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불성(佛性)의 시혼과 서정적 자아
-전명옥 시집 『 』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불심(佛心)의 투영과 자비의 승화
현대시의 경향이랄까 작품 속에 투영하는 주제의 양상은 시인의 체험(삶의 궤적(軌跡))에 따라서 다양하게 현현(顯現)되는 시법(詩法)을 선호하는 경우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적 발상에서부터 상황전개와 추출하는 이미지 그리고 사용되는 언어에 이르기까지 체험에서 창출된 그 시인의 상상력의 재생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는 체험적 시론과 연계하지 않더라도 그 시인에게 깊이 잠재(潛在)된 정서와 사유(思惟)의 원류는 삶이라는 근원에서 발흥(勃興)하기 때문에 시인들이 감명있게 새겨둔 인생적인 각인(刻印)에서 주제로 흡인(吸引)하는 경우가 대부분의 시인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 전명옥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을 일독(一讀)하면서 이와 같은 체험의 중요성이 바로 그의 작품에 명민(明敏)하게 투영되어 있어서 곧 시는 인생이다라는 잠언적인 진실이 포괄(包括)하고 있다. 이는 그가 작품으로 발상하거나 표현해야 할 상황들이 그가 직접 현재 접하고 있는 삶의 현장과 과거에 축적된 상상력이 다시 창조적으로 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워어즈워스는 시는 힘찬 감정의 발로이며 고요로움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에 그 기원을 둔다는 말로 시의 형성요건이나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회상되는 정서’는 바로 전명옥 시인이 탐색하면서 구현하려는 불성(佛性)에서 시적 위의(威儀)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푸른 잎사귀 너울대고
옥빛 하늘 구름밭에
사슴사슴 소망의 연꽃은
봄바람에 저마다
나빌레라 춤을 추고
해처럼 맑은 천진불
고뇌의 찬 미륵불
손에손에 등불 들고서
한 걸음 두 걸음 대자대비
부처님께 정진하네
순이도 옥이도
무릎 끓고 두 손 모아
연꽃 한 송이
우주 뭇별 향해 올리니
천사 나팔소리 들려오는가
--「연등」 전문
전명옥 시인에게서 우선 감지(感知)할 수 있는 시적 감응(感應)은 그가 불성과 화해하는 다양한 지향점을 적시(摘示)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적 진실은 그가 응시한 사물 ‘연등’에서 추출한 이미지가 ‘해처럼 맑은 천진불 / 고뇌의 찬 미륵불 / 손에손에 등불 들고서 / 한 걸음 두 걸음 대자대비 / 부처님께 정진하네’라는 어조(語調-tone)로 고즈넉한 공감으로 유로(流路)하고 있다.
그는 ‘부처님께 정진’하는 그의 심저(心底)가 그의 시적 진실로 현현할 때 비로소 그의 삶과 불심이 일치하는 안온한 정감(情感)으로 공감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지향하고 소망하는 시정신이며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갈길 담담히 걸음하니
고통 없는 몸뚱이 안정함이
내세울 건 터럭만큼 없지만
부족함 모르는
계곡의 물 이리저리 흘러
바위에 부딪치고
조약돌 스치어도
유유자적 흐르는 물
사방 관세음의 가피 속에
아미타불 노래를
--「가피」 전문
우리는 불성과 시정신의 상관성에서 탐색하는 지향점이 지극히 유사(類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우리 시가 추구하는 주제의식은 인본주의(humanism)를 근원으로 해서 우리 인간들이 구현해야 할 덕목(德目)인 진선미(眞善美)의 실현방법의 모색이라는 대명제로 삶을 영위하는 정신적인 문제의 조화에 있다면 이 불교정신도 동일하게 탐진치(眈嗔痴)라는 불교적 수행방법에서 창출하는 ‘나-心我-眞我)’를 궁구(窮究)하는 정신의 수양과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觀點)에서 보면 불교가 우리 사회와의 역할이 막중(莫重)하다는 소임은 문학에서도 많은 시사(示唆)를 교감하고 있어서 우리의 정신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그 행위에 지침을 제공하는 매체의 작용을 제공하고 있다.
