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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위한 기도와 믿음 (시편 31:1-8)
Ⅰ. 믿음과 기도는 병행되어야 한다. 믿는 자들로 기도하게 하라-"내가 믿음으로 말했노라."그리고 기도하는 자로 하여금 믿게 하라. 믿음의 기도는 유익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 두가지를 알 수 있다.
1. 다윗은 환난 가운데서 매우 간곡하게 하나님께 구조와 위안을 간구하고 있다. 이것은 고통당하는 영을 편케 해 주고 약속된 긍휼을 가져다 주며,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영혼을 놀라웁게 북돋우고 위로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를 건지시어(1절). 그의 생명이 대적들의 악의로부터 보존되고, 그에 대한 그들의 핍박이 끝나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불의한 핍박자들 사이의 의로운 재판장으로서 긍휼과 의를 위해서 그를 건져 주실 것을, 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를 건져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2절). 사람들의 가장 훌륭하고 선한 경우를 인지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겸양이다. 즉 그는 그것을 행하실 만큼 스스로를 낮추신다. 시편 기자는 그 구원이 너무 지연되어 그의 믿음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곧 건져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2. 그가 속히 그를 환난에서 건지시지 않으셨을지라도 그 환난 가운데서 그를 보호하시고 지켜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주는 내게 견고한 즉 자연의 튼튼한 구조를 갖고 있어 움직이지 않고 끄떡 않는 바위와 인공적으로 만든 요새, 보장이 되시고 구원하는 모든 것이 되소서."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생명과 위로를 안전케 해 주실 것과 그의 은혜로 우리가 그에게서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할 수 있다(잠 18:10).
3. 그가 의무와 분별 있는 행동에 관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므로 그는 거룩한 지도를 받을 수 있기를 간구하고 있다. "주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3절).그렇게 나의 걸음을 명하시고 심령을 명하시어 내가 나의 양심을 거역하여 불법적이고 부정당한 일은 결코 하지 않도록 또한 나의 유익함에 해가 되는 우둔하고 몰지각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해 주소서." 하나님의 지도를 따르고자 결심한 자들은 믿음으로 그것을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4. 그의 대적들이 매우 악의에 차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교활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치려는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격파시켜 주시도록 간구하고 있다(4절).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 내소서. 그리고 저희가 나를 빠뜨리려는 죄, 환난, 죽음으로부터 나를 지켜 주소서."
Ⅱ. 이 기도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확신과 의지를 거듭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이것은 그의 기도를 격려했고 그에게 긍휼을 간구할 자격을 주었다(1절). "여호와여! 내가 내 자신이나 내가 갖고 있는 풍족함이나 다른 피조물에게로 피하지 않고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소서. 주께서 내게 약속하셨으므로 나도 주 안에서 약속했던 그 훌륭한 것들에 대해 결코 실망케 하지 마소서."
1. 그는 하나님을 그의 보호자로 택했고 하나님은 그렇게 되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3절). "주는, 나와의 언약과 그 언약에 따르는 내 믿음에 의해,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이다. 그러므로 내게 견고한 바위가 되소서."(2절). 주를 진심으로 그들의 주로서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에 의한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명분과 실질적인 내용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4절). 하나님이 진정 우리의 산성, 곧 힘이라면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그의 힘을 주시고 우리는 위해 그의 힘을 방출하실 것을 바랄 수 있다.
2. 그의 영혼을 특별히 하나님께 맡겼다(5절).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1) 다윗이 여기에서 그 자신을 죽어가는 자로 간주하고 있다면 이 말에 의해 그는 그의 떠나는 영혼을 그것을 주신, 그리고 죽을 때 영들이 돌아가는 하나님께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단지 육신밖에는 죽이지 못하며, 나는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는(49:15) 하나님께 의지하나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기꺼이 죽으려 하고 있다. "주의 긍휼이 크시니" 나의 영혼을 "주의 손에 맡기도록"하자. 이 말씀과 함께 우리 주예수는 십자가 위에 영혼을 맡기셨고, 그의 영혼을 제물로 삼아 자발적으로 그의 생명을 바침으로써 스스로 속죄물이 되셨다. 스데반의 본보기에서 우리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주목하고 우리의 영혼을 그에게 맡기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2) 그러나 다윗은 여기에서 환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자로 간주되어야 한다.
