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중심에 거하는 사람.
성경본문 : 느헤미야 11: 1-6
1.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2.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 3.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그 본성 본 기업에 거하였고 예루살렘에 거한 그 도의 두목들은 이러하니
4.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니 저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손이며
5. 또 마아세야니 저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손이요 스가랴의 육대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대손이라
6. 예루살렘에 거한 베레스 자손의 도합이 사백 육십 팔명이니 다 용사이었느니라
=======================================================================
세계 교회가 한국 교회를 보고선 부러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교회를 사랑하는 믿음의 선배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예전이나 요즘이나 할 일이 얼마나 많아요. 옛날에는 옛날대로,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바쁘게 살지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바쁘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교회를 끔찍이 사랑했어요. 교회를 교회 되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힘썼는지 모릅니다. 아마 세계 교회사에 우리 나라와 같은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아주 귀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서울에 가면 덕수궁이 있는데... 돌담길 걸어보셨어요? 돌담길을 따라서 가다 보면 정동제일교회가 나옵니다.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인데 1895년에 건축을 시작했으니 역사적인 건물이지요. 그 예배당을 건축할 때에 아펜젤러 목사님이 교우들과 함께 건축헌금을 했는데 그만 모자라는 거예요. 이 소식을 청년부의 김귀동이라는 학생이 들었어요. 이화학당에 다니는 학생인데, 이 학생이 하나님의 집을 짓는데 돈이 없어서 힘들어한다는 소리를 듣고선 자신도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생이니 돈이 있어야지요.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기도하다가 하루는 이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자. 생각해 보니까 긴 머리카락 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 자기 머리카락을 쑥 잘라서 그걸 팔아서 건축헌금을 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저희 어릴 때만해도 머리카락이 돈이 됐거든요. 가발을 만들어서 수출하던 때라서 머리카락은 요긴하게 사용됐어요. 아마 100년 전에는 그것보다 더했는가 봅니다. 학생이 머리카락을 잘라서 헌금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온 교우들이 감동되었습니다. 교인들은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 더 힘을 내자. 그래가지고 모자라는 금액을 채워서 건축을 마무리했다는 겁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지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교회를 사랑해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교회에 일만 있으면 앞장섰습니다. 선교 초기라서 나라 전체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 때인데도 교회를 먼저 생각했다는 겁니다. 자기집 일은 내일로 미루어도 교회 일은 절대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늘 교회가 먼저였어요.
우리 나라는 가을에 김장을 하잖아요. 김장을 해도 교회 것이 먼저예요. 하나님의 것이니까 먼저 하는 거예요. 뭐를 하나 사와도 제일 좋은 것으로 사 왔어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까, 성물이니까 구별된 마음으로 드렸다는 거예요.
교회를 얼마나 아끼는지, 자기 집에는 풀이 나 있어도 교회는 풀이 없을 정도였어요. 예배드리기 전에 일찍 와서 뽑고 예배드리고 나서 뽑고..., 그러니 교회가 깨끗할 수 밖에 없지요. 저희들도 어른들에게 배워서 중학교 다닐 때인데도 봄이면 꽃을 많이 심었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산에서 진달래를 캐다가 교회에다 심고..., 교회를 꽃동산으로 만드는 거예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교회가 언제나 중심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교회가 삶의 중심이었고, 자신이 어려울 때는 물론이고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교회 중심이었어요. 사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중심에 선다는 것은 부담되는 일이지요. 당시에 장로 권사가 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교회 살림은 늘 적자였어요. 저희 아버지가 재정부장을 오래 하셨는데, 보니까 교회 재정이 부족하니까 목사님 생활비를 제 때에 드리지 못하는 거예요. 당시 재정부장의 역할은 목사님 생활비를 어떻게 해서든지 제 때에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버지가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매월 봉급이 나오잖아요. 교회 재정이 모자라면 당신의 봉급에서 보태서 목사님께 드리는 거예요. 그렇게 지내다가 추수감사절이 되면 맞추는 거지요. 이런 교회는 그래도 괜찮은 교회이고, 많은 교회가 어렵게 지냈어요. 그러니 장로 권사는 얼마나 힘든 직분이었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조선시대 이야기가 아니고 30년 전에 저희 어릴 때에 이야기입니다. 장년들은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우리가 경제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이만큼 부유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교회를 사랑해서 헌신한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교회의 중심에 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몸바쳐 충성하였던 믿음의 자랑스런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철저하게 믿음으로 가르쳤던 위대한 믿음의 부모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믿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지요. 선배들이 뿌려놓은 씨앗 때문입니다. 우리 실력 때문이 아니라 선배들의 실력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 믿음의 선배들이 교회 중심에 거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것을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복음이 전파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교회의 중심에 서서 신앙 생활하는 것을 누구에게서 배웠을까요?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그것을 알려주고 있잖아요.
