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옛추억을 회상하고 과거를 생각한다는 것은 나이가 먹어간다는 증거이요 또한 인생이 영원한 것같지만 짧다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대다수 학교시절과 군대생활,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성장합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군대 생활일것입니다. 혹자는 군대생활을 너무나 고생이 많았기 때문에 생각하기도 싫고 근무한곳으로 오줌도 누기 싫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자면 오히려 그시절이 애잔하고 그리워지고 있다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에 각자 성장과정이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서 전혀 일식이 없는 동료들과 몸을 부딪히면서 기나긴 3년의 통제속에 같이 인내하며 고통을 감수하며 또 극한속에서 때로는 울고 웃고 했던 날이 어떻게 우리가 잊을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인간의 사랑이요 그리움이요 정일것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이중수씨의 연락을 받고 카페에 글도 남기게 되었으며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용을 보니 옛추억이 연기처럼 세록 세록 떠오릅니다. 수고하시고 준비하시고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씀을 드립니다. 이 모임이 더욱 활성화되어서 많은 분들이 참가하여서
서로간에 우정을 다지고 힘을 얻는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저의 옛추억을 한번 회상하겠습니다. 너무나 오래되어 기억이 날줄 모르겠으나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대학교에서 3학년.4학년 2년간의 ROTC 교육을 마치고 77년 2월 졸업과동시에 보병소위로 임관하여 2.26일 동대구역에서 광주로 가는 군용열차에 몸을 싣었습니다. 광주 상무대에서 16주간 초급장교 기초교육을 받고 6월말 의정부 101보충대로 가게됬습니다. 보충대에서 두발이 길다는 이유로 다시 머리를 깍고 신고식을 마치고 보니 25사단으로 명령서를 받았습니다. 당시 25사단이 어디에 있는지 알수도 없었고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수송차량이 왔는데 25사단 글씨가 쓰여진 차량에 무조건 몸을 싣고 헌병차의 캄보이를 받으면서 동두천을 지나고 덕정역을 지나서 D1인가 D2인가 헌병대 검문소를 거쳐 바로 신산리 사단본부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식사후 바로 사단장 김영후님에게 신고하고 연대배정을 받는대 72연대로 배정받았습니다. 그런데 70, 71연대 수송차량의 운전수는 작업모를 쓰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데 제가 탑승할 72연대 운전수의 모자는 철모를 쓰고 있으며 옆자리에는 M16총을 고정시켜서 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군대생활에 개념이 없는지라 무조건 타고 가는대 도로마다 "초전박살" 구호가 보이고 하천에는 적전차가 도하하지 못하도록 세면트 구조물을 설치한것이 있고 산위를 처다보니 방카들만 보이고 지금생각하니
비룡계곡 같은데 그쪽주위에는 낙석지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때가 아마도 전군에 방커 작업이 하달되어 공사중이라 많은 사병들이 알철모에 반바지에 통일화신고 어께위에 공병삽과 질통을 지고 작업하러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계속 가다가 적성3DP(삼거리)---훗날 GOP에서 철수하여 FEBA에 있을시 우리 1대대가 있은곳, 오르막을 지나 틸교 검문소를 지나 삼팔선 팻말을 보고 조금더가니 72연대 본부가 우측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당시연대장은 키기작고 호리호리한 분임, 욕잘하고 지휘봉으로 배를 잘 찌르는분인데 성함은 김..기억이 안남, 연대장님 신고후 바로 저를 데리러온 대대장님 찝차에 타자말자 바로 달리기 시작하는데 백학이란 동네를 거쳐 바로 대대CP에서 대대장님께 신고를 하고 (당시 대대장님은 서울대 철학과 ROTC 출신 엄 ..중령임)그날 하루만에 영광OP에 내려놓고 가버리는대 밑으로 보니 한많은 철책선이 보이고 건너는 아군 237GP, 적123GP가 있는지라 아!
여기가 말로만 듣든 최전방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당시 중대장님은 3사 7기출신인대 입대전 복싱선수로 활약했으며 중대원이나 소대장중에 안맞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서웠슴 당시 별명은 "돌충이" 특히 중대 행정반 근무자중 서울출신 통신병 임춘목, 대구출신 편.. (현재 대구에서 고등학교 교사). 전령들이 고생많이 했으며 전투행정관 홍순칠준위도 계셨습니다.(별명: 말대가리, 마두) 당시 중대장님은 1달후 몸이 좋지않아 후송가시고 7월초쯤 하대용 중대장님이 부임해 오셨는데 3사8기로서 고향은 해남이시고 키도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군화도 당시로는 매우 큰것을 신고 걸음걸이도 매우 빠르게 다닌걸로 기억됩니다. 중대원들과 소대장을 얼마나 군기를 잡는지 전부 무진장 고생많이 했을줄 믿습니다. 저도 군대말로 많이 깨졌습니다.