[1] 그의 큰 관심은 그의 더 나은 부분인 그의 영혼과 영에 관한 것이었다. 외적인 환난이 있을 때 우리의 영혼에 대한 관심을 증가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 일로 혼란을 겪고 섭리가 그들로 하여금 더욱더 환난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드는 동안에는, 그들이 영혼을 소홀히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과 세상적인 이익이 위기에 처할수록 더욱 우리의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손상되지 않도록(고후 4:16), 그리고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을 때에도 우리의 영혼만은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눅 21:19).
[2] 그는 그가 영혼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과 그를 굳게 의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육적인 환난의 그물에서 빠져나오게 될 것을 간구했다(4절). 그러나 그는 그 청원이 즉시 이행 될 것을 간구했다(4절). 그러나 그는 그 청원이 즉시 이행될 것을 주장하지 않고(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이다).그 영 곧 속 사람을 하나님의 손에 부탁했다. "주여, 환난이 내 몸에 해를 끼칠지라도 내 영혼은 해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엄숙히 부탁하여 그의 은혜에 의해 그것을 성별케 하고 그의 영예에 헌납되게 하고 그의 봉사에 전념케 하며 그의 나라에 합당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 각자의 지혜이며 의무이다.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부탁하도록 격려하는 것은 그가 그것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구원하기도 하셨다는 사실이다. 구약 시대의 교회의 특별한 구속과 구약시대의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우리의 구 속의 표상이었다(창 48:16). 영혼의 구속은 매우 엄청난 것이므로 만일 그리스도가 성취하지 않으셨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영원히 중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심으로서 그는 우리의 영혼을 그 자신의 것으로서 그에게 부탁하도록 우리에게 명할 수 있는 부가적인 권한과 자격을 얻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그의 특별한 친절과 관심을 보여 주셨는데,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그의 천국에 보관시키기 위해 보여 주셨는데,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그의 천국에 보관시키기 위해 그것을 그에게 맡기도록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딤후 1:12).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주께서 진실로 이루어 주시리라는 그 약속대로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Ⅲ. 그는 육신의 팔을 신뢰하고 있는 자들과의 동맹을 모두 거절했다(6절).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나이다." 이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허탄하고 거짓된 신들로부터 도움을 바라는 우상 숭배자들로 보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점성가나 그러한 자들을 마음에 두는 자들로 보고 있다. 다윗은 마술과 점술을 사용하는 것을 혐오했다. 그는 새의 비상이나 짐승의 내장, 길조나 흉조에 상관하지 않았고 또 그것에 유의한 적도 없었다. 그러한 것들은 허탄한 거짓이었으며, 그는 그러한 것들에게 호감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행한 자들의 사악함을 미워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고 그 어떤 피조물도 의지하지 않았다. 궁궐이나 나라에서의 그의 세력, 그의 피난처나 요새, 그리고 심지어 골리앗의 칼 자체까지도 허탄한 거짓이었으므로 그는 이러한 것들을 의지할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다(60:4; 렘 17:5 참조).
Ⅳ. 그는 하나님께 둔 그의 소망으로 그 자신을 위로했고 그것으로 편하고 즐겁게 되었다(7절).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했으므로 그는 그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근심을 견제하고 슬픔을 평정시키기에 충분한 기쁨을 하나님께 대한 소망 속에서 발견할 수 없는 자들은 그 소망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자들이다.
