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모르면 하느님 (종교)을 제대로 공부하고
철학을 모르면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역사를 모르면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말해야만 한다.
조선 왕조 500년간 성리학의 도입으로
인륜이 뭔지, 도리가 뭔지, 정의가 뭔지, 학문이 뭔지,사상, 이념이 뭔지, 종교가 뭔지,
선악의 분별을 알게 해준 문명이었다.
"우주 만물의 이치를 이성 회복을 통해 (형이상학적) 실천철학의 일치"를 강조한 학문이 성리학이다.
즉, 우주 만물과 이성, 정신세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세계까지 유학 철학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성리학은
철학적, 사상이념적, 종교적 정통성을 유학이라는 학문으로 규정하여
국가 통치이념을 정립해 놓은 학문이다.
조선의 성리학은 인간의 이성과 사후 세계까지 유학 학문적으로 규정해 놓은 위대한 학문이었다.
철학 학문적, 사상 이념적, 종교적으로 말하면 조선은 고려시대보다도 훨씬 위대하다.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는 고려시대가 보다 편리하였다.
서경덕이 주자의 주리론에 대항하여 주기론을 최초로 주창하고,
기대승이 이황과의 사단칠정 논쟁으로 사회 이성철학적으로 접근하여
이성이 주정설(희노애구 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칠정)쪽에 약간더 치우쳐서 상호통제한다는
이성의 상호통제론에 이어 기대승의 상호통제론을 바탕으로 이이가 철학적, 사상 이념적,
종교적 정통성을 "이기 이원론적 일원론"으로 정립해 놓고 조선정부 3대 이념을 국시로 삼았다.
또한 이성철학과 사후세계까지 종교적 이념을 학문적으로 정립하여 규정해 놓은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결코 조선 왕조 500년을 허송 세월로 보낸 민족이 아니란 말이다.
종교는 물론 그 사후 세계까지 성리학으로 정립해 놓은 위대한 학문을 정립한 조선 문명이
어떻게 해서 허송 세월을 보낸 문명이란 말인가?
"나" 라는 존재를 하느님의 본질체와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고,
이성을 회복할 때 깨달음을 얻으면 하느님과 동등해진다는 것이 종교적으로 정립한 성리학의 주요 골자다.
이고(李翺774~836)가 찾아낸 "인간의 이성"을 육신이 통제하느냐 , 정신, 넋이 통제하느냐를 놓고
어느쪽이 통제하느냐를 결정짓는 학문이 종교적 성리학적 규정이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과 동질선상에 있다는 게
성리학의 종교적 결론이다.
여기에서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동학, 천도교가 나온 것이다.
인간 자신은 물질, 육체, 자본, 종교(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확인하여,
이(理)의 입장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을 유교철학으로도 해탈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교당, 서원같은 곳을 많이 세우는 오류를 범해 버렸다.
정작 성리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근본 이유는
인간 자신이 우주 절대 불변자(하느님)의 일부인 초월적인 존재란 사실을 확인하고,
정신 수양을 함양하고 깨우쳐 "이성을 회복"하면 해탈할 수 있다는 유교 이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교당, 서원을 지어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빌리려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만다.
성리학이라는 학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당, 서원, 교회를 지어놓고 초월적인 존재(하느님)에게 기대어 혹세무민 할 것이라는 것이
성리학이 말하는 종교적 개념 규정이다.
이이의 이기 이원론적 일원론(理氣二元論的ㅡ元論)은
(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 <이성> 정신, 넋, 영혼 상호통제론) 이다.
성리학을 조금만 더 발전시킬 시간적 여유만 있었다면,
인간의 이성과 사후세계 ,하느님의 뿌리까지 밝혀 낼 수 있는 학문이 조선 문명이었다.
이것을 막은 자가 누구란 말인가?
하느님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일본을 시켜 막았더란 말인가?
이성이 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 쪽에서 통제한다는 이론이 이기 이원론이다.
선구자는 이언적이며 이황에 의해 집대성 되었으며 류성룡, 김성일이 계승자였다.
동인의 영남학파에 의해서 계승 발전된다. (주리론)
일본 성리학에 영향을 주었으며 위정척사 사상으로 맥을 이어간다.
수양 철학과 도덕적 원리 규범을 지켜 이성 회복을 통한 깨달음을 얻으려 하였으나,
이성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자들에 의해
초월적인 존재(하느님)에 기대어 구원을 받으려는 서원의 난립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흥선대원군 때 철폐)
즉, 인간의 이성이 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에 해당하는 쪽에서 통제한다는 이론이고
리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을 수양 철학을 통해 벗어나 보자고 주장한 이론이지만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기에 함몰되어 예속되고 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 (종교)에 약하다.
