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기 목사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곳 중의 하나가 약 17,000여 개의 섬으로 구성 된 인도네시아령에 속한 발리(Bali. 동서의 길이 140Km, 남북의 길이 80Km, 인구 3백만 명, 남 적도 8도에 위치)라는 섬입니다.
이 곳에는 매년 전 세계의 약 일 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지리학 상으로 자바 섬과 롬복(Lombok) 섬의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Gunung Agung 산(3,142m)이 있으며 고온 다습의 전형적인 열대성 기후에다 연중 평균 28도의 온도를 유지함으로 휴가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세계에서 자기들이 제일 만족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거주지를 지상 천국이라 여기며 신혼여행을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일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발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소문을 들은 미국의 Norman Vincent Peale 목사님이 직접 발리 섬을 찾아가서 일 주일을 지내면서 조사를 하였더니 정말 발리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면서 만족히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큰 산업 시설이나 재미있는 오락 시설이 그렇게도 뛰어난 섬이 아니었음에도 그들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자세를 가지고 만족함을 누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①우리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We have nothing)
②우리는 검소하게 삽니다.(Our life is simple)
③우리는 서로 좋아합니다.(We like each other)
④우리는 먹을 것이 충분합니다.(We have enough to eat)
⑤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섬에서 만족하게 살고 있습니다.(We live and have a satisfaction on a beautiful island)
그러나 그런 곳이라 할지라도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만족함을 주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말씀을 보면 진정 참 된 만족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고후 03:05).
주님께서도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05)고 하셨는데 주님 밖에서는 우리가 영원한 즐거움과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주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족함을 주신다면 그때는 얼마든지 만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족함을 우리 함께 받아 누리는 시간이 됩시다.
1. 이 세상의 것으로는 만족함을 얻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할뿐더러 많은 것을 가졌다고 자족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욕심은 채울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의 욕심은 입을 벌리고 계속 삼키기를 바라는 채울 수 없는 그릇과도 같습니다.
전 01:0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
전 0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또한 욕심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한결같이 채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전도서 02장을 보면 솔로몬 왕이 인생의 헛됨을 체험하고 난 이후의 삶을 기록해 놓은 부분인데 제가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그는 정치적 권력의 바탕에다 하나님께서 남달리 주신 지혜를 활용하여 자기 육신의 만족을 위해서 하고 싶은 일들은 빠짐없이 다 해 보았던 사람입니다(전 02:03~10).
사업도 크게 해보았고, 큰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집도 지었고, 재물을 무한히 모아 보았고, 곁에는 노래를 잘하고 시를 잘 옮는 남녀들을 두어 살아 있는 예술과 문학을 감상하기도 하였고, 개성 있는 처와 첩들을 수 없이 곁에 두고 생활도 해 보았고, 심지어 자기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자기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무슨 일이든지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음껏 향락을 누리고 나서 고백하기를,
전 02: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자기 하고싶은 것 다 해보아도 결국 날아가는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 아닙니까?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려 보아도 그것으로 인한 마음의 만족함이 없었다는 것이에요.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면 부강한 나라 미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몇 분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워싱턴 [Washington, George, 1732. 02. 22~1799. 12. 14. 1, 2대 대통령]
대통령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무덤으로 들어가겠다.
제퍼슨[Jefferson, Thomas, 1743. 04.13~1826. 07. 04. 3대 대통령]
대통령의 자리는 끊임없이 원망 듣고 날마다 친구를 잃어버리는 것 밖에는 없다.
케네디 [Kennedy, John Fitzgerald, 1917. 05. 29~1963. 11. 22. 35대 대통령]
대통령의 자리는 높고 쓸쓸한 자리다.
이 세상의 것은 얻으면 얻을수록 누리면 누릴수록 더욱 목이 타고 갈증이 오며 만족함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사람은 욕망으로 쌓여진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필수품이나 생활의 편리를 위한 생활의 도구를 구입해 보면 어디 만족함이 오던가요?
구입하는 그 순간 만족함이 잠깐 지나고 나면 이내 새롭고 좀 더 큰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내 속에서 싹 트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을 간사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그가 전후 8차에 걸쳐 약 18000Km 원정 기록을 세우고 세계 도처에 자기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라고 불렀지만(70) 그는 하나님이 없는 인생을 살면서 더 이상의 정복할 땅이 없음을 불만하며 탄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2. 우리 영혼의 만족함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람은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두 가지가 밸런스를 잘 이루어야 건강한 신앙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이 함께 조화를 잘 이루어 가는 생활 말입니다. 만일 속 사람에 해당하는 영혼을 무시하고 육의 생활에만 치우쳐 살아간다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영적 리듬이 끊어져 믿음 생활이 형식적인 신앙으로 전락되는 위기를 맞게 될 지도 모릅니다.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일반적으로 마른 곳은 태양의 강렬한 햇살에 노출되거나 가뭄 때문에 습기가 완전히 말라 버린 곳을 가리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여기 마른 곳은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단순한 마른 땅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그 혜택을 받을 대상이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 마른 곳은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붙들려가서 사방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처럼 바로 물이 공급되지 못하여 메마른 동산과 같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네 영혼을 만족케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괴로운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과의 사이가 원만치 못하여 평화의 관계를 이루지 못하여 방황하는 삶인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관계가 원만치 못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불안한고 고통스러운 일이며 슬픈 비극인지를,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행 중에 불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먼저 나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평화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영혼을 만족케 해 주시겠다는 이 약속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일이며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기쁨의 생활입니다.