Ⅴ.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최근이나 이전에 얻었던 체험에 의해 이러한 소망 속에서 그 자신을 격려하였다. 건지신 이가 그렇게 하셨고 앞으로도 하실 것이다.
1. 하나님은 그의 환난들과 그 모든 상황을 감찰하셨다.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지혜로써 그것에 합당한 위로를 주셨고, 겸양과 긍휼로써 주의 종의 비천한 상태를 주목하셨나이다."
2. 하나님은 이 환난 중에 있는 그의 영혼의 상태와 심경의 변화를 살피셨다. "주께서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자상한 관심을 가지시고 돌보셨나이다." 우리가 환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눈은 우리의 영혼 위에 있어서 우리의 영혼이 죄에 대해 죄송스럽게 여기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환난에 의해 더 나아지는 가를 보신다. 환난 가운데 던져진 영혼이 진실된 신앙으로 그를 우러러본다면 그는 그것에 아시는 것이다.
3. 하나님은 그일라에서 그를 아주 안전케 하시어 사울의 손에서 구하셨다(삼상 23:7). "주께서 나를 대적의 수중에 금고치 아니하셨고 나를 자유롭게 하시어 내 안전을 위해 나를 넓은 곳에 보내셨습니다.(8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말씀하신 것(5절)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적용하도록 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를 의지했고 그 아버지에 의해 힘을 얻고 건지워졌으며, (그가 그 자신을 낮추셨으므로) 높이 들리워지셨던 것이다. 이 구절들을 노래할 때 우리는 이러한 것에 대해 생각하여야 하며, 또한 환난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롭게 임재하신 경험을 깨닫고 앞으로도 그를 의지하도록 우리 자신을 격려하는 것이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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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소와 믿음의 간구 (시편 31:9-18)
앞에 나온 구절들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호소했고 하나님께 대한 그의 관계와 그를 의지하는 사실을 진술했다. 여기에는 그는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하고 있으며 그의 극심한 비참함을 탄원하고 있는데, 그 비참함은 그 긍휼을 구하기에 합당한 대상물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Ⅰ. 그의 환난과 고통에 대한 호소(9절).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그리고 내가 주의 긍휼을 필요로 하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가 그의 상황을 되돌아보고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욥의 원망과 매우 비슷하다.
1. 환난은 그의 마음에 깊은 충격을 주었고 그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의 고통은 너무 컸으므로 그것으로 인해 그의 영혼은 쇠하였고 그의 생명은 소모되었으며 또 그는 계속 탄식하였다(9,10절). 여기에서 그는 슬픔과 매우 친숙했고 자주 눈물을 흘리셨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우리는 붉고 혈기 있는 그의 안색과 그의 음악에 대한 재주, 그리고 그의 초년기의 대담한 시도에 의해 그의 본래의 기질이 명랑하고 건실하다는 것을, 마음에 고통을 두지 않고 유쾌하게 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거의 눈이 쇠할 정도로 울고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쾌활하고 유쾌한 자들은 극단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결코 슬픔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그들이 진중하게 되는 것을 배우려 하지 않을 때 그들을 우울하게 만드시는 방법을 찾아내실 수 있는 것이다.
2. 그의 몸은 그의 마음의 슬픔으로 영향을 받았다(10절).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여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그는 사울에 대한, 그리고 그와 가졌던 싸움에 대한 자신의 의로움을 확신을 갖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환난에 대해서는 그가 그것을 마땅히 받아야 함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의 모든 환난을 초래하는 요인이 되었던 그의 죄악을 솔직히 자백하고 있다. 그리고 죄책감은 그 어떤 재앙보다도 더욱 그를 괴롭혔고 또 쇠하게 했다.