느헤미야 당시의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무너진 성을 다시 쌓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방해하는 세력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느헤미야 4장 7절과 8절을 보면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 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모입니다. 그들은 연합군을 형성해서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기로 모의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손으로는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아야만 했습니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칼을 차야만 했고, 나팔을 부는 사람을 항상 옆에 두고 쌓아야만 했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52일만에 기적적으로 성벽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쌓았는데 성 안에 들어가서 생활할 사람이 없는 겁니다. 성전을 다시 수축할 때도 적군이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성벽을 완성한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던 겁니다. 요즘 말로 전시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성 안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성 안에 살기보다는 자기 고향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누가 위험을 무릎 쓰고 예루살렘 성 안에서 살겠어요. 그럼에도 누군가는 예루살렘성 안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것이고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세 종류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백성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제비 뽑힌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가지 않으려고 하니까 십분의 일을 제비 뽑아서 강제로 이주시킨 겁니다.
셋째는 자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은 교회를 개척하는 것과 같고,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은 교회의 일꾼이 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좋은교회는 10년 전에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개척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놀랍게 성장해왔습니다. 한인들이 많지 않은 곳에 이 정도로 모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앞으로 우리교회가 꾸준하게 성장하면서 교회의 일꾼이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교인이 많을 때에 더욱 건강하게 부흥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좋은교회가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예루살렘에서 생활하기로 작정한 지도자와 같은 교인이 있었기 때문이고, 자원한 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인 중에 아멘 권사님이 계십니다. 이민 목회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반대하신 적이 없습니다. 목사가 100% 맞는 이야기만 하겠어요? 때로는 마음에 맞지 않을 때고 있고 교인들 생각과 다를 때도 있겠지요. 그런데 제 기억으로 지난 10년간 한번도 '목사님,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여기는 미국입니다. 왜 그것을 해야 합니까? 꼭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다른 방법도 있는데..., ' 반문하신 적도 없고, 반대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멘 권사님으로 부르고 있고 밖에 나가서 자랑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어느 교인은 초기에 영주권을 준다는 직장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영주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유학을 와서 취직해 가지고 영주권을 받는다는 것은 미국 생활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잖아요. 이 형제가 그 때에 다니고 있는 직장은 영주권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다른 직장에서는 해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정중하게 사양했다는 거예요.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교회를 떠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영주권을 준다는 직장이 동부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면 교회가 더 힘들어지니까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떠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보통의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정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 형제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교회의 중심에 서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현재의 직장에서도 영주권을 얻게 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지금도 권사로 잘 섬기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청년들도 참 열심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청년들은 예배만 드리고 가는 수준이 아니잖아요.
교회 살림을 하잖아요. 청년들이 살림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주일에 교회 일하다가 늦게 갈 경우가 많잖아요. 월요일이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저 내일 시험이 있어서 가봐야겠는데요. 바쁜 일이 있어서 오늘은 그냥 가려고 하는데요..., ' 이런 말하는 이들이 없었어요. 비록 월요일에 바빠서 밤을 새는 한이 있어도, 그 일을 핑계로 교회 일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마 그 친구들 교회 일하느라고 밤 많이 샜을 겁니다. 그들은 교회가 일할 사람이 적어서 힘들고 어려울 때에 중심에 서서 교회를 섬겼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목회를 하면서 보면 두 분야에서 중심에 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에 중심에 서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하나는 평안할 때에 중심에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20년 동안 목회 하면서 보니까 교회도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어요. 아니 예수님 오실 때까지 교회는 힘들고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교회가 힘들고 어려우면 떠나지요. 이해가 되지요. 힘들잖아요. 특히 이민생활도 어렵고 힘든 데에 교회까지 힘들면 더 힘들어지니까 떠나는 거지요. 하나님도 이해하실 거예요.
그런데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중심에 서는 교인이 있다는 거예요. 십자가를 짊어지는 마음으로 중심에 서서 교회를 이끌고 가는 교인이 있다는 거예요. 교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몸으로 하는 일이 필요하면 몸으로 헌신하고, 물질이 필요하면 헌금하고, 기도가 필요하면 무릎 꿇는 교인이 있어요. 마치 백성의 지도자처럼, 제비 뽑힌 사람처럼, 자원한 사람처럼, 힘들고 어렵고 피곤하고 손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위하여 중심에 서서 교회를 지키는 교인이 있다는 겁니다.
평안할 때에 중심에 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안정되면 그 때에 중심에 서는 사람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선호합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부담이 되지 않잖아요. 조금만 노력해도 생색이 나니까 모여듭니다. 그냥 모여듭니다.
지난주간에 서울에서 오신 어느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씀을 하세요. 권사님이 섬기는 교회가 예배당을 새로 건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걱정이라는 거예요. 궁금해서 물었어요. '권사님, 예배당을 짓는 것은 복인데 뭐가 걱정이세요. 돈이 없으세요' 보통의 교회가 예배당을 지을 때에 돈 때문에 고민을 하잖아요. 얼마나 많이 들어갑니까? 그런데 권사님은 다른 대답을 하셨어요. "교인들 때문에 걱정이라는 거예요."
저는 더욱 궁금해졌어요. 예배당 짓는 것이 얼마나 복인데, 평생토록 한번도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권사님의 대답은 이래요. 예배당을 지으면 교인들이 떠난다는 거예요. 예배당을 짓는 일은 영광된 일임에도 헌금을 해야 하니까 떠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세요. 그 사람들이 떠나는 것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 예배당 다 지으면 다시 올 겁니다.