시 107:0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람에게 영혼을 만족케 하신다는 말씀을 하십니까?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이의 영혼을 만족시켜 주신다고 하셨는데 오늘의 말씀 첫 부분을 잘 보십시오. 그리하면 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그리하면 이라는 말입니까?
바로 01~ 07절 사이의 말씀을 전제로 하는 말씀으로서 이곳에서는 이스라엘의 금식과 기도에 대한 문제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 금식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이 아니라 사람이 알아주고 보아주기를 바라는 금식임을 단 번에 알 수 있지요. 그것은 이사야 58장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유대인들의 신앙이 형식화된 데 대한 책망으로 쓰여진 장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금식의 본래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금식이란 회개와 성결을 위해 제정된 것으로(느 09:01,02; 시 69:10) 철저한 회개를 통해 자신의 이기적인 뜻과 정욕을 억누르고 자기를 부인케 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금식의 본래적 목적과 의의를 외면하고 오히려 현실상의 축복을 비는 수단 즉 종교적 자랑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습니다.
03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반문하고 있습니다.
03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을 하면서 자신들을 괴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자신들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바로 형식주의의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형식에 따라 교회에 나와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헌금을 드리면서 그것이 예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이 그리하면 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은 그 잘못 된 관행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원하시는 금식기도의 정신으로 돌아갈 때 은혜의 복을 허락하시겠다는 것입니다.
0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0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3. 하나님께서 만족함을 주실 때 우리는 어떠한 생활을 누리게 됩니까?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앞서 말씀드린 바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붙들려가며 사방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은 마치 물이 공급되지 못하여 메마른 동산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메마른 동산에 물을 대시듯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심으로 이스라엘의 풍요한 삶을 말씀하고 있는데 메마른 동산과 같은 심령에 물을 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렘 31:12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13 그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물 댄 동산과 끊어지지 않는 샘에서 대 축제가 벌어진다는 뜻입니다. 제 아무리 샘이 크고 깊다해도 물이 솟아나지 못하면 그것은 필요 없는 샘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동안 이스라엘의 범죄로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다 말라 버렸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샘이 터지고 축복의 물줄기가 솟아올라 동산 구석구석으로 흘러들어 물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설명하는 말씀인 것이지요.
물 댄 동산:
이는 근동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나타내려 할 때 흔히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시리아 역에서는 본 단어를 천국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천국을 이뤄본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이 표현을 종말론적 측면에서 이해해 볼 수 있는데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 구원을 받을 자들이 완성된 천국에서 살게 될 것 말입니다.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여기 끊어지지(끊어지다) 로 번역 된 말은 그 문자적인 뜻이 속이다, 거짓말하다 로서 이것은 그곳을 찾은 대상(隊商)들 혹은 짐승들이 샘의 근원이 말라 있으므로 허탕을 치게 되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샘은 결코 물이 마르지 아니한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샘은 물질적인 샘이 아니라 영원한 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요 0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전 10: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성도 여러분! 다시 11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11....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여기 너는 이라는 이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이 자리에 계신 바로 나에게 이러한 축복을 허락하신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가장 아름다운 축복을 나타내는 표현이 바로 물 댄 동산이요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이라는 말인데 이 축복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버스 안에서 버스기사와 승객이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일은 아니나 가끔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서로가 욕을 하면서 말싸움을 하는데 그러던 중 승객이 버스기사에게 싸움에 찬물을 끼얹는 말 한 마디를 해 버렸습니다. 넌 평생 버스기사나 해라 이 OO 야!
승객들은 버스기사의 패배구나 생각하고 버스기사를 주시했는데 그 순간 버스기사가 말하기를 에라 너 같은 놈은 평생 버스나 타고 다녀라 라고 맞장구를 쳤더랍니다.
우리는 사람을 욕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존귀히 여깁시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지 않습니까?
롬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왕이면 우리는 11절의 두 가지의 축복의 말씀을 곁에 있는 분들에게 립(lip)서비스 차원이 아닌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선포합시다.
목사(장로 집사 권사 선생)님은 ①물 댄 동산 같겠고 ②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1절이야말로 참으로 영향력 있는 인생, 다른 사람에게 물을 대 줄 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무엇인데 물 댄 동산이 될 수 있으며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이 될 수 있습니까? 이는 여호와가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나의 목자이시기(시 23:01)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 같이 끊어지지 않고 솟아나는 은혜의 샘물 축복의 물줄기가 우리의 심령과 우리의 가정 그리고 우리 김해삼일교회에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메마르고 삭막한 우리 사회라는 동산에 은혜의 물을 댐으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축복이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사 55:0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0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0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