3.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불친절했고 그를 부끄럽게 여겼다. "그의 친구가"그에게 "놀라고"길에서 그를 보았을 때"그를 피하였다"(11절). 그들은 사울이 그를 반역자로 선포하고 그에게서 법률상의 보호를 박탈해 버리자. 해를 당할 것이 두려워 감히 그를 숨겨주려 하거나 도와주려 하지 않았고 그에게 얼굴도 내밀지 않았으며 친구로 보이기조차 꺼려하였다. 그들은 비록 모르고 한 일이더라도 제사장 아히멜렉이 얼마나 극진히 그를 돕고 격려하는가를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윗에게 큰 잘못을 행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 나타날 용기를 갖고 있지 못하였다. 그는 그들에게서"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같이" 잊혀졌고, "파기(破棄)와 같이"멸시받았던 것이다(12절). 그가 궁중에서 영화를 누리고 있을 때 온갖 경의를 표하던 자들이 이제 그가 수치스러운 지경에 이르게 되자, 부당하게도 그를 외면했다. 세상은 겨울에는 사라질 이처럼 경박한 친구들로 가득하다. 몰락해 가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이처럼 경박한 친구들로 가득하다. 몰락해 가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이처럼 버림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하늘에 계신 친구가 그들을 결코 버리질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신뢰하고 그의 도움을 얻도록 하자.
4. 그의 대적들은 부당하게 그를 책망했다. 만일 그들이 먼저 그를 악인으로 진술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처럼 그를 핍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그의 이웃에게는 심히 당했다"(11절). 다윗의 순전함의 증인이 되어왔던 자들, 그리고 그가 정직한 자라는 것을 그들의 양심으로 깨닫지 않을 수 없었던 자들로 사울의 총애를 얻기 위해 그를 정반대로 진술하는 일에 가장 앞장섰다. 이처럼 그는 "무리의 비방을 들어왔다." 각 사람은 그에게 던질 돌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방에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의 이웃과 합세하여 다윗을 욕하려 하지 않는 자는 사울을 싫어하는 자로 간주되었으므로 그들은 달리 행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가장 훌륭한 사람들도 그들에게 가장 나쁜 대우를 하고자 결의한 자들에 의해 가장 나쁜 인물로 평가받곤 했다.
5. 그의 생명은 과녁이 되어 있었고 그는 계속적인 위험으로 빠져 들어갔다. 두려움은 사면 팔방에 있었으며, 그는 자기 대적들이 그를 해하려고 취한 모의가 무엇이든 간에 그 계획은 자기의 자유를 박탈해 가려는데 아니라 그의 목숨을 빼앗아 가려는 것인 줄을(13절) 알았다. 그 생명은 매우 귀중하고 유용한 것이며, 온 이스라엘 이 그 생명의 충실한 봉사에 수많은 신세를 졌던 빼앗길 수 없는 목숨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 대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의 모든 음모속에는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그 목적이 여전이 남아 있었다. 그러한 것이 바로 독사의 종자들이 갖는 반목질시와 잔인함인 것이다.
Ⅱ. 이러한 고통 가운데 갖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 그의 주위에 있는 만사가 캄캄하고 음울하게 보였고 그를 절망으로 몰아가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여! 나는 당시께 의지하였고(14절), 그리하여 몰락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의 원수들은 그로부터 인생 중의 명성을 강탈해 갔으나 하나님 안에서 얻는 그의 위로는 빼앗아 갈 수는 없었으니, 이는 저들이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심만은 그에게서 축출할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는 곤경 중에서도 두가지 일로 자위하였고 하나님께 가서 그것들을 가지고 탄원하였다.
