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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 스크랩 출생부와 살생부-북두칠성, 남두육성, 七賢二隱, 삼신할미
오종현 추천 0 조회 104 15.01.19 21:0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깔끔한 문장으로 소개하는 글이다. 북드라망을 소개하기 위해 링크로 표시한다. http://bookdramang.com/253

 

(참고로 문화콘텐츠닷컴에서는 칠성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민족은 칠성 즉 부두칠성과 오랜 세월 인연을 맺어 왔다 고조선 때에는 무덤인 고인돌 뚜껑 위에 북두칠성을 그려 넣었고 그 뒤를 이은 고구려 역시 무덤 속에 북두칠성을 크게 그려 넣었다. 이어서 고려도 그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북두칠성을 새겨 넣은 칠성판이 등장하게 되었다.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는 칠성판 위에 누워야 편안히 염라대왕을 통과하고 칠성님 품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칠성은 우리에게 수명을 관장하고 복을 주기도 하지만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도 관장하고 있다. 단군 이후 우리 역사상 북두칠성을 가장 숭상했던 나라는 고구려였다. 고구려는 북두칠성을 나라의 징표로 삼았다. 임금 스스로 자신을 북두칠성의 화신으로 생각하여 국강(國?)이라고 하였다. 칠성신 중 제6성은 개양성(開陽星) 또는 연년무곡성(延年武曲)이라고 하는데, 자미궁의 방어를 책임지는 별로서 북두칠성 중, 힘이 가장 강력하다고 한다. 또 악살과 흉성을 물리치며 오른손에 천부인을 들고 있다 한다. 천둥 번개를 치도록 명하며 하늘의 모든 별을 부릴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로서, 이 별은 인간의 수명을 무쇠에 돌 끈 단 듯 길게 늘려 주는 별이다. 특히 노인들이 이 별에다 빌면 수명이 연장된다고 하는데 칠성님께 명을 비는 이유이기도 하다. 뱀띠와 양띠에 태어 난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북두칠성, 영원의 시계바늘


손영달(남산강학원 Q&?)


 


요것은 칠성판. 북두칠성을 표시해서 망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아주 어렸을 때 증조할머니를 이장할 때 언뜻 본 것도 같다.^^



삼신할미와 고인돌


신화학에서는 이런 행위를 '장소의 정령'에게 기원하는 것을 본다. 그들은 우주전체가 영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는 커다란 생명체라고 봤던 것이다.

북두칠성은 생사를 주관하는 별자리이다. 우리의 삶은 북두칠성에서 시작되어 북두칠성으로 끝난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우리네 어머님들의 정화수는 칠성신(七星神)에게 기도를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전래동화의 한 대목에서 이런 대목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신께 비나이다! 이 늙은 부부를 불쌍히 여기시어 부디 옥동자 하나만 점지해 주십시오.” 옛 사람들은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북두칠성과 남두육성(南斗六星)의 연계 플레이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두육성은 여름철 남쪽 하늘 은하수모인 곳에 보이는 별자리로 서양식으로는 “궁수자리”의 일부 별들이다. 여섯 개의 별이 마치 미니 북두칠성처럼 국자 모양으로 연이어 있어서 milk dipper라 한다. 남쪽의 국자 별이라는 의미로 그 이름을 남두육성이라 하는데, 이게 그 유명한 ‘삼신할머니’의 별이다. 자식을 바라는 인간의 정성이 북두칠성에 응하면 새로 태어날 영혼은 북두칠성의 협력업체 격인 남두육성으로 간다. 거기서 삼신할머니께 엉덩이를 찰싹 얻어맞고 어머니의 태(胎)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기 엉덩이의 몽고반점은 이때 생긴 멍자욱인데 이게 전생의 기억을 잊게 하는 역할을 한단다. 그래서 맞을 때 시퍼런 자국이 남도록 아주 제대로 맞아 주어야 한다.

