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진보(眞寶)는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지명으로 신라 때에는 칠파화현(漆巴火縣)이라 하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진보현으로 고치고, 문소군(聞韶郡: 義城)의 영현을 삼았다. 고려 태조 때 진안현(眞安縣)과 합쳐 보성부(甫城府)로 개편하였다. 1018년(현종 9) 예주(禮州: 寧海)에 편입시켰는데 왜구로 인해 그 지방을 비워 두었다가 조선 태조 때 현(縣)을 설치하였다. 세종 때 청부(靑鳧)를 합하여 청보군(靑寶郡)이라 하다가 진보로 고쳐 현으로 삼았다. 1474년(성종 5) 청송(靑松)에 편입하였다가, 1478년(성종 6) 다시 복구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보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에 이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동면과 북면은 영양군(英陽郡)에 병합되었고, 나머지는 청송군(靑松郡)에 편입되었는데 그 중심지역은 진보면으로 남아 있다.
성씨의 역사
진보이씨(眞寶李氏)의 시조 이석(李碩)은 고려 충렬왕 때 진보현리(眞寶縣吏)로 있다가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시조공묘갈명(始祖公墓碣銘)》을 보면 그의 맏아들 이자수(李子脩)가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1362년(공민왕 11)에 봉상대부(奉常大夫) 지춘주사(知春州事)로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여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되고 송안군(松安君)에 봉해지면서 시조 이석은 봉익대부(奉翊大夫)로 밀직사(密直司)에 증직(贈職)되었다고 한다. 《임자보(壬子譜)》 유사(遺事)에 실려 있는 〈시조 증봉익대부 밀직사부군유적고증(始祖贈奉翊大夫密直司府君遺蹟考證)〉을 보면 이석(李碩)의 아버지 호장(戶長) 이영찬(李英贊)과 할아버지 호장 이송주(李松柱)까지의 세계를 송안군의 정안(政案)에 의해 알 수 있으나 그 이상의 세계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 이전까지는 진보지역의 향리직을 누대 역임하다가 이석 대에 이르러 중앙관직에 명문을 휘날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이석을 시조로 받들고, 선조의 본향지인 진성(眞城: 眞寶)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진보이씨의 분파는 《임자보(壬子譜)》에서 5세조를 파조로 하여 6개파로 나누어진다.
분적종 및 분파
망천파(輞川派): 이흥양(李興陽) 병방파(並方派): 이종담(李從聃) 생현파(栍峴派): 이여담(李如聃) 온혜파(溫惠派): 이계양(李繼陽) 주촌파(周村派): 이우양(李遇陽) 후평파(後平派): 이선호(李善浩)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양곡동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송호동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일원 경상북도 안동군 와용면 주하동 경상북도 문경군 문경읍 갈평리 경상북도 문경군 마성면 외어리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백송동 경상북도 예천군 하리면 은산동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진보이씨는 20,890가구 총 66,407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