1. "주는 내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당신을 내 하나님으로 택하였고 주는 내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그런데 만일 그가 우리의 하나님이고 우리는 믿음에 의하여 그를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우리가 그 외의 어떤 것을 우리의 것이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족한 것이다. "주는 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오니 내가 주께로가 아니면 누구에게 구원을 구하러 가겠습니까?" 이와 같이 탄원할 수 있는 자들은 저희 기도에서 곤란을 당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기로 작정하신다면 그는 우리 하나님이 되신다는 그 약 속의 범위와 무한한 한계에 부합하는 일을 우리에게 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 "내 시대는 주의 손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전자와 결합해보면 그것을 완전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의 시대를 그 수중에 장악하고 계신다면 우리를 도우실 수가 있으시며, 그가 만약 우리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무엇이 우리를 낙심케 하겠는가?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에게는 저들의 시대가 그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이 큰 뒷받침이 되며, 하나님은 여기에서의 다윗처럼(5절) 자신의 영을 그들의 시대에 적합하게 만들어 달라고 그의 손에 의탁하는 모든 자들을 가장 좋도록 수배하고 처리해 주실 것이다. 인생의 시간을 길거나 짧게, 혹은 씁쓰레하거나 감미롭게 만드는 것은 그의 의지의 계획에 따라, 그가 원하시는 대로 좌우되는 것으로서 그의 손에 달린 것이다. 우리의 시대도(우리와 관련된 모든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시기) 하나님의 처분 하에 있다. 그것들은 우리 자신의 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니, 인생의 길은 인간 그 자신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친구 손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원수들의 손에도 아닌,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까닭이다. "모든 사람의 심판은 그로부터 나온다." 다윗은 그의 기도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지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동의하고 있다. "여호와여, 내 시대가 당신 손에 있으며 나는 그 사실을 매우 기뻐합니다. 그것은 더 좋은 손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리이다."
Ⅲ. 이런 신앙과 신뢰 중에서 그가 하나님께 드린 청원.
1. 하나님께서 그를 그 원수들의 수중에서 구출해 주시고(15절),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드리는데 이것도 또한 하나님의 자비를 위해서이지 그 자신의 어떤 공적을 위한 것을 아니다. 우리의 기회들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어떤이들은 해독한다). 그러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데에 있어서 어떤 시간이 가장 좋고 가장 적절한 시간인지 선택하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 그 시간까지 기꺼이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다윗이 동굴속에서 사울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의 주위에 있는 자들이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해낼 그날이니이다(삼상 24:4)"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아니다. 범죄하지 않고 이것이 행해지기까지는 내 구원의 때가 이르지 아니한다. 나는 그 때를 기다리겠다. 그것은 하나님의 때인 까닭이며 또 그 시간이야 말로 가장 좋은 때인 연고이다"라고 말하였다.
2. 그는 그러한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그의 은총에 의한 위로를 베풀어 주십사고 기도드린다(16절). "주의 얼굴을 주의종 위에 비추소서. 내게 대한 위로의 증거와 당신의 은총의 증거를 갖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모든 비탄 가운데에서도 그것이 내 마음에 기쁨을 담아 줄 것입니다."
3. 하나님께 드리는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하나님 안에 두고 있는 그의 소망을 성취시켜 주실 것을 기도드리고 있다(17절). "나로 내 소망과 기도를 부끄럽게 마옵소서. 이는 내가 주를 불렀기 때문이 그러므로 당신께서는 주의 백성에게, "헛되이 찾으라, 헛되이 바라라"고 결코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4, 그는 수치와 침묵이 악인들, 특히 자기 원수들의 분깃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드리고 있다. 그은 다윗에게 대한 그들의 성공을 의심치 않았고 그를 넘어뜨리고 파멸시키리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마치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 건축을 방해하던 자들이 그 공사가 완성되자 스스로 낙담하였던 것같이(느 6:16), "여호와여, 저들로 하여금 저희 기대가 어긋남으로 인하여 자신이 확신하던 것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소서." 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을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사망은 이성이 침묵시킬 수 없었던 잔혹한 박해자들의 분노와 요란스러움을 잠잠하게 할 것이다. 무덤에서는 악인들도 더 이상 재난을 일으키지 않는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비난하고 중상 모략하는 자들을 잠잠케 해 주시기를 기도드리고(즉 예언하고) 있다(18절).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로 벙어리되게 하소서."
