를 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상호텍스트적인 패러디에 근접하려는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①희맹단 선혈로 밝힌 호국의 횃불 되어/갑오년 농민 봉기 성화로 타오르고/이 강산 빼앗겼던 암흑 속에 긴 세월/조국을 다시 찾고자 高敞高普세웠으니/거룩한 이 밭에 태어난 아들딸들/성산에 소나무같이 튼튼하게 자라나/우뚝 선 곳곳마다 커다란 기둥 되고//민족의 혼을 노래한 판소리 여섯마당/고창 사람 신재효가 잘 고르고 다듬어서/김소희 큰 목청으로 세계 만방 알렸으니/서해바다 갯바람 춤추는 선운산에 동백은/눈보라를 이기고 붉게붉게 꽃피우며/청보리 익은 땅에는 장한 얼굴로 산다네.

                                                                                                                      -김오수, 시「모양부리 예찬」의 일부,


②당신이 떠나간 빈자리에/외로움이 그리움이 밀려오지만/당신의 향기는 맴돌고/오순도순 흔적은 남아 있구려//한 발짝 먼저 간 천국이랴/은하수 별들 천사의 노래 있으려니/요단강 건너가시던 그 길 바라보며/당신 만나는 날 반가운 그날 기다립니다.

                                                                                                                  -윤학재, 시「어찌 가신단 말이요」의 일부


③유치원 시설 닦아 놓고/꼬드길 동생 없는 저출산/이모, 고모, 삼촌이 없어진다/양은 희다/검은 양이 태어나서 길조란다/실내 야구장은 천정이 높아야 하는데/사는 방법에도 젊음이 있어야 하는데/파올이 많다/체면이 모자라는/인생을 거두어 가기 전에 더 웃고/가면을 쓰고 살지라도/즐겁게 살자/자존심은 진로를 방해할 뿐,/일찍 일어난/쌉짝 밖에 우는 새가 먹이를 많이 먹는다.

                                                                                                                             -배동준, 시「돌려막기」의 일부.


 패러디는 대조와 대비의 의미도 있지만 일치와 친밀성의 의미도 있어 조롱의 효과를 내는 익살스런 희극의 패러디뿐만 아니라, 진지한 형태의 패러디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익살을 의미하는 패러디를 우리말로 골계라고 할 수 있다. 남의 시귀나 문체를 따와서 작품에 표현하거나 조롱하거나 웃기는 점에서 패러디는 풍자적 모방시 또는 의시擬詩, 풍작적 개작시라고 한다. 그러나 빅토로 어얼리치(Victor erlich)는 현대적 의미의 패러디는 이중의 목소리를 지닌다고 말한다. 경멸이나 조롱뿐만 아니라, 존경에 찬 경의적敬意的 의도意圖도 포함하며 이러한 패러디는 낡은 형식으로부터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내고, 이 새로운 형식은 낡은 형식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그 기능만을 변형시켜 낡은 요소들을 재분류再分類, 재조직再組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용한 시①는 특정지역에 대한 예찬이다. 어차피 판소리의 발원지를 예찬할 바엔 그 두어 소절을 그대로 인용했더라면 더욱 현실감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시②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흠모를 그리 작품이다. 고적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성경에 나오는…요단강…을 채용하고 있다. 성경뿐 아니라 찬송가에서도 글귀를 모방해서라도 천당에 대한 평온함을 절실하게 묘사되었으면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시③은 현시대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꼬집는 작품이다. 저출산低出産, 다문화 등을 야구경기에 빗대어 조롱하면서 억지로 체념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우리는 때때로 양극화兩極化된 세게 속에서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두 개의 사이클이 상반相反되거나 상충相衝되는 대칭개념인 태양과 달, 정신과 육체, 삶과 죽음, 행과 불행不幸, 선과 약의 갈림길에 서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상충과 상반, 불협화와 부조화와 같은 부조리 속에서도 우리 문학을 통해, 그 합일合一과 조화調和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