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디피티(Serendipity)
나는 한 여자를 30년간 짝사랑을 하고 있다.
내가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집 식구들과 나를 아는 지인들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라 감출 것도 없다. 그녀의 이름은 ‘선희’다.
그렇게 대단한 운명까진 바란 적 없다 생각했는데
그대 하나 떠나간 내 하룬 이제 운명이 아니면 채울 수 없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한 내가 어제 같은데
그대라는 인연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 어린아이가 됐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나를 꽃처럼 불러주던 그대 입술에 핀 내 이름
이제 수많은 이름 중 하나 되고
오 그대의 이유였던 나의 모든 것도 그저 그렇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 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노랫말 김이나, 곡 박근태, 노래 이선희
내가 하루에 몇 번씩 듣는 노래, 「그 중의 그대를 만나」는 내가 늘 생각하고 떠올리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선희의 가수 데뷔 30주년 기념, 이선희 정규 앨범 제 15집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타이틀곡이다. 나는 이 노래 가사처럼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이선희를 만나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
이선희, 가수 이선희,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이선희…….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사전적 정의는 우연한 만남으로 인한 큰 행복 또는 즐거움이다. 나는 정말 이선희를 우연히 알게 되어 큰 행복을 얻었다.
선희를 처음 알게 된 건 내가 대학에 복학해서 다니고 있던 3학년 때였다. 선희의 첫 등장을 아는 사람들은 다 기억하겠지만 예쁘다거나 귀엽다고는 전혀 할 수가 없는 촌스런 외모였다.
그녀가 MBC방송국에서 주최한 제 5회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하면서 갑자기 등장을 했는데 선희의 첫 모습은 정말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날 그녀의 모습을 보진 못했고 며칠 뒤에 얘기만 들었다.
바지를 입고 다니다가 그날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남의 치마를 빌려 입고 나왔다는 둥, 가수를 반대하는 부모님이 알아보실까봐 머리를 이상하게 파머를 했다는 둥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 아이가 있는가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당시에 강변가요제는 같은 방송국에서 개최하는 대학가요제보다는 질이 좀 떨어지는 무대로 대학가요제가 4년제 대학에 다니는 학생만 나올 수 있었음에 비해 2년제 대학생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한 노래보다 강변가요제에서 입상한 노래들이 한 수 뒤진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런데 그렇게 등장한 이선희가 84년 KBS 방송 가요대상 신인상, '84 MBC 10대가수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등 데뷔 직후에 대박이 났다. 가요제를 통한 신인가수가 그렇게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것은 전무후무한 일일 게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이선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도 이선희에게 빠졌다. 이선희는 보령 주포가 고향이라 내가 태어난 곳에서는 오서산을 서로 등지고 있는 멀지 않은 곳이다. 충청도 사람들 중에 가수는 보기 드문데 그 보기 드문 가수 중에 이선희가 우뚝 서 있다는 게 늘 내겐 자랑이었다.
내가 대학 4학년 때에 이선희 앨범 제 1집 ‘아! 옛날이여’가 정식으로 발매되었지만 나는 그때 내가 지내는 방에 TV도 라디오도 없었다. 대학기숙사에서 지낼 때인데 이선희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건 길거리를 지나면서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학교 조교 형이 내게 일제 중고 카세트플레이어를 하나 줘서 내가 처음으로 산 테이프가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였다. 그 뒤로 내가 산 모든 노래 테이프는 20년이 넘도록 이선희 노래뿐이었다.
선희는 예쁘다. 남들이 그녀가 뭐가 예쁘냐고 내게 반문하면 나는 목소리가 예쁘다고 대답하지만 그건 솔직한 대답이 아니고 다 예쁘다. 키가 작아서 귀엽기도 하고 아담한 체구가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다. 나는 선희의 목소리뿐이 아니라 모든 게 다 예뻤다.
내가 1986년에 학교에 왔을 때는 책받침 크기의 브로마이드(bromide)가 무척 많이 돌아다녔는데 그때 가장 인기가 높던 게 이선희였다. 최진실도 있었고 강수지, 배종옥 등 인기 있는 탈랜트 거도 많았고 조금 뒤에는 서태지 거가 무척 많았지만 나는 당시에 이선희 거만 100장 가까이 가지고 있었다. 내가 직접 구매한 건 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보는 대로 가져와 내게 줘서 내 책상과 우리 집 책꽂이가 이선희 사진으로 꽉 찼다.