(1) 이것은 우리가 종종 하나님께 드릴 필요가 있는 대단히 좋은 기도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입을 열어 하늘을 대적하는 자들은 보통 하늘의 상속자들도 비방하기 때문이다. 종교와 그 종교의 엄중하고도 진지한 고백자들은 도처에서 공박을 받는다. 그 공박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1] 매우 큰악의, 그들은 고의로 의인들을 괴롭히려고"완악한 말들"을 지껄이며, 자기들이 하는 말이 그들에게 실제로 화를 입힐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들이 지껄이는 "완악한 말들"은 의인들에게 무거운 부담이 되며, 그들은 이로써 의인들에게 지울수 없는 오명의 평판을 덮어 씌우고자 한다.
[2] 아주 많은 허위, 그들은 "거짓 입술"로서 거짓말하는 아비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것을 그의 이해 관계를 위해 사용한다.
[3] 매우 심한 경멸과 멸시, 그들은 하나님께서 존귀하신 의인들이 흡사 세상에서 가장 천한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개들과도 자리를 함께 할 가치가 없는 존재들인 양"교만하고 무례하게" 말한다. 그들은 선량한 자가 증오나 모멸을 당하도록 하기 위해 고의로 거짓말한다는 것은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믿어진다. "들으소서, 우리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멸시 당하고 있나이다."
(2) 이것은 우리가 믿음 안에서 기도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기도이다. 이 거짓말하는 입술들이 잠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행하시는 데에 많은 방법들을 가지고 계신다. 때로는 자기 백성을 비난하는 자들로 하여금 양심을 깨닫도록 하여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고, 때로는 그의 섭리로써 저희의 비방을 눈에 보이게 논박하시고 자기 백성의 의로움을 빛과 같이 드러내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경건치 못한 죄인들이 자기의 백성을 쳐서 말한 모든 강퍅한 언사와 그 허위성을 인하여 그들을 깨닫도록 하시고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날이 올 것이다(유 14,15). 그 때가 되어야 이 기도는 충분히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니 우리는 그날에 이르기까지 가능하다면 선행으로써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는일"(벧전 2:15)에 전념하며 그 일을 칭송하는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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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와 개가 (시편 31:19-24)
우리는 이 구절들에서 세 가지 일을 대하게 된다.
Ⅰ. 다윗은 자기 백성에게 보편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다(19,20절).
1. 하나님은 모든 자에게 선하시며, 특히 이스라엘인에게 선하시다. 그들에게 대한 그의 선하심은 훌륭한 것이며 영원에 이르기까지 찬양할 일이 될 것이다. "주의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그것의 계획은 얼마나 심원한 것인가! 그 은혜로우심의 보고는 어찌그리 부요하며, 그것의 전달은 얼마나 자유스러우며 광범위한 것인가! 인간들의 중상모략을 퍼부어 대었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명예를 쌓아 주신다. 이 은혜로우심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를 신뢰하는 그런 자로, 또 하나님의 위대성을 경외하고 그의 은혜를 의지하는 자로서 표현된다. 이 은혜는 "그들을 위해 쌓아 두어져 있으며 그런 자들을 위해 베풀어진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1) 그들을 위하여는 쌓아 논 은혜가 딴 세상에 있으며, 그 기업이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벧전 1:4) 또 이 세상에서 그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 안에서 베풀어질 은혜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풍족하여 그의 모든 자녀들이 성년에 이르게 되어도 그들의 분깃과 상속을 위해 충분히 베풀수 있으며, 또한 그들이 미성년으로 있을 동안에 그들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 베풀기에도 충분하다. 그의 인자하심은 저축해서 준비하시고 계신 것도 족하며 손에 들고 나누어 주시는 것도 충분하다.