당시 영광OP 좌측 사미천 강가로는 2소대장 소위 김종학 소대장(3사13기 --6개월후 전방GP장으로 전출) 영광OP우측으로 1소대장 소위 김영대, 옆으로 3소대장 소위 강정오(3사 14기 ---1년후 전방GP장으로 전출), 옆으로 화기소대장 중위 최병렬(특간출신 --6개월후 전방GP장으로 전출됨)당시 다른 소대는 기억이 없고 제가 맡고 있는 1소대 선임하사는 김기한 씨로 고향이 청송분인데 진급이 안되어 하사 6호봉인가 7호봉하는 고참으로 근무한 기억이나며 그기간 많은 분들이 제대를 했으며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은 당시 분대장으로 안태록, 문종성,홍기호, 파주법원리 출신 차승일 , 또 한사람은 경북 청도 사람인대 기억이 안남, 그리고 화기소대 포반장 백승대하사(아주 젊잖고 성실한분으로 기억됨)
당시 많은 분들이 실탄과 수류탄 , 크레모아등 을 가지고 근무했으나 아무런 사고 없이 모두들 재대한것이 너무 감사하고 지금은 철책에 전기가 들어 오지만 당시에는 전기도 들어어지 않고 가끔 제논차가 가끔씩 서치라이트로 목표물을 비추어 주기도 하고 근무할시 유리로된 램프에 불을 들고 철책선 전반야, 후반야 투입하여 근무한 기억이 납니다. 여름에는 모기에 쏘이고 비가 오면 방호벽이 무너지고 중앙에 설치된 지휘초소에 있다보면 고참들이 신병들 개인감정으로,또는 졸음 때문에 두들겨 패는 소리가 들리고 했답니다. 또한 수시로 1소대 앞에 있는 작은 RB문과 아니면 2소대 에 있는 큰RB통문으로 들어가 싸리나무 를 베어오든일. 삽으로 흔적발견지대에 자라나는 풀을 수시로 삽으로 긁어 내었던 일, 철책선 보강작업도 기억이나는군요
9월말 철수하여 마지리에 근무하면서 연대RCT훈련과, 대대ATT, 눈이 펑펑 내리는날 중대 ATT훈련가서 방어진지 교통호에서 발이 눈속에 푹푹 빠지면서 반합 항고 속에 미역국을 말아 추위에 법벌떨면서 먹든일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군요.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설마리 영국군 묘지까지 구보.냉수마찰, 눈이오면 도로에 나가 지겹게 눈치우고 저녁 일석점호 전 자유시간때 대대정문 PX가서 과자나 빵등을 구입하여 먹다가 예산이 초과되어 봉급탈때 마이너스가 되어 연병장에서 기합받든일... 모두 기억 날줄 믿습니다.
포천군 산정호수에가서 공지합동훈련도 하였고 비상이 하달되면 수시로 대대CP 뒷편에 있는 고지에 올라가서 방커에 추위에 털면서 언제 제대 하나 하면서 손가락을 꼽기도 했습니다. 혹한기 훈련때 1-2월경으로 기억 되는데 1주일간 땅속에 볏집깔고 위에는 판초와 나무를 걸치고...마지리 불빛바라보면서 언제 재대하나 상념에도 잠기고...
무심한 상념의 시간을 맟이도 했을것입니다. 당시 저는 1소대를 맡았기 때문에 수시로 비상이 걸리면 틸교 다리를 지나 우측에 있는 학곡리 COP 진지로 가던일과 그 후로는 원당리COP로 우리 1소대가 파견 가게되어 근무하게 되었는데 봄철 모심을때 입구초소 아랫집(당시 주인아주머니가 과부였슴...영()()엄마라고 불렀던기억이남)에가서 모를 심어주고 사제김치하고 고추장 억어오고 도 했으며 군대부식중 보리쌀이 남으면 갔다주고 반찬으로 바꿔어 먹은 기억도 납니다.
개인적으로 술이 먹고 싶어 보고도 없이 영농작업 지원갔다가 귀대할때 술취해서 저한테 걸려 두들겨 맞은분이 당시 제대말년 병장 황영도 ,소대보급계(기지계) 황종용? 황종동? 이마가 많이 튀어나오고 운동 태권도및 합기도를 잘한 박유술 등이 기억납니다. 지금은 모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식수가 부족하여 매일 고물 리아카를 원당리동네 까지 가서 드럼통에 물길러오고... 한번은 지하수 파서 위로 물을 끌어 올리려고 임진강 하단에서 교통호식으로 상단 까지 땅을 팠든 기억이 많이나고 특히 안태록 하사가 책임맡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또한 생각이 나는것은 당시 강태수 하사가 있었는데 그분은 장기하사로 재직중이었고 술을 너무좋아해서 하대용중대장님이 많이 걱정했는일이 생각납니다. 사진을 보니 옛모습과 똑같네요. 그리고 당시 전방에서는 철책선 방벽 콘크리트 공사 한다고 많이 애를 먹고들 했습니다.