 

남두육성과의 협력 하에 인간의 탄생을 주관하기도 하지만, 북두칠성의 주 업무를 굳이 따지자면 ‘죽음’이다. 북두칠성에 거하는 칠성신은 인간의 수명을 주관한다. 이런 전설이 있다. 중국 위나라에 관로라고 하는 점성술의 대가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밭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는 안초라는 청년을 만나는데, 얼굴을 보니 곧 죽을 운명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그는 안초를 불러 말했다. "모월 모일 밭가 뽕나무 아래에 가면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을 테니, 그 옆에 앉아 술을 따르고 시중을 들어라." 안초는 뽕나무 아래 바둑을 두는 두 노인을 찾아 고이 술시중을 들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노인은 수명을 기록한 명부를 뒤져 ‘十九’를 ‘九十’으로 뒤집어 주었고, 소년은 90살까지 오래 오래 살았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두 노인이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의 신령이다. 남쪽에 앉은 이가 남두육성, 북쪽에 앉은 이가 북두칠성의 신인데, 남두의 신은 삶을 관장하여 탄생일을 기록하고, 북두의 신은 죽음을 관장하여 사망일을 기록한다. 둘이 나란히 생사의 끈을 쥐고 있지만 북두의 신이 좀 더 끗발이 셌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문제가 보다 민감한 것이었던 것. 동양인들의 정서 상 태어난 이상 수명을 충분히 누리며 사는 게 지복이라는 인식이 작용하기도 했으리라. 이것이 북두칠성이 그 오랜 시간 구복(求福)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다.




북두칠성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시간을 인간의 죽음과 함께 했다.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을 살펴보면 북두칠성 별자리를 새겨 놓은 문양이 남아 있다. 고분의 무덤 천정에도 북두칠성의 그림이 있다. 이 풍습이 오늘날의 칠성판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인간은 북두칠성을 통해 세상에 나와 살다가 죽으면 다시 북두칠성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것. 삶과 죽음은 끝없는 순환의 고리로 잇대어 있다는 것. 억겁의 세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공유해 온 것이다.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우로보로스(Uroboros)가 상징하듯, 우주는 삶과 죽음의 끝없는 순환 고리를 이루며 돌고 돈다. 그것이 우주의 시간이다. 여기서 북두칠성은 끝없이 이어지는 생사의 고리를 주관하는 역할을 했다.


북두칠성, 천자의 수레가 되다


언제부터 우리는 북두칠성과 함께 했을까? 그 시원을 찾아 거슬러 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중국 최초의 문자 기록에 이미 북두칠성에 대한 언급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한 시절부터 우린 북두칠성과 함께 살아 온 것이다. 물론 시절이 바뀌고, 그와 함께 신봉하던 사상이 바뀌면서 북두칠성의 의미는 조금씩 변해왔다. 사람들은 그 시대의 감각으로 북두칠성을 보았고, 그때마다 북두칠성은 각기 다른 색깔로 채색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하늘의 핵심 별자리로 인간의 세계를 주관한다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었다.


진한시대에 북두칠성은 천자의 통치행위를 상징하는 별이었다. 중원 통일의 꿈을 이룬 뒤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던 시대배경에 따른 것이었다. 북두칠성은 주극성(週極星)이다. 주극성이란 사철 내내 온 밤을 밝히며 지지 않는 별을 일컫는다. 이름 그대로 북극성(極) 주변을 도는(週) 별들이다. 북극성과 북쪽 지평선을 반지름 삼아 천구에 가상의 원을 그리면 이 안에 들어오는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일주하는 주극성이 된다. 이 범위 안의 별들은 절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므로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동양에서는 이를 자미원(紫微垣)이라 칭했다. 북두칠성은 그 안에 속하는 별자리다. 끊임없이 사방위를 도는 이 별을 사람들은 우주 질서의 주재자라 여겼고, 정치의 모델로 삼았다. 중국에서는 이 별을 천자를 싣고 달리는 수레 모양이라 생각했다. 북두칠성이 사방위를 주유하며 사시와 오행의 질서를 세우듯이, 천자는 중원 영토의 사방을 순행하며 정치 질서를 건립했다.