전명옥 시인도 이러한 불성에서 그가 지향하는 정신세계가 곧 작품과 연결하는 시정신과 일치하는 작품을 많이 대할 수가 있다. 이 ‘가피’에서도 그는 ‘사방 관세음의 가피 속에 / 아미타불 노래를’ 부르거나 들을 수 있는 그의 뇌리에는 돈독한 불교적인 신앙에서 흡인(吸引)되는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그는 작품 「청련화」중에서 ‘함지박 같은 자비(慈悲)로 / 온갖 부재를 두루 안고서 // 주어도 주어도 넘치는 / 샘솟는 샘물처럼 / 환희심 가득 하여라’는 어조로 그와 절친한 사이이며 조계사 전 신도회장을 지내신 이연숙님을 생각하면서 쓴 시가 심금(心琴)을 울리고 있다.
이 밖에도 작품 「수종사」중에서 ‘여심은 / 운길산의 구름과 / 수종사의 풍광에 // 詩가 되고 / 禪 이뤄 / 茶 나누니 // 지나가는 길손마저 / 망중한이어라’ 또는 작품 「경주 하늘」중에서 ‘대왕암 바다 마주선 / 석굴암 부처님 // 경애의 가슴에 / 끝없는 慈悲의 힘’, 작품「대화사 오르면」중에서 ‘아미타불 상주하는 / 극락전 대화산사 // 옥담 산신각 추녀 끝에 / 소망 달고 // 애심의 보살 기도처처 / 스님의 법계 염불 타종소리’ 그리고 작품「가야산 호랑이」중에서 ‘가야산 호랑이 / 대화승 부도탑에 / 사무치는 그리움 / 엎드려 두손 모우며 / 깊은 숨 토하고 / 만고의 오도송 되내이네’라는 간절한 불심이 그의 의식에 흐르고 있어서 그의 진실이 작품과 감응하고 있다.
2. ‘중년 예찬’과 자아의 인식
전명옥 시인은 중년을 넘어서면서 자아를 인식하고 존재에 관한 다양한 실재(實在)를 체험하게 된다. 앞에서 말한 불심의 극진한 믿음도 결국 인생의 체험에서 발현된 현실적인 존재의 탐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지나온(살아온) 지난 삶에서 투영하거나 추출한 이미지들이 현실과의 괴리(乖離)에서 발생하는 철학적인 요소들이 숙성(熟成)해서 재생된 존재론적인 발견이기 때문이다.
칼바람 불어 거리에 낙엽 딩구루는 어느날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여인이
은은한 산드라 불빛 아래서
모짤트 치즈 스파게피에
고뇌에 찬 글쌈도 휘감아
함께 나누었다.
흐르는 시간을 잊은 듯
열정적 투쟁적 몰입의 삶을
터트리듯 분주하게 나누랴
따스한 카푸치노 커피는
식은 줄도 몰랐다.]
--「중년 예찬」 전문
그렇다. 전명옥 시인은 이 예찬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이제사(‘낙엽 딩구루는 어느 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흐르는 시간을 잊은 듯 / 열정적 투쟁적 몰입의 삶을 / 터트리듯 분주하게 나누’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사유하면서 중년의 실재를 분주하게 음미하고 있다.
이것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증거이다. 이것이 더욱 형상화해서 ‘지선상의 아리아 들으며 / 가을 속에 잠길 수 있어 / 흡족한 밤(「행복」중에서)’이라는 자신의 어조로 ‘행복’을 만끽(滿喫)하고 있다.
그는 다시 ‘삶은 / 촛불 이련가 // 내안의 너를 위하여 / 촛불 사르는 것 // 그 손 / 그 열정 / 그 가슴에 / 들어가 보고 싶다.(「촛불여인」중에서)’거나 ‘행복에 겹다 / 미래의 시간에 대하여 // 나의 봄은 이렇게 / 설레임으로 오는 선홍빛 아침이련가(「어느 봄날의 설레임」중에서)’라는 기원의 의지와 ‘설레임’의 인식이 현현되고 있어서 그가 존재를 인식하면서 여과장치인 성찰의 단계를 지나가고 있다.
석양은 서산마루에 지고
산너울 내려앉으면
호숫가 갈대 숲
절로 고개 숙이지
산들바람 불면 내 마음은
춤추는 허수아비
--「내 마음 갈대」 전문
전명옥 시인의 심중(心中)에는 위 작품과 같이 아주 여린 ‘갈대’에 비유하는 겸손함을 엿보게 하는데 이는 그가 보편적으로 간직한 안온한 심성(心性)의 일단이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겸허(謙虛)의식이 체질화한 그의 진정한 긍정적인 인식의 조화로써 공감을 흭득하고 있다.