원당리에 근무할시 1년후배 대구 영남대 ROTC출신 김종명 소위가 부임하여 당분간 화기소대를 맡았고 3소대는 강정오 소대장후임에 김천사람인데 3사15기출신이고 키는 자그만한데 이름은 생각이 안나고 성품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만납니다. 모두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네요 다시 마지리 대대로 철수하여 대대장님도 바뀌고 연대장님도 바뀐걸로 알고 있습니다. 신임대대장님은 당시 사단 교육대장 하시던 분이였고 키가 조그만하고 배가나오고 성격이 좋았던걸로 기억납니다. 성은 김씨인데 이름이 가물 가물하네요.
연대장님은 당시 육사 나오신분으로 특전사에 근무하시다가 오신분인데 5공 전두환시절에 민자당 초대 사무총장 지내신 정순덕씨인데 당시 우리대대가 비룔폭포 옆에 있는 포병대대건너 유격장에서 유격훈련받는 5월어느날 날씨가 더운날이였는데 유격장에서 마지리까지 유격 마지막코스 구보를 하는데 마지리 반환점을 돌아 올때 낙오병이 생기고 오와열이 틀리고 구보군기가 빠진모습을 지나가든 연대장이 보시고 유격장에 와서 대대장과 소대장을 모아 놓고 군대말로 쪼인따까고 그자리에서 당시중대장이던 3사출신 중대장(하대용중대장 후임---당시 하대용 중대장님은 연대 전투지원중대장으로 전출감)을 그자리에서 보직해임시키고 대대 보급관으로 임명하고 당시 대대 항공작전장교인 육사출신 김영선? 중위를 임시 1중대장으로 임명하였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후에 저는 전역하여 사회에 나와서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고 재대한지가 얹그제 같은데 많은 세월이 흘렸네요
군대 생활하는동안 제한테 본의 아니게 구타를 당했거나 욕이나 상처를 받은분이 있으면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이해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 하대용 중대장님과 전화 했습니다. 전화목소리를 통해서 음성을 들어니 30여년전 옛날 GOP에서 TA-1전화기(일명 "딸딸이")로 철책선 에서 전반야 투입보고 하는 기분이였습니다. 중대장님은 지금 나주에 살고 계시고 향후 고향인 해남으로 갈예정입니다. 자녀는 딸만 셋이고 막내만 남겨두고 두딸은 결혼하였고 내일 환갑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입니다. 첫딸은 제가 소위시절 일때 중대장님 사모님께서 당시 배가불러 곧 어린애를 순산하시려고 제가 모시고 동두천에있는 산부인과에 갔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나이가 30세이랍니다. 특히 중대장님께서는 컴퓨터와 휴대폰 문자를 사용할줄 모르신다고 하니까 편지나 전화로 수시로 안부를 전해달라는 부탁입니다. 특히 차승일 분대장 꼭 연락 한번 하고 싶어 합니다.
주소: 전남 나주시 대호동 대방 노블랜드 아파트 107-1906호
핸드폰: 010-4631-6123 집전화:(061)334-5191 저녁5시이후 통화가능
부질없이 몇자 기록 했습니다만 여러분께서도 군생활중 기억나는 일이 있으면 많이 지면에 올려 주시고
그리고 만남을 위해 주선하시고 노력하시는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하시는 사업등 모든 것이 형통하시길 기원합니다.
이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고 연락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김영대드림---
첫댓글 바로잡습니다,당시 보직해임된 분은 정원조대위 입니다, 후일 예비군중대장으로 몇년간 만난적있지요,,또한분은 김영득중위고요,,
이중수씨! 감사합니다. 정확합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시는군요. 그리고 전투행정관은 홍순칠이 아니고 홍성화 준위입니다. 방금 화기소대 출신 권기석씨와 반갑게 통화했습니다. 여러므로 감사드립니다.
나날이 우리모임이 발전합니다,,아주 좋군요,,ㅎㅎ
한번에 이렇게올리시면~~ 시리즈별로 천천히 올리시면 더좋으련만, 하옇튼 기억력 대단하십니다 연대장:김순호.대대장:엄수현.중대장:?.2소대장:김홍학.전투행정관:홍성화.1소대선임하사:김기준 이정도~~
김영대소대장님 키가크시고 태권도 유단자로 기억되며 성품좋으시죠. 오늘통화 했는데 조용한 데라 큰소리로 못하고 소곤대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