제 마음이 씁쓸했어요. 속으로 생각했어요. 멍청한 교인이다. 예배당 짓는 것이 얼마나 복인데, 본인들이 수만, 수 십만 불 헌금 할 것도 아니면서 예배당 짓는다고 교회를 떠나나..., 예배당 짓는 것이 힘들어도 중심에 서서 짊어지면 나중에는 말할 수 없는 복을 받게 되는데, 참 어리석은 교인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중심에 거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때에 예루살렘 성은 변두리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기 싫어했던 겁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예루살렘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언제 죽을지 몰라서 회피한 사람들, 예루살렘에서 사는 것을 뽑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축복이다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변두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를 보세요.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이 바사의 속국으로 있을 때에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왕정시대의 술 맡은 관원은 중요한 자리입니다. 왕을 가장 가깝게 모시며 왕의 고민을 상담하며 왕과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왕이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자리입니다. 막강한 자리이지요. 요즘으로 이야기하면 대통령 비서실장쯤 되는 자리일 겁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그 좋은 자리를 내려놓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느헤미야는 가장 좋은 것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아는 사실은 느헤미야는 잃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관직도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으로부터 많은 물자를 공급받아 성전을 재건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아름다운 신앙을 성경에 기록하셔서 후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오늘 3절 이하에는 예루살렘에서 살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을 주축으로 제사장 계열과 족장들, 그리고 레위인 등의 이름이 나옵니다. 6절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살기로 작정한 베레스 자손이 468명이라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섬기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하신다면 변두리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 무엇인가 찾으시기 바랍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서 회피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시간이나 물질로 손해나고 짐을 지는 일이 무엇인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곳이 예루살렘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곳이 수지 맞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아니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한 곳입니다. 이러한 일에 앞장서는 것이 보람있는 일이고 가치있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러한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교회의 중심에 거하는 사람들이고, 나중에는 반드시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친구 아버지가 늦게 교회를 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목사이니까 아들 체면 때문에 교회를 나가 주신 겁니다. 이 어른이 교회에 나가주시면서 마음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겁니다.
하루는 이제까지는 아들을 위해서 교회에 나왔는데, 이제부터는 교회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어르신이 교회에 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할 일이 없는 겁니다. 교인이 많이 모이는 교회라서 그 교인들이 이곳 저곳에서 각자 맡은 일을 감당하는 겁니다. 한번은 화장실에 갔는데 어지럽더라는 겁니다. 대개 화장실은 부담 없이 사용하잖아요. 교인들도 교회 화장실은 막 사용합니다. 휴지를 늘어트려서 사용하고, 어떤 때는 물도 잘 안 내리고..., 화장실이 깨끗한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고는 화장실 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다음주일부터 교회에 올 때에 아예 장갑을 가지고 오는 겁니다. 이 분은 교회에 오면 먼저 화장실부터 들어갑니다. 예배가 끝나면 화장실에 들어갑니다.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청소하는 거예요. 휴지가 떨어져 있으면 줍고, 물이 있으면 걸레로 닦고..., 시간만 있으면 청소하는 거예요. 교인들에게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하는 거예요. 나중에 이 어르신의 고백이 이렇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화장실에 가서 은혜 받은 것을 사용했습니다." 참으로 존경받으실 어른이십니다. 이 분은 크게 표시가 나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교회의 중심에 거하며 신앙 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교회의 중심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니 하나님은 우리가 예루살렘 성인 좋은교회를 지켜주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를 제가 지키겠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표시가 나지 않는 일이라고 해도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교회에 필요하다면 시간으로 몸으로 물질로 중심에 거하면서 교회를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또한 이렇게 기도하고 고백하며 손발을 움직이는 사람에게 복을 내려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시편 126편 6절에서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한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인 교회를 사랑하면 형통합니다. 예루살렘인 교회의 중심에 거하면 복을 받습니다. 표시 나고 생색나는 일에 중심에 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변두리에 거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교회는 교인이 얼마이든 상관없이 자신에게 손해나고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감당하는 교인이 많을 때에 부흥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 좋은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예루살렘 성안에서 살려는 지도자와 같은 교인이 많은 교회, 제비 뽑혀도 아무 말 없이 받아드리는 교인이 많은 교회, 자원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좋은교회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는 교회로 만들 욕심이 있으시지요? 우리가 교회의 중심에 거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 우리 모든 교우들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믿음으로 먼저 하겠다고 나서기를 바랍니다.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가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3장 5절에서 하나님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한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벤처기업이 성공할 확률은 5%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95%가 망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사는 사람들은, 교회 의 중심에 거하는 사람들은 100% 성공합니다. 실패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후원해 주시고 하나님이 밀어주시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못하시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와 같은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제비 뽑혀도 믿음으로 감당하려는 마음으로 교회의 중심에 스셔서, 십자가와 같은 짐을 지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며 헌신하셔서,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루살렘 안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중심에서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평생토록 신앙 생활할 때에 섬기는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중심에 서서 하나님께 큰 힘이 되는 교우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에 큰 덕을 끼치는 교우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