그는 ‘어느새 선각자 따르고 / 어느 날 자연따라 순응하는 내가 되었네(「발란스」중에서)’거나 ‘너는 너 대로 / 나는 나 대로 // 무질서 엇박자 부조화 속에도 / 세상은 걸작이 되어 돌고 돈다(「비구상」중에서)’와 같이 그가 삶에서 구가하려는 인생관이나 가치관은 고뇌와 갈등들을 긍정하고 화해하면서 그의 진실을 투영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된다.
전명옥 시인은 현실적인 고뇌가 그의 혜안(慧眼)과 지적인 사유로 수긍하고 포괄하면서 ‘그 길이 하염없이 / 가엾고 졸렬하고 무덤덤해도 // 거침없이 가련다 / 인연 꽃길따라 가련다.(「기로에 서서」중에서)’라는 어조처럼 이제 그는 자아의 인식이 바로 긍정과 성찰의 온유(溫柔)한 시심(詩心)이 그의 내면에서 용암과 같이 용솟하는 진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가 결론으로 적시하는 삶의 지표는 바로 ‘문학의 향기’라는 해법을 제시하면서 그의 시적 진실을 마무리하고 있다. ‘가을별이 번득이는 날 / 삶의 부스러기 잔재들 // 탈고 하여 詩로 / 隨筆로 재 탄생 되는가 // 느림이 여유로움으로 / 서투름이 익살로 꽃 피워 // 미완성 작 / 화려한 연미복으로 장식하고 // 발랄함이 독특한 / 문학의 향기’로 승화하고 있어서 그가 인식하는 존재는 바로 불성과 연결된 문학의 향훈(香薰)이 더욱 명징(明澄)해 질 것으로 확신하게 된다.
3. ‘그리움’의 전주곡과 사랑학
전명옥 시인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작품 곳곳에서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인간이 소유한 정감(情感)에 따른 심리적인 한 단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이라는 불문율(不文律)의 내면적 요인(internal factors)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학의 전주곡은 ‘그리움’이라는 심리적인 매체를 동반하게 되는데 우리 인간의 정(情)에서 사랑(愛)의 문제를 심각하게 사유하게 된다. 희노애락 애오욕(喜怒哀樂 愛惡慾)에서 사랑의 심도(深度)는 누구에게서나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월 어느날 지는해 바라보며 눈물 짓는 사슴아 세월의 이끼 낀 바위 틈에 장미 한 송이 외로이 떨고 있고나
그 자리에 강물에 종이배 띄워 그리움 전해 주려므나
--「오월의 연서」 전문
이 작품에서 전명옥 시인은 외로움과 그리움이 동시에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지는 해’와 ‘세월’이 대칭을 이루면서 ‘눈물’과 ‘장미 한 송이’의 정감적인 조화는 그의 서정시법에서 명징하게 현현되는 ‘연서’가 바로 ‘그리움’을 전제로 한 그의 사랑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리움’의 실체는 작품 「꿈속의 사랑」중에서 ‘사랑하는 내 님 있는 곳’으로 보내는 ‘적셔진 연서’이다. 그러나 이 ‘연서’에도 그가 시적으로 적시하는 소중한 단계가 있다. 그것이 ‘그리움은 활화산이 되’는 그의 순진성이 적나라(赤裸裸)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그리움’이 형상화한 그의 언어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 핑크빛 청춘이 아니라지만 / 은은한 사랑 그리움으로 // 사파이어빛 환상의 나래를 / 비 상의 날개짓 되어 스러져간다.(「중독된 사랑」중에서)
- 연못가 버드나무 / 버들잎에 / 님 그리워 엽서 띄우리(「광한루의 봄」중에서)
- 국화향기 가득한 / 계절이 오면 / 단아한 매무새 / 검소한 살림살이 / 삶은 뒤안길에 뉘 이고 // 뿌린 자식위해 / 희생犧牲의 길 / 여인女人의 길로 여겨 / 가을이 오면 / 보랏빛 그리움 이네(「보랏빛 그리움」중에서)