이 알 수 없는 글자들과 괘들의 향연. 맞다. 요게 음양오행의 정수를 한 눈에 보여주는 그림이다. 하나도 모르겠다고? 그게 정상이다.^^

북두칠성이 우주의 기틀이 되는 별자리이기 위해선 우주의 규범 원리를 아우르는 상징적 의미를 포함해야 했다. 사람들은 북두칠성을 우주론의 기본 뼈대가 되는 “음양오행”을 명시하는 별자리로 인식했다. 음양(陰陽)이란 무엇인가? 천체를 가지고 설명하자면 음양은 곧 해와 달이다. 해와 달로 인해 낮과 밤의 교대가 생기고 여기서 하루라는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또는 음양은 하늘과 땅(天地)이라는 상하의 공간적 격차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벼운 양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 하늘을 이루고 무거운 음의 기운은 아래에 엉겨서 땅이 된다. 하지만 둘 중 어느 경우건 음양은 하나의 태극(太極)이 역동하면서 생긴 두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둘로 나뉘는 성질의 것이 아닌 고로, ‘1=2’라는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오행(五行) 역시 마찬가지. 오행은 하나의 태극(太極)을 조금 더 클로즈 업 해, 다섯 스텝으로 나눈 것이다. 오행은 사계절의 교대와 생장수장(生長收藏)의 네 국면에서 출발했다. 이것의 사상(四象)의 시간적 의미다. 오행은 이 시간적 의미에 동서남북(東西南北)의 사방위(四方位)라는 공간적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이때 오(五)라는 수는 그 순환운동의 회전축을 더한 것이다. 사상의 네 국면은 정지 · 분할된 각각의 컷들이 아니라 상호 순환하는 질서의 산물이다. 시간으로 보면 사계절과 각 계절 사이의 마디, 공간으로 보면 사방위와 그 중앙, 천체로는 수금화목토의 오성(五星). 이것이 곧 오행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행(行)이란 움직인다는 의미다. 그것도 삐걱삐걱 절룩이며 걸어가는 모양이다. 한 발을 들고 깽깽이로(?) 비틀거리며 걷는 모양(?)이 곧 행(行)인 것이다. 어긋남과 충돌, 그 많은 사건의 와중에도 우주는 쉼 없이 돌고 돈다. 그렇기에 이 역시 하나의 태극(太極)과 다르지 않다. 수식으로 나타내면 ‘1=2=5’라는 희한한 모양새가 연출된다.


자, 그렇다면 이 수만 가지 우주질서를 모두 아울러 질서화 한 것이 북두칠성이 의미하는 수(數) 7이다. 럭키세븐의 그 7도 여기서 나온 건가?!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동양에서 7이란 수는 곧 음양(2)과 오행(5)의 결합체이며, 우주 질서의 상징이었다. 이는 음양이 나타내는 상하(上下), 오행이 나타내는 사방(四方)과 중앙(中央), 즉 3차원의 시공간을 표상한 것이다. 혹은 일월(日月) 오성(五星)이 조화를 이루는 천체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수식으로 하면 ‘1=2=5=7’이다.


사마천은 『천관서』에서 “북두칠성은 이른바 선기옥형(璇璣玉衡)으로 칠정(七政)을 다스림을 일컫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기옥형이란 아름다운 옥구슬로 된 저울대라는 뜻이다. 이 저울의 용도는 하늘의 기틀을 세우는 것이다. 해와 달과 오성(五星)의 질서, 하늘의 음양과 오행을 주관한다. 나아가 음양오행에 의해 행해지는 만사의 일들을 다스리기도 한다. 그래서 “칠정(七政)”을 다스리는 별이란 직함을 얻었다. 이렇듯 북두칠성은 우주 질서의 근간이었다. 자연 현상과 정치질서를 아우르는 세계 질서의 총체가 그 안에 있다. 진한시대의 사람들은 이 수레의 바가지에 탑승한 천자를 상상했다. 그는 곧 세상의 어지러운 질서를 바로잡는 존재였다.

북두칠성은 일곱이 아니다


한편 한무제가 유학을 국가의 중심 사상으로 천명하면서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 도가들은 북두칠성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키워갔다. 한대의 우주론은 중앙 집중형 관료시스템이 어떻게 하면 순조롭게 운행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모든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인간의 현세적인 욕망이나 종교적 요구들이 제기될 통로들을 철저히 봉쇄했다. 이에 도가 사상은 한대의 지고한 정치 문화와는 다른 출구를 모색했다. 유가들의 천문학이 일종의 국가 경영 지침서였다면, 도가들은 개인의 몸과 운명을 주관하는 점성적인 의미로 나름의 우주론을 구축해 나간 셈이다. 후한이 망하고 육조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들의 활동은 탄력을 받았다. 불교가 유입되어 도교와 서로 습합되면서 국가가 아니라 내 안에서 우주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 졌다. 그 합작품이 바로 칠성신앙이다. 이와 더불어 중국 천문학은 개인의 수행과 구복이라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었다.