금전, 애욕, 교당, 서원, 교회 등에 쉽게 빠져드는 모순이 발생한다.
물질적 문명, 육체적 문명, 서원(교당/교회)적 문명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에 반해서 이성이 정신, 넋, 혼백, 영혼 쪽에서 통제한다는 이론이 이기 일원론이다.
선구자는 서경덕이며 기대승 (이성의 상호 통제론)의 사회 이성철학적 이론적 확립이 이루어지고 난 후,
종교 철학적으로 접근한 승려 출신 이이가 집대성하였으며 이항, 박순 (영의정), 김인후가 계승자였다.
(조헌, 김장생은 서인 기호학파이긴 하지만 주기학파는 아님)
서인의 기호학파 중 주기학파에 의해서 계승 발전된다.(태인의 이항, 광주의 박순, 성혼, 장성의 김인후)
북학파, 실학파, 실학사상, 개화사상에 영향을 주며 대를 이어간다.
자신이 우주 절대 불변자의 일부인 초월적인 존재란 사실을 확인하고,
정신 수양을 함양하고 깨우쳐 이성을 회복하면 해탈할 수 있다는 유교 이념이다.
즉, 인간의 이성이 정신, 넋, 혼백, 영혼 쪽에서 통제한다는 이론이기 때문에,
마음, 정신, 넋, 에테르적 사고에 강하다.
정신적 사고에 강하므로 깊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물질, 육체, 자본, 교당 (서원/교회)보다도 정신적인 문명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대승의 주정설(사단칠정 논쟁)로 사회 이성철학적으로 완성된 이성의 상호 통제론과
이이의 이기 이원론적 일원론 정립으로 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 <이성> 정신, 넋, 영혼
상호 통제론이 나오면서 정신적으로 누군가를 신봉하거나 신적 대상으로 삼으면
사이비로 빠지는 단점도 일부있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개념은
각자 마음속으로 자기 자신이 우주 절대 불변자의 일부인 초월적인 존재란 사실을 확인하고,
정신 수양을 함양하고 깨우쳐 이성을 회복하면 해탈할 수 있다는 유교 이념이기 때문에
타 종교에 쉽게 빠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기호학파 중 주기학파의 주기론은
경험적 현실세계에 충실하여 현실 개혁에 치중하려는 유교철학 사상을 견지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성적으로 정신 ,넋, 영혼, 하느님 등은 마음속으로만 각자 담아두고,
현실에 치중하고 삶을 영위하며 현실 개혁을 통한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유교 이성철학이 이기 일원론이다.
이기 일원론은 마음속으로 일신론적(유일신)으로 정립하고,
학문적으로만 규정하여 각자 마음속으로만 정리해 놓고,
현실적인 문제에 접근하여 국가, 사회, 국민을 개혁해 나감으로써 문제를 풀어 나가자는 이론이다.
여기에 기대승의 사회 이성철학적 상호 통제론과 이이의 이기 이원론적 일원론을 더하게 되면,
중간 합점인 이성이 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 vs 정신, 넋, 혼백, 영혼을 양쪽으로
모두 통제하면서도 기대승의 이론대로 정신, 넋, 혼백, 영혼 쪽에 약간 더 치우쳐서
상호 통제하게 된다는 이론이므로, 이성주의, 경험주의, 현실주의 유교철학으로서
합리주의적인 이론이 되는 것이다.
P/S
남북 분단은 미소 냉전으로 분단된 것이고,
제주 4.3 사건은 친일 경찰의 미 군정 경찰 둔갑으로 밀수품 단속을 빙자한 수탈과,
3.1절 기념행사 방해,그리고 남한에 사는 제주도민들에게 북에서 피난 내려온 서북 청년단이
횡포를 부려 발발한 항쟁이었다.
북에서 친일파, 기독교, 무뢰배 숙청 탄압을 피해 삭주시 출신 하나가 모친과 함께 남으로 피신하여
제주 4.3 항쟁을 공산당 폭동으로 규정을 해버렸다.
먹고 살길이 없어진 서북청년단, 민족청년단, 독립 촉성 국민회 등은 전부 서북인 출신들이
북한을 탈출하여 서울, 제주도로 들어와 고문 ,횡포를 부리다가 맞아 죽었던 것이다.
남의 동네에 피난와서 집도 없고 땅도 없으니
대세가 미군 측으로 기울자, 반공단체를 만들어 주민들을 잡아들이며 횡포를 부리다가
제주도민들이 들고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그걸 반공이라는 이념을 내세워 감춘다고 감춰지진 않을 것이다.