- 그리움이 산되어 / 비 구름되어 / 밤 하늘의 뭇별이 되어 / 잃은 꿈 찾아 가리(「밤하늘 의 별이 되어」중에서)
- 못견디게 그대가 그리운 날에는 / 버지니아 울프 읖조리던 / 한잔의 술 보드카로 달래 지 려나(「사랑의 굴레」중에서)
그러나 전명옥 시인의 사랑학은 이 ‘그리움’에서만 종결되는 것이 아니고 기다림의 미학도 동시에 발현되고 있다. 작품 「접시꽃 사랑」중에서 ‘붉은 미소는 / 누구를 그토록 / 기다리나 // 영원 무궁하고픈 / 그대를 / 기다리나’ 혹은 작품 「자석 목걸이」전문에서도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 / 해가 뜨는가 싶더니 저물었고 / 둥그머니 달떠서 외로움과 마주 서고 // 창문 사이로 햇살이 살며시 고개 드는가했는데 / 커튼을 흔드는 바람 이었네 // 기다리던 그녀에게 / 사랑의 자석목걸이를 / 내밀었다.’는 등의 어조는 그가 탐색하는 사랑학의 시법은 우선 외로움과 그리움이 일치되다가 기다림이라는 현실적인 실체의 상황으로 전이(轉移)하는 툭성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언제 까지나
문 밖에 서서
기다려 지는 당신
바람으로 오신 당신
꽃구름 되어서
산 그림자 되어서
선들선들 젠 걸음으로
망초꽃 피는 언덕에 오셨네
--「바람으로 오신 당신」 전문
전명옥 시인의 사랑학에는 그에게 ‘기다려지는 당신’이라는 시적 화자(話者)가 있다. 그것이 실재의 상황인지 상상의 시적 상황인지는 명백하게 거론할 수는 없겠으나 그가 적시하는 ‘바람으로 오신 당신’은 ‘꽃구름’이 되거나 아니면 ‘망초꽃 피는 언덕’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사랑학은 ‘바람아 저 구름아 / 사랑하는 내 님 있는 곳 // 쪽배에 실려 / 적셔진 연서 전해 다고(「꿈속의 사랑」중에서)’라거나 ‘사랑도 병이라 / 重 하면 / 헤어나기 힘이 드리(「삶의 노래」중에서)’ 그리고 ‘너는 나 / 나는 너의 / 그루터기 되어 주고 // 쳇 바퀴 도는 일상에 / 무지개빛 소망을 // 깊은 산 옹달샘처럼 / 맑은 물 퍼 올리는 / 두레박 되리(「축복」전문)’라는 비장한 그의 사랑시법을 공감하게 한다.
전명옥 시인은 이러한 사랑의 정감도 어쩌면 그가 생활화하고 있는 불심에서 원용(援用)하는 자비의 부처님 사랑을 관념화하면서 시적으로 승화하는 청정(淸淨)한 심중의 내면이 시혼으로 발양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4. 계절적 이미지와 서정성 탐색
전명옥 시인은 다시 그의 순수성이 내재된 서정적인 자아의 탐구에 많은 사유를 할애(割愛)하고 있다. 사계절에서 시간성과 적절한 공간에서 생성하는 자연의 변화를 수긍하면서 탐색하는 정감의 언어에서 그가 지향하는 시의 위의와 본령(本領)을 확고하게 현현하고 있다.
그는 주로 봄과 가을 그리고 겨울에 관한 이미지의 투영에 상당한 심혈(心血)로 형상화한 시법들을 많이 대할 수 있으며 거기에는 사계(四季)의 특성들이 우리 인간의 삶과 긴밀하게 상관하는 주제들이 분사(噴射)하고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옛 집앞 버드나무 가지에
연두빛 속살 오르고
뒷뜰엔 두릅나무 가죽나무
탱자나무 가지에도
연두빛 번져가는데
가슴에 핀 소망나무에는
햇살 한줌으로 키우리
새순 촉촉이
--「봄이 오면」 전문
우선 봄의 향훈(香薰)에서 풍기는 ‘가슴에 핀 소망나무’라는 시적 상황이 향그럽다. 이러한 그의 정서에는 서정(抒情)이라는 원류(源流)가 잠재해 있어서 봄과 연관된 사물에서 창출(創出)하는 이미지나 주제는 언제나 이 ‘소망나무’와 같이 희망과 기원의 의식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것이 전명옥 시인의 시적 진실이어서 작품의 주제로 승화한다.