(2) 이 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모든 이들을 위해 그의 약속 가운데에 저축되어 있으니, 신을 경외하는 자들은 결코 은혜로운 것들을 부족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은혜는 그 약속이 실제로 이행될 때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던 자들을 위해 베풀어진다. 즉 믿음으로써 그 약속을 굳게 믿고 탄원하여서 그 약 속의 혜택과 위로를 스스로 끌어내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만약 우리를 위해 영원한 언약의 보고 속에 쌓여 있는 것이 우리에게 베풀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자신의 흉중에 그의 은혜로 인하여 위로를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은혜에 대해 신용도 하고 있다(어떤 이들에게는 부동산에 대한 신용이 한층 더 큰 것이다). 그 은혜는 "인간들의 자손 앞에서" 그들에게 베풀어진다.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에게 존귀함을 입히시며 그들이 받는 비난을 떨쳐버리시다."무릇 그들을 보는 모든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사 61:9).
2. 하나님은 인간과 짐승을 다 보존해 주신다. 그러나 그는 특별히 자기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자이다(20절). "주께서 저들을 숨기시리이다." 그의 은혜가 그들을 위해 숨겨져 있고 예비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의 은혜를 위해 숨겨져 있으며 보존되어 있다. 성자들은 하나님께서 숨겨놓은 자들인 것이다.
(1) 그들이 처하여 있는 위험은 인간의 교만과 구설의 다툼에서 유래한다. 교만한 자들은 그들을 모욕하며 그들을 유린하고 짓밟으려 한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그들에게 싸움을 건다. 선량한 사람들도 구설로 다툼이 생길 때는 흔히 극단적으로 행하는 수가 있다. 인간들의 자만심을 저희의 자유를 위태롭게 만든다. 또한 왜곡된 논쟁으로 구설의 싸움을 벌이는 것은 진리를 위태롭게 한다.
(2) 그러나 그들이 받고 있는 방어를 살펴 보라.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인물한 곳에, " 곧 "장막 속에 숨기시리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들을 저희 원수들의 악의로부터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실 수 있는 많은 방법을 갖고 계시다. 바룩과 예레미야가 수색을 당하였을 때"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던" 것이다(렘 36:26). 하나님의 은혜는 만연되어 있는 심판의 해로부터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이다. 그들에게는 심판의 해도 찌르지 아니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숨기울 것이니 그 이유는 그들에겐 진노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안위하심은 그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지켜 주실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친교를 맺을 수 있는 그의 피난처는 공포와 유혹의 열화와 같은 화살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준다. 그리고 위에 있는 그의 집의 여러 자택들은 모든 위험과 두려움으로부터 저희가 즉시 숨어버릴 수 있는 은닉처가 될 것이며 또한 영원히 숨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될 것이다.
Ⅱ.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개인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에 대해 감사의 답례를 드리고 있다(21,22절). 모든 성도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칭송한 뒤 다윗은 이제 자기가 발견한 하나님이 얼마나 인자하신 분인가 하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1. 밖에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훌륭하게 그의 생명을 보존해 주셨던 것이다. "그의 기이한 인자를 내게 보여 주셨음이로다.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내게 대한 그의 보살핌과 은총의 본보기를 보여 주셨도다." 자기 백성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그 몇 몇 실례는 이 세상에서도 특별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들이 보기에도 경이로운 것이다. 다윗은 본문에서처럼 하나님께서 동굴과 삼림 속에서 그를 사울의 칼로부터 보호해 주셨을 때 마치 견고한 성안에 있는 것같이 안전하였다. 하나님은 저 견고한 성 그일라에서 그에게 큰 자비를 나타내셨으니, 즉 블레셋인들의 수중으로부터 그 거민들을 구출해 내는 데 그를 도구로 사용하시기도 하셨고, 또 배은망덕하게도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려고 한 그일라 주민들로부터 다윗을 구원해 내시기도 하셨던 것이다.(삼상 23:5, 12). 이일은 참으로 놀라운 인자하심이 아닐 수 없었고 다윗은 이 일에 대해 경이로움과 감사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특별한 보호하심에는 특별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2. 안에는 두려움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두려움보다 더 승하셨다(22절).