진압군 측 9연대 사단장 김익렬 중령(북한 출신)의 중재로 강화가 성립된 것을
서북청년단이 오라리 방화 사건을 일으키고 주민들을 죽이면서 확대된 것이다.
누가 정말로 게으른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독립군은 김구의 민족주의 계열(상해,사천성중경)이 있었고,
민족 사회주의 계열(섬서성 연안시 연안파)이 있었으며,
고려 공산당계열(동북삼성, 사할린)이 있었다.
옛 선조들 명언에 "패려한혀(稗麗(浿麗)翰舌)를 조심하라"라는 고사성어가 있었다.
패려지방은 해서지방을 말한다.
해서지방은 세곳이 있었다.
청해호(靑海湖) 서부지방을 해서지방이라고 불렀다.
전진의 부견이 일어났던 곳인 청해성 서북부 지방을 말한다.
부견은 청해성 동부를 점령하고 해동왕에 올라 스스로 해동천왕이라 불렀다.
부견이 비단길, 초원의 길을 독점하기 위해 불교 전파를 명분으로 내세워 천하통일한다며
영가의 난을 일으켜 북조를 통일하고, 중원 남조 동진을 치려다가 100만 대군이
안휘성 수현(수춘-기자조선탄생지/서화/실크로드 소비종착지)의 비수대전에서
동진장수 사현, 사안 형제에게 패하여 5호 20국으로 분열하게 만들어 군웅 할거시대를 열었다.
다른 한곳은 산서성 기주시 ,삭주시 ,대동시 서부 지방을 말한다.
한나라의 유방이 천하통일을 한다며 섬서성을 손에 넣고 산서성 북부 태원시, 기주시, 삭주시를
주름잡으며 감숙성을 기반으로 하는 돈황시, 장액시 모돈선우의 약수 흉노와 동맹군인 오손족인
동흉노 호한야 선우를 치러 출정했다가 산서성 최북단 대동시 백등산에서 오손족에게 패해
호한야 선우 알씨 부인에게 왕실 여자와 뇌물을 주고 풀려났던 곳이다.(백등산의 치/평성의 치)
유방은 가짜 왕족 궁녀인 왕소군을 오손 선우에게 시집을 보낸다.(소군출새)
오손선우 동흉노 호한야 선우는 한나라와 동맹을 맺고 서오손 선우인 서흉노 질지선우를
키르키즈 공화국의 탈라스, 신강성 강거 서장성 동부에서 토벌한 인물이다.
이로 인해 중원과 동유럽, 서유럽까지 요동을 치게 된다.
동흉노의 동서분열로 서흉노가 중원을 공격하였다가
강거[신강성 토노번(투르판), 오로목제(우르무치)로 퇴각한다.
서장성 강족 지방으로 남하하여 중원을 다시 재 공격하다 실패한 후
아란지방[북 아프간, 이란 동부지방]으로 밀려난 서흉노 질지선우는 330년대 아틸라 훈족으로
혼혈을 이루어 다시 태어나 동로마 제국을 침공하며 서유럽, 동유럽 지도를
현재에 이르게끔 만든 종족들이었다.
마지막 한곳은 평안도, 황해도 해서지방을 말한다.
발해만(보하이만)을 고대에는 해남(海南)지방이라고 불렀다.
북발해만 대련반도를 해북지방이라 불렀으며,
해서지방은 산동성 북부 일대와 북경 일대를 해서지방이라고 불렀다.
산동반도 이북 해서지방을 고구려 광개토가 점령하게 된다.
고구려인은 감숙성 평양시 고원, 고구원, 청해성 서령시 서경, 섬서성, 산서성, 영하성 회족자치구(영주),
내몽골서부 사라선맹 자치기 일대에 사는 고원족인 원(原)고(구)려인[고려인/현재의 북한 지방인과
보장왕때 북경을 거쳐 섬서성 영하성 회족자치구(영주), 섬서성 서안, 산서성 진성시 진평2군으로
끌려가는 고려인]들이 있고, 발해만 일대에 사는 해(海)고구려인[구려인/백제 개성, 한강유역/
사비성으로 들어오는 현재의 한국인]들이 있었다.
발해만 일대의 고(구)려인은 낙랑국을 복속하고 혼혈되어 만들어진 구려인 종족이며,
백제인, 동명부여, 동명 백제인들이 포로로 잡혀가 만들어진 종족이므로,
원 고려인들과는 혈통적, 성질적으로 많이 다르다.[훗날 성왕 때 부여 사비인이 되는 세력]
고려말기 연개소문도 군사 쿠테타를 일으킨 후 군사를 이끌고 요녕성 개주시 안시성으로 들어가
안시성을 굴복시키려다가 실패하고 감숙, 청해, 섬서 북부, 산서 서부 고구려로 돌아간다.