이와 같이 봄의 생동감은 우리 생명과 동행하면서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지향점을 동일하게 투영하는 시법을 대할 수가 있다. 그는 ‘옹달샘 낙숫물 소리 / 또로록 똑 청아한데 // 입술 꼬옥 다문 자목련 / 베시시 눈 맞춤 하리(「봄의 향로」중에서)’, ‘어디든 날아 갈것 같은 / 여명의 새 아침 // 행복에 겹다 / 미래의 시간에 대하여(「어느 봄날의 설레임」중에서)’ 그리고 ‘시시 때때로 / 기다림의 미학은 / 유종의 꽃 피우리(「봄바람 부는 날」중에서)’와 같이 전명옥 시인이 봄과의 교감이나 대화는 너무나 진지하고 순정적이다.
황혼빛 물드는
저녁노을 바라보니
내 인생의 가을 닮았네
어느 결에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우고
회색빛 어둠이 내리면
어느 소녀의 기도소리 되어
별 헤며 님 그리는
가을은 슬픔과 환희 뒤 섞힌
황혼빛 여울이련가
--「가을은」 전문
이 가을에서는 어떻게 분화(分化)하고 있는가. 가을의 정감도 친자연적인 순수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가을의 이미지는 잘 아는 바와 같이 풍요이며 성과가 나타나는 결실이다. 그는 ‘내 인생의 가을 닮았네’라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인생행로에서 접하는 가을은 자신과 닮아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전명옥 시인은 특히 가을을 사랑하는 취향의 작품을 많이 대할 수 있다. 작품「가을은 아프다」「가을 타는 여인」「가을 단상」「가을비」「가을 사랑」「가을 여심」등등에서 그가 자연 서정과 더불어 심취(深趣)하는 인생의 향연이 서정적으로 물들이고 있다.
어느 바람 부는 날
베낭 하나 둘러매고
숭어를 노래하는
순례자 되었다가
이정표 없는 길 서성이며
떠도는 구름 벗 삼아
솔향기 맡으러
본향으로 돌아가리
--「겨울 나그네」 전문
전명옥 시인은 겨울에서도 포착된 외적(外的) 겨울 사물에서 인간의 진실을 탐색하고 있다. 그는 결론으로 적시한 ‘떠도는 구름 벗 삼아 / 솔향기 맡으러 / 본향으로 돌아가리’라는 어조는 우리 서정시가 갈망하는 진정한 시법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작품「겨울 목마」에서 ‘영혼은 타박타박 / 역마는 쉼 없이 내 달린다’는 겨울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대체로 겨울 이미지는 마감이라는 결과가 시적 형상으로 현현되는 경우가 많다. 역시 전명옥 시인도 ‘목마를 기다리는 / 중후한 시인에 사랑의 안단테’라는 어조로 ‘아직도 못다한 / 열정이 가슴에 타오르기 때문인가’라는 인생의 여운을 남겨놓고 있다.
전명옥 시인은 어쩔 수 없는 서정시인이다. 이처럼 자연 사물과의 감응(感應)은 공간개념에서 ‘아침바다’, ‘숲속의 요정’, ‘수종사의 여심’, ‘일영계곡’, ‘강변의 추억’, ‘낙조’, ‘산사의 하늬바람’ 등이 있으며 ‘수선화’, ‘안개비’, ‘산유화’, ‘낙엽을 밟으며’ 그리고 ‘산벚꽃’ 등의 자연 생물의 자태와 공감하는 작품들이 서정성을 조화시키고 있다.
전명옥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서 그가 신앙으로 각인된 불심에서 투영된 자비의 승화와 중년에 인식된 자아와 존재의 확인과 더불어 ‘그리움’을 전제로 한 사랑학의
탐구와 그리고 자연과 시간성에서 창출한 서정성을 대체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일찍이 우리의 시인 신석정이 그의 글「나는 시를 이렇게 생각한다」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생에 대한 불타오르는 시인의 창조적인 정신에서 결실되는 것이니, 대상하는 인생을 보다 더 아름답게 영위하려고 의욕하고 그것을 추구 갈망하는 데서 그 시인의 한 분신(分身)이 아닐 수 없다’는 말처럼 시와 인생과 자연과 그것을 표현하면서 느끼려는 정감을 깊이 음미해야 할 것이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