북두칠성의 일곱 별 각각은 천지 우주의 구성 원리이다. 모든 존재들은 다 그 별들과의 직접적인 영향 하에 태어난다. 이때 일곱별의 기운을 고루 받은 존재는 그렇지 않은 존재보다 생의 지복을 훨씬 잘 누린다. 나는 그 중 어느 별의 기운을 타고 났는가? 지금 이 시대는 어떤 별의 영향 하에 굴러가는가? 이런 식으로 북두칠성의 해석은 점성학적인 방향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보이시는지. 북두칠성이다. 그런데 저기 여섯 번째에 빛나는 저 별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이걸 보는 능력을 시험의 과목으로 집어넣었다니. 참 사람들 하고는^^


북두칠성의 자루 부분을 표(杓)라 하고 머리 부분을 괴(魁)라 한다. 그중 괴의 첫 머리에 있는 별이 1성이 되고 자루 끝에 있는 별이 7성이 된다. 1성부터 순서대로 천추성-천선성-천기성-천권성-옥형성-개양성-요광성으로 불린다. 각각의 별들은 그 이름에 맞는 점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12지지에 배속되어 그 년에 태어난 사람들의 운을 주관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그중 제 6성인 개양성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한다. 이 별은 ‘북두칠성은 일곱이 아니다’라는 당혹스런 주장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북두칠성의 수 7이 얼마나 중요한 상징인지 이제껏 그토록 힘주어 주장했는데, 일곱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되냔 말이다.

(당사주에서 말하는 12운성과는 다른 것이니 혼동하지 말 것. 당사주: 당나라 때 이허중(李虛中)이 하늘에 있다고 하는 천귀(天貴)·천액(天厄)·천권(天權)·천파(天破)·천간(天奸)·천문(天文)·천복(天福)·천역(天驛)·천고(天孤)·천인(天刃)·천예(天藝)·천수(天壽)의 12星을 인간의 생년월일시와 관련시켜 인간의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 http://blog.daum.net/kohc1101/16923523 )


고대 로마에서 군인을 뽑을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장교 지망생의 시험 과목중 하나가 별 보기였다. 그들은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향해서 물었다. ‘저게 몇 개로 보이니?’ 놀랍게도 일곱이라 말하면 탈락이고, 여덟이라고 말해야 합격이었다. 대체 이 무슨 일인가? 그들의 말이 맞다. 육안으로 관찰되는 북두칠성의 별은 일곱이 아니라 여덟이란다. 제 6성인 개양성, 서양에서 미자르(Mizar)라 불렀던 이 별은 단일한 별이 아니라 이중성이다. 눈 좋은 사람에겐 그와 나란히 늘어선 보성(輔星), 서양식 이름으로는 알코르(Alcor)가 보인다.


북두칠성을 북두팔성이라 개명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그런데 도가들은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북두칠성이 아예 아홉 개라고 주장하기 이르렀다. 보성 옆에 필성(弼星)이라는 또 하나의 별이 있다! 이 황당한 주장을 점검하기 위해 북두칠성으로 정밀한 천체 망원경을 향해보면 진짜로 개양성과 나란히 빛나고 있는 두 개의 별이 관측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정밀 분광기를 동원해서야 관측되는 사실, 아무리 도를 닦은 도가 수행자라 해도 맨눈으로 이 별을 분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무슨 근거로 북두칠성이 아홉이라는 북두구진 체계를 만들어 냈을까?