한곳을 더 추가하자면
훗날 해서지방은 다시 요녕성 일대로 옮겨지기도 한다.
요녕성 조양, 심양 일대의 사람들을 조심하라고한 것이다.
거란인들을 조심하라는 고사성어였다.
실제로 이곳은 발해가 거란에 점령당한 곳이었으며 그 이전에는
강소성 남경에서 유유에게 멸망한 동진의 황제 일행들과 안휘 동남, 강소 서북 사수지방의 양하사씨
사천성 성도 촉나라의 후신 예촉이 강서성 예장지방으로 이주했다가 비수대전이후
동진이 북위출신 유유에게 넘어가자, 예장라(나)씨가 양하사씨와 함께 동진황가 일행을 이끌고
피신해와서 낙랑국 잔류인을 복속하고 후동진을 세웠다.
낙랑본국은 평양으로 이주하고 후동진의 동수는 고구려 고국원왕에 밀려 해주로 이주해온다.
유유는 남송(유송)을 건국한다.
대련반도에 남은 후동진국은 발해국에 점령되고,발해국(동단국)은 거란왕자 야율배에게 점령되었다가,
훗날 내몽골 서부에 있었던 금나라 요동 선무사 포선만노가
몽골을 피해 감숙성 란주시의 서하국, 금나라 여진족을 이끌고 들어와 요녕성(조양,심양)으로 달아나
동단국(조양) 동진국(심양)을 점령한다.
이 두 나라를 합해 대진국으로 포선만노가 바꾼다.(발해의 대진국과는 다른 대진국)
몽골에 쫓겨 다시 사할린 지방으로 들어가 동하국을 세워 숙여진으로 알려진다.
그후 몽고[합진], 동진[완안자연], 고려 김취려와 이성계의 토벌로 동경으로 달아나고 와해되어
일부는 야인족이 되었다.
거란은 몽골 실위족을 간접식민지배하였다가, 부리야트, 야쿠트, 투바 자치공화국으로 피신했던
몽골 실위족(단실위,대실위,북실위,남실위,발실위,심망항실위)중에서 부리야트의 대실위족 일부가
투바 자치공화국으로 탈출하고 현지인과 융합하여 세력을 키웠던 징키즈칸으로부터
대대적인 토벌을 받게 된다.
투바 자치공화국에서 외몽골 오논 강 일대로 내려온 몽올실위족(징기즈칸/성길사한)으로부터
대대적인 복수전을 당한다.
거란인이 가는 곳은 항상 남의 나라를 점령하고 직,간접식민지배하다가 멸망하기 때문이었다.
고대에는 전진의 부견족, 한나라 유방족, 모돈선우 약수 흉노족,
호한야선우 동흉노계 선우 알씨 오손족(북월지/가야,왜로 분화/오손, 오게, 정령, 오환/ 전기가야)의
혀를 조심하라고 하였다면, 고대 후기 중세 시대에는 거란족과 여진족, 원 고구려인의 혀를
조심하라는 고사성어가 패려한혀(稗麗翰舌)이다
현대는 한반도의 해서지방을 말한다.
[이라크 남부 우르 (우륵) 6가야는 힛타이트 문명을 건설할 때 서역으로 진출한 문명인이며
팔레스티나 갈대아 가나안 문명을 건설한 문명이었다.
이곳으로 아브라함이 야훼의 성령을 받았다며 일족을 이끌고 피신하는 곳이었다.
훗날 알렉산더가 시리아와 이집트를 정복했던 아케메네스 제국을 멸망시키자,
이라크 남부 우르국
[우륵국/서역, 동유럽, 북아프리카 이집트를 연결하는 비단길, 초원의 길 철의 삼각주]에서
동방으로 회귀하면서 사마르칸트로 들어갔다가 북월지가 되어 중원 내몽고 자치구 서부
시라선맹[사라선맹]지구로 실크로드 문물을 가지고 들어온다.
서기 562년 대가야의 멸망으로 일부는 현지에 남고 호남 중동부와 왜로 이주하는
후기 대가야 세력이다.
서흉노 질지선우가 중원 공략에 실패하고, 아란 지방으로 이동할 때 따라가지 않고
중원 서장성, 신강성, 청해성 일대에 남는 세력이 한/韓[한예, 한백족], 전조[유연, 석륵],
말예[말갈, 예맥, 예족, 예지, 동예] 등으로 분화하는 세력이다.