돈을 주고 가수가 노래하는 콘서트에 가 본 건 이선희 때문이었다. 맨 처음엔 문화일보 홀에서 하는 거였고, 뒤에 세종문화회관과 대학로 라이브극장에서 할 때에 여러 번 갔다. 혼자 간 적은 없었고 집사람과 이선희를 좋아하는 지인들은 다 불러서 갔는데 보통 열 명 정도가 같이 갔다. 그 경비는 내가 다 부담했다. 그래도 이선희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에는 종로서적 예매센터에 아는 사람이 있어, 이선희콘서트를 할 때면 미리 부탁해서 앞에서 세 번째 줄 가운데에 앉을 수 있는 표를 구해서 다녔다. 그런 자리에서 보면 선희가 나를 보면서 노래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는데 가슴이 자갈길을 달리는 마차처럼 뛰었다.
선희가 마포구에서 서울시의회 의원에 출마했을 때, 달갑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당선되기를 진심으로 바라 지지하는 발언을 버스 안에서 했다가 연세 드신 분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내가 크게 도와준 건 없지만 선희는 당당하게 서울시 의원으로 당선이 되어 교육 분야에서 활동을 했다. 자랑스러웠다.
선희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딸을 낳았고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여 남편과 이혼했다는 소식을 차례로 들었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결혼을 한 게 가슴 아픈 게 아니라 이혼을 한 게 안쓰러웠고 나중에 이혼한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게 가슴 아팠다.
선희는 90년대 중반에 새로 등장한 가수들에 밀려 하향세를 타게 되었다. 이제 가수는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춤을 추면서 무대를 휘어잡는 시대로 변모했고 그런 시대적 요구에 따라 새로 등장한 신인들에 의해 기존 가수들은 하나씩 무대에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선희도 그 여파로 슬럼프에 빠진 거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 늘 내어놓기만 하면 엄청나게 팔리던 음반의 판매가 저조해지고 새 노래가 나와도 청중들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아서 걱정했지만 나는 그래도 늘 그녀의 음반을 여러 장을 사서 지인들에게 돌리고 그녀의 노래만 들었다.
선희는 2002년 한국월드컵으로 다시 돌아왔다. 월드컵경기를 하는 동안 한국 팀이 출전하는 날 응원무대에 늘 초대가 되어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신들린 가창력으로 그녀가 한물이 간 게 아니었음을 스스로 보여주면서 재기를 예고했다.
2005년 선희가 모두 작사·작곡한 13집 《사춘기》를 발매하면서 대표곡 「인연」이 천만관객달성 영화 "왕의 남자"의 OST로 삽입되며 큰 인기를 얻어 국민가수의 명칭을 받게 되며, 중견가수로써 화려한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선희는 KBS2의 ‘불후의 명곡’, MBC의 ‘위대한 탄생’, JTBC의 ‘히든 싱어’ 등에 출연하면서 가수로서 최고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목소리를 보호하기 위해 여름에도 목에 스카프를 하고 다니며 목에 무리가 가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선희, 사교적일 거 같은 구석은 하나도 없는데 선후배 가수들 잘 챙기는 걸로 유명하고 특히 후배가수들 콘서트에 빠짐없이 다닌다는 얘기는 그녀를 다시 보게 만든다. 내가 정말 놀란 건 선희가 가수 주현미와 가까운 사이여서 주현미 30주년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갔다는 얘기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닌가…….
나는 선희의 모든 걸 다 좋아하지만 가끔은 TV에 나와 모범학생 같은 얘기만 늘어놓은 게 불만스럽다. 하기는 늘 그런 모습으로만 비춰졌으니 그걸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기엔 너무 힘들겠지만 50대 우리나라 아줌마 같은 모습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선희, 나는 그녀를 만나서 30년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게 짝사랑일지라도 그녀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행운이다. 나는 선희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남아있기를 바란다.
지난 30주년 콘서트에는 일이 있어 못 갔지만 앞으로 40주년, 50주년 콘서트에 반드시 갈 생각이다.
선희가 부탁하는 거처럼 나는 그녀를 마음으로만 사랑하지만 그 뜨거운 마음은 언제나 멈출 수가 없다.
첫댓글 음악과 삶에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선희 저도 좋아합니다
잘 읽었습니디 시우님!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불꽃이글스가 세렌디피티가 되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시우 명절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올려주시는 글 매번 감사히 잘 보고 있어요..
@위트맘 네 감사합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선희는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가진 저도 좋아하는 가수입니다.
그리고 충청도 출신 가수중에 제 친구 이종사촌형인 유명한 신승훈도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설날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저도 신승훈 가수 좋아합니다.
시원하죠. 그 탁트인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네 역시 압권이죠,,,감사합니다.
이선희님은 시원한 목소리가 아주 속까지 시원하게 해주죠.. 서태지는 제가 고딩때 좋아라했던 가수중 하나~^^ ㅎㅎ 시우님 덕택에 오늘 선희언니 노래좀 들어야겠네요 속 뻥뚤리게요. 감사합니다 즐거운설연휴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늘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