비결은 염력도 투시력도 아닌 고도의 상수학이다. 바로 도가들에게는 7보다 9라는 수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7은 음양오행의 담지자이자 완전한 공간을 표상하는 수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아직 그 자체로 완전한 수는 아니다. 동양에서 완전수의 지위를 가지는 것은 9라는 수이다. 9라는 수는 이보다 더 큰 수가 없다는 완전수의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 불교사상의 영향이 가세하면서 생사의 경계를 넘는 억겁의 시간을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불교의 윤회 사상의 영향으로 확장된 시간적 스케일은 3차원의 벡터 7에 선후(先後)라는 시간적 의미를 포함시키려 했다. 그리하여 숫자 9가 만들어지는데 이는 시공간의 벡터다. 결국 우주의 중심축으로서 일곱이 아닌 아홉 개의 별이 요구되었던 것이고, 이에 두 별을 추가해 북두구진(北斗九辰)의 질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도불습합 참고자료: 장성에 있는 백양사 칠성전 내부(七星殿 內部)에는 고종(高宗) 17년(年 : 1880)에 조성(造成)된 칠성(七星)존상(尊像), 곧 칠원성군상(七元星君像)이 봉안(奉安)돼 있고 치성광여래상(熾盛光如來像)과 일광보살상(日光菩薩像)?월광보살상(月光菩薩像)도 있는데, 칠성신앙(七星神仰)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神格化)하여 민간 신앙(民間 信仰)으로 변화(變化) 발전(發展)하여 오던 것을 불교(佛敎)로 흡수(吸收)하여 중앙(中央)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모시고 좌우(左右)에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상징(象徵)하는 7여래(七如來 : 제1 천추성(第一 天樞星) 운의통증여래(雲義通證如來)?제2 천선성(第二 天璇星) 광음자재여래(光音自在如來)?제3 천기성(第三 天璣星) 금색성취여래(金色成就如來)?제4 천권성(第四 天權星) 최승길상여래(最勝吉祥如來)?제5 옥형성(第五 玉衡星) 광달지변여래(光達地邊如來)?제6 개양성(第六 開陽星) 법해유희여래(法海遊戱如來)?제7 요광성(第七 搖光星)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를 말함)를 모셨으며, 중앙 하단(中央 下段)에는 해와 달을 상징(象徵)하는 일광보살(日光菩薩)?월광보살(月光菩薩)을 모시고 좌우(左右)로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셨음.

도가식 명칭으로는 제1 천추성(第一 天樞星) 탐랑성군(貪狼星君)? 제2 천선성(第二 天璇星) 거문성군(巨文星君)? 제3 천기성(第三 天璣星) 녹존성군(祿存星君)? 제4 천권성(第四 天權星) 문곡성군(文曲星君)? 제5 옥형성(第五 玉衡星) 염정성군(廉貞星君)? 제6 개양성(第六 開陽星) 무곡성군(武曲星君)? 제7 요광성(第七 搖光星) 파군성군(破軍星君)

 

도가들은 북두칠성을 일곱 현자와 두 명의 은자가 주관하는 칠현이은(七賢二隱)의 별이라 상상했다. 보이지 않는 두 별의 가세가 있어야 만이 완벽한 우주질서를 표상하는 별이 된다는 것이다. 보이는 현상의 세계가 다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작용하는 그 무언가의 존재를 인식할 때 비로소 우주 질서를 올바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내재된 생명 원리를 이해하고 거기 부합하는 삶을 살려 했던 도가다운 생각이었다.


자네 오늘부터라도 생명원리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보는 게 어떤가?^^


어쨌거나 여기서도 북두칠성은 우주 질서의 주재자였다. 사시사철 지지 않고 밤하늘을 밝히는 주극성으로서의 지위는 이 별에게 “영원”의 타이틀을 부여했다. 억겁의 세월을 거듭 하며 북두칠성은 저 하늘 위를 밝혀왔을 것이다. 사람들은 거기서 무상한 생사의 모래바람에 쓸려가지 않을 진리 혹은 질서를 발견하려 했다. 북두칠성의 답은 ‘거듭되는 순환’이었다. 계절마다 자리를 달리하며 우리에게 사시의 질서를 알려주던 별자리, 이 사계절의 흐름과 더불어 동서남북의 방위를 알려주던 별자리, 매 시각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밤하늘의 시계바늘 역할을 하던 별자리, 북두칠성은 시계바늘이자, 달력이자, 나침반이었다. 거듭되는 순환의 주기 속에 우주의 시공간을 담아내고 있었다. 영원의 별로 자리매김한 우주의 시계바늘, 북두칠성. 나에게 이 별은 어떤 의미일까? 북두칠성은 지금도 하늘 어딘가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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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1.20 08:31

    첫댓글 출생부는 북두칠성 북극성 조물주 창조주 진장남 아들하느님 치성광여래 담당이고

    사망부는 남두육성 남극노인성 건부 아버지하느님 아미타여래 담당이며

    거문고좌 삼신할매 마고할매 영등할매 서왕모 대지의여신 대지감 지장보살은 직녀성주로서 두 딸과 함께 세상을 이끌어주시고 만들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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