산서성 북부 삭주시(朔州市)는 평안북도 삭주시(朔州市)로 지명이 이동해왔다.
삭주시 동쪽이 대동시(大同市)다.
대동강(大同江)이라는 지명이 이곳에서 이주해 온다.
대동시 최 동북단의 백등산 천지(天地)는 백두산 천지로 이동해 온다.
(최초는 산서성 대동시 천지>섬서성 한중시 태백현 천지>감숙성 천수시 천지.
>산서성 대동시 천지로 다시 이동>한반도 백두산 천지 이동) 대동시는 사마선비족의 서진(西秦),
모용희의 후연, 고운(모용운)의 북연, 탁발선비족 탁발의로의 대나라, 탁발규의 위나라(북위)가
들어서는 곳이기도 하다.
감숙성 평양시 고원현, 내몽고 사라선맹 자치기(시라선맹/오라선맹/아라선맹/아랍선맹/아랍답맹)
고원현은 한반도 평양시, 함경, 평안도 개마고원 지대로 이주해 온다.
감숙성(甘肅省)이라는 지명은 한반도로 들어와 함경도(咸鏡道)로 대체된다.
원래는 감경도(甘鏡道)이다.
甘(덜감)이라는 한자를 감숙성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산다는 의미로 咸(덜감,다함/모두함)으로 바꾼 것이다.
감숙성 평양시, 돈황시, 장액시, 란주시, 천수시, 경양시, 청해성 서령시 등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산다는 의미와 같은 장소를 피하기 위해 咸(덜감,다함/모두함)으로 바꿔 부른다.
함흥이라는 지명이 감숙성에서 옮겨와 실크로드의 옛 영광을 그리워하며 부흥시켜 보겠다는 의미로
함흥(감흥)으로 지엇으리라는 것은 한자를 통해 곧바로 알 수가 있다.
산서성 태원시에 살았던 일부 선조들은 해주로 들어왔다가 개성을 거쳐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
동한[후한] 광무제 유수가 일어났고 태원시에 있었던 북한산(北漢山)이라는 지명이
그대로 서울에 남아 전해지고 있다.
고대에는 실크로드 무역을 하기 위해 경제 중심지인 감숙성, 섬서성, 산서성으로 이주하여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현대로 치면 미국으로 이민가는 것과 같다.
서진, 동진, 백제, 양나라가 반도로 밀려나면서 실크로드 무역은 쇠퇴하고 만다.
반도는 멸망한 왕가들의 집결지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도 토착인은 글을 몰랐기 때문에 역사가 없었던 것이고,
실크로드로 이주했던 동이족들이 감숙성에서부터 역사를 만들며
다시 중원의 북위>북제, 서위(우문태/우태)> 북주, 수, 당과 북부여[고구려]에 밀려
낙랑, 가야, 백제, 양나라, 서진,동진,신라가 반도로 밀려나고, 일본으로 이주한 동위[고환/고태/구태],
오월 등 민족 이동에 따라 반도와 왜로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고려,조선 정권 내내 평양지방은 동인, 남인들이 중앙 진출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만 지키다가
진출하는 코스였으며 성리학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은 지방이었다.
그래서 평양은 북방과의 무역이 발달해 있어서 2차 산업 상업무역이 성하였고,
고려, 조선의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지방이었으며, 장삿술과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던 지방이라, 북한이 자본주의 경제를 펼쳤다면 한국을 능가하고도 남았을 국가였다.
서울 사람에게 대동강 물을 팔아 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광복 후 고려 공산당을 등에 업은 김일성의 소련파가 장악하면서
정치 이념은 사회주의 체제에 경제 이념은 공산주의를 택하여 최악의 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P/S
수니파:이슬람교 창시자 무하마드 마호메트 사후, 이슬람 공동체 수장인 4명의 칼리프를
정통으로 인정하는 종파,
전세계 이슬람 인구의 80%가 수니파이다.
시아파: 무하마드 마호메트의 사위 4대 칼리프인 "알리" 만을 정통으로 인정하는 종파.
수니파의 이단 종파로 이란이 대표적이다.
시아파는 알라위파, 두르즈파로 나뉘어져 있으며,
과거 수니파로부터 아라비아반도의 경제 중심지에서 이단으로 몰려 산악지방으로 쫓겨나,
탄압과 고난을 당하며 살아왔다.
종교 신봉자:자기 정신의 주권을 하늘에 빼앗긴 자.
이성 상실자:자기 이성의 주권을 타인에게 양도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