(1) 그는 자기가 하나님을 불신하면서 행한 자기의 어리석은 짓에 대해 여기서 기술하고 있으며, 이것을 자기의 수치로 감수하면서 고백하고 있다. 그가 의뢰할 만한 명백한 약속을 받았고 많은 곤경 중에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보살피심을 크게 경험했으면서도 그는 하나님께 대해 이렇게 완악하고 질투심 많은 생각을 품었었고 그것을 그의 면전에서 말하지 않고는 뱃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주의 목에서 끊어졌사옵니다. 주께서는 저를 아주 버리셨고 따라서 저는 이 이상 더 당신께로부터 보살핌이나 배려를 기대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따라서 나는 주의 목전에서 끊어지며 당신께서 주시하는 가운데 멸망할 것입니다.(삼상 27:1)." 그는 그의 "도주"시에(혹자는 이렇게 해독한다)이 말을 하였으며 이것은 그의 사태가 곤고했음을 나타내 준다. 사울은 그의 등 뒤에 바짝 쫓아왔고 바야흐로 그를 생포할 지경이었으므로 그는 이 말을 하고 싶은 유혹을 강렬하게 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나의 경겁 중에"로 해독하는데 이것은 다윗의 마음이 혼란하고 평정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그 시험을 당황한 중에 받아들였고 방심한 상태에서 그 유혹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가 성급히,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말하는 경우에 실언이 튀어나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급한 김에 실언한 말이라도 한가한 때에는 뉘우치지 않으면 안 되며 특히 하나님께 대해 의심을 가지고 한 말은 더욱 뉘우쳐야만 한다.
(2)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자비에 대하여도 여기서 언급하고 있다. 비록 그의 믿음은 쇠퇴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어긋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모든 서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그는 그 자신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더욱 기이하게 하고 더욱 혁혁하게 하는 데에 기여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서 언급한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하나님은 그가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듯이 그러한 우리말에 합당하게 우리를 취급하시고 우리에게도 두려움이 임하게 하실 것이다(민 14:28; 사 66:4). 그런데도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용서하시고 우리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그의 약속과 은혜를 무효화시키지 않으셨으니, 이는 그가 우리의 형편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Ⅲ. 다윗은 여기에서 모든 성도들에게 권고와 격려를 하고 있다(23,24절).
1. 그는 모든 성도들이 그들이 사랑을 하나님께 두도록 원하고 있다(23절).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처럼 마음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자들은 타인들도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성도들의 특질이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여전히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더욱 많이 사랑하고 더 잘 사랑하라는 것. 그리고 저희 사랑의 증거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이는 "그가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공의를 인하여서도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니 이는 그가(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자들을 파멸시키고자)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그들의 교만에 따라 "엄중히 갚으시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 단어를 좋은 의미로 해석한다. 즉 그는 당당한(혹은 훌륭한) 선행을 하는 자에게는 풍부하게 갚아주시는 것이니, 그러한 자는 담대하게 선하여 여호사밧의 마음처럼 그 마음이 여호와의 길을 향해 들리워 있는자이다.
2. 그는 그들이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도록 원하고 있다(24절). "강하고 담대하라. 그것에만 전심하라. 어떤 곤난이나 위험에 부딪치더라도 네가 신뢰하는 하나님께서 그 신뢰에 의하여 네 마음을 강하게 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 희망을 거는 자들은 강하고 담대할 만한 이유를 가지며 저희 마음을 강하게 되도록 할 만한 근거가 있으니, 이는 어떤 해도 그들에게 실제로 닥칠 수 있듯이 어떤 참다운 복도 그들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노래함에 있어 우리는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또 누가 우리에게 상을 찡그리든지 간에 우리 자신과 아울러 서로 서로를 격려하여 그리스도인의 여정을 계속해 나아가고 그 걸음을 굽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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