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열풍 2009년 중국과 미국의 전략경제 대화 중에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전국시대의 대표적 고전의 하나인 《맹자(孟子)》〈진심(盡心) 하〉의 한 대목을 인용하여 잠시 주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인용한 대목은 “산길의 오솔길도 사이사이 사람들이 자주 다니다보면 큰길이 되지만 뜸하게 이용하지 않으면 풀만 우거진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 則茅塞之矣]”라는 것이었다. 두 나라 사이의 지속적인 협력과 대화의 필요성을 고전의 한 대목으로 강조한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중국인이 즐겨 쓰는 관용구인 ‘동주공제(同舟共濟 : 한 배를 타고 같이 강을 건넌다)’와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 : 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를 인용하여 양국의 협력을 강조했다. 뒤의 것은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한편 중국통으로 이름난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연설 도중 중국어 발음으로 ‘풍우동주(風雨同舟 : 비바람 속에 배를 함께 타고 있다)’라는 고사성어를 읽으며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여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자고 역설했다. 어쨌거나 워싱턴 정가는 물론 구미권에서 중국어와 고사성어 배우기가 한창이라는 뉴스가 낯설지 않을 만큼 중국어와 중국인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고사성어의 위상이 날로 높아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이 커져가는 것에 비례하여 고사성어의 비중도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우리에게 고사성어는 그리 낯설지 않다. 우리는 주로 정치판에서 심심찮게 ‘토사구팽(兎死狗烹)’ 등과 같은 비교적 잘 알려진 중국의 고사성어를 인용하곤 하는데, 최근에는 경영인들도 일쑤 함축적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유용한 고사성어를 즐겨 끌어다 쓰고 있다. 2,3년 전인가, 한 대기업의 총수는 주력사업의 중국 진출을 독려하기 위해 ‘파부침주(破釜沈舟)’라는 《사기》 ‘항우본기’에 나오는 상당히 극적인 고사성어를 언급하여 눈길을 끈 적이 있다.
문화현상으로서의 고사성어 고사성어는 한자 문화권의 상당히 특별한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한자는 중국의 문자로 한 글자에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다의어(多意語)이다. 게다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 글자의 뜻이 다양하게 축적되는 것과 동시에 의미도 다양하게 변하여 하나의 문화 코드(culture-code)로 정착하였다. 한자를 배우기 어려운 것도 이처럼 글자 하나하나에 함축된 중국인의 심리와 문화를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회의나 비즈니스 협상에서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 코드인 고사성어를 즐겨 인용하는 것도 거기에 담긴 심오한 의미에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태어 전달함으로써 협상에서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고도의 협상술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중국, 중국인, 중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국의 고사성어를 본격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 필요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사성어가 인생의 철리(哲理)를 깨우치게 하는 지혜의 차원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바닷물을 길어 소금을 걸러내듯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선하여 짧게는 두 자, 길어야 열 자 내로 간결하고 의미심장하게 인간과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격조 높은 표현의 결과물이 고사성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사성어를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우선 말의 격을 높이고, 나아가서는 삶의 격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밑천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또 고사성어는 음미할 수록 가변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대처능력을 키울 수 있는 인문학적 역량을 제공한다.
역동적인 《사기(史記)》의 고사성어 중국의 고사성어는 거의 대부분이 송나라 이전에 형성되었고, 중국 역사상 파란만장한 격동기였던 춘추전국 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 550년을 거치면서 가장 많이 형성된 걸로 본다. 현재 중국 내에서 출간된 각종 고사성어 관련 사전에서 《사기》의 고사성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거친 통계이긴 하지만 《사기》에는 네 글자로 구성된 이른바 ‘사자성어’만 약600 항목에 이르며, 여기에 속담, 격언, 각종 명언들까지 합치면 무려 1,200여 항목에 이른다고 한다. 정말이지 고사성어의 보물창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고사성어의 질이란 면에서 보자면 《사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단순히 글자의 조합을 뛰어넘어 당시의 민심과 세태를 절묘하게 반영하고, 나아가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이 같은 고사성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렇게 탄생한 《사기》의 고사성어의 특징을 좀 더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사마천은 당시 자신이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문헌자료를 섭렵한 다음 이것들에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가장 적합한 고사(故事)와 성어(成語)를 추출 결합하여 자기만의 독특하고 참신한 고사성어로 재탄생시켰다. 문헌자료 뿐만 아니라 민간에 떠도는 잠언, 속담, 격언, 가요 등을 다양하게 채취하여 내용에 맞게 재가공했다. 사마천은 필요하다면 심지어 세속의 비속어까지 인용하는 과감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사기》의 고사성어가 생동감 넘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기》는 단순히 문자로 기록된 역사서가 아니다. 사마천의 치열한 현장정신이 전편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남다른 고전이다. 사마천은 10대부터 50대까지 약 40년 동안 역사 현장을 직접 탐방하여 생생한 역사 고사를 취재하고 이를 기록과 대조 취사선택하여 역사서에 반영하는 남다른 과정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를 좀 더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마천은 글자 하나를 다듬는데 갖은 정성을 다 들였다. 《사기》의 인물들이 그토록 생동감 넘치고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철저한 취재정신 없이 어떻게 한고조 유방(劉邦)이 젊은 날 즐겨 갔던 술집 두 군데가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겠는가? 고사성어는 ‘고사(故事)’와 ‘성어(成語)’의 합성어이다. ‘지난 이야기’인 ‘고사’가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문장으로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다다익선(多多益善)’은 명장 한신(韓信)과 유방이 나눈 대화 중에 나온 유명한 고사성어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고사성어를 즐겨 거론하고 인용하면서도 정작 이에 얽힌 고사는 잘 모르고 있다. 다다익선이란 성어의 뜻풀이에만 급급한 탓이다. 성어를 뒷받침하고 있는 고사, 즉 스토리를 바로 알고 나면 지금까지 별 생각 없이 풀이해 왔던 뜻이 전혀 달리 보이고 이해된다. ‘다다익선’이란 고사성어는 단순히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글자 풀이 이면에 명장 한신의 오만한 성격을 함축하고 있고, 이것이 결국은 한신이 ‘토사구팽’ 당하게 되는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사기》의 고사성어는 대부분 성어보다는 이런 고사를 바로 알아야만 제대로 읽을 수 있고, 나아가 중국인의 심리와 문화 코드를 읽어낼 수 있다. 고사성어, 특히 《사기》의 고사성어는 ‘성어’보다 ‘고사’에 중점을 두고 이해해야 한다. 고사는 오늘날 기업경영의 홍보와 광고에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마케팅에 무궁한 영감과 통찰력을 제공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부가가치가 점점 커질 것이다. 말하자면 인문학 광고를 위한 둘도 없는 텍스트가 될 전망이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리더십 함양에도 고사성어는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변화가 다양하고 역동적인 상황을 인식하고, 그 상황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여 이를 요약 정리하는 힘을 기르는데 고사성어가 상당히 유력한 통찰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국사 5천 년 중 3천 년을 담보하고 있는 절대 역사서 《사기》의 고사성어와 함께 경영과 인생의 지혜,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는 즐거운 지적(知的) 독서에 한번 몰입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대부분 무심코 보아 넘겼던 고사성어를 통해 《사기》의 가치와 매력을 새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첫댓글 왜곡+왜곡=웃김....知的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